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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윤 전체글ll조회 612l 1

여름 장마 때 내리는 장대비는 맞으면 따가울 정도로 세차게 내렸다.

하지만 그 강한 여름의 장대비마저도 불타고 있는 자동차의 불을 끄지 못 햇다.

그리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나무에 기대어 앉아있는 남자를 향해 총을 겨누는 사내의 분노도 꺼트리지 못 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라.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그 날, 나라가 큰 치욕을 당했다하여 경술국치라 한다.

하지만 나라가 큰 치욕을 당했다하나 그건 아주 일부의 이야기, 그러니가 영혼부터 뼛속까지 조선인인 독립투사들이나 서민들의 이야기였고, 일본인, 1등국민이 되기 위해 나라와 영혼을 팔아넘긴 친일파들과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방관하는 재력가들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독립투사들은 목숨 걸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일반 백성들은 그들을 돕거나 같은 민족이면서 다른 민족의 탈을 뒤집어 쓴 놈들이나 일본인들에 의해 삶이 짓밟힌다.

그리고 친일파들은 같은 민족을 벼랑 끝으로 내몰며 자신들을 애국자라 칭한다. 그리고 재력가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렇게 섞일 수 없을 정도로 극과 극인 사람들, 하지만, 가끔 이 대한제국이라는, 일본도 조선도 아닌 이 애매모호한 나라에, 독립투사도, 친일파도 아닌, 그런 애매모호한 사람들이 있긴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나라를 팔아먹은 주제에 나라를 되찾겠다고 날뛰는 꼴이라니, 남들이 볼 때는 우습기 그지없는 꼴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중간에서 어정쩡히 자신만의 길을 걷다가 결국 한 길을 선택하고 만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독립투사의 길을 걷거나, 친일파의 길을 걷거나.

대부분은 얼마 못 가 친일파가 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또 다시 둘로 나위었다. 뼛속부터 독립투사에서 뼛가루를 갈아서라도 친일파가 되는 자들과, 여전히 독립투사 시절에 타오르던, 뜨겁던 피와 열정과 분노를 숨기고 속인 자들로.

 

 

 

 

 

-

 

 

 

 

동양인에게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드레스를 억지로 입어보겠다고 억지로 졸라맨 코르셋 허리가 안쓰러웠고, 게다만 신고 다니다가 높은 하이힐을 신는 것이 익숙하지 않는지 걷는 꼴이 영 불안한 일본 여성들을 보고 준면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러다 넘어지겠군.

그리고 그 생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국 한 일본 여자의 발목이 기이하게 꺾여 넘어젔다.

그녀를 비웃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온다.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은 그녀를 비웃고, 같이 서양식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 역시 넘어진 그 여자를 보고 비웃으면서도 자신들도 불안한지 조심스레 걷는다.

조선인 노비들이 몰려와 넘어진 일본인 여자를 어디로 데려간 뒤에야 그 작은 소동이 끝이 났다.

 

 

준면은 속으로 차라리 한복을 입으라며 비웃었다.

이 파티의 주인공인 데라우치는 비록 조선 총독부의 총독이었지만 조선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옷, 음식, 물건, 심지어 조선인마저 좋아하니.

차라리 한복을 입는 것이 데라우치의 눈에 더 잘 뜰 편이었다. 물론 다른 시선들도 많이 받겠지만.

 

 

준면은 경찰서장인 저의 아버지의 옆에 서서 그와 같은 친일파와 인사를 나누거나 일본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가 불편한지 준면은 자주 고개를 돌리며 입가를 매만졌고 그의 아버지는 언짢은 표정으로 준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결국 준면은 잠시 바람을 쐰다는 말을 하고는 테라스에 갔다.

한숨이 나온다.

 

 

비록 현재는 친일파의 위치에 있지만 그래도 한 때는 독립 운동을 했던 준면의 입장에서는 이 자리가 불편했다.

편하게 웃고 떠드는 것보다 차라리 총을 들고 일본인들과 맞서는 것이 좀 더 마음 편했다.

품 속에 있는 리볼버가 무겁다.

 

 

 

 

 -

 

 

 

 

 

-못난 놈. 애비 망신을 니 놈이 다 시켜!

