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채를 올린 머리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무거웠지만 꼭 다물린 입술은 고집있게도 자리잡혀있었다. 황제 폐하 납시오, 하는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오랜 세월을 견딘 목조 건물이 들어오라는 듯 입을 열었다. 그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 시작되는 풍악소리는 선황 부부가 나란히 앉아있는 단상 위로 올라가기까지, 꽤나 오래간 지속되었다.
그들 앞에 섰다. 따뜻한 눈을 한 어미는 모르는 사이 또 한껏 장성해버린 제 딸을 바라보다 곧 몸을 일으켜 제 앞에 놓인 관을 자신의 딸에게 씌워주었다. 어린 여황제는 그대로 천천히 자신의 신하들을 향해 몸을 틀었다. 황제 폐하, 칭송하듯 그 이름을 부르며 모든 이가 한 곳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침묵이 흐르던 근정전에 다시금 큰 음악소리가 울렸다.
새로운 여황제의 탄생이었다.
제 1 부군 |
제 1부군, 방용국 (方容國)
과거 어린 여제의 스승이었고 현재 젊은 나이로 대제학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정치에는 욕심이 없다. 무예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후문. 평소 말이 없고 점잖아 다른 부군들 역시 먼저 싸움을 걸어오는 일이 없다. 여제의 초련이고 동시에 첫 부군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부군들에게 위협적이나 한평생 올바르게 살아온 그에게 악취미가 있다면 여제를 울리기가 되겠다. 한 나라의 모후인 여제가 여인의 모습을 하기에 모진 소리를 뱉으며 내치고 나면 또 혼자 남아 서책들 사이에 파묻혀 무거운 마음을 달래는 건 또 다른 취미. 용국은 알고 있는거다, 치우치다보면 쏟아지는 것을.
- "잊지 마십시오. 그대는, 황제 폐하는 이 나라를 다스릴 모후이십니다. 자꾸 이렇게 어린 양을 하시면 스승 된 도리로 종아리라도 매질할것입니다. 어서, 그대의 길로 돌아가십시오." |
제 2 부군 |
제 2부군, 김힘찬
이웃 나라인 완영국의 왕. 본래는 선왕의 말대로 강대국인 비강국의 여제와 혼인을 치러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자 제 발로 들어간 치마폭 안이었다. 아름다운 꽃이라는 뜻의 제 나라 이름처럼, 제게 매달려왔던 수많은 여인들처럼 여제도 제게 취해갈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치마폭 안에서 힘찬은 길을 잃었다. 오랜 왕실 생활로 얻은 것은 눈치. 제 것이라 여기면 그것은 곧 지켜야 할 것. 그것이 아닌 나머지는 전부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으로 나뉜다. 여제는 자신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켜야겠다. 부군들 중 준홍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가장 가벼워보이고 세상 만사 그저 걱정 없이 살 것 같은데 여제나 다른 부군들도 알고 있다. 누구보다 생각 깊고 여제를 그리는 마음도 큰 인물이라는 것을. 그래서 힘찬은 계속해서 상처만 주는 용국이 달갑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욕심도 못 내게 소중한 사람인데.
- "제 앞에서는 온전히 저만 보아주시기를 바라면, 그것도 욕심이 될까요." |
제 3 부군 |
제 3부군, 유영재 (劉永才)
야망 많은 이웃 나라 천설국의 세자. 본래는 아들을 이용해 강대국인 비강국의 여제를 꾀어 그 나라를 삼키려는, 병합을 꿈꾸는 왕 힘찬과는 다른 방식을 그리는 아비에 의해 첩자 아닌 첩자로 보내졌다. 왕권이란 곧 왕의 생명으로 배웠고 폭군인 아버지 아래 지쳐가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비강국을 제 것으로 만들면, 백성들도 저를 성군이라 부를 것이라고 믿었다. 제 백성들을 위한 도구로 여제를 보아왔다. 황제 자리나 여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비강국과 여제를 쇠약하게 만드는 것이 제 목표였다. 짝사랑으로 애닳는 몇몇 부군들을 관찰하며 혀를 찼고, 종종 군주가 아닌 여인의 삶을 그리워하는 여제도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라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비강국의 기밀사항들이 담긴 책서가 제 방에서 발견되었을 때도 "부군은 비강국의 미래를 위해 공부하시는 중이셨지요?" 라며 웃는 모습이, 용국 탓에 눈물짓는 모습이 전부 눈에 밟히고 마음에 걸린다. 여제를 안고, 황제의 자리가 갖고싶어졌다.
- "이리 오세요, 안고싶어졌습니다. 폐하, 아니… 부인을." |
제 4 부군 |
제 4부군, 최준홍 (最準洪)
여제의 배 다른 남동생, 철 없는 왕자. 선황의 부군 중 애정을 받지 못한 이가 궁녀와 정분이 나 생긴 아이라 모두 한입 모아 내치라 했으나 인정 많은 여제에 의해 거두어져 왕자의 신분을 얻어 자랐다. 그러나 제 출신을 알게 된 직후 충격을 받아서인지 궁을 버리고 나왔다. 수소문 끝에 중인이었던 제 친아비의 신분을 물려받아 어린 나이에 꽤나 큰 사업가로 자랐으나 이따금씩 생존 신고를 위해 황실로 돌아오면 첫 번째로 제 누이인 공주를 찾아 여전한 어리광을 부리곤 했다. 정처없이 떠돌던 준홍이 황궁에 눌러살게 된 것은 부군으로 채택된 이후. 제가 네 번째인 것이 늘 불만이지만 그것보다 더 불만인 것은 저를 아직까지 어린 애로 보는 여제라, 사랑스러운 눈이지만 그런 눈이 저를 사내로 보아주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그래서 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능글맞은 말들을 던지고 썩어가는 다른 부군들의 표정 구경하기가 취미. 여제란 존재는 준홍에게 첫 사랑, 가족 그 이상. 남들이 저를 모두 부정할 때 품어준 어머니였고 곧 진리이며 하늘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누이이자 부인의 뒤편에서 항상 기다린다. 언젠가는 봐주겠지.
