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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왠지모르게 주변엔 늘 밝은 친구들이 있었다. 

 

" 로빈~ 왜 거기 멀뚱히 서 있어? 추운데 얼른 들어가자~! " 

 

줄리안이 내 등을 떠밀며 발을 동동 굴렀고, 나는 그의 등살에 못 이겨 발을 느리게 굴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줄로줄] Amener   

   

   

  

처음 줄리안을 본 건, 아는 형과 함께하는 잡지 촬영 때 였다. 그 때, 형이 옆에 있던 줄리안을 소개시켜줬다. 같은 타지에 온 입장인데 프랑스 사람끼리 친하게 지내라고. 아마 그가 불어를 쓰고 있기에 아무 생각없이 프랑스 사람이라고 생각 하신 모양이었다. 

   

 

' 형!! 저 프랑스사람 아니예요!! 저 벨기에사람 이예요!!! ' 

 

그는 한국말을 정말 능숙하게 잘했다. 따박따박 그 형과 농담을 주고 받을정도로. 처음 보는 그 때에도 왠지 그는 익숙한 느낌을 주었고, 그래서 편안했다. 

그가 형에게 파닥거리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옆에서 키득거렸다. 

 

우린 모델일을 하며 꽤 자주 마주치게 됐고 그와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 형말대로 우린 똑같이 타지에서 한국이라는 먼 땅에 왔고, 유럽 문화권이었고, 그래서인지 생각하는 것도 묘하게 비슷했고, 심지어는 가족내에서 막내라는 점도 비슷했다. 

 

-   

그는 그의 머리 빛깔처럼 밝은 사람이었다. 사람들 모두가 그를 타박하는 듯 보이지만 개구진 웃음을 잔뜩 낀 채 그에게 몰려든다. 아마 그건 그가 빛나기 때문일거다. 

 

" 로빈- " 

" 어? " 

 

넋을 놓고 그의 주변을 바라보는데, 그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멍청하게 대답해버렸다. 

 

"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 엉? 뭐를? " 

" 그니까, 방금 전에 시몬이 말이야- "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그의 상황설명이 끝나자 나는 어느새 내 생각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그 무리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어? " 

" 응? " 

 

같이하는 잡지 촬영을 위해 줄리안은 의자에 앉아있었고, 나는 땅에 앉아 촬영준비를 하고있는데, 줄리안의 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연스레 그 상처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 ...흉터? " 

" 아,아- 응! 이거 완~전 어렸을 때, 놀다가 다쳤어-" 

" 너라면 그럴 법 했겠다- " 

" 너라며언~? 그거 무슨 뜻이야? " 

" 푸핫, 알면서 묻지마. " 

" 히히히, 암튼 안보이는 곳이라 그나마 다행이었지. " 

" 응. 그러네.. " 

 

흉터는 꽤나 패여져있었다. 줄리안이 턱 쪽에 털이 많아 그나마 가려지는 것 같다고 내가 덧붙이자, 경쾌하게 웃으면서 찰싹 하고 내 등을 때렸다. 

 

 

*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촬영이 끝나 늘어진 복도 한 복판에서 나를 갑자기 붙잡은 대표님은 무어라 말씀하고 있다. 

길게 무어라 이야기 하는데 아무래도 계약 얘기(계약이라는 단어가 언뜻 들렸다.)라 그런지 이해가 안되는 단어들이 많다.. 되물어도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고.. 나는 나도 모르게 갈 수록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로빈!! "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차에 이미 그는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다. 

 

" 무슨 일이시죠? " 

" 응? 자네는 뭔가? " 

" 아, 이 친구가 한국말이 아직 서툴러서요, 제가 대신 전해드릴게요- " 

" 아니, 자네 로빈과 아는 사이인가? " 

" 네. 아주 친한사이죠- " 

  

줄리안은 그 사람과 계속해서 대화를 했고, 통역해 줄줄 알았던 줄리안은 무슨 내 매니저라도 된 것마냥, 계속해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못 알아듣는게 짜증나고 답답해서 줄리안의 어깨를 잡자, 줄리안은 알겠다는 듯 내 등을 툭툭 쳐주며 계속해서 그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그 지루하고 짜증치미는 대화에서 들리는 말은 ' 말도 안돼요. 그럴 수 없어요. ' 였다. 

