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yahwa에 대한 필명 검색 결과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단편/조각 만화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강동원 김남길 성찬 엑소
yahwa 전체글ll조회 2031l 1
국슙 등가교환 

 

 

 

 

 

1. 

 

 

 

눈을 떴다. 윤기는 딱 두 달 만에 작업을 하다 꼬박 잠이 들어버렸다. 두 달 전 작업 도중 저장을 하지 않아 파일을 다 날려먹은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려서 그 이후론 체력 관리를 한다고 했지만, 체질은 윤기를 배신하지 않았다. 눈을 감기 전이 열 시 쯤이었으니 지금쯤 아침이 되고도 남았을 테다. 윤기는 뺨을 툭툭 털며 몸을 일으키다 어깨에 걸쳐진 담요를 발견하고 의아해졌다. 도둑이 들었나? 도둑 놈 주제에 친절하기도 하다. 윤기는 담요를 잘 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나서야 제 침대를 차지하고 누운 커다란 청소년(전정국)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아마 제 어깨에 담요를 올려둔 것도 정국이리라. 윤기는 그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정국이 누운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아직 잠에 푹 빠져 있는 정국을 툭툭 흔들어 깨우자 정국이 눈을 찡긋거리며 떴다. 왜 여기서 잤어. 윤기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잠이 덜 깬 정국이 웅얼거리며 윤기의 손목을 막무가내로 잡아당겼다. 잠에 취해 있던 정국이 침대 위로 넘어진 윤기를 끌어안고 아예 다리를 몸에 감아 출구를 원천봉쇄해 버렸다. 

 

 

"딱 일 분만 더 자요." 

"너 안 자는 거 다 알거든?" 

"일 분만." 

 

 

윤기는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고 일 분을 구걸하는 정국이 못미더웠지만 속는 셈 치고 정국의 품에 끌어안겨 눈을 깜빡였다. 창문 새로 새어들어온 빛이 꽤 밝아 윤기는 정국의 눈 위로 그늘을 만들어 줬다. 가만히 지나가는 초를 세며 정국에게 안겨 있던 윤기는 다시 잠이 들기 직전인 정국을 툭툭 쳐 깨웠다. 

 

 

"야, 일어나." 

"아……. 형, 아직 새벽인데요." 

"뭔 개소리야." 

"좀 더 자요……." 

 

 

웅얼거리며 헛소리를 내뱉는 정국의 품에서 벗어난 윤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까까지 따뜻한 살이 닿아 있던 상체가 허전해 허공에 팔을 젓던 정국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아니 네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정국은 윤기의 물음에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서 답했다. 어제 문자 보냈는데 안 봐서 찾아왔죠. 솔직히 우리 사이에 이유가 어디 있어요? 정국의 뻔뻔스러운 답변에 윤기는 인상을 찌푸리곤 정국의 손에 물컵을 쥐어 줬다. 

 

 

"문자 보냈어? 몇 시에?" 

"열한 시?" 

"세상에 어떤 미친 놈이 열한 시에 문자 안 본다고 남의 집에 기어 들어오냐?"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말투에도 정국은 그저 웃으며 물을 들이켰다. 그러고 넌 고등학생 주제에 학교도 안 가냐. 오랜만에 입이 터진 윤기가 정국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 오늘 형이랑 놀 건데 무슨 학교에요. 그리고 토요일이라 안 가도 돼요. 정국의 말에 윤기는 아, 하고서 의자를 끌어 앉았다. 

 

 

"형은 왜 거기서 그러고 잤어요. 마음 아프게." 

"마음이 아프면 침대로 좀 옮겨 주지 그랬냐. 목 아파 죽겠네." 

"형 깰까 봐 못 옮겼죠. 형 깨면 짜증이 장난이 아니어서." 

"아……." 

 

 

윤기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던 정국이 몰려오는 졸음에 윤기가 앉은 의자를 당겨 윤기를 끌어안았다. 형, 안 피곤해요? 솔직히 말하면 피곤한 것도 같았지만 당장 제 눈 앞의 고딩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윤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좀 더 잘까요? 또다시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젓는 윤기의 목에 정국이 이마를 댔다. 시원하다. 정국의 말에 윤기는 인상을 찌푸리고 정국을 쳐다봤다. 정국은 그 얼굴이 꼭 불독 같아 윤기의 코를 툭 건드렸다. 

