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전하가 좋아. 정국이가 좋아.
처음엔 맹세코 아무런 생각도 없었지만. 다들 이런 상황이 되면 날 이해 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눈 보러 나간 날 이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 전하께선 눈 뜨자마자부터 날 찾으셨고, 나 또한 그랬어.
중요한 일을 보실 때도, 어딜 가실 때에도 내가 졸졸 따라다녔지. 전하께서도 날 챙겨주셨고.
감기에 걸렸을 땐 내 옆에 앉아서 어쩔 줄 모르시는 모습도 보이셨어.
그러니까 내가 반할 수밖에 없는 거지.
감기 걸렸을 때 안 그래도 좀 아팠는데, 옆에서 왜 몸을 안 챙기고 이리 아파서 걱정을 시키느냐고 화를 내시길래 울었어.
우니까 또 안절부절못하면서 미안하다고 그러는데 사실 노린 거였지. 걱정해주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거든.
근데 진짜 헷갈리는 거야. 정말 날 좋아하셔서 이러는 건가, 아니면 신기해서 챙겨주시는 건가.
나는 이분이 진짜 좋은데, 혹시 예의상 그냥 챙겨주신 거면 어떻게 해.
직접 고백을 들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나만 막 속이 타는 거야. 괜히 혼자 삽질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전하 눈 마주치기가 더 부끄럽고 그런 거야. 혼자 짝사랑에 빠져서 이러고 있는 거면 정말 쪽팔린거잖아.
내가 뭐 연애를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내 기준에선 이게 연인 사이인데, 정확히 내려진 사이가 아니니까 애매한 거야.
그래서 혼자 꿍해서 앓고 있었어. 고백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솔직히 그냥 이 상태 그대로도 좋지만, 왜 사람 심리가 그렇잖아. 이왕이면 딱 떨어지는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먼저 고백 하실 것 같진 않고, 어떤 감정을 가지신 지도 모르니까 내가 질러야지 어쩌겠어.
근데 만약에 고백했다가 버르장머리 없다고 까이면 어떻게 해?
혼자 폭풍 내적 오열 하며 지새운 밤이 몇 번인지 모르겠더라.
이제 여기에 온 지 겨우 이주를 채워가고 있는데 그 짧은 시간 내에 제가 전하에게 반해버렸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이게 얼마나 웃긴 상황이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 내가 이런데 본인은 어떠시겠어.
"여기 있었구나."
요즘 과인을 피해 다니는 것 같구나. 웃으며 장난스레 말씀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도망쳤어.
치마가 워낙 풍성하고 무겁고 길어서 애 좀 먹었는데 아무튼 도망치게 되더라.
부끄러운 것도 있고, 들키기도 싫었고. 말을 섞으면 다 들통 날 것 같았어.
솔직히 전하면 다 알 것 같았지. 그럼. 내 속을 다 들여다보시는 분인데 그거 하나 못 짐작하실 리가.
그러다가 그냥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쭈그려 앉고 숨어있는데 금세 날 찾아내셨어. 귀신같은 사람.
역시 무서워. 무서운 정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니까 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살짝 손가락 사이로 보니까 날 따라 앉으시더라.
"어인 일로 나를 피하는 것이냐."
"아, 안 피했는데요."
내가 말을 더듬으면서 핑계를 대니까 전하께서 갑자기 얼굴을 확 들이미셨어.
그러더니 내 손을 치우는 거야. 이게 무슨 일이야. 놀래서 뭔가 할 생각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어.
근데 진짜 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서 고개를 뒤로 조금 빼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보시더라고.
"내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냐."
말을 어떻게 해요 그걸…. 고개를 숙이니까 이번엔 내 양 볼을 감싸고 고개를 올리는 거야.
저 볼살 많아여. 이건 아닌데.
표정에 어서 모든 것을 털어놓으라는 게 다 드러나는 거야. 안 말하면 삐칠 것 같은 그런.
하기야, 며칠 동안 피해 다녔는데 전하께서도 나름 안 서운하실 리가 없지.
"……실은."
실은. 전하께서 내 말을 따라 하셨어. 떨려서 말 못하겠어. 내가 계속 우물쭈물하고 있자 내 팔을 흔드시는 거야.
이거 뭐, 대답 재촉하는 게 조금 귀여우시기도 하고.
"제가 전하를 연모해도 되겠습니까……?"
근데 너무 조용해. 대답이 없어. 난 망했구나. 그러구나.
고개를 푹 숙이고 진짜 생각 속으로 이불 킥만 한 백번은 했어. 괜히 말했다, 생각도 들었지.
이젠 난 꼼짝없이 현실로 돌아가야 하겠네. 곤장 안 맞는 게 어디야.
혼자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는데 전하께서 다시 내 볼을 감싸 올렸어.
"전부터 나는,"
네. 전부터 호의를 베풀어주셨죠. 제가 그것도 모자라서 전하를 좋아합니다. 죄송해요.
울상을 짓자 전하께선 웃음을 터트리셨어.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밝은 웃음이셨지.
어……. 이거 긍정적인 반응인가.
"이미 너를 연모해왔다는 것을 모르느냐."
허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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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실패 fail.
설날님, 눈설님, 장희빈님, 민슈가님, 이킴님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