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동거 : 6남자와 별빛
04
"제 이름은 혁이에여. 비를 내리져."
혁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 맴돌았다. 미친 듯이 내달렸다.
뒤에서 부르는 친구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조그만 게 아파할 것을 생각하니까 몰려오는 걱정에 숨도 안 쉬고 달렸던 것 같다.
"혁아!!!!"
"별빛아!!! 혁이가 이상해ㅠㅠ"
"왔어? 이런 적이 없었어. 어떻게 해야 해 응?"
입술을 꽉 깨물고 혁이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레오와 나에게 도도도 뛰어와 울먹이는 켄과 빈이다.
그 사이에서 숨을 헐떡이며 강아지 마냥 낑낑대는 혁이까지. 하루 만에 이게 무슨 일이람.
"혁아 괜찮아? 눈 좀 떠봐"
빠른 걸음으로 욕실로 가 손부터 대충 씻은 뒤 혁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끙끙대며 눈을 뜨려고 애를 쓴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건지. 요정이 아프기도 하는지. 뒤죽박죽 생각이 얽히고설킨다.
조심스레 두 손으로 누워있던 혁이를 들었다. 축 처진 몸이 안쓰럽기만 했다.
혁이를 침대에 눕히고 따듯한 물과 수건을 준비해 팔, 다리 이곳저곳을 닦아주었다.
그리고선 가위로 수건을 조각내어 차가운 물에 적신 뒤 혁이의 이마에 올려두었다.
온 몸이 불덩어리 처럼 뜨거웠고 자꾸만 숨을 헐떡이는 혁이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혁이의 열 때문인지 수건은 금세 미지근해졌고 그때마다 다시 수건을 갈아 혁이의 이마에 얹어 놓았다.
정신없이 혁이를 보다가 문뜩 눈에 들어온 비에 젖은 강아지 마냥 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는 차학연과 김원식.
집에 우산 하나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비는 쫄딱 맞으면서 날 기다린거야. 우산 챙겨 쓸 정신도 없었나.
한숨을 쉬며 트레이닝복이 있는 서랍을 뒤져 그나마 큰 옷을 챙겼다. 맞을런지 모르겠네.
"얼른 욕실 들어가서 따듯한 물로 씻어. 감기걸려"
"혁이 괜찮겠지?"
"괜찮을거야."
집에 들어온 내내 혁이에게서 눈을 못떼는 학연이와 추운지 몸을 덜덜 떠는 원식이를 욕실로 들여보냈다.
씻고 나오라며 몸을 틀자 급하게 내 손목을 잡아오는 원식이를 쳐다보자 어떻게 하는지 모른단다.
아니, PPT 오타도 고쳐주면서 어떻게 모를수가 있지. 진짜 아는거라고는 한글 뿐인가.
여기에 이걸 짜서 거품을 묻혀서 몸을 닦고~ 따듯한 물로 씻어 이거는 머리에 이렇게 비비는거야.
어떻게 씻는지 알려주며 수납장에 있던 새 칫솔을 꺼냈다. 이렇게 치카치카 하고 나와.
내가 하는 행동을 요리조리 보는 눈동자 네개에 괜한 웃음이 나와 푸핫 하고 웃으니 눈이 동그래진다.
내가 꼭 유치원 선생님 같아서.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내가 가르쳐 준거 다른 애들한테도 가르쳐 줘야 해. 너네가.
".....별빛아..."
혁이의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던 아이들은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고 나도 잠이 든 모양인지 다 갈라진 혁이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자 헤헤 웃고 있는 혁이가 아닌 상혁이. 미지근해진 수건 조각을 엄지와 검지로 흔들고 있다.
"몸은 좀 괜찮은거야?"
"그런거 같애여.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여. 올라와여"
침대 밑에 앉아 있는 나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툭 치며 올라오라는 상혁이에게 고개를 저으며 됐다고 했다.
손을 뻗어 이마를 짚으니 이제는 열도 내려간것 같고 조금은 상태가 호전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나와 상혁이의 대화에 잠에서 깬 레오가 눈을 비비며 상혁이의 허벅지로 올라오려 낑낑댔다.
자연스레 상혁은 레오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상혁의 손 위로 탄 레오가 이리 와보라는 듯 손을 까딱 해보인다.
그러자 상혁이 얼굴을 레오 쪽으로 가까이 대었고 조그마한 손을 얹어 얼굴 이곳저곳을 짚어보는 레오다.
그런 그들을 보다가 방을 둘러보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조각난 수건과 대야.
난장판이구만. 치워야 겠다.
수건을 모아 대야에 대충 넣고 들려는 순간 뒤에서 뻗어오는 손에 돌아보자 어느새 홍빈으로 변한 빈이 서 있었다.
"으앗"
"내가 버릴게. 그런데 왜 이렇게 놀라?"