 

 

부은 눈을 겨우 떠서 앞을 보았다. 흐릿하게 흔들리던 인영이 점점 뚜렷해지고, 그 인영이 자신의 아버지인 것을 눈치채자 준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경, 찰... 서장이... 나같은 피, 라미 독립... 운동가를 보러, 왜, 여기, 까지 오셨나...

 

 

웃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웃음이 나온다. 일본의 개가, 독립 운동가 때려잡는 경찰 서장이 나의 아버지라니.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니.

준면은 입꼬리를 겨우 올려 한껏 저의 아버지를 비웃었다.

가장 자랑스럽던 아들이, 당신의 경력에 흠집을 낼 사람이란 걸 이제 아셨습니까?

 

 

-독립 운동이라니. 뭐가 부족해서. 일탈도 이런 식으로 하느냐. 이렇게 일탈을 해서 아비 속을 썩이는구나. 이 못난 놈, 죽일 놈!

 

 

고막이 쟁쟁히 울린다.

일탈이란다. 독립 운동을 하는 것이 그저 일탈이란다.

준면은 고개를 떨구었다.

 

 

-저 놈을 일으켜라.

 

 

순사 둘이 경찰 서장의 명령에 준면을 묶은 오랏줄을 풀고 준면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말없이 어딘가로 향하는 경찰 서장의 뒤를 따랐다.

준면의 뽑힌 발톱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고문으로 살이 터져 흐르는 피가 교도소 복도에 붉은 줄을 길게 그었다.

 

한참을 질질 끌려가던 준면은 그의 아버지가 멈춰서자 고개를 들었다.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 거지.

아버지의 등판에 가려, 고문으로 얼굴이 부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준면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본 그의 아버지는 준면의 머리채를 잡아 아들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

 

 

-보거라, 이 들을.

 

 

그리고 그를 교도소의 창살 앞으로 내던졌다.

준면은 가쁜 숨을 내쉬며 고통에 감은 눈을 겨우 떴다. 그리고 점점 뚜렷해지는 모습에 창살을 붙잡았다.

대장님... 민식아. 병호야. 채우야. 동석아. 병우야. 대혁아. 경아야...

 

그들도 만만치 않은 고문을 받았는지 온 몸이 피범벅이었고 중간중간 옷 위로 그대로 지져버려 타버린 살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손톱이 뽑혔지만 죄다 인두로 지진 탓에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의 상황이 나은 것이었다. 자신은 경찰서장의 아들이어서 그나마 이 정도였지. 다른 자들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붉게 탄 자국, 베인 자국, 채찍 자국, 찔린 자국.

나는 저렇게 고문을 받지 않았는데 그리 비명을 질렀단 말인가.

준면은 창피함과 미안함, 수치심에 고개를 떨구었다가 신음 소리를 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더러운 일본 놈들, 짐승보다 못 한 놈들!

그러다가 준면은 뒤로 돌아 아버지의 발목을 붙잡았다.

 

 

-살려주세요, 아버지. 아버지, 이들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버지. 다시는,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요. 아버지, 제발 이들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샌 발음으로 이들을 살려달라 외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경찰서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 개처럼 구는 꼴은 무엇이란 말이냐. 내가, 이딴 모습을 보자고, 이런 하급 순사놈들에게 보여주자고 너를 키웠는지 아느냐. 내가, 너를, 개처럼 빌빌대라고, 놈들에게 허리를 굽혔는지 아느냐. 내가 이 자리에 어떤 욕을 먹으면서 올라왔는데. 이 못된 것, 괘씸한 것.

 

샌 발음으로 계속 자신의 동료를 살려달라고 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경찰서장은 혀를 차며 아들의 손을 발로 차 밀어버리고는 그의 손등을 꾹 눌렀다.

경찰서장의 명령으로 이질적이게 다른 곳과 다르게 깨끗하던 손이 뼈가 비틀리는 소리를 냈다.

준면이 비명을 지르며 경찰서장의 구두를 잡았지만 그 손마저 잔인하게 짓이겨버리는 경찰서장의 모습에 물러터진 조센징이 경찰서장이니까 이들은 다 살아날 것이라며 서로 속삭이며 비웃던 일본인 순사들은 입을 다물었다.

