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않았다.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이던 내가 결국 몸을 일으켰다. 커튼을 들춰 창문을 바라봤다. 뿌옇게 습기가 찬 창문을 슥 닦아냈다. 소복히 쌓인 눈과 흩날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참 예쁘게도 내리네, 내일 아침이면 녹아 있을텐데. 한참을 바깥만 보다가 다시 커튼을 쳤다. 내 방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여보세요,"
'밥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미안하구나, 일이 없었으면 저녁이라도 한 끼 같이하는건데'
"걱정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그래,'
"..."
'생일 축하한다.'
방안을 비추던 휴대전화의 불빛이 꺼졌다. 가족과 마주앉아 밥을 먹는 것 따위는 기대도 하지않았다. 케이크를 먹으며 촛불을 끄는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이 지나가기를, 오늘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터지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았다. 생일을 축하받지 못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였다. 잠에서 깨지 않으려 이불을 뒤집어쓰며 오늘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내가 너무 처량해서, '생일 축하한다'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 그래서 눈물이 났다. 나의 열아홉번째 생일이자, 어머니의 기일이였다.
모어앤모어
(more and more)
: 제법 따뜻한 겨울
"좀 유치하죠?"
제법 어른스러운 말투에 고개를 갸우뚱하니 '저는 남준이에요'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개구장인데, 말투는 얌전했다. 얌전하다기보단 어른스러웠다. 유치하죠? 묻는 남준을 보니 웃음이 났다. 저는 그러지않았던 것마냥 말하는 것이 재밌었다.
"이런건 애들이 하는건데"
"..."
"아직도 저희가 어린줄아나봐요."
도화지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라고 했던 것이 영 마음에 들지않았던 모양이다.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니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제법 큰 아이들도 그림에 열중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영어단어를 알려주고 수학 문제를 풀어주겠거니 생각했던 내 예상에 조금 빗나가는 그림이였다.
"춥네요."
"그러게, 좀 춥네"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던 나의 말문이 막혔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저벅저벅 걸어가는 남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얇게 입은 나의 옷차림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괜히 도화지를 흔들어보이며 다가온 남준을 떠올렸다. 아이를 상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무심한 말투였다. 다정함이 익숙치 못한 나는 아이를 상대하는게 힘들었다. 아이들은 다정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눈이 덜 녹아서 위험해요"
"네, 석진씨도 조심히 가세요."
요 며칠 출퇴근했다고 제법 익숙해져갔다. 여느때와 같이 꽁꽁 둘러맨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집으로 향했다. 근처에 지낼 곳이 없어 기차를 타고 십분 거리에 있는 지역에 지내기로 했다. 타이어 자국으로 더럽혀진 눈을 보며 걸어가는데 '누나!'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헥헥거리며 뛰어오는 아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 누나 진짜 빠르네요"
목소리가 우렁찼다. 호석이였다. '먼저 간줄 알았네' 웃는 미소가 예뻤다.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제지는 없었다. 정식 선생님도 아니였고 오히려 그 편이 나았다.
"어디가?"
기차를 타러 온거냐고 묻는 나의 말에 호석이 고개를 저었다.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들었다. '제가 기차탈일이 뭐 있겠어요' 호석이 대답했다.
"이거 삶은 계란! 엄마가 누나 갔다주래요, 바나나랑 귤도 있어요"
"나한테 주는거야?"
"아 그렇다니까요, 얼른 받아요"
내 가슴팍에 봉지를 들이미는 덕에 봉지를 받아들었다. 어떨떨한 기분이였다. 머리칼이 나의 볼에 스쳤다. 바람이 불었다. 호석이 아! 하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거 가져가요, 집에 가는 동안은 따뜻할껄요?"
"괜찮아, 호석이 너 가져가 춥잖아."
"저 집에 가면 많이 있어요, 기차와요! 조심해서가세요"
호석이 손을 세차게 흔들어보이고는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에 쥐어진 핫팩을 바라봤다. 급하게 기차에 올라타서 자리에 앉았다. 핫팩은 뜯지않았다. 그대로 주머니에 넣어뒀다. 그러다 문득 옆자리에 놓인 봉지를 들여다봤다. 삶은 계란 옆에 소금까지 챙긴걸보고 괜시리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또 묘해진 기분에 봉지를 내려놨다. 헥헥거리며 뛰어오던 호석이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상대하는게 힘이 들었다. '이거가져가요' 손에 핫팩을 쥐어주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정이 드는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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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별땅입니다
전개가 엉망이지만 점점 스토리가 나오는 것 같네요,
읽어주시는 모든분들 감사합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글은 쉬어가는 글이라고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봐주세요 =)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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