 

 

"형, 우리 딱 삼십 분만 자요. 내가 일어나서 밥 해 줄게." 

"밥? 나 배 안 고파." 

"어쨌든 형은 말라서 먹어야 돼요. 형이 좋아하는 달걀말이 할 테니까 먹어요." 

"싫어. 나 안 먹어." 

 

 

정국은 쓸데없이 애처럼 구는 윤기의 볼을 잡아 쭉 늘렸다. 애처럼 굴지 말고 밥 먹어요. 정국이 윤기의 볼을 주무르며 윤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싫다니까? 너 그럴 거면 집에 가. 아, 왜요. 우리 사이에 야박하게. 윤기의 단호한 말투에도 정국은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윤기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꼼짝할 수 없이 정국의 품에 갇힌 윤기가 입술을 불퉁 내밀고 정국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나 잘 거야. 삼십 분 있다가 깨워." 

"알람 맞춰 놔요, 나도 잘 거니까." 

"넌 가서 밥이나 해." 

"오, 밥 먹을 거에요? 그럼 해 놔야겠네." 

 

 

어느새 이불을 뒤집어 쓴 윤기가 짜증스레 꿍얼거렸지만 정국은 신이 나 부엌으로 뛰어들어왔다. 밥솥에 밥도 안치고 냉동실에서 저번에 제가 먹으려고 사다 놓은 만두를 꺼내 굽고, 또 달걀도 깨 예쁘게 말아 접시에 썰어 담은 정국이 눈을 깜빡였다 떴다. 초등학교 때부터 봐 온 윤기의 뻔한 패턴에 질릴 법도 했지만 정국은 여전히 윤기를 졸졸 따라다녔다. 어떻게 나이를 스물네 개나 먹고 저렇게 애 같을 수가 있지? 윤기는 나름 어른인 듯했지만 열여덟인 바른 청년 사나이 정국의 눈엔 윤기가 꼭 어리광부리는 것처럼밖에 안 보였다. 

 

정국은 반찬을 몇 개 꺼내 식탁에 차려두고 윤기를 깨우러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형, 일어나요. 저를 흔드는 손에 윤기는 부시시 눈을 떴다. 형, 밥 다 했어요. 밥이 다 됐음을 고하는 정국의 목에 팔을 둘러 몸을 간신히 일으킨 윤기가 정국의 몸에 매달린 채로 부엌으로 배달됐다. 형, 의자에 앉아요. 아예 떨어질 생각조차 않고 붙어 있을 기세의 윤기에 정국은 몸을 탈탈 털어 윤기를 떼어냈다. 

 

 

"이거 다 방금 한 거야?" 

"만두는 냉동고에 있어서 구웠고 반찬은 저번에 갖다놨어요. 식으니까 빨리 먹어요." 

"국은 왜 없어?" 

"반찬 투정하지 마요. 애도 아니고." 

 

 

형한테 애가 무슨 말이냐. 투덜거리며 숟가락을 집어든 윤기가 밥을 작게 퍼 입에 넣었다. 아, 해요. 정국의 말에 입을 벌려 반쪽이 된 달걀말이를 받아 먹은 윤기가 졸린 눈을 비볐다. 맛있어요? 어, 맛있어. 정국은 그 모습을 꽤 흐뭇하게 쳐다보며 만두도 반쪽을 내 윤기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야, 너 이거 설마 이로 잘랐냐?" 

"안 돼요?" 

"미친……." 

 

 

윤기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눈을 굴리다 아직까지 정국이 제 앞에 들이밀고 있는 반쪽짜리 만두를 받아 먹었다. 

 

 

 

 

 

2. 

