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우는 떨지도 않고 평소 실력 그대로를 보여 줬어. 다른 조건들을 배제하더라도 실력은 꽤 좋았거든. 정말 물 흐르듯 유연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끝났네' 하는 심정으로 한숨을 푹 쉬는데, 갑자기 뒤를 돌던 정찬우와 눈이 마주쳤어. 근데 정찬우가 나를 보더니 눈이 살짝 커지면서, 뭔가 표정이 미묘해 지더라. " 야. 쟤가 너 쳐다본다 " " 그러게. 날 왜보지ㅋㅋㅋ " " 니가 뮤즈인가 보지ㅋㅋ진짜면 소름ㅋㅋㅋ " " 뭔 개소리야 " " 어? 헐? 쟤 방금 실수함 " " ? " 실수했다는 말에 놀라 정찬우를 다시 보자, 딱딱하게 굳은 채 이전과는 다른 뻣뻣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앞에 심사보는 분들은 약간 인상을 쓰고 계셨고. 내가 무슨 실수했냐고 묻자, 너 얼굴 보더니 박자 놓쳤어. 2초나.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 무슨 일이래.. " " 그니까. 그럼 이번에는 정찬우 탈락인감? " " 아마도 그럴감 " * " 노래부를 때 한눈파는 가수가 어딨어요,어? 가수되기 싫어? " " 아니요 " " 기대했는데. 아쉽네요. 잘들었어요 " " ..감사합니다 " 예의바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의자로 향하는 정찬우의 표정에는 딱 두가지가 있었어. 아쉬움과 후회. 아마 많이 놀랐겠지. 한번도 가사를 잊은적 없던 애니까. 주위를 보니까 다른애들도 다 나와 같은 느낌이었는지 놀란 얼굴들이더라. * " 이수현 김지석 OOO 박수현. 카메라 라인 앞으로 나오자 "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내 이름이 불리자, 잠잠하던 가슴이 쿵쿵 뛰면서 주체할 수 없이 긴장감이 몰려오는거야. 아 진짜..어떡하지? 실수하면 어떡하지?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에 펼쳐지는데, 정말 눈앞이 캄캄하더라. 같이 이름이 불린 수현이도 희진이랑 친한 사인데, 나를 보면서 웃어주는데. 애가 착하게 생겨서인지 정신이 깨끗해지더라ㅋㅋ기분 좋아졌어. ' 잘하자 ' ' 너도 ' 서로 입모양으로 소리없이 응원하면서 나가는데, 우연히 정찬우랑 또 눈이 마주쳤어. 마주친 정찬우는 이번에는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다른 곳을 쳐다봤어. 되게 이상했어 기분이. * " 오늘 처음으로 맘에 드는 분이네요. 곡을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해내셨어요 " " 아, 감사합니다 " " 수고했구요. OOO양 나와주세요 " 와 대박. 진짜 내 차례야?ㅋㅋㅋㅋ이건 길거리에서 버스킹 할 때보다도 몇 백 배는 더 떨려ㅋㅋㅋ아 내 심장. 앞으로 걸어나가는 내내 손에서 땀이 뻘뻘 나고 내장이 찬물에 담가놓은 듯 급속도로 배가 차가워졌어. 존나 긴장.. 그분들도 심각하게 파리해진 내 안색을 보셨는지, 부드럽게 웃어주시는데. 또 쓸데없이 감덩..ㅎ " 아..OOO입니다 " " 알아요 " " 네,네? 아..네..아시죠 " " 긴장 풀어요 " " 네.. " 당연히 나 따위 이름 알지ㅋㅋ이 멍청아..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쓸데없는 말을 잘도 지껄이는 내 주둥이..(찰싹찰싹) 주위에서 큭큭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어. 아 쪽팔려.. " ..시작할게요 " 무슨 노래를 부를까 고민하다가, 그냥 평소에 내가 즐겨 부르는 곡을 선택했어. 굳이 기교 쩌는 노래를 골랐다가 창피만 당하고 들어가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 노래를 입으로 불렀는지 코로 불렀는지, 정신은 혼미해져서 정말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몰라. 곡을 다 마치니까 산 정상에 오른 것 마냥 숨이 차서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을 뻔 한걸 겨우 참았어. 손도 벌벌 떨리고..총체적 난국이었지. 희진이가 혼자 박수 쳐주다가 선생님한테 주의 받고 잠잠해지더라ㅋㅋㅋ누가 친구 아니랄까봐. " 음.. " 음? 끝?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하기를 주저하시는 데, 말의 여백이 길어졌어. 그러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더라고. 아..난 최초로 '음'이란 한 글자 심사를 듣고 끝난 비운의 학원생이 되는 건가요. 길이길이 추억으로남겠어요..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있는데, 다행히도 그 말이 끝이 아니었어. 다시 말을 이어 가시더라고. "굉장히, 우리가 찾던 보컬이에요..음..바로 결정할게요 " " ..네? " 너무 놀라서, 칭찬을 들었다는 것도, 그리고 나는 아직 심사를 받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그 분의 말에 대답을 해버렸어. 그 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정확히 나와 눈을 맞추고 말씀을 하셨어. " YG가 픽업 하겠습니다 " 왓 더..? -------------------- 댓글 감사해요ㅎㅎ 드디어 길고 길었던 앞부분이 끝을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