백허그 하는 포즈가 되어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자 자신이 더 놀란듯 눈이 커진 홍빈이다.
방금 까지만 해도 인형 마냥 침대에서 자고 있던게 커져가지고 뒤에서 안아오듯 손을 뻗으니깐 그렇지.
아유, 내 심장이야.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거실로 향했다.
거실로 나오니 언제 주방으로 간건지 택운이 이곳저곳을 열어보고 있다.
"뭐하게?"
"....라면"
"라면? 끓일줄 알아?"
"....너가 끓이는거 봤어"
하긴 내가 집에서 먹은거라곤 라면 뿐이었으니...
큼큼, 멋쩍음에 헛기침을 하며 수건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는 거실을 보자 TV를 트는 재환, 눈도 못뜬채 배게를 들고 쇼파에 앉는 원식이, 상혁이에게 들러 붙어 어디가 아팠냐며 어떻게 아팠냐며 쉴새없이 몰아부치는 학연이까지.
며칠 전까지만해도 조용했던 우리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북적북적하다.
뒷목을 긁적였다. 아직 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이 집에 누군가가 함께한다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 * *
"별빛아 거기 있는 귤 던져 줘~"
............
"별빛아 너 앞에 있는 리모컨 좀!"
............
"별~빛~ 초콜릿 먹어도 되여?"
"야!!!!!!!!!!!!!!!!"
주객전도. 이 단어가 아니고서야 이 상황을 설명할만한 단어가 없다.
우리 집은 순식간에 저 여섯남자들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무슨 하녀 마냥.....
막 부려먹는다. 밥은 물론이요. 이런 자잘한 심부름 까지. 이것들이 진짜.
소리를 지르자 TV를 보며 헤실헤실 웃던 원식이 먹고 있는 귤을 떨어뜨렸다.
인간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많다며 인간으로 변해서 작은 모습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한다.
쿵쾅거리며 겉옷과 지갑을 챙겼다.
"운아, 나가자"
"별빛이 어디가요?"
방에서 낮잠을 자던 학연이 눈을 비비며 물어온다.
너네 먹을 반찬거리 사러 나간다!
* * *
여섯 요정, 아니 식충들과 살게된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 집 반찬이 밑바닥을 드러냈다.
입이 많은 것도 많은거지만 다들 식성도 좋아 무지막지하게 먹기 때문이었다.
된장국에 밥 말아 먹는 요정이 어디있어.
지갑을 열자 몇장 안보이는 지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것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지. 알바라도 뛰어야하나.
".....엇"
마트에 도착해 자연스레 카트에 백원을 넣고 끌어 당기려 손을 뻗자 택운이 나를 살짝 밀고는 카트를 끌고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 후다닥 따라갔다.
"이거랑, 이거"
상혁이가 좋아하는 허쉬초콜릿을 골라 카트에 담고 닭볶음탕 재료인 닭을 사러 걸음을 옮겼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연신 두리번대는 택운은 내가 가는데로 곧잘 따라왔다.
닭을 사기 위해 코너를 도는데
"어머,어머 새댁 이리와 봐"
시식코너에 있던 종업원이 호들갑을 떨며 내 팔을 잡아왔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택운이의 입에 팔고 있던 음식을 우악스럽게 구겨넣으며 내게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왜,왜이러세요.....
"이게 정력에 그렇게 좋아~ 아주 그냥 남편 허벅지가 튼실하구만"
"예?..."
"젊은 부부가 참 좋겠어~ 둘다 아주 그냥 선남선녀야~ 호호호"
혼자 신난 종업원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또 무슨 말을 하실지 몰라 택운의 팔을 툭툭 치며 잡아 끌어 얼른 가자는 표시를 했다.
".........."
엄마야, 얘 왜이렇게 쳐다보고 있니.
잡아당겨도 꿈쩍 않길래 뭔가 하고 올려다보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당황스러움에 뒤로 살짝 걸음을 옮겨 등을 떠밀었다.
좀, 가자고!
".......이거 맛있어"
자신의 뒤에 있던 내 팔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나를 내려다보는 정택운.
내게 사자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에 도리질을 쳤다. 안돼. 돈 없어.
하지만 내 도리질에도 팔을 붙잡은채로 계속 쳐다만 보고 있다.
"우리 사야할거 많아. 돈 없어."
"....맛있는데"
그래도 강경하게 나오는 내 반응에 애교 피우듯 잡은 팔을 슬며시 흔들거린다.
이 황소고집은 뭐죠.
"다음에 사자. 다음ㅇ...."
"....안녕. 오랜만이네."
실랑이를 벌이며 시식코너 앞에 서 있는데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그 목소리였다.
+
누,누굴까요!!
그렇스미다~
학연,택운 이렇게 본명이 나올때는 큰 빅쮸
켄,라비 예명이 나올때는 작은 빅쮸임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