 

 

 

윤기에게 정국은 거의 불가항력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커다란 존재였다. 윤기가 딱히 크게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 아닌 만큼 더 그랬다. 윤기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때 엄마는 어떤 작은 세 살배기 아기를 윤기의 팔에 맡겼다. 윤기 본인도 아기였지만 윤기는 아기(이름은 물론 정국이었다.)를 꼭 끌어안고 눈을 깜빡였다. 

 

 

"이 애 이름이 뭐에요?" 

"그 애는 정국이야. 전정국." 

"귀엽다." 

 

 

그 후로 한참 동안 정국을 바라보던 윤기는 초등학교 육학년이 됐고, 정국은 그 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어쩌다 정국의 이웃에 살게 된 윤기는 항상 정국의 손을 잡고 등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하교 중 정국을 피아노 학원까지 바래다 주는 것까지가 초등학교 6학년 윤기의 하루 일과의 끝이었다. 윤기는 중학교 3학년이 돼서도 슈퍼에서 정국을 마주칠 때마다 쭈쭈바를 하나씩 물려 주곤 했다. 윤기가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칠 땐 중학생 정국이 만원짜리 호박엿을 사 왔고 윤기는 곧 훌쩍 입대해 버렸다. 

 

윤기는 전역 후 몰라지게 달라진 정국을 보고 정말 알아보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입대 전엔 마냥 어린애 같던, 중학교 삼학년짜리 정국이 훌쩍 자라 키가 백팔십 센치에 육박하는 고등학생이 돼 있었지 말이다. 제 앞집에서 나오는 길고 커다란 몸뚱이를 쳐다보던 윤기를 정국이 끌어안지 않았더라면 윤기는 정말로 정국을 그냥 지나칠 뻔 했다. 

 

 

"형, 잘 지냈어요?" 

"어, 전정국이." 

"형은 군대를 갔다 와도 하얗네요. 다리 깡마른 것도 그대로고." 

 

 

제 예전 모습을 읊던 정국이 팔을 떨어트려 윤기의 얼굴을 한 번 더 확인하곤 다시 윤기를 끌어안았다. 형, 보고 싶었어요. 형 없는 동안 진짜 보고 싶었던 거 있죠. 그도 그럴 것이 매 휴가 때마다 윤기는 형이 사는 대구로 내려가거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졌으니 정국은 윤기를 한 번도 보지 못 했을 터였다. 윤기는 (느끼지 않아도 됐을) 미안함에 정국의 등을 토닥였다. 

 

 

"근데 진짜 군대 갔다 오니까 사람이 수척해진 거 같네요." 

"넌 키도 많이 크고 남자다워졌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형 군대 가기 전에 저랑 키 비슷했던 건 기억나요?" 

"시끄러워. 아, 나 집에 간다." 

 

 

윤기는 아직도 저를 신기하단 눈으로 보는 정국을 밀쳐내고 급히 집으로 되돌아왔다. 남자 둘이 집앞에서 끌어안고 보고 싶었어요 따위의 멘트라니. 윤기는 팔뚝에 오소소 돋아오른 소름을 가라앉히고 한숨을 내쉬었다. 꼭 드라마에서 연인이 재회한 것 마냥 설렘 가득한(윤기에게는 아니었다만) 멘트가 자꾸만 떠올라 윤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벨을 눌러대는 손길에 그것마저도 방해받아 짜증이 잔뜩 난 윤기가 문을 벌컥 열었다. 

 

 

"형, 왜 혼자 들어가요. 나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너 술 마셨어?" 

"예?" 

"아니면 챙겨 먹던 약을 안 먹었냐?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오랜만에 형 보니까 좋아서 그러죠." 

 

 

중간에 낀 형이란 단어만 없었어도 참 로맨스 같겠다는 생각을 하던 윤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여긴 왜 왔는데? 형 보러요. 질문을 던지는 즉시 답을 받아치는 정국에게 윤기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날 보러 왜 오는데? 정국은 또한 즉시 답했다. 오랜만에 형 보니까 좋아서요.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던 정국은 윤기가 제대한 후 부모님이 고향으로 내려가 윤기 혼자가 된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정국의 예상대로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었고, 작업실은 쓰레기와 널려 있는 옷가지들에 정복 당한 듯 지저분했다. 그것들을 전부 눈에 담은 정국은 한숨을 쉬고 팔을 걷어부쳤다. 정국의 선머슴 같은 팔뚝에 윤기는 내심 감탄하며 정국을 지켜봤다. 제 작업실 의자에 널린 옷을 쭉 들어 옷장에 걸어둔 정국이 이번엔 커다란 쓰레기 봉투 하나를 들고와 쓰레기를 밀어 치웠다. 간단하게 윤기의 작업실을 정리한 정국은 마무리로 페브리즈를 칙칙 뿌렸다. 