아, 그래. 이 남자, 왜 경찰서장이 됐는지 깨달은 것이다.

괜히 조센징이 경찰서장이 된 게 아니었다. 그래, 아들을 고문하라 할 때도, 살살하라고 한 이유가 뭐였더라. 얼굴과 손은, 특히 손은 무조건 고문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뭐였더라. 그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필요하니까. 필요하니까 살살하라고 했었지, 그래. 얼굴 다치면, 쓸모가 없다고. 손은, 보여줘야하니까.

 

구둣발로 실컷 준면의 손을 짓밟던 경찰서장은 총을 꺼내들어 준면의 머리채를 잡아들어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나마 살살 밟은 손에 총을 쥐어주었다.

 

 

-내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기회는 편하게 죽게 하는 것뿐이다. 고문을 당해 죽는 것보다 이것이 더 나은 것을 알겠지. 쏘아라, 이들을. 네가 직접.

 

-아버지, 안 됩니다. 안 돼요. 제가, 제가 어떻게 이들을 쏩니까.

 

-쏘아라.

 

-싫습니다, 싫어요. 안 돼요, 아버지. 제발, 한 번만 용서를, 아버지, 제발...

 

 

아버지란 사람은 일본어로 아들에게 명령하고, 아들이란 사람은 조선어로 용서를 구한다.

이 기이한 장면의 끝은 어떻게 될까.

 

준면이 계속 할 수 없다고 하자 결국 경찰서장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인 경찰을 불렀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봐, 너희들.

 

-네, 부르셨습니까.

 

-저기 있는 저 여자, 강간해버려.

 

 

자신의 아버지의 말에 준면은 놀라 소리쳤다.

 

 

-안 됩니다! 안 돼요, 아버지! 경아를, 경아를 건들지 마세요! 안 돼요, 안 돼요!

 

 

준면이 철창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사 둘을 붙잡고 외쳤지만 경찰 서장은 그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순사 둘은 경찰서장의 눈치를 보다가 그가 고개를 까닥이자 준면을 가볍게 밀치고는 철창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지금 이 상황에서 네 놈이 선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순사들은 상황을 눈치채고 힘겹게 그들을 말리려는 독립 운동가들을 발로 차 버리고는 경아,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모든 힘을 다 내어 힘들게 반항하는 그녀의 뺨을 갈기고, 인두에 눌려 살에 불러붙은 상의를 억지로 찢어 벗기고, 그리고...

 

 

-쏘겠습니다! 쏠게요, 그러니까 제발 아버지, 그만, 그만하라고 하세요! 그만하라고!

 

-그만.

 

 

치마까지 벗기고 속옷을 벗기려던 두 순사는 경찰서장의 말에 바로 여자를 내던졌다가 경찰서장이 다시 잡으란 말에 다시 여자를 일으켜세웠다.

경찰서장은 자신의 아들을 부축해 일으킨 다음 말했다.

 

 

-쏴라.

 

 

준면은 천천히 그녀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안 된다, 너를 쏘다니. 내가, 너를, 경아 너를 쏘다니... 이러면 안 되는데, 경아야, 경아야...

바르르 떨리는 손을 보고 경찰서장은 혀를 차고 말을 했다.

 

 

-지금 저 년을 쏘지 않으면 다시 강간하라 명령할 것이다. 그 때는 진짜 쏜다고 해도 멈추라하지 않을 것이야. 그러길 바라느냐? 강간 당한 뒤, 거리에 구경거리가 되어도 괜찮느냐?

 

 

그의 말에 준면은 결국 떨리는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

 

 

 

 

 

"야마타 군, 안녕하세요."

 

 

그닥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속에 잠겨있던 준면은 한 일본인 여자의 인사에 정신을 차리고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누군지는 몰랐지만 준면역시 가볍게 인사를 했다.

 

 

"저, 기억하시나요?"

 

 

수줍게 웃으며 저를 기억하냐 묻는 여자의 말에 준면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더라. 아, 그래, 경찰 국장의 딸이었다.

