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새장 속에 있니? 01
“안녕.”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쓰레기장이 된 거실과 널브러진 소주병들을 뒤로하고 너에게 먼저 인사했다.
모든 걸 뒤로하고 네가 먼저 보고 싶었다.
“나 못생겼지. 나도 알아.”
오늘도 퉁퉁 부은 눈으로 그를 반기다니 조금은 부끄러웠다.
“…너는 여전히 잘생겼다.”
너를 안았다. 내 작은 품에 네가 들어왔다.
“아….”
포근했던 그의 품이었는데, 어느새 그는 이렇게 종이 한 장이 되어 날 반기고 있었다. 마음이 또 갈기갈기 찢어졌다.
수도 없이 찢긴 마음이기에 무뎌질 줄 알았던 고통은 9개월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다.
“아,아….흐읍”
그가 내 곁을 떠난 그 날도 그와의 추억도 모두 잊겠다고 그의 흔적들을 모조리 태우고 잊으려고 애썼는데
잊고 싶으면 그의 얼굴이 떠올랐기에 잊으려 해도 더욱 짙어지는 그였다.
"민석아. 나 슬퍼."
아직도 내 곁엔 네 온기가 남아있는 거 같고, 이 집엔 네 향기가 머물러 있는 거 같았다.
내 향기로 가득 찰 줄만 알았던 우리의 집은 마치 너를 기다리 듯 너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부은 눈틈으로 눈물이 흘렀다.
“아침부터 울어서 미안해…근데…”
그래 4년의 연애가 9개월이란 시간 안에 잊힐 리가.
헤어진 애인을 잊으려면 그 애인을 사랑했던 시간만큼의 고통과 그리움이 뒤따른다 하던데
헤어진 게 아닌 한 순간에 잃어버린 너는 9개월 만에 잊힐 리가 없었다.
“안 잊히는 걸 어떻게 해…흐으…흡”
헤어진 게 아닌 죽은 연인을 잊으려면, 사랑했던 시간만큼이 잊히는 게 아니었다.
연인이 죽은 그 순간 시간은 그 순간에 멈춘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만큼 고통과 그리움이 나를 잠식해버려 영영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고 또 그 고통들은 모두 홀로 감수해야 한다.
“민석아….”
잠식된 고통과 그리움이라는 바다에서 빠져나오려고 헤엄치면 헤엄칠 수 록 더 깊이 빠져버린다.
그렇게 바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은 그 안에서 숨을 쉬는 법을 배우거나, 아니면
그 속에서 죽어 영영 그 곳에서 머무르게 된다.
“흐으…흡”
“벌써 일어났네.”
방에서 자던 박찬열이 내 울음소리에 일어났다.
평소에 잠 많던 아이였는데, 새벽에 내 소리에 깬 것 만 같아 미안해 울음을 참아보았다.
그의 목소리엔 벌써 일어났냐는 의미와 함께 안타까움, 그리고 걱정이 섞여있었다.
평소 거짓말을 잘 못하는 박찬열의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서 그 감정들을 숨기고 애써 웃어 보이는 게 티가 났다.
“또 우네 우리 김여주”
갑자기, 민석이와 박찬열과 함께 행복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부터 쭉 함께였던 우리는 그 누구도 갈라 놓을 수 없던 친구 들이었다. 누구보다 행복했고 누구보다 밝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난 절대 갈라 지지 않을 줄만 알았다.
아니 사라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또 울컥 슬픔이 올라왔고 참았던 눈물을 또 터뜨리고 말았다.
“찬…찬열아. 흐읍…흐…”
꼴이 가관인 내게 그가 다가왔다. 그리고 담담히 나를 안았다.
“응. 여주 야”
그의 니트 속 얼굴을 묻었다. 민석이가 니트를 입으면 참 멋있었는데.
“나…”
“응”
매번 이렇게 우는 나를 안아주는 박찬열 또한 나와 같은 소중한 친구를 잃은 고통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의 고통도 위로 해주지 못하고 매일 먼저 울어버리는 나였기에 박찬열은 그 고통을 숨기고 매일 나를 위로했다.
“또 아, 아파…마음이…마음이 너무 아파…찬열아.”
“….”
그가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나도 잘 알아.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항상 그에겐 미안했지만 내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들은 미안함을 생각할 틈도 주지 않았다.
연인을 잃은, 친구를 잃은 슬픔의 차이는 없는데, 매일 이기적인 나였다.
"후…."
그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헤어졌더라면 덜 아팠을텐데.
헤어진 연인과 달리 우리는 다시 만날 수도 손잡을 수도 안을 수도 눈 한번 마주치려 할 수도 없다.
영영 사라진 이 세상에 없는 연인이란, 평생 각인된 고통과 그리움이었다.
나는 그의 품에서 그렇게 또 몇 시간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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