 

 

" 아까 뭐야? " 

" ........... " 

" 아까 대표님이랑 뭐라고 말한거냐고! " 

" ....그 사람 순 사기꾼이야. " 

" ...뭐? " 

" 그 사람이...!!!! " 

 

그의 화난듯 보이는 붉어진 얼굴, 그리고 그의 힘이 들어간 목소리. 그러고보니, 난 줄리안이 화내는 걸 지금 처음보는 것 같다. 

 

" ....아니야.  " 

" 뭐야, 뭔데 그렇게 화난건데.  얘기해봐. " 

" 너 그 회사랑 계약 연장할 때 된거야? " 

" 어? 아- 아마. " 

" 그 얘기를 했어. 근데 말도안되는 소릴 막 하잖아. 말도 안돼.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를 일부러 돌려 말하는 것 같았어. 일부러 니가 못 알아 듣게 한거야. " 

 

아직도 화가 난 듯 보이는 줄리안은 말은 침착한 듯 또박또박 길게 말했지만, 아직도 숨이 거칠고, 얼굴이 빨개져있었다. 그는 흰피부라서 금방 그런 것들이 탈로났다. 

 

" 푸훗, " 

" ??! 웃음이 나와? " 

" 하하하, 아아.. 미안- 그래서 니가 뭐라 그랬는데? "  

"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하고, 그럴 수 없다고 했어. " 

" 응. " 

" 근데도 나보고 자꾸 제3자라면서 빠지라잖아! " 

" 사실이긴하잖아. 그러길래 통역을 해주지..난 니가 통역을 해줄 줄 알았어. " 

" 난 멀리서 그걸 봤을 때 부터, 그런 얘기 중인 것 같았어.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얘기 할 생각이었어. 넌 사실 여기 온지 얼마 안됐고, 여기 쪽 계약에 대해 잘 모르잖아. 통역을 내가 해줬어도, 마찬가지 였을거야. " 

" 응... 그건 그렇네.. " 

" 응...진짜 못된 녀석이야. " 

" 푸하핫, 그러지 마. " 

" 넌 이렇게 가끔 답답해져서 탈이야! 어떨 때 보면 너무 당하고 사는 것 같애! " 

" 줄리안, 니가 거길 지나쳤고, 결국 내 대신 얘기를 해줬잖아. " 

" ....... " 

" 난 아직 피해도 안봤고. " 

" 그렇긴...하지. " 

" 니가 그 때 거길 지나쳐서 다행이야. 고마워. 줄리안. "  

" ......... " 

 

줄리안은 그 얘기를 듣고서 앞만보고 걷다 갑자기 멈칫 거렸다. 같이 걷고있던 나도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췄다.   

 

" 로빈. 너 우리 회사로 옮기는 건 어때? " 

" 엥? 그게 그렇게 맘대로 돼? " 

" 안되는게 어딨어. 말해볼게. " 

" 푸핫, 넌 이럴 때보면 좀 애같아..  " 

" 애 같은 형 둬서 좋겠다!! " 

" 이젠 형 타령까지?? " 

" 안되겠어! 너, 여기 한국이니까 앞으로는 나한테 형이라고 불러! " 

" 왠 갑자기 한국말?? " 

" 이래야 무서울테니까! " 

" 뭐든 침튀기면서 말하면 안 무섭지~ " 

 

나는 그가 한국말을 쓰는데도 꿋꿋하게 불어로 대답했다. 줄리안은 계속 무어라고 툴툴거렸지만 나는 왠지 그의 그런 모습이 좋았다. 

   

   

   

 

*   

그와 나는 점점 더 각별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모델일을 하는 외국인 친구들은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에 불어를 하는 친구들과는 꽤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줄리안이 나에게 어딘가 특별한 친구가 된 건..  나도 모르는 새, 자연스레 그가 나의 모든 걸 알고 있고, 나도 그의 모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  갑자기 시송 먹고 싶어. " 

" ? 어? " 

" 시송 오 그라탱(Chicons au gratin). " 

" 아,아... 말 줄여 쓰지마- 진짜 한국인 다 됐네. " 

" 아아아~!! 진짜 먹고싶어어!! 로빈!!! " 

" 아이! 그럼 만들어- " 

" 우웅... 그럼.. 마트 같이 갈래..? " 

" 마트 멀어? " 

" ..조금. " 

" 그럼 안..  " 

" 아아!! 로빈!! 가자가자가자!! 우리 이 휴일을 이렇게 보낼거야?? 시송과 깔끔한 와인정도로는 장식을 해야 폼나지!! 어?! 로---빈!!!! 내가 이거 진~짜 잘 만들 자신있어!! 믿어봐바~!! 응?? " 

 

나는 그가 격하게 떼쓰는 모습에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바지를 갈아입고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나는 그의 행동에 한숨을 쉬며 나 역시 코트를 챙겨입었다. 

