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이 났다. 겨울 내내 나는 외로웠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괴로웠고 나만 외롭다는 사실 깨닳을까 무서워 밖을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던 겨울이 끝이 났다. 나는 더이상 추위에 떨지도, 예쁘게 내리던 하얀 눈을 보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던 것같다. 문 앞으로는 또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뽀드득, 밟히는 눈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봄은 나의 환상이였다. 또 다시 겨울이 시작됬다.
"미리 아이들과 친해지는게 어떻겠니,"
아버지를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내는 나에게 시골분교에 내려가 볼 것을 부탁받았다. 고개를 두번 끄덕였다. 누군가를 만나고 대하는 것이 어려운 나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만 그 곳에 가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고 자란 탓인지 아이들이 마냥 예쁘지만은 않았다. 어른을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괴로운 일이 였다.
"여주야,"
"네 아버지."
"나는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다."
"..."
"돌아올땐 조금은 달라져있으면 좋겠구나."
형식적인 말이였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가 나를 낳으시고 돌아가셨을때 아버지는 내가 많이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지금은 그렇지않다. 덧붙였던 말은 귀에 들어오지않았다. 원망이라는 단어는, 내가 살아왔던 삶을 대변해주기에 적합했다. 모두 나를 원망했다. 내가 살아있지않았다면 아버지 옆에는 어머니가 서있었을지 모른다. 더 서글픈건 나도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억지로 모르는 척하며 살아온 것 뿐이였다. 나도 사랑이 받고싶었다.
모어앤모어
more and more
자켓를 목까지 끌어 올렸다. 하, 허옇게 피어나는 입김을 보면서 춥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기차 안에서 읽었던 책을 가방안에 넣었다. 타고왔던 기차는 다시금 출발했다. 빠르게 나를 지나쳐가는 기차를 의미없이 바라봤다. 나혼자 무언갈 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컷다. 내가 혼자서 할수있는게 있긴 할까,그렇게 나를 믿지못하며.
"생각보다 많이 작죠?"
분교라던 아버지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분교도 아닌 작은 보육원이였다. 학교를 세울만큼 지원을 해주지않아 작은 건물안에서 수업을 한다는 남자에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애가 둘이고 남자애가 여섯이라고 했다. 열명이 채 되지않았다. 모두 한반에 모여 공부를 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아이들도 아니였다.
"곧 스무살이 되는 아이들은 이번 해가 마지막 수업이 되겠네요."
"..."
"기억에 많이 남을겁니다."
잘부탁해요.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손을 잡자 '김석진 입니다' 남자가 작게 웃었다. 친절한 말투와 걸맞는 인상이였다. 여주씨라고 했었죠? 되묻는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남자다운 인상이였지만 사근사근한 말투에 조금은 편안해졌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익숙한 모양이였다.
"여자애들은 걱정마세요, 어찌나 착한지 숙제도 꼬박꼬박해오고 말도 너무 잘들어요."
여자애들은. 이라고 강조했다. 굳이 되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관심을 보일만큼 궁금하지 않았던게 이유였다.
"남자애들은 조금 개구져요. 귀여운 구석도 있긴한데.. 제가 잘 일러둘테니 너무 걱정마세요."
남자의 눈이 반달모양으로 접혔다. 눈이 보이지않게 웃는 남자를 보며 예쁘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픈 애가.. 있다면서요."
"아, 네. 남자앤데 보기와 다르게 씩씩해요. 저기 벤치쪽에 앉아있는데 보이시나요?"
남자에 손을 따라가다 끝에서 멈췄다. 여러명에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글쎄요, 잘안보이네요. 내말에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따 보시면 누군지 딱 알거에요. 우선 애들이랑 인사부터 하실래요?"
"놀고있는데, 그냥 두세요"
"아, 그럴까요? 여주씨는 아이들을 좋아하시나봐요. 여기까지 내려오기가 쉽지않으셨을텐데"
"아니요,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였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내려온 것이 였지 결단코 아이가 좋아서 제 발로 찾아 온 것은 아니였다. 아 그러시구나.. 말끝을 흐리는 남자에게 너무 딱 잘라말한건가 싶어 무슨 말을 덧붙여말할까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사람을 대하는게 힘들다. 더군다나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나에겐 필수가 아니였다.
"형, 이 여자는 누구에요?"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틈에 남자아이가 찾아 왔다. 아까 벤치에 앉아있던 무리 중 가장 작은 아이였다. 훨씬 나이가 많은 상대를 형이라고 부르는 것에 아까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됬다. '남자애들은 좀 개구져요' 라며 어색하게 웃던 남자에 말을 이해하게됬다. 버릇이 없는거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이제부터 나랑 같이 일할 선생님이야."
"안녕하세요 누나."
남자에 말을 전혀 안듣는 모양이였다. 그리 달갑지않았지만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남자아이에게 어색하게 손을 들어보였다. 어, 그래안녕. 떨떠름한 나에 말투에 눈을 흘겨 나를 바라보았다. 공부 잘해요? 묻는 남자아이를 석진씨가 야 박지민. 저리가, 라며 말렸다. 크게 웃으며 무리로 뛰어가는 남자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웃는게 참 개구지다.
"원래 이런 애들은 아니에요,"
"아. 네"
"반가워서 그러는건데,표현이 참 서툴죠?"
"..."
"저 애가 지민이에요."
"..."
"아프다던."
남자에 말이 끝나자 벤치에 앉았던 무리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누나' 개구 지게 웃던 남자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어린 아이는 아니였다.
"예뻐해주세요,"
"..."
"사랑이 필요한 애들이에요."
남자가 다시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말했다. 예뻐해주세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않는다던 나의 말이 영 거슬렸던 모양이다. '사랑이 필요한 애들이에요'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랑을 주는 것이 익숙하지않았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 그래,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이 받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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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별땅입니다. 전 글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총 세가지에 글을 쓸 예정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글이 나왔네요
제목..을 저렇게 지은것에 대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할게 없었어요 모어앤모어...더욱더.
뭔가 마음을 울리는 말이 아닌가요? (억지)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댓글써주시는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텐데 친절하게 댓글을 써주시는 것을보고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요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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