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야. 구준회 자퇴했대.
화제는 끝도 없이 10대의 뒤를 쫓는다. 의미 없는 가십거리는 몇백 명의 입을 거쳐가고 단물이 빠지면 처참히 버려진다. 호기심의 일종인 관심은 매번 그랬듯 오지랖이 되고, 근거 없는 뜬 소문은 결국 그렇게 우리를 괴롭힌다. 시선이라는 게 참 무섭다. 기대가 담긴 눈빛도, 본인들의 관심을 충분히 충족시켜야만 하는 대답도. 반응에 대한 기대치를 만족스러울 만큼 채우는 순간까지 사람은 호기심을 쫓는다.
이여주. 넌 알지. 걔 갑자기 자퇴 한 이유.
그들은 매일을 그런 식으로 지칠 기력도 없이 내 그림자를 추적한다. 걔 니랑 빠구리 뜨다가 걸려서 퇴학당한 거 아니야? 말만 자퇴지. 나는 여전히 밟혀 넘어지고 매번 같은 비웃음 속으로 먹혀들어간다. 아니면 니 놀아주다가 지쳐서 튄건가. 가끔은 뜬소문이 사실이 되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지만서도 가끔 현실이 그렇다. 구준회 없으니까 너는 좆도 아니야.
슬프지 않다. 다만 현실을 원망해야 할지 사람을 미워해야 할지. 나는 해답 없는 풀이만 내내 계산한다.
학창시절
“그래서 밴드부 나간다고?”
못 할 말이라도 했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부장의 표정에 괜히 뻘쭘해 애꿎은 손톱만 뜯어댔다. 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라도 들어보자. 나는 그 말에 미리 짜뒀던 대본을 술술 막힘없이 기억해 꺼냈다.
“나 고삼인데. 언제까지 동아리 활동에 시간 낭비할 수 없잖아.”
“지랄.”
“어?”
“구준회 없어서 그런 거잖아.”
나가던지. 어차피 키보드 하나 없다고 피해 보는 거 없어. 부장은 미련 없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 너무 쿨한 거 아닌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고 연습실을 나섰다. 정곡이 찔렸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기분 나쁜 깨달음이었다.
소통과 단절하고 풍경에 벽을 쌓는다는 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청각장애가 아닌데 귀를 닫고 산다는 건 무리고, 시각장애가 아닌데 뚜렷이 보이는 환경을 부정하는 건 다 지랄이다.
“이여주다.”
나는 우리 학교 스타가 다 됐다. 그거 참 고맙네. 살이 붙어있지도 않은 갈비찜을 나름 급식이라고 받아들고 구석으로 향했다. 킬킬거리는 비웃음 소리는 조금 싱거운 콩나물국에 간이 된다. 나는 자리에 착석해 묵묵히 밥을 퍼먹었다. 국은 그냥 맹물이네. 머지않아 옆 테이블이 잔뜩 소란스러워진다.
“야. 이여주.”
“….”
“넌 존심도 없냐.”
진부한 가십거리를 달고 사는 인생을 가장 즐기는 아이였다. 최현희. 말하자면 놈의 지독한 습관이었다. 최현희가 내 옆자리에 착석했다. 무슨 꿍꿍이야. 또 무슨 말을 떠들려고.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다 고개를 획 돌렸다. 옆태로 느껴지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국 정말 못 먹어주겠다. 우리를 둘러싼 몇십 개의 눈동자를 무시하고 그곳을 나오려던 참이었다. 문득 손에 힘이 풀린다. 식판을 다시 놓치고 뒤통수로 느껴지는 찌릿한 고통에 고개가 따라간다. 나 봐. 사람 무시하지 말고. 최현희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읊었다.
최현희가 악력을 더해 쥐었던 내 머리채를 던지듯 놓았다. 얼얼한 뒤통수가 튕겨져 나가떨어지는 꼴이 참 우습다. 하루라도 멀쩡히 지나가는 날 하나 없다는 사실에 기분이 다시 울적해진다. 밥도 못 먹게 해, 이 년들은. 나는 다시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입맛이 떨어졌단 핑계로 도피를 한다는 건가. 비겁한데 어쩔 수가 없다. 최현희가 내 어깨를 다시 붙잡았다. 기집애가 힘은 더럽게 세다, 또.
“아, 좆 같은 년.”
“뭔데.”
“상황 파악 못해? 지금 그렇게 당당할 때야? 너 지금 아무것도 아니야.”