 

마트에서도 절대 쉬지않는 그의 발과 입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조잘거렸다. 재료를 고르는 그의 안목은 의외로 까다로워서 최대한 큰 마트를 몇 군데 돌고 돌아서야 겨우 우린 집에 올 수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그는 또 이리저리 움직이며 요리를 했다. 부드러운 소스와 치즈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오늘 귀찮아서 오지말까 했었는데 줄리안의 집에 오길 잘 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가 앞치마를 맨 채 이곳 저곳 움직이는 뒷 모습을 보고서 문득, 쟤가 저렇게 오래 조용한 적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드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띄워졌다. 

 

 

그가 요리를 다 만들었을 때 즈음 나는 옆에서 와인을 준비했고, 노을이 거의 져갈때가 되서야 식탁에 앉아 그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 별로야.. "   

 

몇 조각 먹은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 갑자기 왜그래? 되게 맛있는데. " 

" ........... " 

 

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조금 인상을 쓰고서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정말 그에게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맛있었기 때문에 그의 그런 태도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 하... 역시- 엄마손맛은 아무나 따라잡는게 아닌가봐- 로빈. " 

" ............ " 

 

가끔. 

아주 가끔 그는 이런 표정을 짓곤했다. 그에게도 이런 표정이 있구나 싶을정도로..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 쇼핑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코너를 지나칠 때 갑자기 줄리안이 멈칫 거리길래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같이 멈췄었다. 

 

" 향기 좋다..  "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는 줄리안을 보고서, 무슨 향기를 말하는거지, 싶어 그의 곁으로 다가갈 때 후각을 세워보았다. 뭔가 가벼운듯 하지만 어딘가 성숙하고 부드러운 향수냄새... 

그는 내가 다가오는 걸 알았는지 눈을 뜨고서 히죽히죽 웃어보이고는 다시 다른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장난을 쳐댔다. 

 

평소 그와는 안어울리는 표정... 하지만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올려보이는 그 모습에서 그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때, 그 향기가 겐조 플라워의 향기이고, 그것이 그의 어머니의 향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일이 있고 한참 후였다. 

 

 

  

" ......나, " 

" 어..? " 

 

흐르는 정적사이에서 갑자기 입을 뗀 내 목소리에 그는 조금 놀랐는지 조금 우스운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 나 미트볼 되게 잘하는데. " 

" 어? " 

" 할 수 없군. 내가 솜씨 발휘 좀 해줘야겠다- " 

 

내가 식탁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그는 어벙벙한 표정을 짓더니 곧 웃으며 대답했다. 

 

" 블리트 어 라 리에주겠지. " 

" 뭐래. 프랑스가 원조야. " 

" 근데, 근데- 블리트 어 라 리에주가 훠어~얼씬~ " 

" 아이, 됐고, 좀 만 기다려봐- " 

 

그의 말을 끊고서 앞치마를 두르자, 뒤에서 그의 장난끼가 잔뜩 섞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최대한 빨리 그의 냉장고에서 얼추 남은 재료들로 미트볼을 만들기 시작했다. 옆에선 입에 모터를 단 그가 계속 웃음을 띈 째 조잘거렸다. 

 

 

*   

요근래들어 자꾸 이상한 꿈을 꾼다. 깨어나면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늘 같은 내용의 꿈이다. 느낌이 그랬다.. 그리고 그 꿈의 끝은 이상하게도 늘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그게 너무 싫었다. 

 

 

" 로빈- "   

 

그가 제안한대로 나는 그와 같은 소속사에서 활동을 하고있다. 기대를 안하고 있었기 때문에, 옮기게 되었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 오늘 스케쥴많아? " 

 

 

이렇게 계속해서 마주치는 것도.. 

 

나는 그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생각나는대로 대답했다. 