그 날 이후, 상처를 치료하고 경찰서에 가서 만난 것이 전부였는데.

 

 

"네, 기억합니다. 사토 국장님 따님이시죠?"

 

"제 이름은 모르시나 보네요. 제 이름은 나오코라고 합니다. 그래도 제가 누군지 기억해주신다니, 기뻐요."

 

 

준면은 새침하지만 수줍게 말을 하는 일본인 여자와의 대화가 즐겁지는 않았지만 여자는 준면에게 관심이 있는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고, 준면은 거의 의무적으로 대답을 했다.

일방적인 대화가 지루하게 이어질 때,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야, 그림 좋구먼."

 

 

고개를 돌아보니, 이 파티의 주인공인 데라우치 총독이었다.

유난히 조선을 사랑하고, 그 중 준면을 가장 아끼는 사내. 준면이 독립 운동을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장 신임하고 준면을 높이 평가해주는 남자였다.

 

 

"총독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준면과 여자의 축하인사를 살갑게 받아준 데라우치는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서서 보니, 둘이, 선남선녀가 따로 없구만, 그래. 허허, 참으로 잘 어울리는군."

 

 

데라우치의 말에 준면은 어색하게 웃어보였고 여자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총독이 마음에 들어하는 한 쌍이라, 비록 제 아비가 준면을 배신자라 욕 하여도 늘 마음에 품고 있던 터에 총독이 이런 말을 하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여자는 이 기쁜 사실을 얼른 아버지에게 전해 준면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경찰서장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총독님, 생신, 경하드립니다."

 

"하하, 그래, 고맙구만. 여튼 그렇고, 자네, 아들 정말 잘 키웠구만. 잘 생겼어, 아주. 하하, 아주 탐나는 인재일세."

 

 

데라우치의 칭찬에 그는 밝게 웃었다.

그래, 내가 저 놈을 살린 이유가 이것이지.

경찰서장은 만족스러운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아들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툭툭 쳤다.

 

대화는 어느 새 경찰서장과 총독의 대화로 이어졌고 준면과 여자는 그저 서서 듣고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서 그들이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준면은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지 굳은 표정으로 밖을 쳐다보았다.

 

답답하다. 이 시간, 언제 끝날까.

준면은 또 다시 일본인 여자와의 대화가 이어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여자의 아버지가 그녀를 데리고 가는 덕에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정말이지, 이 곳에 폭탄을 던지고 싶었다.

지금 조선인들은 얼마나 힘들게 고통을 당하며 사는데 이들은 이리도 행복하니.

 

허나 참아야했다. 좀 더 이들과 친분을 쌓아야했다.

진짜 친일파로 돌아선 척, 1등 국민이 되고 싶은 척 완벽한 연기를 해야했다.

지금 준면의 입지는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다. 쉬쉬하긴 했지만 준면이 독립 운동가로 활동한 사실은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기에.

아니, 거의 이 연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데라우치가 준면, 자신을 상당히 좋게 본다는 사실이었다. 독립 운동가로 활동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총애하는 덕에 직접적인 괴롭힘은 없었다.

 

이를 발판으로 조금씩, 조금씩 입지를 늘려나가야했다. 후에 자신의 아버지가 죽더라도, 데라우치가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이들 틈에 잘 섞일 수 있게.

후에 있을 거사를 위해서.

 

 

"저기, 야마타 군, 지금, 대화 괜찮으신가요?"

 

 

잠시 쉬고 다시 그들 무리에 끼어들려는 찰나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절로 굳어질 뻔한 표정을 수습하고 웃는 낯으로 돌아보니 친일 백작의 딸이었다.

그래, 이런 식으로 친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어차피 이미 자리를 꿰고 있는 자들은 저를 믿지 못 한다. 하지만 여자들은 나를 믿지. 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야마타 군은 인기가 참으로 많군, 그래. 허허, 부럽구만."

 

 

어느 새 새로운 여자가 준면에게 다가가는 것과, 그에 불안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는 여자들의 표정을 본 데라우치는 웃으면서 말했고, 그에 주변인들은 모두 웃으며 그의 말에 동조했다.