 

 

"새삼 생각한 건데 형 진짜 더럽게 사네요." 

"내가 뭐 어때서." 

"좀 치우고 살지." 

"여기가 너희 집이냐? 내 집이지." 

 

 

곧 그렇게 될 지도 모르잖아요. 윤기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정국의 팔을 찰싹 내리치곤 의자에 몸을 바짝 붙였다. 형, 저 여기 자주 놀러 와도 돼요? 너 이학년 아니냐. 맞아요. 공부나 해. 저 공부 잘 해요. 말하는 족족 되받아치는 정국에 아예 말하기를 포기한 윤기가 몸을 기울여 하품했다. 저렇게 끈질기게 나오니 더이상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윤기가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형, 근데 이제 아예 혼자 살아요?" 

"엉." 

"와, 좋겠다. 나 형네 자주 올래." 

"그러던가 말던가." 

 

 

새침하게 대꾸한 윤기가 턱을 괴고 저를 쳐다보는 정국을 피해 시선을 옮겼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정국은 윤기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토요일이라 안 가도 돼요. 시간 개념까지 잃은 듯한 윤기에게 정국이 답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 우리 마트 가요. 지갑 챙기고. 정국의 말에 윤기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트? 왜? 먹고 싶은 거 있냐?" 

"아니요. 형네 냉장고가 텅텅 비어서 음식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형이 설마 그 유명한 이슬 먹고 사는 요정일 리는 없을 거고." 

"맞다면 어쩔래?" 

"자꾸 애처럼 굴지 말고 가요, 좀. 형이 초딩이에요?" 

 

 

순식간에 초딩으로 전락해 버린 윤기가 입술을 불퉁 내밀고 자켓을 집어들었다. 나 초딩 아니거든. 투정 부리다시피 중얼거린 윤기에 정국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유딩이에요? 되묻는 정국을 무시한 윤기가 먼저 지갑과 휴대폰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형, 나도 같이 가요." 

"빨리 오던가." 

"거기서 기다려요." 

 

 

아, 네가 빨리 오라니까? 현관문 앞에서 짜증스레 소리치는 윤기가 귀여워 정국이 소리없이 웃었다. 

 

 

 

 

 

3. 

 

 

 

[ 형, 자요? ] 

 

 

정국은 문자를 보내도 한참동안 답장이 없는 윤기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작업 중이라며 간간히 답을 보내던 윤기가 혹시나 잠이 들고 만 건 아닐까 싶어 정국은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자율학습이 끝나고 머핀과 도넛을 사 가려던 제 계획이 물거품이 돼 버릴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정국은 연달아 문자를 네댓 개는 보낸 것 같은데도 답은 커녕 확인도 하지 않는 윤기에 이마를 짚었다. 

 

어쨌든 계획대로 도넛과 머핀을 한가득 사 윤기네 집앞에 도착한 정국은 벨을 두 번 눌렀다. 여전히 답할 생각이 없는 건지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건지 반응이 없는 윤기네 집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당당하게 집 안으로 들어선 정국은 윤기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혹시나 침실에 있는 건 아닐까 고개를 디밀어 봤지만 인기척이 없어 다시 발걸음을 돌린 정국이 곧장 작업실을 향했다. 

 

 

"형." 

 

 

작업실 문을 살짝 연 정국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누운, 피곤함에 찌든 것처럼 보이는 윤기를 발견하곤 도넛 상자를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형, 자요? 조용히 물었지만 여전히 답은 없어서 정국은 몸을 기울여 윤기를 쳐다봤다. 하얀 얼굴이 눈을 감고 숨은 얕고 길게 내쉬는 게 잠이 든 모양이었다. 정국은 한참이나 그 얼굴을 바라보다 도넛 상자에서 도넛 하나를 집어들었다. 