 

" 어.. 좀 많네..  "   

" 아,아- 그래? 오늘 간만에 메이슨네랑 만나기로 했는데... "  

" 아, 그래?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 

" 응.. 아쉽네..담에 꼭 보자- 얘들한테는 내가 잘 말해둘게-" 

" 엉. " 

 

 

사실 줄리안에게 대답했던 것과는 반대로 나는 시간이 남아돌아 간만에 집에 돌아와 여유롭게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무늬도 없는 흰 천장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바라봐도 답이 나오진 않는다. 이건 내 어떤 의식?의 문제인데, 나 스스로가 도대체 왜 그런 꿈을 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난 왜 고민을 하고있지?.. 개꿈이라면 그냥..무시하면 되는거잖아.. 

 

" 아아!!!!!!!! " 

 

차라리 메이슨네를 만나러갈 걸... 혼자있으니까 더 생각만 늘어나잖아.. 

 

 

*   

한 동안, 우린 만나지 못했다. 그와 나의 스케쥴이 겹치질 않았고, 나름 서로 하고있는 것이 많았기때문이다. 내가 운동을 하거나, 그가 음악일을 하고 있거나... 아님..  내가 피하고 있거나.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 속에 들어오자 나는 런닝머신의 속도를 올려버렸다. 다리에 정신이 쏠리자, 힘은 들었지만 텅 빈 내 마음 한켠이 편해서 좋았다. 

 

 

 

" 로빈! " 

" 어?!! "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줄리안이 어느새 내 옆에 와있었다. 그 특유의 개구진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 오늘 12월 31일 이잖아- " 

" 어,어...  " 

" 저녁에 다 같이 파티 가는 거 잊지않았지? " 

" 어?? " 

 

파티?... 내가 그런 곳에 가기로 했었나... 

 

" 푸훗, 저저번 주에 내가 말했었잖아- 기억안나? " 

 

그는 내가 얼빠진 상태일 때의 캐치가 빠르다. 내 멍한 표정에서 내 생각을 읽은 모양인지 질문을 하지도 않은 내용에 대해 대답해주었다. 저저번주... 

아,아! 그 때..아침에 일어난지 얼마 안되서 패닉에 빠졌을 때.. 아마 그 날일거다. 기억도 안 나.. 

 

" 이번에도 빼면 진짜 삐질거야-! " 

" 푸훗, 아- 그게뭐야- " 

" 그렇잖아- 요새 우린 마치 누가 일부러 엇갈리게 만드는 것 처럼 도톳 보질 못했잖아- 곧 있음, 니 눈동자 색도 까먹을 정도야- " 

 

장난스레 얘기하는 줄리안의 말에 나혼자 괜히 정곡이 찔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줄리안은 평소와 다른 내 태도에 대해 눈치챘는지 나의 안색을 살폈다. 순간, 그의 사소한 배려심이 조금 짜증이났다. 

 

" 너, 요새 많이 바쁜가보구나- 진짜 피곤해보여- " 

" 아, 아냐- 그냥... 어...약속 까먹은 거 미안. 오늘 저녁에 꼭 갈게- " 

" 어디 아픈 거 아냐? 너 진짜 괜찮ㄱ... " 

 

순간 그의 손이 내  이마에 닿으려 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얼른 그의 손을 쳐냈다. 줄리안은 꽤 당황한 듯 보였고, 나 또한 당황했다. 

 

" 어! 미안해, 니가 놀랠줄 몰ㄹ..  " 

" 아,아니.. 괜찮.... 내가... 그... 어... " 

" 푸하하하 아니, 왜 니가 당황해해? 이러면 내가 어케 해야되는지 헤깔려지잖아~ " 

" 어,어.... " 

" 로빈- 생각이 많을 땐 그냥 무시하고서 지나가지말고, 그걸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을 들여봐- 고민도 해보고,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기도 하고- " 

" 어... " 

" 나도 그런 적 있었거든- 알게찌-? 그러면 조금, 나아져- 암튼 오늘 저녁에 봐~ " 

 

순식간에 폭격기처럼 말을 다다다 내뱉은 줄리안은 내 어깨를 다독이고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런 그에게 벙쪄서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파티에 가는 내 발걸음은 마치 치과에 가야만 하는 어린아이처럼 꺼림칙하고 두려운 마음에 사로잡혀 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지고 표정이 어두웠다. 누가봐도 파티에 가는 사람으론 보이지 않을거다. 

 

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손잡이를 한참 바라보고서 문고리에 손을 올렸을 때, 

 

 

" 오오~ 로빈- 왔구나-! "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내 어깨에 손을 얹은 줄리안의 손이 축축했다. 

