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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_the theory of everything soundtrack_ A Game of Croquet)







어느 덧 겨울이 찾아왔다. 

연말 인사평가철이 다가오자 호텔 사람들 모두 업무를 마감하고 실적을 보고하느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나도 예외는 아닌지라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붉게 충혈 된 눈을 부릅뜨며 수 십장의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한참을 모니터와 씨름한 끝에 일을 모두 끝낸 후 기지개를 펴며 시계를 보았다. 

열두 시가 넘은 시간. 그제야 외투를 챙겨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연이은 야근과 당겨진 출근시간은 사람이 어디까지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듯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정신력만으로 버틴 지 딱 보름째. 집에 가면 바로 쓰러질 듯한 피로가 온 몸을 짓눌러왔다.






로비로 내려오자 인적이 없는 카운터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오래 전 보았던 모습들이 하나 둘 겹쳐왔다. 매무새가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그가 웃으며 손님들을 맞이했던,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저의 따뜻한 시선까지. 물밀듯 넘실대는 기억들이 머리를 아프게 했다. 괴로웠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다.



입구 쪽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이내 바(bar)가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늦은 밤 시간이라 그런지 바 안은 곳곳에 앉은 몇몇 커플들의 다정한 대화를 잔잔한 음악이 휘감으며 흘러갔다. 바텐더는 치프 매니저인 저의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긴장된 자세로 정리를 하고 있었다. 슬쩍 그를 바라보며 ‘괜찮아요, 그냥 술 한 잔 하러 온 거니까’ 라고 말하였다. 가장 독한 술을 시켜놓고 멍하니 테이블을 바라보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바텐더는 연신 나에게 말을 걸어 왔지만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연신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속을 애써 감춘 채, 괜찮다는 주문만 되뇌는 나 자신이 너무도 모순되고 약해 빠져 보였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건 소리 없이 내리는 굵은 눈이었다. 깊은 밤을 수놓은 하얀 가루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눈을 보고 설레어할 나이는 지났지만, 오늘 같은 날 내리는 눈은 왠지 나를 위로하는 듯 했다.



그 날 이후 나와의 접촉을 일체 않는 그가 내심 마음 한 구석에 걸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적당히 맴도는 술기운에 이대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싶었다. 애써 그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그저 멍하니 서서 떨어져 내리는 흰 눈송이를 바라보았다.



막차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이라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은 택시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점 굵어지는 눈발에 오가는 차들은 그 수가 점점 줄어갔다. 걸어가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하던 도중, 갑자기 내 앞에 검은 세단이 멈춰 섰다. 내려진 조수석 항문 너머에는, 역시나 그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왜 온거야.”

“경비 아저씨께서 전화 오셔서 매니저님이 아직 퇴근 안 하셨는데 날씨도 좋지 않아서 차편도 끊기고 집에 못 가실 것 같다고 부탁하시더라. 거절할 생각은 하지 마. 사장이 직원 태워주러 온 거니까.”



그는 자신의 할 말만 하고는 운전석에서 내려 직접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말과 어긋나는 행동이 영 석연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그의 차에 몸을 실었다.




-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그제야 내가 그의 차 안에서 잠이 든 것을 깨달았다. 당황스러워 그의 쪽과 반대로 아예 몸을 돌린 채 얼른 짐을 챙겨 나가려는 순간, 그가 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 ㅇㅇ. 잠시만 여기 있어.”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물기에 젖어 있었다. 애써 외면해보려 했지만 여전히 놓지 않는 그의 손에 이내 포기하고 다시 고쳐 앉았다. 내가 체념한 듯한 태도를 보이자 그는 이내 세게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자신의 손자국이 붉게 남은 나의 손목을 그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내가 널 어떡해야할까."


밀폐된 공간에서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세상 누구보다 애절했다. 그의 목소리가 귀에 닿는 순간 나는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의 파도가 순식간에 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만을 바랬는데, 더 이상 그와는 얽히고 싶지 않았는데.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목울대로 넘어오는 슬픔의 멍울들을 억지로 삼켰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는데, 입술은 굳게 다문 채 열리지 않았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뜨거운 한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급하게 닦아낸 손을 외투 아래로 감추었다. 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는 어떡해야 될까,





너의 온도와 체온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그때서야 내가 아직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울지마, 제발.."


