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데이트
나 어때? 예뻐? 라고 묻는듯한 얼굴에 고개를 한껏 끄덕였다. 응, 너 예뻐.
정말로 로빈은 예뻤다. 새까만 머리카락, 그 아래 까맣고 순한 눈, 하얀 얼굴, 입술 색도 적당하고, 목은..
"너 거기 키스마크 보여."
목 한곳을 콕 찌르며 가볍게 말했는데 로빈은 지나치게 놀랐다. 방실방실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고 눈이 크게 떠졌다.
생각보다, 힘들었나보다. 손으로 자국을 덮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어제 내가 만든거잖아."
"아.."
로빈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내 손 위에 따듯한 손을 얹으며 쑥쓰러운 듯이 웃었다.
"깜빡했어."
"..허. 벌써 까먹을 만큼 아무것도 아니었어?"
내 테크닉이? 정말? 얼굴을 가까이 하고 물어보자 로빈이 깔깔 웃었다. 하여간 애인 칭찬을 한번도 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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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렸다. 손짓 몇번에 깔끔하게 없어지는 자국을 보고 솔직히 좀 놀랐다. 로빈 손재주가 저정도일 줄이야.
그러니까 여태 몰랐지. 신기해서 자꾸 힐끔힐끔 쳐다봤는데 로빈이 자리를 바꿔버렸다.
작게 투덜대며 대문을 나섰는데,
"..춥다.."
그랬다. 로빈 말대로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영상으로 올라간다며? 망할 기상청.
우리는 덜덜 떨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왜 오늘따라 아무 곳으로나 가보고 싶다고 했는지.
평소 같으면 차를 탔을텐데 날씨만 믿고 데이트 코스는 고사하고 기름도 안 채워 놨다.
둘이서 누가 이 정신나간 계획을 처음 내놓았느냐는 주제로 열심히 싸우며 걷다보니 어느새 도착해있었다.
처음 오는 버스에 타서 몸 녹이고 내리자. 첫번째 계획이었다.
떠나려는 버스에 달려들어서 일단 탔다. 시작이 반이라고, 나름 성공적인 시작에 웃음이 나왔다.
빨갛던 코끝이 원래 색으로 돌아오고, 차가운 손도 다시 따듯해졌을때 우리는 내렸다.
처음 보는 거리였다. 어딘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돈이 있는데 돌아갈 길은 있을 것이다.
작고 따듯한 곳이었다. 물론 날씨는 똑같이 추웠지만 작은 가게들이 양옆에 늘어서서 바람을 막아 주었고,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따뜻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다시 크리스마스가 된 것 같았다. 아직 치우지 않은 장식물들이 시간을 되돌려주었다. 옆의 로빈을 보니 로빈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무작정 내린 곳 치고는 성공이다.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간혹 어린아이와 함께 가는 노인들이 보였다.
긴 코트 소매 사이로 로빈의 하얀 손이 삐져 나와 있었다. 살며시 잡자 로빈도 아무렇지 않은 척 더 꽉 잡아 보였다.
부드러운 로빈 손을 잡고 걷는, 처음 보는 거리는 퍽 사랑스러웠다.
두번째 계획. 처음 보는 가게에서 물건 사기.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조그만 인형부터 오르골까지 다양한 것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뭘 사는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로빈이 춥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목이 더 하얘 보였다.
뭔가 따듯한 것이..마침 그때 목도리를 파는 곳이 보였다. 나무로 된 갈색 간판에는 털실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작은 종소리와 함께 고양이 한마리가 튀어나왔다. 로빈이 고양이를 덥석 붙잡았다.
"귀여워!"
로빈은 이미 그 작은 털뭉치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이름을 부르며 고양이에게 말을 거는 로빈을 뒤로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핸드메이드. 커다란 글씨 위에는 각종 색상과 무늬의 목도리와 털장갑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로빈."
"응?"
"목도리 안필요해?"