 

 

"형." 

"……." 

"내가 얼마나." 

"……." 

"형을 좋아하는데." 

 

 

도넛을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윤기의 이마를 쓸어넘긴 정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정국 자신만큼은 자는 사람에게 이런 고백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 터라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도 같았다. 정국은 도넛을 한 입 베어 물고 윤기의 얼굴을 뜯어보다시피 세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얀 피부부터 붉게 탈색한 머리나 분홍색의 입술 같은 것들이 정국의 눈에 들어왔다. 정국은 심각하게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 따위를 하며 도넛을 씹어 삼켰다. 

 

 

"형 진짜 귀여워요." 

"……." 

"자는 사람한테 미안한데 진짜 귀여워." 

"……." 

"딱 이 년만 더 기다려 줘요. 내가 수능 치자마자 형한테 고백할 거니까." 

 

 

패기롭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던 정국이 다시 도넛 한 입을 베어물었다. 달콤한 시럽으로 코팅된 도넛을 한참 우물거리던 정국이 윤기의 얼굴 가까이 제 얼굴을 들이댔다. 형, 진짜 잘 자네요. 옆에서 이렇게 떠드는데도 안 깨고. 정국은 중얼거리다 마지막 남은 도넛 조각을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형." 

"……." 

"윤기 형." 

 

 

정국은 윤기를 부르다 말고 손가락 끝을 바짝 세워 윤기의 코 끝을 툭 건드렸다. 동그랗고 하얀 코가 꽤 오똑한 게 예뻐 보여 한참 쳐다보던 정국이 슬금슬금 윤기에게로 얼굴을 바싹 붙였다. 그리고 윤기의 하얀 뺨에 입 맞췄다. 아직 맹하게 잠이 들어 있는 윤기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댄 정국이 한숨을 내쉬곤 속삭였다. 

 

 

"잘 자네. 아무것도 모르고." 

 

 

제가 생각해도 꼭 흑역사를 몇 페이지나 더 채운 것 같은 기분에 정국은 후다닥 도넛 상자를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장에서 담요 하나를 꺼내 윤기의 몸에 덮어 주곤 저도 윤기의 침대로 올라와 누웠다. 윤기를 침대로 옮길까 고민하던 정국은 제 옆에 윤기가 눕는 것을 상상했다가 이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렸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해져 한참 동안 눈만 깜빡이던 정국은 결국 새벽 두 시나 돼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정국은 저를 흔들어 깨우는 윤기에 뻑뻑한 눈을 떴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아침이었지만 어젯밤 늦게 잔 탓에 정국은 다시 잠이 들고픈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결국엔 윤기의 손에 이끌려 윤기의 아침까지 해 먹인 정국은 부른 배 덕에 기분이 좋아 보이는, 티비를 시청 중인 듯한 윤기의 옆에 앉았다. 

 

 

"형." 

"엉?" 

"내가 아침까지 해 줬는데 뭐 할 말 없어요?" 

"뭐? 아, 고맙다." 

"그거 말고는요?" 

 

 

어쩐지 다른 곳으로 샌 듯한 정국의 질문에 윤기는 티비에 나오는 축구 선수의 등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유니폼 두 개가 한창 섞여 뛰어다니는 화면을 무시한 정국은 윤기에게 대답해 달란 의미로 허리를 쿡쿡 찔렀다. 아, 더 없냐니까요? 꼭 떼 쓰는 애 같은 정국의 행동에 윤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해 줘야 하는데?" 

"형 어제 진짜 깊게 잤구나." 

"뭐?" 

"좋아해요." 

 

 

정국의 말에 일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국을 쳐다보던 윤기가 다시 티비로 눈을 돌렸다. 그래서 뭐. 윤기의 말에 정국이 입술 끝을 죽 내렸다가 다시 끌어올렸다. 이 년만 기다려 줘요. 답지 않게 수줍어 하며 중얼거린 정국이 윤기를 쳐다봤다. 윤기는 여전히 티비를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 년만 기다리면 뭐하게?" 