 

 

"참으로 탐나는 인재일세. 하하."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준면의 아버지는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가 너를 마음에 들어하더구나, 하하. 특히 데라우치 님이 너를 마음에 들어하셔. 후에 네가 경험이 좀 더 많아지면 가까이 두고 싶다는 말을 하셨다. 사람들이 모두 보는 그 앞에서!"

 

 

그 말에 준면은 쓰게 웃었다. 기뻐해야할 일인데, 왜 이리 토기가 몰려오는지.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고? 그들이? 웃기는 일이군.

 

 

"그건 그렇고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구만, 젠장. 벼락이라도 칠 날씨야."

 

 

그 벼락이 제발 우리 위로 떨어지길!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 친일자들에게 천벌을!

준면은 비릿하게 웃었다.

 

 

 

 

-

 

 

 

 

-죽일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를.

 

 

경찰서장, 아버지의 눈을 피해 다른 독립 운동가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성치 앞은 무릎을 꿇으며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했다.

그들은 경찰서장을 죽이라 했다.

그의 아버지를 죽이라고 했다. 혈육을 쏘라 했다. 가족을 죽이라 했다.

준면은 내가 어떻게 아버지를 쏘느냐, 죽이느냐고 되묻지 않았다.

준면은 그저 알겠다고 했다.

 

 

 

 

-

 

 

 

 

비바람은 점점 더 거세어져 가고, 저녁이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차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이 놈아, 너무 느리구나."

 

 

경찰서장의 재촉에도 운전수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준면이 봐도, 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헤드라이트를 켜도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추었다.

 

 

"네 이놈! 네가 내 차를 망가트리다니!"

 

 

경찰서장의 분노가 담긴 외침에 운전수는 계속 앞이 보이지 않아 부딪쳤다는 변명을 했고, 준면은 차가 부딪친 탓에 시트에 가볍게 머리를 부딪쳤다.

일단 준면은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기 위해 머리를 붙잡고 밖으로 나갔고 그에 운전수는 놀라 우산을 들고 주면에게 갖다주었다.

자세히 보니 차의 앞 부분이 크게 망가져있었다.

아무래도 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는 무리인 듯 했다.

 

혹시나 주위에 인력거가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준면은 차에서 멀리 떨어져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카만 어둠. 결국 준면은 그냥 걸어가야겟다는 말을 하려 차로 돌아가려는 순간, 엄청난 섬광이 빠르게 터졌다.

그 섬광에 눈을 감았다 뜬 준면은 주황빛의 불에 눈을 크게 떴다.

 

준면이 급하게 차로 달려가니 아버지는 차에 타지 않은 듯 했으나 근처에 있던 충격으로 튕겨져 나갔는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나무에 기대 있었다.

운전석으로 가보니 운전수는 즉사한 듯, 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경찰서장에게로 다가가니 가볍게 튕겨나갔을 뿐이었는지 아직 의식은 그대로 있었다.

 

 

"준, 면아... 이, 아비.. 쿨럭, 좀 일으켜 다오..."

 

 

이상한 일이다. 바로 앞에 나무가 있는데 나무가 아닌 차에 벼락이 내린 것도 그렇고, 아버지가 아닌 운전수가 죽은 것도 그렇고.

아니,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늘이 나에게 주신 기회다. 이것은 나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참회할 기회를, 복수할 기회를.

준면은 바로 품 속에서 총을 꺼내어 자신의 아버지에게 겨누었다.

흔들림없는 그의 자세에 경찰서장은 호통쳤다.

 

 

"네 이 놈! 네 놈, 이 어떻게... 이 아비에게.. 총을 겨누느냐!"

 

 

아버지의 말에 준면이 비릿하게 웃었다.

 

 

"아버지, 당신은 나로 하여금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을 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을 쏘아도 별 감흥이 들지 않을 것 같군요. 아버지,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세요. 이건 모두 아버지께서 자처하신 일 아닙니까!"

 

"나는, 난, 너를 위해서 그랬다! 너를 위해서! 그리고 너를 용서해주었지! 너의 일탈을, 용서해주었단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너는 이런 식으로 나를 배신해!"

