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촬영이 끝났다. 기사가 터졌던 때에 이미 촬영은 거의 막바지였던 터라 별 불편함 없이 수월하게 마무리 되었다. 드라마 촬영 팀과는 섭섭한 마음을 달래며 인사를 했다. 드라마 막방 날 다 같이 모여 회식을 하기로 했으니 아예 마지막 인사는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꽤 친하게 지냈다고 승연과 따로 인사를 해야 하나, 했는데 마지막 촬영이 다르기도 했고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그럴싸한 인사를 하지 못했다. 따로 문자를 보낼까도 했지만 괜히 낯간지러워서 그만뒀다. 열애설 사건이 좀 마무리 되고, 촬영장에서 만나기 시작한 이후 따로 연락을 이어간 적은 없어서 더 그랬다.
촬영이 끝나자 몇 있던 스케줄이 없어지고 휴식이 찾아왔다. ‘아무 의미’ 영화 촬영 전까지 시간이 비기도 했고, 따로 예능이나 라디오 같은 부가적인 스케줄을 잡지 않아서 더욱 무료했다. 바쁘다 갑자기 쉬니 생각보다 너무 공허해서 예능 하나를 출연하기로 했다. ‘나 혼자 산다’라고 카메라를 두고 혼자 사는 모습을 촬영하는 예능이었는데, 라디오나 다른 예능들보다 말을 적게 해도 되는 방송인 것 같아 선택했다. 게다가 승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출연하기로 했으니 부담이 더 줄었다. SNS를 시작하고 팬들의 반응을 확인하다 보니 내 생각보다 팬분들이 나의 일상을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 그에 더 적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 아무래도 그와 내 이름이 동시에 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자연스레 승연이 생각났다. 유투브를 통해 그의 그룹 뮤직비디오를 순서대로 돌려보기도 하고, 예능이나 라디오를 보기도 했다. 액정 속 그는 어쩔 땐 내가 아는 그와 같기도 했고, 어쩔 땐 완전히 다르기도 했다. 조금 진지한 질문에 조심스레 대답을 꺼내 놓을 때는, 한강에서의 그가 생각났다. 흥미로운 질문에 조금 신나는 얼굴을 할 때면 SNS를 알려주던 그가 떠올랐고. 근데 너무 웃겨 눈가에 눈물을 찔끔 달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릴 땐 그가 저런 얼굴도 있었나, 싶었고, 무대 위에서 한껏 날카로운 얼굴을 할 때면 내가 아는 그가 맞나, 싶었다. 그러다 보니 찾아보는 영상의 수가 늘어났다. 또 어떤 얼굴이 있을까 해서 여러 가지 영상을 클릭해 들어갔더니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덕질을 시작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무대 위 그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무대 밑 모습도 마찬가지였고.
[뭐 해?]
그래서 미쳐서는 홀린 듯 문자를 했다. 그것도 구여친이 할 법한 어색하고 아련한 문자를. 그제서야 생각해보면 시간도 새벽이었다. 1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 동안 내가 잉여 생활을 해서 시간 개념이 없었던 거다. 보내고 나서 퍼뜩 정신이 들어 입을 틀어막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거 어떻게 삭제 안 되나 하고 핸드폰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데 별 다른 방법은 없었다. 미쳤구나, 진짜.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요상한 포즈를 한 뒤에 두 주먹을 꽉 쥐고 기도했다. 제발, 조승연 핸드폰이 고장나게 해주세요. 아님 통신 이상으로 문자가 제대로 전달 안 되게 해주세요. 그것도 아님 조승연이 갑자기 난독증에 걸리게 해주세요.
이렇게 뭘 빌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손을 싹싹 비비며 중얼거리는데, 띠링-하고 문자 알림이 울렸다. 순간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아니야, 저거 조승연 아닐 거야. 김미영 팀장이라든지, 아님 매니저 오빠라든지. 보험 문자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문자 올 곳이 많잖아. 이 새벽에 조승연이 갑자기 이렇게 빨리 답장할 리는 없어. 두 눈을 질끈 감고 실 눈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영화 보러 갈래?]
결국 조승연이네. 그것도 얘도 한참이나 이상한 문자를 보냈다. 뭐하냐고 물어봤는데 영화 보러 가자는 건 무슨 뜬금없는 얘기야. 방금 전까지 내가 보낸 문자가 창피해 붉어진 얼굴로 비실비실 튀어나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 얘 진짜.
[너 내 문자 기다렸어?]