 

" 아잇! 손 씻고나서 물기 좀 잘 닦아-!! " 

" 어? 아하하~ 미안,미안- 이야~ 근데 로빈- 오늘 완전 연예인인데? 연예인? " 

" 풋, 뭐래.. " 

" 머리, 누가해줬어? " 

" 내가 했어- " 

" 요오~ 엄청 잘했다!! 멋져! " 

" 너도 오늘 멋져. " 

" 어? 진ㅉ... " 

" 이 얘기 듣고싶어서 그러는거지? 너. " 

" 아하하하, 어,어? 티 많이났어? " 

" 못말린다, 진짜- " 

 

그가 나의 말에 눈을 선하게 휘며 장난끼 가득한 어투로 대답해오자, 나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이 나왔다. 

 

 

-   

술을 많이 마시는 줄도 모르게 술을 들이켜댔다. 으으...확실히 한국문화권에 오래있어서 그런지 여기사람들 한국사람들 만큼이나 술 엄청 권유하네.. 

이제 그만 마셔야지.. 

 

나는 그들과 멀어지기 위해 잠시 바람을 쐬러 베란다로 나갔다. 입고있던 옷이 좀 얇아서 바람이 날카롭게 느껴졌지만, 열이 있어서 그런지 춥진 않았다. 눈을 감고서 간간히 유리문을 뚫고 들려오는 줄리안의 음악소리에 눈을 감았다. 

응... 줄리안의 음악은 참.. 좋다.  그와 어딘가 닮아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 덜컥! " 

" ....? " 

" 너 여기서 뭐해? " 

 

줄리안... 

 

" 아, 취할 것 같아서 잠시 바람쐬러.." 

" 뭐 어때- 이런 날은. 취하는 것도 좋잖아- " 

" 난 더워서 싫어어- " 

" 너 그러다 감기걸려- 으으.. 여긴 너무 춥지않냐? 들어가자. " 

" 너 먼저 들아가. 난 좀 있다가..  " 

" 안돼. 다음번에 내 순서란 말이야- " 

" 어? 너 방금 전이었잖아- " 

" 어??! 들었네?? 스테이지에 너 안보이길래 못들은 줄 알았더니.. " 

" 다 들려. 여기서도. " 

" 하하- 못 속이겠다- " 

" 좋더라- 음악. 그거 Ferdinand Weber & Fabich - Aaliyah 지? 가볍게 템포만 바꿔서 더 듣기 좋았어- "   

" ..고마워. " 

 

어둑한 베란다에서 마치 달빛이 그의 눈동자만을 밝힌 것 처럼 그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빛을 내며 반짝였다. 그 에메랄듯 빛 눈에 비치는 난 지금 어떨까..? 

 

 

-   

" 또 보자~ " 

" 그래, 잘 가- " 

  

우린 다른 친구들과 흩어지며 인사를 나누고서 서로의 방향으로 갈라졌다. 길을 걷는데 내 발이 조금 기우뚱 거리는 감각에 진짜 다시금 내가 과음했다는 걸 느꼈다. 줄리안도 꽤 많이 마셨는지 평소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아닌 술냄새가 그의 주변에서 풍겨졌다. 

 

" 로빈, 너 좀 취했지? 삐뚤거린다~? " 

" 너야말로. 좀 똑바로 걸어봐아~ " 

" 난 지금 잘~ 걷고있어~ 니 고개가 삐뚤어져서 그래애- " 

" 아, 뭐래애- " 

" 너 얼굴 진짜 빨갛다아~ " 

" 어? 그래? " 

" 엉. 하하하- 피부가 희니까 그런게 눈에 띄는구나~ " 

" 푸훗, 남 말하시네- " 

" 아니이, 진짜아- " 

" 푸흐흐.. " 

" 근데, 로빈. " 

 

줄리안의 말에 비실거리며 웃는데 곧바로 들려오는 줄리안의 목소리는 조금 낮게 들려왔다. 

 

" 너희 집.. 지나친거아냐? " 

" 어...어...그래? " 

" 흐흐흐.. 왜? 나 데려다주게? " 

" 어.... " 

 

 

이거.. 어딘가 익숙해.. 뭐지..?.. 걷고있는 이 거리...이 장난끼섞인 듯 잠긴목소리... 날 바라보는 니 눈동자.. 보이지 않는 내 표정도.. 

