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워 죽겠어."
지용이가 소파에 내려앉으며 중얼거렸다. 얄밉기는 뭐가 얄미워? 어린 애를 어르고 달래듯이 답을 해줘도 여전히 투정부리는 듯한 저 표정들이 오히려 더 야속하다.
누구 보라고 저렇게 귀여운건지. 내가 일하는 게 만만치가 않다며 이런 저런 회사 얘기를 해주니 저렇게 뾰루퉁하다. 얄밉다는 것은 아마 이호원이겠지.
밖에는 비가 꾸적꾸적 쏟아지고 있었다. 지용이가 말하기를 저 비를 이호원이 몽땅 맞아서 감기나 걸렸으면 좋겠더란다.
"이호원은 너의 적수가 못되는가봐?"
"예?"
"이제 막 들어온 이호원한테 딸려서야 되겠냐고."
오늘도 정윤호씨에게 무진장 깨지고 말았다. 지용이가 봤으면 열을 내면서 버럭버럭 악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이나 친밀한 정윤호씨지만,
이호원이 들어오고 나서는 전과 달리 정윤호씨 마저 어렵기만 하다. 게다가 그 옆에서 한심하다는 뉘앙스로 날 쳐다보는 김재중씨는 더더욱.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도 요즘의 내 실적은 좋지가 않다. 어떤 날은 나의 미스가 심해서 그것을 이호원이 메꾸어주기까지 했다.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꿀꿀한 날씨는 계속되었다. 맞기 싫었던 빗방울이 구두에 떨어져 번졌고, 그 바람에 내 앞에 서있던, 보기 싫은 그녀석을 보았다.
"어디 가?"
"…니가 절대 따라와주지 않기를 바라는 곳으로."
이호원은 재밌다는 얼굴로 웃었다. 나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웃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사실은 속이 무지 쓰리다. 저렇게 웃을 수 있다는건 여유롭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바빴기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도착할 위치를 정확히 전해 듣기 위해 윤두준에게 연락을 했으나, 도무지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 자식이, 부인이랑 떡이라도 치는건가, 왜 소식이 없어. 몇번이고 윤두준의 번호를 눌러 통화를 시도한지 여섯번째하고도 7초쯤 됐을 때, 드디어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
- 예, 예? 최승현씨?
"뭘하느라고 전화를 안 받아? 오늘 일 빨리 처리해야 하는 거 잊었어?"
- 아, 그랬죠, 참?
"뭐? 그랬죠, 참? 일할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빨리 피튀기러 나와!"
- 최승현씨 혼자서 실컷 피튀기고 오세요, 지금 세네갈이랑 피튀기게 싸우고 있는 거 몰라요? 저 없어도 잘하시면서… 어, 어어! 때려! 때리라고! 우와아아─!
어이없이 끊어진 통화에, 나는 실소를 터뜨리고는 휴대전화를 떨구었다. 부하라는 놈이, 오른팔이라는 놈이…
내가 요즘 실적이 안 좋은건 다 이 자식때문인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