문자를 기다렸다 후다닥 자기가 하고 싶던 말을 급하게 뱉은 느낌이 너무 강해서 마음이 이상하게 울렁였다.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놀리듯 문자를 보냈는데, 한참 동안이나 답이 없다. 핸드폰을 들고 당황한 얼굴로 어떻게 알았지, 발을 동동 구를 그를 생각하니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아까 영상을 볼 때만 해도 내가 아는 그가 조승연이 맞나 싶었는데, 지금은 어쩜 저렇게 훤히 다 보이지 싶었다. 생각 할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 물이나 한 잔 마시려 부엌으로 가 컵을 드는데, 문자가 왔다.
[티 나?]
그렇게 오래 생각하고 보낸 문자가 결국 이거라니 마시던 물을 뿜을 뻔 했다.
[영화 어디로 보러 갈 건데?]
[데리러 갈게.]
이번엔 또 답장이 빠르다. 참지 못하겠다는 듯 급하게 알림이 띠링- 울린다. 성격이 급해 벌써 나갈 준비를 끝냈을 그를 떠올리다 마음이 또 한번 간질거림을 느낀다.
이상하게, 좋다. 마치 정말 연애라도 하는 것처럼.
조승연은 나를 싫어한다
나오라는 문자를 받고 바로 뛰어나갔는데, 차 한대가 집 앞에 서 있었다. 승연이 맞나 싶어 빼꼼 얼굴을 들이미는데, 조수석 쪽 창문이 열렸다. 검은색 비니에 안경을 쓴 편한 복장. 나야. 웃는 얼굴에 나 또한 웃으며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차 안 가득 그의 향이 풍겼다. 저번과는 다른 비누 향. 향수 자주 바꾸나. 저번엔 또 다른 향이었는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며 벨트를 매자 그를 확인한 그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차를 출발시킨다.
“너 오늘 스케줄은 없어?”
“응, 아까 라디오 하나가 마지막.”
“라디오? 끝나고 바로 온 거야?”
“매니저 형한테 본가 내려달라고 해서 차 타고 바로 왔지.”
그래 놓고 피곤하지도 않은지 실실 웃는다. 어디로 가는 건지 따로 묻지 않았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부는 바람이 시원하고 좋았다. 승연 또한 기분 좋은 얼굴로 운전대를 휙휙 돌린다. 말 그대로 휙휙. 눈은 힐끔힐끔 나를 보며. 저렇게까지 돌릴 구간은 아닌데 오른쪽으로 휙. 심지어 신호가 걸려 멈춰있는데 왼쪽으로 휙.
“승연아. 나도 운전할 줄 알아.”
“응?”
“그거 그렇게 막 안 돌려도 돼.”
“아, 티 나?”
멋있어 보일 줄 알았지. 멋쩍은 얼굴의 그가 목 뒷부분을 긁적인다. 그제야 휙휙 돌아가던 손이 부드럽게 풀린다. 어깨에 힘을 뺀 그가 민망한지 붉어진 얼굴로 실없이 웃는다. 어디서 들었는데 여자들이 운전대 휙휙 돌릴 때 심쿵한다고 했다며. 마지막에 주차할 때 후진하는 것도 보여줘야 했는데 이렇게 쉽게 들킬 줄 몰랐다며. 부끄러움에 슬쩍 올라간 입 꼬리가 차마 미워할 수가 없어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밥은 먹었어?”
“멤버가 과자 주길래 그거 좀 먹었어.”
“과자? 밥은 안 먹고??”
“원래 다들 밤에 잘 안 먹어서.”
“밥 먹으러 가자. 영화는 다음에 보고.”
스케줄 끝나고 바로 온 것도 뭔가 미안한데, 과자만 먹은 속에 팝콘을 넣어주자니 그건 정말 못할 짓인 것 같아 말하자 승연이 힐끔 나를 본다. 별로인가, 싶어 괜히 그의 눈치를 봤다. 영화 보자고 했던 게 진짜 보고 싶던 영화가 있었던 건가. 그런 건데 괜히 오지랖 부린 걸로 보일까, 마음이 살짝 초조했다.
“왜, 별로야?”
“아니, 좋아.”
“근데 왜 대답이 없어?”
“그냥. 다음에라는 말이 듣기 좋아서. 대답 안 하면 얘가 못 들었나, 하고 선배가 한 번 더 말해줄지 알았어.”
엉뚱한 말을 해놓고 씩- 웃는다. 가만 보면 조승연 얘는 은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것 같으면서도 가끔 너무 진솔할 때가 있다. 이게 바로 선택적 쑥스러움 이라는 걸까. 자기가 부끄러움 탈 땐 귀엽고 진솔 될 땐 떨린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럴 수 없어. 이럴 때마다 그가 사실은 숨겨둔 연애 고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든 걸 다 계획하고 척하는 걸 수도 있어.