 

" 어엇..!! " 

 

발이 꼬이는 바람에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아,아... 

 

" 어?! 로빈!! " 

 

알 것같아, 이거....진짜 싫다. 

 

 

대답을 바보처럼 한 것도.. 생각에 잠긴 탓에 발이 꼬여 넘어진 것도.. 지금 날 내려다보는 니가... 

 

" 괜찮아? 많이 다쳤어? 자 - " 

 

너무 아름다운 것도.. 

 

 

" 아앗!! " 

 

줄리안이 일어나라고 내민 손을 잡고서 무게를 실은 채로 잡아 당겼다. 그러자 중심을 못잡고 휘청거린 줄리안이 내 위에 아슬아슬하게 엎어졌다. 줄리안이 남아있는 팔을 뻗어 땅을 짚었기에 내 어깨와 살짝 부딪히는 정도로, 그는 엎어지지 않았다. 그는 내 앞에서 나와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는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 ...하하핫! 야- 일어나라고 손 내밀어줬더니~ 나까지 넘어뜨리면 어ㄸ...  " 

 

그의 흔들리던 눈이 이쁘게 휘고서 입을 오물거릴 때, 난 이미 눈을 감아버렸다. 내 입술위에 그의 입술이 겹쳐진다. 석상처럼 가만히 있는 그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고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입술을 떼고서 아직까지 잡고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그의 눈은 좀처럼 초점을 맞추지도 못했고, 그의 늘 움직이던 입도 멈춘 채로 가만히 있었다. 역시... 

 

" 이제 좀 조용하네... " 

 

이젠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겠다. 평소 꾸는 그 꿈과 너무 똑같아서... 헷갈리는 이게 꿈이라면 얼른...날 깨게 해줘.. 어떻게해도 잡히지 않는 거라면.. 눈을 떴을 때 이 모든게 거짓이라면. 

 

 

 

" 로빈- " 

" 어? " 

" 우리 저번에 촬영한 화보. 나온거 봤어? " 

" 어? 아니..아직." 

" 짠- 이 형님 손에 들려있는게 뭐게? " 

" 풋, 그 화보겠지. 얼른 보여줘봐- 넌 봤어? " 

" 나도아직- 같이보려고- " 

" 왜? 먼저 보고있지.. " 

 

그는 내 물음에 아무말않고서 화보를 턱! 펼쳤다. 그러자, 바로 익숙은 얼굴이 보였다. 

 

" 우와아~!!! 잘생겼다아~! 우리로빈!!!! " 

" .....응?? " 

" 이런 표정 아무나 못짓는 거 알지? 이야아~ 어깨 봐!!! " 

" ..... ? 야...갑자기 뭐야? 하지마.. " 

" 아니이, 뭐가-? 진짜 어쩜 나랑 같은 포즈를 취하는데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가.. 이야아- 너 세상 되게 이기적이게 산다아- " 

" 너, 안 봤다는 거, 거짓말이지?!!! " 

" 아야!! 아!! 아퍼!!!! 아~니야~ 거짓말 아니야~! " 

" 한번에 바로 필 때부터 수상하다했어!! 와...!! " 

" 어?! 왜그래 로빈!! 나 진짜 진심이라니까아~? " 

" 그렇게 웃으면서 말하는데 뭐가 진심이야!!! " 

" 푸하하- 야아-!! 로빈~ 가지마아-!! 니 개인컷도 마저 봐야지이- " 

" 아!!! 됐어!!!! " 

 

꽤 두꺼운 화보를 들고서 내 뒤를 쫓아오는 줄리안을 피해 나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빨리 움직였다. 뒤를 몇번이고 돌아보았는데 여전히 줄리안은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짓고서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살짝 안도했다. 

 

 

눈을 떴을 때 그 모든게 거짓이여서 정말 다행이야.. 

 

 

 

 

아! 저 노래는 주크박스에서 소개됐던 노래인데ㅋㅋㅋ제가 잘 몰라서 그냥 아무거나 붙여넣은거예요ㅠㅠ디제잉에 1도 몰라서..ㅠㅠㅠㅠ  

+  

덧붙이자면 로빈이 정말 현실에서도 줄랸네 소속사에 가게될 줄 몰랐네요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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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글 너무 좋아요! 더 보고싶네요.
9년 전
비회원116.235
글을 잘 쓰시네요! 뒷 이야기는 없나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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