당최 뭐라는 건지. 나는 원래 아무것도 아닌 애였다. 당당한 적도 없고. 내가 구준회랑 사귈 때 나 받쳐 떠들어 준 건 내 주둥아리가 아니고 지들 입인데. 어깨를 잡아 쥐던 최현희의 손을 밀쳤다. ‥아. 참 갑작스럽기도 하지. 별안간 싸늘했던 주위가 웅성댄다. 좀 전까지 울그락불그락 얼굴이 빨개지던 최현희는 배까지 부여잡으며 깔깔거린다. 찌잉. 급식실 바닥과 마찰한 쇠로 만들어진 식판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내 귓가를 후려친다. 영양사 아주머니 바닥 치우시기 힘드시겠네.
“언제까지 준회 믿고 나댈래.”
“….”
“그 새끼 니 따먹기만 하다가 질려서 튄지 일주일째야, 지금.”
반찬들로 엉켜버린 머리카락에서 역한 냄새가 풍긴다. 싱겁다고 속으로 몇 번이나 고쳐 씹어대던 국은 내 얇은 셔츠 한 장을 전부 적신다. 최현희가 꼴사납다는 표정으로 나를 흘겼다. 관자놀이를 툭툭 치는 손길에 화가 난다.
“정신 차려, 여주야. 내가 니 인생이 좆나 불쌍해서 그래.”
기집애가. 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예쁘게 한다.
“야. 최현희.”
“뭐. 눈 똑바로 떠서 어쩌려고, 미친년아.”
“인소 찍을 거면 니 친구들 데리고 동네 뒷골목이나 가라.”
“‥야. 이 씨발년이 지금 뭐래?”
“뒤늦게 중이병 온 것도 아니고.”
벙 찐 최현희와 구경꾼들을 두고 그 무리를 이탈했다. 뒤에서 어떤 욕지거리가 들려도 나는 꿋꿋했다고 자부한다. 아무렴. 구준회보다 호구 같겠어. 나는 느긋이 급식실을 나섰다. ‥힘 빠져. 뒤늦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냄새난다. 진짜 더럽네, 나. 항상 달고 살던 시끄러운 욕 소리도 들리지 않고 주변이 물먹은 듯 고요하기만 하니 괜히 감성이 터진다. 나도 자퇴나 할까.
사실 일주일을 어떻게 버텼는지 감히 돌이켜 생각도 못 하겠다. 힘들었었나. 포기를 한 것 같기도 하다. 주변에서 듣는 네 얘기는 여태 내가 알던 너와는 딴 판인데. 부질없는 생각에 킥킥 웃음이 터진다. 이제 와서 뭐가.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조퇴라도 할까. 사실 오늘따라 이 지긋한 학교에 남아 붙어있을 용기가 도저히 없다.
“꼴이 왜 그래?”
괜히 사람을 놀래키는 낯선 목소리였다. 눈이 동그래져선 내 꼴을 전신으로 죽 훑는다. 뭐 저딴. 생각해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니다. 맞다, 쟤도 밴드부였지. 낯짝 두껍게 친하게 지내자며 악수를 걸어오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사실 이딴 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기분 나쁜 시선을 곧장 외면했다. 최현희만큼 오지랖이 넓은 자식이다. 항상 내 일에 꼬치꼬치 물으며 참견질을 해댔었으니까.
“여주야. 너 꼴이 이게,”
“신경 꺼.”
“어?”
“동정하지 마. 기분 뭐 같으니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왜 또 아는 척이야. 항상 지가 뭐라도 된다는 듯 굴었다. 재수 없어. 표정관리가 안 된다.
“야.”
“어?”
“너도 내가 정신병자 같니?”
“뭐?”
“구준회한테 뒤 대주다가 걸레 취급 당한 호구로 보이냐구.”
녀석은 고민한 듯 보였다. ‥대답은 안 들어도 뻔하지. 아직까지 표정이 굳어있는 그 녀석을 제쳐두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김지원이라고 했었나. 나한테 되도 않는 호기심을 잔뜩 쏟아붓는 저 녀석의 이름이.
C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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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글인지 인소인지 도저히 모르겠는 건ㅎ.. 빙의글은 처음이라 감히 잘 안 잡히네요. 어쨌든 여러분 준회는 썅놈이 아니에요. 1편부터 급전개 빼는 것 같지만 아니랍니다 큽큽 남은 내용이 많은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쨌든 여주는 참 불쌍한 아이예요 클리셰인 듯 클리셰 아닌 클리셰 같은 빙의글 한번 열심히 써보도록 할게요ㅠㅁ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