-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 다들 당신을 부정할 때, 그 때는 내게 와. 나는 언제나 여기 있으니." |
제 5 부군 |
제 5부군, 문종업(文鐘業)
세상 물정 모르던 열 살 즈음, 이조판서였던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렸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가까스로 도망쳐 살아남아 자신을 부정하며 살았다. 그런 자신에게 길거리를 나돌아다니던 알거지 꼴의 자신에게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던 것도 부르튼 발을 보고 연민의 눈길로 신발을 사 신기던 것도 저와는 아주 딴 판으로 살던 어린 공주였다. 은혜라도 갚겠다는 이유 아래 공주의 호위무사로 또 10년을 살았다. 엄연한 주종관계였지만 그 이상의 오랜 친구로 지내왔다. 물론 공주의 입장에서. 종업 역시 주종 이상이었음은 확실했다. 다만 그 이상의 감정에 정의를 내리지 못했음이다. 그렇게 공주가 차기 여황제로 임명되고 부군들을 선발할 무렵 잃어버렸던 10년을 되찾았다. 신분도 재산도 다시 돌려받았으니 이제 자유라며, 어서 가라는 여제 앞에 무릎을 꿇었고 항상 품고 다니던 어린 날의 신발을 내보이며 다 필요 없으니 그대 곁에만 남게 해달라 빌었다. 처음으로 밝힌 마음이었다. 그거면 된다고 믿었다. 계속해서 욕심이 생긴다.
-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황제의 자리도, 명예도 관직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폐하는…, 그저 폐하만 항상 지키도록 해주세요." |
제 6 부군 |
제 6부군, 정대현 (正大賢)
먼 과거에 멸망한 왕실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살아남은 후손이었고 동시에 황실 전속의 예인으로 어릴 때부터 노래, 춤, 연기를 배워왔다. 그러다 한 번씩 쉬는 날이면 공주가 찾아와 밀회를 떠나자 꼬드겼고 언제나 대현은 그 꾐에, 아니 제게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일 때마다 풍기는 좋은 향과 말을 하며 오물대는 붉은 입술, 하얗게 말간 얼굴에 넘어가곤 했다. 그렇게 항상 공주가 스승에게 혼이 나 울 때도, 넘어져서 까진 무릎이 아프다며 울먹일 때도 제가 그 앞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면 공주는 웃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공주의 발길이 끊겼고 곧 즉위식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웃 나라의 왕과 왕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던 말에 이미 저따위는 잊었겠지 하며 허탈함에 울먹이는 맘으로 노래하던 밤 그 때의 밀회처럼 다가온 여제는 기억 속의 소녀보다 더, 예쁘더라. 부군들 중 예외로 여제의 고집 아래 발탁된지라 다른 부군들에 비해 자존심도 상하고 비교 아닌 비교를 당하지만 제게는 여제만 있으면 된다. 제 마음을 미처 다 전하지 않아도 좋다. - "제게 오셔서는 울지 마시고 웃어주세요. 그것이 폐하께 드릴 수 있는 소인의 최대한의 선물입니다." |
그들의 여인, 여황제 |
강대국 비강국의 여황제 태초에 자식은 어미의 배를 빌려 태어나고 만물이 그렇기에 여제인 어머니와 황제인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외동딸로서 어머니의 대를 잇는 여황제가 되기 위해 어려서부터 노력해왔다. 즉위식을 몇 년 앞두고부터 전통을 따라 부군들을 추적했고 최종적으로 남은 여섯과 함께 스무 살을 맞았다. 전통을 따른 즉위식을 끝냈고 전통에 따른 1년간의 황제 선발을 통해 저와 평생을 함께할 배필을 스스로 결정해야했다. 당연히 제 스승인 용국을 황제로 세우겠다 생각했다. 용국도 그렇게 하면 기뻐할 줄 알았다. 어째서인지 용국은 저를 자꾸만 밀어내고 남은 다섯의 부군들은 잔뜩 울듯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만 있다. 당연시 여겼던 선택에는 혼란이 오고, 평생을 따라다닌 전통에는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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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벽에 삘 받아서 쓰다가
이렇게까지 오게 된...
똥손을 가진...
작가입니다
:)
평소 타가수분들의 빙의글을 가끔씩 보면서 우와... 재밌다 하고 느끼다가
우래기들로도 한 번 써보고싶다!
하는 마음에 상상하고 상상하다 일처다부제라는... 뭐 밑도 끝도 없는 소재를 가져오게 됐지만
열심히 쓰겠습니다!
부부관계이니만큼 불꽃(ㅇㅅㅁ) 도 종종 뜨겁게 지를게요
비록 모자란 필력을 가졌지만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한 마디 남겨주시면 저 기뻐서 몸부림칠거예요 :) ♡
남은 하루도 마무리 잘 하시고
1편으로 돌아올게요: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