그의 손이 나의 볼에 다가왔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떨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기를 닦아내었다. 복잡한 눈을 한 그는 이내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두 팔로 자신의 품에 나를 감싸 안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그의 체온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등에 팔을 감았다. 흐윽, 흑..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나는 아픈 울음에 그는 묵묵히 나를 안아주었다. 넓은 그의 품에 안겨 지난 슬픔과 아픔들을 쏟아내었다.


"미안, 해... 흐윽..."


뭉게진 나의 말을 알아들은 그는 자신의 품에서 나를 떼어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내 나의 이마와 콧등, 볼에 짧은 키스를 남겼다.



"Since you came to me, there is nothing you have to be sorry."


그는 이내 나의 입술에 깊이 키스했다.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다.



수년 전, 처음 고백했을 그 때의 떨림이 느껴졌다.

그를 사랑한 나는,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




잠에 취해 정신이 몽롱했지만, 나를 깨우지 않으려는 그의 행동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그는 나를 안아들어 침실 까지 데리고 갔다. 나의 외투를 끌어내리는 그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부드러이 침대에 누이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돌아서는 그를 붙잡았다.


“옆에, 있어줘.”

“...”

“네가 없어서 외로웠어.”


다시 몸을 돌려 나에게로 다가온 그는 머리맡에 살짝 걸터앉았다. 살며시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이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




잠에서 깨어났을 때, 미미하게 맴도는 그의 체취가 어렴풋이 어제의 기억을 불렀다. 그와 키스하고, 그의 체온 안에서 깊게 잠이 들었다는 게, 이내 확 떠올랐다. 억지로 밀어내놓고 이제 와서 매달렸던 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했을 지, 그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와 거리를 두려고 해도 이내 나약한 모습을 보인 제가 창피했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월초 회의가 시작되었다. 중요한 전체 리포트를 듣는 와중에도 지배인님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매니저들이 저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어 온갖 잡념으로 가득한 머리를 애써 부여잡고 집중하는 척 서류 위에 펜으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다니엘.



무심결에 쓴 그의 이름에 화들짝 놀라 그만 펜을 놓쳐 버렸다. 허리를 숙여 펜을 집어올리고는 태연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온통 그로 얼룩진 몸과 마음이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이번 전체 인사 평가에서 우리 호텔이 낮은 점수를 받은 건 근무 태도 방만이 가장 커. 명실상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호텔이 이런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안고 가야겠어? 위쪽에서도 지금 난리야. 도대체 이 사단이 날 때까지 뭣들 한거야?”


언성을 높이는 지배인님의 말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틀림없이 그녀의 짓이 분명하다고. 치프 매니저로서 호텔 일을 총괄하고 담당한 지난 몇 년 동안 컴플레인 수가 가장 적은 호텔로 유명한 이곳이, 저런 혹평을 들은 이유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입김 한 방이 전체 사원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괜히 나로 인해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치프 매니저,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이런 말이 있다는 거 한 번도 못 들어봤어? 일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냐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저렇게 불같이 화를 내는 지배인님은 처음 봤다. 아니, 항상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분이 유독 저렇게 호되게 야단치시는 걸 보니 눈물이 날 뻔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만 연신 되풀이했다. 한참동안의 꾸지람이 끝나고 회의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사람들은 컨퍼런스 룸을 나설 수 있었다. 끝까지 자리 정리를 하고 있는 중에, 지배인님이 나를 불렀다.



“미안해. 아까는 너무 크게 소리질렀지?”

“괜찮습니다. 제 불찰로 일이 일어났으니까 제 책임인걸요. 컴플레인에 대해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나한테 그렇게 할 필요 까진 없고, 크흠. 그런데, 정이씨..”




갑자기 나에게로 몸을 가까이 하는 지배인님 때문에 뭔가 긴밀히 말을 할 게 있어서 그런가 싶어 네? 하고 되물었다. 



그 때 그의 손이 나의 허리 위로 올라온 것을 느꼈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손에 흠칫 몸을 떨었다.


“열심히 일 하는 모습 보기 좋아.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찾아오라고, 흐흐..”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내가 소리를 치고 그의 뺨을 내리치면? 보나마나 이 자리를 놓고 나가야 될 게 분명하다. 어떻게 얻은 자린데, 지난 시간들 때문이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조금만, 참자.