"형한테 사귀자고 해야죠." 

"쓸데없이 기다리고 앉았어." 

"에?" 

"그냥 지금 하라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윤기의 귀를 한참 동안 쳐다보던 정국이 윤기의 등을 끌어안았다. 형, 내가 앞으로 달걀말이도 매일 해 주고 만두도 매일 구워 줄 테니까 나랑 살아요. 정국의 말에 윤기는 인상을 찌푸리곤 정국의 몸을 밀어냈다. 내가 왜 너랑 사냐? 이거 놔. 그러면서도 내심 싫지만은 않은지 입꼬리를 들썩거리는 윤기가 귀여워 정국이 볼을 부비적거렸다. 

 

 

"형, 나 형 진짜 좋아하는 거 알아요?" 

"어제 도넛 사 왔을 때부터 알았어." 

"형 잔 거 아니었어요?" 

"귀에다가 대고 그렇게 시끄럽게 떠드는데 어떻게 잠을 자냐?" 

"들었으면 대답을 해야죠!" 

"내용이 가관이어서 어디까지 하나 들어봤다. 불만 있으면 집에 가던가." 

 

 

아닙니다. 사랑합니다, 형. 꼭 대출 사기 멘트 마냥 예쁜 목소리로 윤기에게 대꾸한 정국이 눈을 질끈 감고 윤기의 목덜미에 입 맞췄다.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독자1
정국이 너무 귀엽네여융유ㅠ유유ㅠ해피엔딩!나도 달걀말이좋아하는뎅..
9년 전
독자2
달달하네요....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겟지 씁쓸하다.... 좋은 글 많이 쓰세요. 그럼 아디오스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13 1억05.01 21:30
      
      
      
      
기타 [구오즈] 편의점에서1 yahwa 07.06 22:06
방탄소년단 [국슙뷔] 카페인 A1 yahwa 05.30 10:43
기타 [성규×슈가] 첫눈 yahwa 02.22 03:44
기타 [현우보검] Snow Is Melting A1 yahwa 02.22 03:41
기타 [성규×슈가] 외삼촌1 yahwa 01.29 00:43
방탄소년단 [진슙] 병 뚜껑2 yahwa 01.20 10:33
방탄소년단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5 yahwa 01.19 13:15
방탄소년단 [국슙] 등가교환2 yahwa 01.17 03:48
방탄소년단 [국슙] 페티쉬2 yahwa 01.15 14:27
기타 [뷔혁] 잊을 수 없는 사람1 yahwa 01.09 11:48
갓세븐 [뽐재] 관계의 정의 마지막7 yahwa 01.05 13:22
기타 [육상/성재상혁] RANA5 yahwa 01.04 01:47
기타 [성재×상혁] 1 yahwa 12.17 18:54
방탄소년단 [국뷔] 바삭바삭1 yahwa 12.11 16:06
갓세븐 [뽐재] 관계의 정의 86 yahwa 12.02 22:08
갓세븐 [뽐재] 들국화의 계절2 yahwa 11.24 21:18
방탄소년단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8 yahwa 11.24 21:16
B.A.P [유영재×최영재] 스쿨 로맨스3 yahwa 11.24 16:39
기타 [뷔×엘] 오래된 연인 yahwa 11.17 08:27
갓세븐 [뽐재] 관계의 정의 75 yahwa 11.14 02:30
갓세븐 [뽐재] 관계의 정의 65 yahwa 11.04 23:11
기타 [뷔엘] 오래된 연인2 yahwa 11.03 02:01
방탄소년단 [슈짐] Suga Daddy10 yahwa 10.28 07:54
기타 [뷔×엘] 추억으로 점철된 관계1 yahwa 10.10 01:47
기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7 yahwa 10.10 01:46
갓세븐 [뽐재] 관계의 정의 58 yahwa 10.02 22:39
갓세븐 [뽐재] 관계의 정의 4 yahwa 10.01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