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누워서 잠을 청해보려고 애를 썼어. 근데 잠이 올 리가 없었지.
게다가 지금 옆에 무려 전하께서 같이 누워 계시는데 더 그렇지.
나만 완전 결혼식 올린 신부 마냥 부끄러워하면서 이불을 코 위까지 덮었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전하께선 아이처럼 웃으셨어.
한쪽 팔을 머리밑에 받치곤 옆으로 돌아누워 나를 보고 있는 모습에 나만 시선을 허공에 두고.
아무튼, 내가 지금 고백을 받았어. 그것도 정국 전하, 한나라의 왕한테!
평생 남자한테 고백 같은 거 못 받아보고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인생에 꽃이 피다니.
지금은 겨울이 아니고 봄임에 틀림없어.
자꾸만 올라가는 광대를 자제하느라 애를 먹었어. 정말로 좋은걸. 이건 말로 다 표현 못 할 거야.
짧은 시간이고, 긴 시간이고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럼 이제 나 연애 하는 걸까. 이제 전하께선 어떤 말들로 내 고막을 녹일지.
괜히 며칠 동안 맘 고생했구나 싶었어. 진작 말했으면 이럴 일 없었을 거 아니야.
전하 말마따나 면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전하께선 그저 호기심이 아니라 나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건가.
그게 김칫국이면 뭐 어때 현재가 중요한 거잖아.
배실 배실 웃으며 돌아오는 내 모습을 보고 석진은 피식 웃었어. 그러더니 나에게 슬금 와선 귀에 속삭였지.
'이제 밤마다 안 앓으셔도 되겠습니다.' 하고.
그리고 내가 밤마다 정국을 외친 소리를 엿들은 죄로 석진은 나에게 정강이 킥을 당했다고 한다.
"나를 보아라."
못 보겠어요. 나 이러다 정말 설레서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이불을 이마 위까지 올리기 무섭게 다시 목까지 이불이 내려졌어.
너무 과감하셔서 탈이야. 내 손은 이불이요, 이불은 내 손이요.
전부터 무엇으로 얼굴을 가린 들 족족 다 걷어 내려지더라. 내 얼굴 오픈 마인드. 그래도 예쁘게 봐주셔서 다행이지.
"내가 너를 보고 싶어 그런 것이다, 얼른 고운 얼굴을 보여주거라."
저 여기 조선 시대인데요. 제가 심쿵사를 당해서 그런데 관 하나만 짜주세요.
정말 마음속으로는 현실 눈물 백번이고 쏟았어. 엄마 나 남자 제대로 골랐나 봐요.
세상에 이런 남자가 또 있을까. 말도 청산유수 유려하게 정말 잘해. 어화둥둥 내 사랑이로구나.
정말이지, 설레는 만큼 심장이 난도질당한다면 내 심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야. 내가 장담해.
어쩌면 지난날들에 대한 보상을 지금 받고 있는 걸지도 몰라. 고생한 만큼.
아, 내가 남자라도 많이 만나봤다면 이 순수한 분을 데리고 밀당이란 걸 좀 해봤을 텐데.
아무튼, 또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이분 덕에 내 심장박동수는 최고치를 찍고 있었어.
좋아한다는 감정이 바로 이런 거구나. 사랑 받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인 거구나.
상상만으로도 벅차오르는 느낌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어.
그 모습을 보면서 전하께선 또 같이 웃으시더라. 웃음이 많으신 분이야. 뭔들 안 좋겠어.
"내일은 햇살이 따사로울 것만 같은 기분이로구나."
"……왜요?"
네가 내 곁에 있질 않으냐. 네가 온 뒤로부터 궐이 항상 밝고 따뜻하구나.
그래서 관은 언제 오는 거지. 내가 정말 상상도 못 했던 달달한 멘트에 입을 벌리고 멍하게 있자 전하께선 또 웃으셨어.
분명 자기 자신도 알 거야. 이런 말 하나하나에 내 온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걸.
이런 사람이 제거에요 이제. 온전히 나의 소유라니까.
나만 봐주시는 나만의 해바라기 전하.
그래도 일찍 말할 걸 하는 아쉬움은 계속 남아있긴 하더라. 이런 걸 더 볼 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지. 그래서 나도 뭐, 한마디 던져봤어.
"그럼 내일 하루, 저와 함께 걷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선 대답을 안 하시곤 나를 지긋이 쳐다보셨어. 어쩌면 밀당은 내가 아니라 이분이 하시는 지도.
아니 내일 날씨 좋으실 것 같다니까 한번 꺼내본 말이긴 한데.
너무 당연한 걸 얘기해서 그런 건가. 싫으면 말라고 튕겨보려던 찰나에 전하께서 입을 여셨어.
"하면, 손을 내어주겠느냐."
라운드 올킬. 와, 이건 정말 사람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들이 아니야.
어쩌면 이렇게 사람 심장 폭행하는 말들만 쏙쏙 골라서 액기스로.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억울한 거야. 내가 허락 안 해도 잡고 싶으면 잡을 거면서.
내가 거절하면 어떨까 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자, 전하께서도 눈치채셨는지 내 코끝을 아프지 않게 잡으시더라.
더럽게 눈치만 빨라선. 내가 손을 밀어내는 데 그분은 더 짖궃은 표정을 지으셨어.
"손을 안 내어주면, 나도 안 나갈 것이다."
허얼. 이런 게 어딨어. 반칙이야.
조선 시대 사람이 아니고 현실 사람이었으면 여러 여자 울렸을 카사노바.
그래도 좋다. 좋으니까 용서할게요. 설마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러는 건 아니겠지.
잡혀있는 손에서 심장이 쿵쿵 뛰는 것 같았어. 이런 기분 처음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이 피어오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구나.
지금까지 내 마음속 한구석에 응어리져 있던 무거운 감정들이 스르르 풀리는 게 느껴졌어.
내가 여태껏 이런 감정을 베풀지 못했구나, 괜스레 후회도 되더라.
이 무거운 짐들을 덜게 해준 전하께 정말 감사했어.
아마 이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난 끝없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겠지.
어떻게 보면 우연히 지만, 나를 삶의 끝에서 구원해주신 분과 다름이 없잖아.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행복이란 감정을 다시 심어주시고, 설렘이라는 걸 가르쳐주신 분.
손을 내어줄 테니, 나와 함께 걸어주세요.
따뜻한 겨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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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님, 눈설님, 장희빈님, 민슈가님, 이킴님, 권지용님, 꽃잎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