소름끼치는 그의 손길이 점점 농밀한 수위 까지 이르려고 할 때, 갑자기 컨퍼런스 룸이 벌컥 열렸다.




문 너머에는, 그가 서 있었다.




죽고 싶었다. 손을 거두는 지배인님에게 무시무시한 시선을 두는 그의 앞에서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몸이나 내어 주는 싸구려 술집 여자와 같은 행동을 보인 이상, 나는 그와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다. 문 쪽으로 걸어가 그를 밀치고 룸을 나서려는 순간,



“따라와."


그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무서운 목소리로 그는 나를 잡아끌었다.




-




꼭대기 층 스위트룸에 그는 나를 억지로 집어넣었다. 그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나를 그는 가볍게 제압해 나를 끌고 갔다. 아파, 아프다고...! 비명과 같은 나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그는 침실 앞에서 나를 놓아주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는, 간신히 화를 참고 있는 듯 했다.


"이게 니가 날 밀어낸 이유야? 고작 저 늙은이에게 몸 대주려고 일부러 나 피한 거냐고!!"


울부짖듯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가 나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의 목소리로 듣는 더러운 말에,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멍하니 바닥만을 바라봤다. 수치스러웠다. 그에게 나서서 아니라고, 일방적으로 나는 당한 것뿐이라고, 네가 본 건 모두 오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엇나가듯 그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래 맞아. 나 권력에 미친 사람이야. 이 호텔을 얻기 위해서 그딴 몸뚱아리쯤 얼마든지 내어 놓을 수 있다고. 좀 더러우면 어ㄸ.."



찰싹.



그가 나의 뺨을 내리쳤다.

쓰라린 고통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온 몸을 전율하듯 떠는 그는 나를 억지로 잡아끌어 침대 위로 눕혔다.


"그래? 그럼 나한테도 한 번 해 봐."


거칠게 나의 자켓을 벗기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끄르는 그는, 이성을 잃은 짐승과 같았다. 반쯤 드러난 나신 위에 이로 깨물어 붉은 상흔을 남기는 그를 나는 힘겹게 끌어안았다. 목 위로 그의 잇자국이 남겨지자 아윽, 하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용히 해. 그는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무서웠다. 이런 그의 모습이 낯설고 공포스러웠다.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행위는 쾌락보다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구분 못할 한 방울이 나의 얼굴을 적셨다. 그의 것인 듯 했다.




온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자 그는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듯 했다. 그는 엉망으로 흐트러진 나의 모습을 보며 이내 자괴감을 느낀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지금.. 그는 연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황급히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눈물이 나왔다.


허탈함과 슬픔만이 가득한 가슴을 끌어안은 나의 모습은, 누구보다 가장 초라하고 처량했다.




-




몇 주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오로지 침대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게 다였다. 눈을 뜨면 그 날이 기억나 숨을 쉴 수 없었다. 유일한 안식처는 어둠 뿐이었다.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 점점 힘이 없어지는 듯 했지만 상관없었다. 이대로 죽고 싶었다. 아니,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쏟아지는 전화나 문자를 외면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갔다. 쾅쾅, 누군가가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에 애써 무시하려 해도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해골같이 비쩍 마른 몸을 억지로 이끌고 현관으로 갔다. 누구세요,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나의 목소리에 나는 픽, 웃었다. 아직도 목소리가 나올 힘은 있나보네. 정아, 문 좀 열어봐. 문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호텔에 나를 소개해준 친구였다. 나는 천천히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빛에 나는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었다.



"정아, 너 괜찮은거ㅇ... 정아!! 정신차려!!!"


점점 아득해져가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눈을 감았다.




-




눈을 뜨자, 곁에 있던 친구가 이내 나에게 달려왔다. 괜찮아? 너 진짜.. 사람 걱정시키고 이럴래! 다그치는 그녀에게 나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영양실조래. 쇼크 때문에 잠시 쓰러졌었고. 아, 그런데 너.. 말 끝을 흐리는 그녀를 향해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 조심스러운 듯한 그녀의 태도가 낯설었다.


"임신.. 했었어."

"..."

"아이는... 하늘나라로 갔고."


누군가에게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어..? 다시 되묻는 나에게 그녀는 울먹이는 말로 대답했다. 