“선배, 내일 스케줄 있어?”
“아니, 왜?”
넘어가지 말자. 다짐하며 그를 본다.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설레지 않으리라. 떨리지 않으리라. 긴장에 꿀꺽- 침을 삼키며 그와 시선을 마주하는데, 살짝 웃음을 터뜨린 그가 시선을 돌린다. 눈이 마주쳤다.
“술 한 잔 할까?”
아, 솔직히 조승연 좀 심하잖아.
조승연은 나를 싫어한다
결국 눈 앞에 잔이 놓였다. 나는 스케줄이 없어 괜찮다 쳐도 얘는 괜찮은가 싶어서 물었더니, 내일 새벽에 라디오 하나 있다고 하길래 결국 오케이! 하고 여기까지 따라와버렸다. 승연이 자주 온다던 술집이었다. 술 마실 줄 아는 멤버들과 가끔 들리는 곳이라는 이 곳은, 룸으로 된 술집이라 보안이 꽤나 괜찮았다. 처음엔 간단히 먹자며 맥주를 시키려다, 의외로 둘 다 취향이 소주로 통한다는 걸 알고는 이슬 한 병을 시켰다. 장난스레 술 병을 들고 이리 저리 흔들다 팔꿈치로 툭툭 치는 기술까지 보이며 뿌듯하게 미소 짓는 얼굴이 웃겨 웃음을 터뜨리자 승연이 술잔에 술을 따라줬다.
“전부터 느낀 건데 술 마시는 거 되게 익숙해 보여.”
“못 마시지는 않지.”
전 회식 때 자연스럽게 술을 주고 받던 승연이 떠올라 말했더니 익살스러운 얼굴로 웃는다. 어깨까지 으쓱 거리며 우쭐한 얼굴을 하는데 하나도 밉지 않고 귀여웠다.
“자, 소주 반 병 먹으면 실려가는 승연씨도 한 잔 받아!”
그가 시작한 장난에 기분이 좋아져 나 또한 장난을 치며 술 병을 받아 들자, 술 잔을 내민 승연이 못 말린다는 듯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좋을 줄은 몰랐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근래에 이렇게 신이 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직 술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분위기에 취한다는 게 이런 건지 잔뜩 텐션이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승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흥 오른 얼굴로 술 잔을 짠- 하고 부딪힌 승연이 단숨에 술 잔을 비우더니 크- 하고 과장된 소리를 냈다.
“너 근데 정말 나 알고 있었어?”
“어?”
“저번에 라디오에서 ‘나비’ 얘기 했잖아. 궁금했거든. 일부러 짜맞추고 들어간 건지 아닌지.”
“그걸 어떻게 짜맞춰. 진짜 좋아한 거지.”
술도 들어가고 분위기도 좋겠다, 그 동안 궁금했던 걸 털어놓자 탕을 먹으려 숟가락을 입가에 가져가던 승연이 나를 바라봤다. 거짓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이란 말을 직접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 선배 나한테 전화한 적 없지?”
“컬러링 진짜 선배 노랜데.”
조금은 섭섭하다는 듯 입 꼬리를 내리길래 되려 당황해버렸다. 그게 의심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고 말하려는데, 비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가 비워진 소주병에 숟가락을 꼽았다. 뭘 하려고 저러나 물음표 가득 뜬 얼굴로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얼굴에 웃음기를 띤 그가 이리 저리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노래였다. 그것도 내 파트. 과장하며 움직이는 동작과 뜬금없는 행동에 웃음이 터져 배 아플 정도로 웃으면서, 순식간에 확 바꾼 얼굴로 윙크까지 하는 그를 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바닥을 떼구르르 굴렀다.
“아, 조승연. 진짜-“
“봐봐. 나 선배 파트 가사 다 알아.”
“너 진짜- 알겠어. 알겠어. 인정.”
“데뷔 곡도 불러줄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말하길래 겨우 그를 어르고 달래서 막았다. 아무리 보안이 철저하다고 해도 이렇게 크게 노래를 부르면 밖에서 들릴지도 몰랐다. 그것보다 한 곡 더 뽑으면 내 배꼽이 진짜 빠져버릴까 봐 무섭기도 했고. 최고라며 엄지를 척- 들어올리자 그제야 승연이 자리에 앉았다.
“나 진짜 선배 노래랑 방송 다 봤었단 말이야. 근데 그렇게 짜맞춘 거냐고 하면 서운하지.”
“알겠어, 내가 미안해.”
“아니, 뭐. 미안하라고 한 소리는 아니고. 그냥 서운하다는 거지.”
