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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성규네집 문앞에서 빨리 나오길 기다리는 우현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김성규, 빨리 안나오냐? 라고 외칠려고 하는 순간 힘없이 문을 열고 출발하는 성규에 크흠,하며 뒤를 좇아간다
“ 왜그래, 무슨 일 있었냐 ”
“ 아니야, 아무일 없었어 ”
성규의 단호한 대답에 더이상 아무말 할 수 없었지만 길게 드리워진 다크서클이 밤잠까지 설친듯했다 왠만한 큰일이 있어도 이렇게 티를 내지 않는 성규인데 이렇게 우울한 모습은 처음인지라 많이 낯설고 당황스러운 우현이였다
토요일이라 일찍 마쳤는데 어째 비까지 주룩주룩 쏟아진다 친구들과 놀면서 기분이 조금 풀어진 성규지만 내리는 비를 보니 또 울적해지는 기분이다
“ 성규, 우산 갖고왔어? ”
“ 아니 ”
“ 씌워줄게 이리와 ”
우현의 말에 당연하다는듯 옆으로 착 섰다 하지만 그 여느날과 달리 성규는 가방을 거꾸로 매고는 얼굴을 파뭍은 채 말 한마디않고 걷기만 한다
“ 야, 그러다 넘어진다, 똑바로 다녀 ”
결국 우현이 한소리하자 고개를 들고 한숨을 쉬는 성규다
“ 넌 오늘 부모님한테 뭐 해줄거냐 ”
“ 어? ”
“ 오늘, 어버이날이잖아 뭐 해줄거냐고 ”
“ 어제 산거랑 꽃이랑 주려고.. 너는 뭐 준비한 거 없어? ”
“ 없어. . . ”
힘없이 대답하는 성규에 가만히 쳐다보는 우현이다 그러다 갑자기 우산을 벗어나 뛰어간 성규가 자신의 집 앞에 선다
“ 오늘 고마웠어, 월요일날 봐 ”
두손을 휘휘 흔들며 인사하는 그 모습에 우현도 따라 어,그래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집으로 들어갔지만 자꾸만 축쳐진 성규의 모습이 신경쓰여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저녁이 되자 창밖에 비는 더 거세져 그칠줄 몰랐다, 우현은 텔레비전 채널을 무작위로 돌리며 쇼파에 앉아있는데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 여보세요? ”
“ 우..우현아 나 성규,성규인데.. ”
전화를 받았지만 성규가 덜덜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어 계속해서 경청했다 하지만 울면서 말을 하기 시작하자 알아듣지 못할 정도가 되었고 결국 우현이 몇번이고 다독여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 . .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
성규의 말에 표정이 굳은 우현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전화를 끊고 윗층 자기 방으로 달려가 저금통을 탈탈 털어 돈을 챙겼다 급히 밖으로 나가 성규의 집으로 들어간 우현은, 지금은 아까보다 나아진건지 훌쩍이고 있는 성규가 겉옷을 주워들고 전화를 걸고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 어디 병원이래? ”
“ ... 상서병원 ”
수술중, 저 빨간 불빛이 둘을 초조하게 만든다 성규와 우현이 쫄딱 젖은채로 복도 의자에 앉아있다 조금 한시름 놓은 성규는 무릎에 얼굴을 파뭍은 채로 길었던 정적을 깨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가족도 아닌데 같이 와줘서 고마워 ”
그말에 가만히 성규를 쳐다봤다 성규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채 무언갈 더 말할 모양인지 망설인다
“ 어제, 가게 갔다가 바로 집으로 왔는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빠가 집에 있었어, 엄마한테 돈을 요구하고 있더라,나한테 비밀로 하는 대신에 말야 ”
담담하게 자신의 개인사를 말하는 성규의 말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우현은 조금 놀란듯 성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내가 그자리에서 뭐라고 하면서 화를 냈는데 기억이 안나, 아빠가 나를 발견하고 그대로 우리집에서 나갔고 그 사실을 숨기고있었다는 엄마에대한 배신감에, 그러면 안되는데 무진장 화를 내버렸어 ”
그런데, 진짜 이렇게 쓰러지실 줄 몰랐어,
마지막 말에 축축히 울음소리가 섞여나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 뒷모습을 보고있던 우현이 톡톡 성규의 등을 두드린다 눈물을 가득 머금은채 고개를 들었고 곧 우현이 조심히 내미는 것에 멈칫,눈을 크게 뜨고 우현를 쳐다본다
투명한 직육면체에 분홍색 하트가 들어있는, 신기하게도 안의 하트가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거렸다
“ 이게 어떻게 너한테 있어? ”
“ 네가 정말 갖고싶어 하길래, 이성열 그자식한테 돈 두배로 주고 샀다, 자 이거 받고, 어머니 드려 ”
“ 그말 . . 진짜야? ”
성규가 믿을 수 없다는듯 질문하자 응,하며 입꼬리를 씨익 올리는 우현이다 그 미소에 성규는 가슴이 철렁해지는 것과 동시에 울컥, 스물스물 먼가가 올라와 눈물샘을 자극한다 결국, 다시 울음이 터졌고 그에 당황해하며 서툴게 등을 토닥여주는 우현이다
“ 고마워... ”
울먹이며 말하는 성규에게, 그의 미소는 여태까지 봤던 것 중 가장 근사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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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와 심한 스트레스 인한 뇌출혈, 그것이 성규의 엄마가 가진 병명이였다, 수술이 끝나고 혼수상태인 엄마의 옆에서 엎드려 잠든 성규는 눈꼬리에 아직도 눈물이 맺혀있다 그것을 본 우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이불을 덮어준다
“ 으으. . . 죽지마요 엄마아 ”
갑자기 자고 있던 성규가 입술을 달싹거리다 잠꼬대를 웅얼거린다 눈썹을 크게 휘며 울상인 채 마른듯한 눈물을 또 쏟어낸다
“ 내가 잘못했어, 죽지마요. . . ”
엉엉 울며 서글프게 말하는 성규의 잠꼬대에 우현이 뒷목에 손을 얹고 고민하는듯하더니 성규옆에 앉아 허리를 숙여 귀에 가만히 속삭인다 신기하게도 성규는 다시 죽은듯이 잠들었고 우현도 내심 놀래다 픽 웃고는 자신도 엎드려 잠을 청했다
“ 김성규, 넌 앞으로 아프지 않는 날이 더 많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