정아, 왜 그랬어... 흑... 니 아기, 이제 여기 없다고..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나에게, 한 생명이, 이 안에 있었다.




그가 생각났다. 망연히 나를 내려다보던 그 시선이 생각났다.


" 다니엘, 다니엘 불러줘."




-




흐트러진 차림을 한 그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창문 밖을 응시하던 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숨을 고르며 나에게 다가왔다. 

정아.. 그는 내 침대 옆에 다가와 무릎을 낯춘 채 나의 손을 잡았다.


"왜 아파.. 이 지경이 되도록 도대체 너는..!"

"다니엘, 미안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여기에, 아기 있었대."


납작한 배 위로 나의 손을 올렸다. 그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한 줄기의 눈물이 그와 나의 맞잡은 손 위를 타고 흘렀다.


"여기, 한 생명이 있었는데, 내가... 내가... 흐윽..."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는 나를 그는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울지마 정아, 다 내 탓이야. 제발... 울지마. 

그가 나에게로 다가와 제 품에 나를 가두었다. 미안해... 너 힘들게 해서, 미안해...


병실 안은 그와 나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




결국 호텔에는 다시 나가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배인은 이전부터 행해왔던 공금횡령과 성추행 혐의로 구속되었고, 그로 인해 호텔 전체가 일시적으로 마비 상태였지만 이내 다시 활기를 되찾아 예전만큼의 명성을 회복하였다고 이야기 하였다. 또 그의 순순한 자백 아닌 자백에 의하면, 다인이라고 했던 그 여자는 일방적으로 다니엘에게 접근했던 여자였고, 회장의 딸이었던 그녀를 억지로 밀어낼 수 없어서 계속 미루고 미루다 컴플레인을 걸었던 그 날, 결국 그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었다고 말했다. 미안한 기색으로 나에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말없이 그에게로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그는 나의 허리를 감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우리는,

상처만으로 가득했던 서로의 시간을 말없이 보듬으며 감싸 안았다.




-




몇 년 만에 들른 것이었다. 그와 손을 잡고 거니는 동안에도 나는 그에게 조곤히 말을 걸었다. 우리 아기,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늘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을 거야. 처음 아기의 무덤을 작게 짓고 그 앞에 작은 꽃을 두고 나오던 날, 탈진할 정도로 울던 나를 그는 말없이 조용히 바라보며 그도 눈물지었다. 그 후 한참을 일부러 들르지 않았다.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도저히 그 앞에 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나에게 제안했다. 우리, 아기한테 가 보자.


그는 슬픔으로 얼룩진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닦아주기 위해 용기를 낸 것이었다.



"잘, 지내지."


쌀쌀한 바람이 온 몸을 얼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맨 손으로 작은 둔덕을 쓰다듬었다. 

그 동안의 외로움을 보여주듯, 작은 무덤은 조용히, 그리고 고요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언젠가 너를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아가야."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 때 그가 나의 곁으로 와 살며시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하늘에서, 꼭 다시 보자."


그도 나지막히 말을 꺼냈다.




나를 감싸 안은 그의 손은, 수 년 전 그의 품에 처음 안겼을 때와 같은 따뜻함만이 감돌았다.







I have found the paradox that if I love until it hurts,

then there is no hurt, but onlymore love.

나는 내가 아픔을 느낄만큼 사랑하면,

아픔은 사라지고 더 큰 사랑만이 생겨난다는 역설을 발견했다.

-Mother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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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진짜금소뉴ㅠㅠㅠㅠㅠㅠ1편은독방에서봣었는데2편진짜ㅠㅠㅠㅠㅠㅠㅠ아현실눈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2
작가님2편까지 잘읽었어요.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또 다시 잔잔하게 끝나는것이 저에게는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또 표현력도 좋았어요. 스크랩해서 두고두고읽겠습니다.
9년 전
독자3
진짜잘읽었어요ㅜㅜㅠㅜㅜㅠ문체진짜좋아요ㅜㅠㅜ
9년 전
비회원252.191
배경음악과 함께 들으니 더욱 먹먹하네요....잘 보고갑니다 : )
9년 전
독자4
아ㅠㅠㅠㅠ 작가님 진짜보다가울었어요ㅠㅠㅠ진짜잘쓰시네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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