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암
새벽 2시, 황윤성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왔다. 소등하여 어두컴컴한 거실 가운데 혼자 소파에 앉아 반쯤 감긴 눈으로 본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은 흥미를 잃은지 오래다. 어제도 그저께도 늦게 들어왔지만 새벽까지 늦어지진 않았단 말이다. 오늘 아침 회식이 있을 것이라 말은 했다만 10시 이후 연락이 끊긴 그에, 기다리다 지쳐 눈이 저절로 감기기 시작했다. 그때,
띠리링-
"......"
"왜 아직 안 자고 있어."
"......"
"미안해, 연락 못해서."
"짜증나."
그를 한참동안 째려보며 두 눈으로 짜증을 표현했다. 가까이 다가오자 풍기는 알코올향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왜애. 이리 와."
잔뜩 풀린 눈으로 늘어지게 말하는데, 그 꼴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는 또 왜 이리 좋은지. 여전히 노려보며 그에게 다가가자 두 팔을 벌려주었고, 나는 그 품으로 들어가 안겼다. 팔을 둘러 허리를 꼭 안으니 그도 내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에 미안함이 잔뜩 묻어있다.
말없이 안고 있기를 한참, 내가 이마로 그의 가슴팍을 쿵 내리쳤다. 아아... 아픈척 하는데 미워서 발도 밟아주었다.
"오빠 너 진짜 너무해."
"......"
"빨리 미안하다고 해."
"...미안해, 내가. 기다리게 해서 미안."
품 속에서 웅얼웅얼 내가 말하는 걸 다 알아듣기는 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한다.
술 냄새 가득 묻은 그의 외투를 벗겨 주었다. 가만히 서서 나를 쳐다보며 내 손길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본가에 있는 강아지를 떠올리게 한다.
"뭘 멀뚱히 서 있어. 다 벗었으면 빨리 다시 안아."
피식 웃더니 다시 꼭 안아준다. 그러고는 내가 미안해. 기분 풀면 안 될까? 묻는데,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끌어당겨 입술에 짧게 뽀뽀했다. 또 피식 웃고는 내 이마에 뽀뽀한다.
술냄새 나, 뽀뽀하지마. 한마디 하고는 안고 있는 상태로 걸어가 그 몸을 방으로 밀어넣는다. 내가 밀어 자기는 뒤뚱뒤뚱 뒷걸음질 치면서도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다 들린다.
미처 끄지 못한 티비만 거실에서 홀로 소리를 낸다.
2
새벽이 되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황윤성은 연락도 없이 집에 오지 않는다. 시계의 짧은 바늘은 3을 향해 달리고 있고, 우리 관계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티비에선 깔깔 웃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는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며칠 째 계속되는 황윤성의 미운 행동에 나도 지친다. 어제까진 기다리지 않고 그냥 잤지만, 오늘은 컴컴한 거실에서 그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심산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저벅저벅 걸어오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황윤성은 아무 말 없이 외투를 벗어 소파에 얹어둔다. 나쁜 놈.
부엌에서 물 한 잔 따라마시고 다시 거실로 나올 때까지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째려 볼 힘도 없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지친다.
소파에 쪼그려 앉았던 몸을 펴 일어섰다. 그에게 다가가는 동안 서로 눈만 쳐다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내 의도를 알았는지 그는 두 팔을 살짝 벌렸고 나는 그 품에 안겼다. 꼭 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인지 그저 팔을 얹어 나를 안아줄 뿐이다.
한참을 그러고 서있었다. 다리가 아파올 때 쯤 눈물이 흐르더라. 그의 얇은 티가 내 눈물로 젖어들기 시작했다. 자기도 느꼈는지, 흠칫하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의 품에서 떨어지자 자기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는데 더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고개를 들어 두 눈을 마주보기를 또 한참, 손을 들어 그 얼굴을 잡아당겨 입을 맞추었다. 큰 손으로 내 머리를 바치며 다른 한 손으로 등을 쓸어준다. 그 손길에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목을 끌어안는 내 두 손에 황윤성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입술을 떼고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두 손에 파묻은 그 모습을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뉘였다.
독자님들 취향은 1번인가요 2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