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숲을 달렸다.
그저 경수의 손을 꼭 쥔채 미친듯이 달렸다. 목이말라 금방이라도 고꾸라져 굴러 떨어질 것 같았지만 정신을 다잡았다.
풀리는 다리에 힘을주고, 매서운 눈바람에 얼굴이 따가웠지만 눈에 힘을 주었다.
잡히면 안돼, 잡히면 죽을거야. 우리 엄마아빠처럼 죽기 싫어. 난 아직 죽고싶지 않아 경수야. 등을 보이며 달리는 경수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 너 안죽어, 그런 말하지마.
나 죽게 내버려두지마 경수야. 얼굴을 스치는 밤바람이 차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발이 말보다 빠를까, 점점 자신들을 쫏는 소리는 가까워진다.
달님 달님
제발 저들에게
저희가 안보이게 해주세요.
저희를 이 어둠에 감쳐주세요.
수백번 빌었지만 얼마안가 앞을 가로막는 복면을 쓴 남자들로 인해 우린 붙잡히고 말았다.
- 경수야!
- 이거놔,이거놓으란 말이야!
이거놔 이 새끼들아!
붙잡힌 팔을 빼내려 악을 쓰는 경수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남자는 들고있던 칼등으로 경수의 등을 향해 내려쳤다.
아, 설이가 저기있는데. 결국 눈밭에 쓰러지는 경수를 업은 남자는 말에 올라탄뒤 고삐를 두어번 흔들어 말을 움직인다.
황후가 되고자 했던 소녀
- 그래, 옳지. 좀만더!
- 조용히해 좀.
미안.
나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하던 말이 튀어나왔다. 하얀 눈밭에 업드린 무릅에 감각이 없어질때즈음 사부작, 사부작. 하얀 토끼가 먹이를 향해 다가왔다. 경수는 옆에 두었던 화살을 들어 토끼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고, 정통으로 맞은 토끼의 새하얀 털이 피에 물들어갔다. 짚을 꼬아 만든 가방속 에 토끼를 집어넣고, 피 묻은손은 눈속에 집어넣어 씻었다.경수가 서있는 밑으로 눈밭에 떨어진 핏자국들이 마치 앵두열매 같았다. 멍하니 경수의 행동을 지켜보다 추위에 몸이 떨렸다. 으아 춥다 추워.
- 경수야 우리 얼른 집에가자, 손동상 걸린거 같아.
- 손이리 줘봐.
- 아냐, 괜찮아..내가녹일게
꽁꽁얼어 손이 아프다.
따가움에 인상을 찌푸리며 옷에 묻은 눈을 털고있는데 갑자기 손을 덥석 잡은 경수가 내 손을 자신의 입가로 가져간다. 설마..황급히 잡힌 손을 빼버리자 입김을 불어주려 입을 벌린채로 나를 바라보던 경수는 이내 민망해졌는지 뒷머리를 긁적이다 토끼가 들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어 돌아선다. 화난건 아니겠지? 부끄러워서 그런건데. 터벅터벅 눈밭을 걸어가던 경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 안오고 뭐해, 발도 동상 걸렸냐.
- 너 먼저가.
- ...춥다. 얼른와.
어쩜좋아.
화끈거리는 얼굴에 눈을 볼에 문질러봐도 열기가 가라앉지가 않아. 결국 눈밭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얼마나 묻고있었을까, 이젠 뜨겁다못해 차가워 얼굴이 얼얼하다.
두 손으로 볼을 붙잡고, 하늘을 올려다 보자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인다. 오늘 하늘이 정말 이쁘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는데 구름하나가 몽글몽글 뭉치더니 곧 경수의 얼굴로 변한다. 어머, 망측해라. 정신차려! 얼굴을 가로저으며 오두방정을 떨다 시간이 한참 지난것을 보고 서둘러 마을을 향한다. 아까 먼저 가버린 경수의 발자국들이 나란히 찍혀있어 그 위를 하나하나 밟고 지나가본다.
- 경수는 발이 크구나, 발자국도 잘생겼어!
경수는 하나도 모난곳이 없다.
얼굴도 뺴어나고, 마음씨도 곱고, 활솜씨도 좋고!
그렇게 경수를 생각하며 감탄을 할때쯤 눈밭에 찍힌 경수의 발자국들이 점점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뛰어갔나? 발자국들이 서로 멀게 뛰어져 있어 치마를 입어 보폭을 따라잡기가 힘들다. 왜 이러지, 이상하다.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발자국들이 멀어져간다. 경수가 화장실이 급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을이 보일때쯤 저 밑에서 경수가 보인다.
- 설아! 설이 너, 어디있어!
경수야?
저멀리서 경수가 허겁지겁 뛰어온다. 아니, 왜? 지금쯤이면 벌써 집에서 토끼를 손질하고도 남았을 텐데. 좀더 발걸음을 빨리하자 경수가 손짓을 해가며 소리를 지른다.
- ....지마!!
- 경수야, 뭐라는거야!
- 오지마! 도망가!!
도망가라니.
경수의 말에 뛰던 걸음을 천천히 멈추자. 그제서야 경수뒤로 말을 타고 달려오는 복면을쓴 남자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