‘빠순’ 프라이드
지난 몇 편의 기사에서 ‘빠순이’란 표현이 여과 없이 나간 것에 관한 문의를 받았다. 비교적 과감한 언어생활을 하는 ‘빠순이’들은 종종 자신이나 ‘동료’들을 ‘빠순이’라 지칭한다. 아이돌로지의 소중한 필진 오요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점잖은 표현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이 표현을 그대로 실은 데에는, 단지 구어를 살려 문장을 가볍게 하려는 것 이상의 이유가 있다.
때는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빠부대’란 말이 있었다. 1994년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에 관한 기사에 이 표현이 사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시간이 더 흐르면, 무려 1969년의 클리프 리처드 내한 공연 관객마저 ‘오빠부대’로 소급 지칭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단어가 처음 매체에 등장한 것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의하면, 1993년 2월 14일 동아일보 스포츠면이다. 농구대잔치의 인기팀을 응원하는 여중생, 여고생들의 ‘극성맞은’ 응원에 농구대잔치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시종일관 비판적인 기조를 유지한다.
“직원들 포기 상태”, “비명에 가까운 함성”, “낯뜨거운 구호”, “귀를 찢는 듯한 『오빠』의 외침이 끝도 없이” “선수들은 이들 때문에 홍역”, “선물 등을 억지로 안기기 때문”, “몸살을 앓는다.” “잘 지워지지도 않는 유성펜”, “직원들이 골탕을 먹어”
유례없는 경기 호황, 혹은 버블 상태였던 한국의 1990년대는, 가장 본격적으로 세대별 취향이 분리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 태어난 이 시대 청년문화의 주역들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부모들이 이룩한 부를 바탕으로, 거의 처음으로, 소비 지향적인 10대 문화와 20대 문화를 가질 수 있었다. 아이돌 이전 시대를 장식한 이현우, 강수지, 양준일 등이 이른바 ‘유학파’ 출신인 점은, 시대가 새로운 감수성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청년문화는 으레 기성세대를 적으로 돌리는 법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날라리’들에게 기성세대는 여러 가지 딱지를 붙였다. ‘오렌지족’과 ‘오빠부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오빠부대’는 점차, ‘빠순이’로 진화했다.
이건 아니고…
비슷한 ‘딱지’로, ‘덕’, ‘덕후’를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이 어휘는 제법 변천을 겪었다. 그 어원인 ‘오타쿠’의 개념이 한국에 처음 소개되던 1990년대 말, 대중문화에 심취한 이들 사이에서 ‘오타쿠’가 동경과 자부심의 언어이기도 했다. 그것이 ‘오덕후’로 변천되던 시기, 한국 사회에서 이는 상당한 경멸의 표현이 되었다. ‘십덕후’, ‘오덕’, ‘짱덕’ 등의 배리에이션도 생겨났다. 그러나 일부 ‘덕후’들이 자조적 의미로 ‘덕후’를 자칭하면서 그 모양새는 다소 변화했다. 지금도 ‘덕후’가 경멸적으로 쓰이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나, ‘덕후 새끼’와 같은 형태로 뉘앙스를 강조해주지 않으면 거의 중립적인 표현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심지어 ‘덕’이라고까지 줄이면 부정적인 어감은 더욱 줄어든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빠순이’는 폭력적인 어휘다. 너무 천박해서인지 2001년까지 주요 매체에 차마 담을 수 없었던 이 표현은, 의외로 1979년에도 사용된 바 있다. “술집에 나가는 여인들을 「빠순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1979년 7월 11일) 팬덤을 지칭하는 ‘빠순이’의 ‘빠’가 ‘오빠’에서 온 것이라 할 때, ‘빠순이’와 ‘오빠부대’가 지칭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젊은 여성이다. 우리 사회의 적잖은 일들이 그렇듯, 이 역시 만만한 게 젊은 여성이라 공격하는 경우이다. (‘빠돌이’가 그만큼의 공격성을 띠는지 생각해 보면 자명한 일이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면 종종 여성 팬덤을 눈먼 분노의 대상으로 던져주는 낚시가 등장한다. 이것은 ‘빠순이’가 여전히 사회 일각으로부터 증오의 대상임을 보여주는 모습이며, 그 원류는 앞서 지적했듯 이해할 수 없는 취향에 대한 공포심이었다. 일종의 ‘빠순 포비아’인 것이다.
‘퀴어(queer)’와 ‘니거(nigger)’를 생각해 본다. 각각 동성애자와 흑인을 비하하던 이 단어들은, 용기 있는 게이들과 흑인들에 의해 ‘갈취’되고 ‘전용’되었다. 남들이 ‘나’의 정체성을 꼬집어 욕하던 단어를 빼앗아 ‘나’ 스스로 사용함으로써, 그것은 ‘나’의 자부심이 된 것이다. 자신이 동성애자거나 흑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생각이 없다는 몸짓은, 곧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선언이고, 또한 그 정체성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고 공격하는 것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퀴어’, ‘니거’처럼, ‘빠순이’도 해방의 언어가 되어도 좋을 때다. ‘빠순이’가 부끄러운 정체성이 된 것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걸 즐기는 어린 년’들에 대해 공포에 질렸던 1990년대 기성세대의 저주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가 계승할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서 “빠순이”를 뺏아 온다면, ‘빠순이’가 부끄러울 이유도 없으며, 오히려 든든한 자존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빠순이’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남성이 타인을 “빠순이”라 부르는 건 예의상 조심할 필요도 있겠으나, 적어도 ‘빠순이’들은 자신을 “빠순이”라 당당히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이돌로지는 이후로도 ‘빠순이’가 사용하는 “빠순이”를 실음으로써 이를 응원한다. 빠순 프라이드!
글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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