로빈이 고양이를 내려놓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내 옆에 서더니,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커플로 맞추자. 비밀 말하듯 조그맣게 속삭이자 로빈도 키득거리며 맞대응해줬다. 좋아. 난 파랑 넌 검정으로? 그래.
주인 할머니께 목도리랑 하는 겸에 장갑까지 계산하고 나오자 마침 바람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
벽들이 막아주었던 바람이 우리에게 정면으로 불고 있었다.
가게 문 앞에서 주섬주섬 장갑을 끼고 서로 목도리를 둘러 준 뒤에 약속한듯이 아까 내렸던 곳으로 향했다.
목도리와 추위는 별개다. 데이트는 집에서 해도 충분해.
근데 누가 오늘 밖에 나가자 했냐. 너 아냐? 설마. 너겠지. 아침이랑 똑같이 투덜대며 결국 우리는 집에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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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를 이렇게 하는 커플은 우리밖에 없을 걸."
"그래서, 싫어?"
"설마. 귀찮게 누가 요새 하루종일 밖에 있어."
"그치?"
"..뻔뻔해진거 알고 있지?"
"알아."
사실 기억하고 있다. 내가 하자고 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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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브는 몇년 전에 갔던 일본 거리. 작은 골목길에 인형집이랑 미니어처 작은 악기 그런것만 파는데 되게 신기했어요
버스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ㅎㅎㅋ
이번편은 줄리안 시점!
사실 밥도먹고 돌아다니고 뭐 구경하고 뭐 먹고 뭐 사고 걷고걷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정작 저는 데이트할 사람이 없는게 너무 슬퍼져서..온도를 낮췄어요..(못됨
농담이고. 썰로만 쓰다 보니까 저런 장면은 잘 못쓰겠어서ㅠㅠ줄였어요. 그래서 이번 편 짧다고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앞에 편들이랑 길이가 비슷해..?
어..솔직히 놀랐어요. 짧은거 알긴 알았지만 진짜 짧았구나 왜 여태 쓰면서 그걸 몰랐지
제일 길었던건 5편? 이번편 두배쯤 됩니다(시선회피
이번 화가 끝입니다.
넌 이걸 마무리라고 지은거냐..라 하시면 저도 변명할 거리가 있는데요 일단 이편도 외전에 가깝구요, 스토리 자체는 7편에 이미 끝나있었어요.
본편 7에 외전 4는 뭔가 균형이 안맞는것같아서 억지로 본편으로..쨌든 외전이 두편 있을 예정입니당 둘다 불맠(수줍)
한편은 여러분이 저번화에서 기대하셨던 그것이 될 예정이구요 한편은 제목에 관한 거예요. 제목이 무언가의 패러디인데 혹시 아시는 분?
설마 이걸까ㅋㅋㅋㅋㅋㅋㅋ하는걸 찌르시면 맞을겁니다
이건 정말 중요한건데요..사실 이 편은 어떤 분의 리퀘였습니다.
예전에 한창 소재 받아서 썰 쓸 때 어떤 분이 추가로 부탁을 하셨는데 제가 무려 3주 가까이 잊고 있다가 하얀벽지 구상할 때쯤 기억나서 헐 헐헐 헐 어떡하지!! 으아앙ㅇ아아아!! 하다가 으으 여기 넣어야겠다 장편을 바치면 넘어가주시겠지ㄷㄷ..해서 나온게 마지막편인 데이트. 그분께는 따로 링크를 보내드리구요..정말 죄송합니다..좋아해주셨으면 좋겠구요..죄송해요 한달 걸렸네요..(빌빌빌빌
그분을 위해 이편은 공짜입니다 혹시 시리즈 읽어볼 생각 드시면 댓글에 그분이라고 댓글 달아주세요 전 편 구독료 해제할게요.
이러다간 소설보다 사담이 길어지겠네요 히즈리였습니당 오타나 맞춤법지적 언제나 감사하구요 댓글다시는분께는 사랑을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