 

"나를 위해서라뇨! 나를, 나를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는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리고 나라를 되찾는 일이 일탈이라니! 그리고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생각처럼, 뜻처럼 움직이는 인형이 아닙니다. 특히, 이런 더러운 일에는 말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주인이 아니고 저 또한 당신의 노예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역겨운 눈 당장 내리 깔아주십시오."

 

 

준면은 그 말과 함께 제대로 총을 겨누었다.

총알이 아버지의 몸에 남겠지. 내가 용의자로 몰릴려나. 아니, 그냥 어느 괴한이 쏘았다고 할까. 그렇다면 조선인들이 더 괴로워질텐데.

어떻게 해야 일이 좀 더 수월해질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뭇거리던 준면은 경찰서장이 일어서려 하자 준면은 총을 꽉 잡았다.

더 생각할 것 없다. 쏘자. 그리고 눈치볼 것 없이, 어디 알랑거릴 필요 없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자.

그 생각과 함께 준면은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발사됨과 동시에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앞이, 깜깜해진다.

 

 

 

 

 

"데라우치 님,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아끼던 자가 죽었으니."

 

"누구 말이오?"

 

"경찰서장 사이토 상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의식불명 상태니."

 

"아, 난 또 야마타 군을 말하는 줄 알았소. 그래, 매우 가슴 아프오. 뭐, 그래도 아직 그는 살아있으니 상관없소. 뭐, 죽어도 이 조선 팔도를 뒤져보면 새로운 것 하나는 다시 나오겠지. 하하. 야마타 군보다 더 멋진 조선인이 있다면 좋겠소. 뭐, 그래도 야마타 군이 가장 멋지긴 하지. 하하. 아, 차가 식습니다. 조선의 차도, 중국의 차와 비교해서 나쁘지 않지요?"

 

 

 

 

 

 

 

 

 

 

 

 

프롤로그에 가까운 1화.

아직 경수는 나오지 않았어여....

시작도 안 했는데 이런저런 걸 넣다보니 쓸데없이 긴 듯한 이 느낌...

 

 

이거 1년 전부터 구상했는데 드디어 쓰네요... 드디어!!!

원래 이거 팬픽 아니고 그냥 일반 로맨스 였는데 그냥 팬픽으로 재구성해서 써영...

감흥이 새롭네여.

 

 

 

그리고 마지막 데라우치와 그 부하의 이야기를 넣은 이유는 중간에 데라우치가 조선을 좋아하고 조선인을 좋아하고 독립 운동도 한 준면을 좋아하는 데 데라우치가 조선 총독부인 것이 바로 아이러니죠. 괴롭히는 데 앞장서는 직책이 조선을 사랑한다니.

그 이유가 마지막 대화에서 나와여. 데라우치가 조선인마저 좋아하는 이유, 준면이를 애끼는 이유.

조선인마저 물건으로 대하는 거라서 조선인을 좋아하는 겁니다. 사람으로 안 보고 물건으로 보는 그런... 타입.

 

보면 준면의 아버지인 경찰서장이 죽었지만 그보다 의식불명인 준면을 걱정하죠. 그리고 죽어도 새로운 것을 찾겠다 하는 말.

그냥 조각품으로 보는 겁니다. 사람 ㄴㄴ 조각품 ㅇㅇ 그래서 죽든 말든 상관 ㄴㄴ

데라우치가 실로는 나쁜 새기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썼지만 이런 비루한 설명을 없다면 알아채지 못 하실 것 같네요. 나란 똥손, 이런 똥손...

 

참고로 준면이 시대적 배경은 제목처럼 1925년. 문화 통치를 하던 시기.

근데 총독 이름은 데라우치 잼. 데라우치는 초대 총독인뎅... 막 정하다가 나중에 찾아보니 초대 총독 이름이더라구요. 뭐다 이건

 

 

근데 늘 느끼지만 글 쓰는데 기 빨리네요.

수정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내용물은 왜 이럴까여.... 흡...

 

오타나 이상한 부분 있다면 바로바로 알려주세여!!!

 

참고로 다른 필명으로 쓸려다가 이 필명 밀고 나가는 건 안 비밀... 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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