자기도 민망한지 코 끝을 쓱- 매만지던 그가 술 잔을 털어 넣었다.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처음 봤을 땐 진짜 싸가지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꼬리도 쭉- 올라가서 입 꾹 다물고 있으면 진짜 사납게 생겼다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렇게 순하게 생겼을 수가 없다. 요새 항상 웃고 있어서 그런가, 처음 봤을 때와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랐다.
“사실 회식 때 나한테 왜 그러냐면서 뭐라 그랬을 때 나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어?”
“막 꺼지라고 그랬지 않냐면서 눈꼬리 축- 내리는데 완전 충격 먹어서-“
“…”
“그때 정신 없이 집에 가서 완전 울 뻔했어. 나 왜 이렇게 사납게 생겼지, 하고.”
그새 술 좀 들어갔다고 붉어진 얼굴을 한 그가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나와 관련되어 있지만 나는 절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 때를 떠올리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젓던 그가 울상이 된 얼굴로 나를 본다.
“아니, 근데. 그때는 그럴 만 했잖아. 난 네가 진짜 나 싫어하는 줄 알았어.”
“왜?”
“우리 처음 연말 시상식 뒤에서 만났을 때 내가 힘내라고 했는데 너 쓱- 보더니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잖아.”
“아, 그건. 갑자기 마주칠 줄 몰라서 진짜 너무 당황해서-“
“그 다음에 촬영할 때는 뭐, 나한테 들어가 있으면 안 되냐고??”
“보고 있으면 떨리니까-“
“뭐가 떨려.”
“선배, 봐봐. 생각해봐. 만약 선배가 연기를 해야 하는데 강동원 선배님이 막 뒤에서 보고 있어. 어떨 것 같아?”
“떨리지.”
아, 그건 좀 떨리겠다. 승연 말을 들으면 그가 왜 그랬는지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강동원 선배님이 내 뒤에서 내가 연기하는 걸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연기를 못했을 것 같으니까. 근데 쟤 내 이상형이 강동원인 건 어떻게 알았지. 몰라, 짠이나 해야지. 잔을 높게 들자 승연이 그게 맞춰 잔을 부딪혔다. 꽤나 마신 듯 빈 병이 늘어가고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한다. 조승연 얼굴은 뭐 말할 것도 없이 터지기 전이고. 근데 아무도 멈출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좋으니까. 이렇게 몰랐던 이야기를 듣는 것들이.
“너 우리 한강에서 만났을 때 무르고 싶으면 그렇게 해준다고 했잖아, 그거 대책 있이 했던 말이야?”
“그런 상황에 대책이 어디 있어.”
“뭐야, 거짓말이었어?”
“거짓말은 아니고. 저지를 생각은 있었어.”
“뭐를?”
“뒤집어 엎을 생각. 선배가 무르고 싶다고 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엎어버렸겠지. 그러려고 물어본 거였으니까.”
술을 먹기 시작한 나이부터 술을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술자리에서만 나오는 그 분위기를 좋아했다. 사람이 가장 솔직해지고, 가장 진실 되는 그 때. 많은 사람이 아니라 둘 정도 도란도란 앉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그 시간이 좋았다.
“사실 나 요즘 계속 놀라. 네가 내가 생각했던 거랑 되게 달라서.”
“어떻게?”
“그냥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좀 인기에 힘 입어서 거들먹거리는 그런 애인 줄 알았어. 근데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뭐가 많아, 너.”
“무슨 말이야?”
“첫모습도, 한강에서의 너도, 방송 속에서의 너도, 오늘의 너도. 진짜 색달라. 어쩔 때 보면 내가 아는 모습이 나와서 좋고, 어쩔 땐 내가 모르는 모습에 놀라. 그래서 가끔은 뭐가 진짜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
술 기운 때문인지 조금 따뜻해진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하고, 오로지 나만을 담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음, 사실 꾸며내는 부분도 없지 않아서 뭐가 진짜다 말하기는 애매한데. 분명한 건 선배 앞에 있는 나는 다 진짜 나야.”
술집을 가득 매운 그의 향수 냄새도 좋았고,
“뭐가 진짜고 가짜일까, 하는 그런 것에 대해 깊게 생각 해본 적은 없는데, 방금 생각해보니까 딱 알겠더라고. 방송에 나가거나 그럴 땐 일부러 더 오버하는 경우가 많아서 내 본 모습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 그래서 끝나고 나면 피곤할 때가 있는데 선배랑 있으면 안 그래.”
조심스럽지만 자신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는 저 입술도 좋았으며,
“오히려 매일 붙어있고 같이 있고 싶어. 아마 선배랑 있으면 내가 나다워질 수 있어서 그런가 봐.”
끝내 옅게 웃음을 터뜨리는 조승연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