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바다 향이 솔솔 나는 집이었어요.제가 살던 집이 그랬는데,바다 옆에 바로 붙어 있었거든요.그래서 물장난도 자주 치고 그랬어요.유치원 갔다 와서 가방 내려놓고 바다에 일 나가신 할머니 기다린답시고 모래성을 쌓으러 바닷가에 나갔어요.
근데 파도에 휩쓸려 왔는지 강아지 처럼 생긴 남자애가 바닷가에 쓰러져 있는거에요.애가 표정이 안 좋길래 괜찮냐니까,울먹거리면서 발..발...이러는 거에요.그래서 걔 발을 보니까 발등에 피가 퐁퐁 올라오더라고요.일단 걔를 업고 집으로 올라 왔어요.
웃기지 않아요?다섯살 짜리 남자애가 자기보다 조금 더 큰 애를 질질 끌고 집으로 데려왔다니.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구나 싶어요.
집엔 나랑 할머니랑 둘이서 살았는데 그 날 따라 할머니가 돌아오질 않았어요.할머니가 해녀신데 되게 정정하셨거든요.그 시간 쯤엔 할머니가 오셔서 경수야-경수야-불렀어야 했는데 할머니가 안 오셨어요.
할머니가 우리집 백구도 같이 배에 데리고 가셨는데.. 그리고 그 남자애를 내가 집에 끌고 오긴 왔는데 뭐 부터 해야할지 막막한 거에요.근데 걔가 서랍을 콕 찝으면서 저기 안에 후시딘이 있대요.그래서 난 우리집인데 니가 어떻게아냐,물어보지도 못 하고 그냥 막 뒤졌죠.
제일 웃긴게,진짜 그 안에 후시딘이 있었어요.
급하게 소매 걷어 부치고 까진 발등에 피를 닦아내고 약을 살살 발라 줬어요.
그러니까 걔가 아프다고 막 엄살 부리는거에요,우리집 강아지 처럼.
그제서야 백구랑 할머니가 왜 지금까지 안 오나 싶어서 바닷가에 나가 봤더니 할머니가 타고 가신 배가 산산히 부서져서 조각들이 파도에 밀려 왔어요. 그 때 나는 딱 직감 했어요.할머니는 안 오는게 아니라 못 오는 거라고.전에 부모님도 뱃일 나가셨다가 안 오셨는데 할머니가 나한테 그랬거든요.안 오는게 아니라 못 온다고.그 말 하실때도 옆에 백구가 있었는데.
집으로 다시 올라오는데 모래알이 발에 서걱 거렸어요.그 틈에 유리조각이라도 있었나,눈물이 나더라고요.
암튼 울면서 집으로 올라왔는데 걔를 어디 보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같이 세수하고 양치하고 그냥 같이 잠 잤어요.
다음날 동네 사람들이 우리집으로 몰려왔어요.
까만 옷 입구요.날 껴안고 우시는데 난 눈물이 안 났어요.어제 다 울었어서.
근데 난 정말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됐어요.그 남자애도 할머니 손자인 줄 알고 걔한테도 까만옷을 입히는 거에요.그래서 못 입히게 떼썼어요.걔 까지 까만 옷을 입어버리면,이제 나한텐 아무도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걘 그냥 장례식 끝날 때 까지 멍하니 앉아 있는 내 옆에서 백구처럼 가만히 기다려 줬어요.장례식이 끝나고 걔한테 그제서야 이름을 물어 봤어요.
이름이 백현이래요.성은 모르고 그냥 백현이래요.이름이랑 걔가 너무 잘 어울려서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어요.그 뿐 이었어요,진짜.
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내가 18살이 되던 해였어요.난 그 파도에 휩쓸려온 남자애랑 13년 동안 동거 했어요.물론 걔는 우리 할머니 역할처럼 날 사랑해 줬어요.근데 할머니가 주는 사랑이랑 걔가 주는 사랑은 좀 달랐어요.
어쩌면 받아들이는 내 입장이 달랐던거 였을수도 있죠.백현이랑 여느때와 다름없이 하교를 하는데 애가 헥헥 대는거에요.정말 한 80살 쯤 된 할아버지 처럼.얼굴은 잘 생긴 그대로 인데.사실 작년부터 애가 기력이 많이 약했어요.
좀 이상하다,느낀 그날 저녁에 밥을 먹고 씻고 잠자리에 누웠어요.분명히 보일러를 켜 놨는데 마음 한 쪽이 쐐한거에요.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백현이를 불렀어요.원래는 씻고 나오자 마자 껴안고 뽀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미세한 진동도 없이 그냥 맨바닥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거에요.
백현아 백현아 한 세번쯤 불렀나,백현이가 손을 떨면서 나를 불렀어요.목소리가 되게 멋진데 힘이 없었어요.
"경수야.나 이제 여기 못 있어.나 할매 옆에 묻어줘라."
"그게 무슨 말이야?할매라니.우리할머니?니가 왜 여기 못 있어."
"넌 어떻게 13년동안 눈치를 못 채냐 둔한 자식아."
"백현아 왜그래,응?왜 그래.."
"나 사랑한다고 해줘."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사랑한단 말을 해 달래요.이유도 모르고 조급한 마음에 사랑한다고 했어요.
"사랑해.사랑해 백현아.사랑해.왜,왜 그래?응?"
"나도..."
이게 끝이었어요.백현이의 끝.백현이가 힘없이 고운 손을 떨구고 나는 고개를 떨궜어요.그제서야 알았어요.백현이가 죽은 이유.얜 수명이 다해서 죽은거에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강아지 주제에 18년이라니.나랑 점심시간마다 축구 해 주고 하교할때 피씨방 가서 놀고.18살이면 강아지 나이로 126살인데,나를 위해서 할아버지 몸을 이끌구 놀아준거에요.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어요.
-서랍,서랍 열어봐.후시딘 있어.
얘가 어떻게 처음 온 날에 서랍에 후시딘이 있는지 알았는지,
-할머니 못 오셔.울지말구 그냥 자.
잠결에 들은 얘가 했던 말들,
-경수야 나 진짜 늙었나봐.왜 이렇게 힘드냐.
헥헥 거리며 진짜 할아버지처럼 말 하던 백현이.백현이가 파도에 휩쓸려 온 뒤로 돌아오지 않던 백구.
얘는 백구였어요.
왜 그제서야,왜 그제서야 알았던지.눈물이 막 났어요.할머니 돌아가셨을때도 소리내서는 못 울었는데,백현이 손이 떨어지고 고개가 떨어지고 눈물이 떨어지는데 어린애처럼 왕왕 울었어요.말도 안 돼게 가슴이 아파서 울어도 울어도 마음에 구멍 난 것 처럼.진짜 그게 끝 이었던거에요.
백현이의 생애는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났어요.
벌써 백현이가 그렇게 죽은 지 2년이 지났네요.내가 성인이 됬으니까.의사선생님,2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요.이제 못 버티겠어요.미쳐버릴 것 같아요....
아직 소년 티를 못 벗은 경수의 어깨가 들썩였다.의사 선생은 탄식했다.지금 내가 맡고 있는 이 향이.추억의 향일 지도 몰라서.이 소년의 너무도 진한 향에 자기도 빠져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그렇게 생각했다.짭짜름 한 바다 향이 서서히 소년을 집어 삼키는 것 같았다.
뎨둉합니다.글을 옮기던 와중 앞부분이 날아가 버려서8ㅅ8수정 좀 하구 온다구 늦었네요.댓글 쓰시고 포인트 회수 해 가세요.긋밤( ͡° ͜ʖ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