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ㅇ 나쁜년.
pro.
나도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내가 왜 바쁜 시간을 이런 사소한 일에다가 투자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일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나의 말을, 이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하긴,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로 간 사람이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서야 들어오니 당연히 믿지 않을 수 밖에. 게다가 한쪽 손으로는 웬 보지도 못한 꼬맹이 한명을 붙잡고 있으니, 말 다한거다. 이런 생활이 몇번 반복되다 보니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한결같아졌다.
'유부남에 애까지 딸렸네.'
'또 애 때문에 나가는거야? 엄마는 뭐한다니? 남편한데 다 시키고.'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본 내게, 이런 말들은 나를 매우 곤욕스럽고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선 무대에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저 꼬맹이 사진을 찍으러 왔다. 자기가 못가니까 대신 가서 찍어달라나 뭐라나. 지랑 저 꼬맹이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년.
"한울아! 삼촌 봐야지? 어어어! 여기야! 김치!"
아, 물론 이 일이 그렇게 사소하고 쓸데없지만은 않다.
*
"너 때문에 내가 회사에서 무슨 말을 듣고 다니는 줄 알기나하냐?"
"뭐."
꼴에 선생이라고 학생들이 써온 수행평가지를 쳐다보고만 있는 ㅇㅇㅇ가 약간은.. 음, 사실은 매우, 많이, 엄청 얄밉지만. 저렇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걸 보면.. 뭐랄까.. 음.. 설렌다고 해야하나? ㅇㅇㅇ의 그런 모습을 본 나는, 총 통틀어 19302번 반했다.
"내 나이 28에 애 아빠 취급당했다 이거야."
"어머, 미안해라. 아직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 본 우리 찬열이가 이제는 유부남도 모자라서 애 아빠 취급까지 당했어? 미안."
나쁜년.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있는 주제에 입으로는 미안하다는 말을 잘도 지껄인다.
"내가 너 때문에 유부남 소리에다가 애 아빠 소리까지 듣고다니는데, 너는 뭐.. 무슨 생각같은게 안드냐?"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더 해야돼. 나 바쁘니까 그만 집에 가라."
저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후벼파다 못해 갉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어, 어? 지금 내가 너한테 무슨 생각을 하기를 강요하는 것 같냐고. 눈치라는 걸 땅에 파묻고 살아왔나.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눈치가 한결같이 없지? 하긴, 저러니까 몇년 째 내가 이렇게 옆에 붙어있어도 아무렇지 않은거겠지. 한편으로는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이왕 유부남에 애 아빠 소리 듣고 다니는거.. 현실로 만들어 줄 생각은 없,"
"없으니까 꺼져. 누나 바쁘다."
씨발. 이렇게 ㅇㅇㅇ한테 차인게 벌써 손으로 셀 수 조차 없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ㅇㅇㅇ 나쁜년.
*
내가 매번 ㅇㅇㅇ에게 차이기만 하니, 이런 나를 안쓰럽게 보던 친구들은 내게 이렇게 말해왔다.
'도대체 쟤를 왜 좋아하는거냐? 진짜 이해가 안가서 하는 말이거든? 야, 쟤보다 젊고 예쁘고 능력있는 여자를 만나야지. 어? 솔직히 애 딸린 미혼모가 너한테 뭐가 득이 되겠어? 정신 똑바로 차려라 임마.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너는 사람 조건보고 만나냐? 내가 좋다잖아, 니가 뭔 상관?'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내 생각도 그렇다. 저렇게 말하는 친구들은 거의 다 좋은 여자를 만나 벌써 장가를 가버린지 오래고.. 이제는 부모님도 내가 덜떨어져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선 자리까지 알아봐주시는 추세이다. 그런 현실에 닥쳐있으면서도 나는 왜 그 나쁘고 나한테는 모질기만한 ㅇㅇㅇ를 좋아하는걸까. 뭐, 딱히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
"삼촌은 왜 우리 엄마 뒤꽁무니만 쫓아다녀? 우리 엄마가 그렇게 좋아요?"
한울이 요 녀석은 지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못된 말만 서스럼없이 해댄다. 하긴, 다섯살짜리 꼬맹이가 봤을 때도 내가 그렇게 구질구질해보인다는건.. 머릿속을 파고드는 현실에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흰 머리가 솟아날 것 만 같다.
"그럼 한울이는 삼촌이 엄마 좋아하는거 싫어?"
"아니아니. 그런데 엄마가 귀찮아하니까."
아, 나쁜놈.
역시 한울이 요 놈은 지 엄마 성격을 닮은게 분명하다.
*
왜 애 이름을 특이하게 한울이라고 지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둘의 나이는 23살이였고, 한울이의 나이는 2살이였다. 한울이를 재워놓고 오랜만에 한잔하자는 나의 말을 거절하지 않은 ㅇㅇㅇ는 연거푸 술만 들이키기 시작했다. 술을 잘 하지 못하는 ㅇㅇㅇ는 얼굴이 새빨개진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때가 아마.. 내가 1029번째로 반한 순간이였던 것 같다.
"우리 한울이 이름이 이상해?"
"이상한게 아니고, 특이하잖아.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서."
내 말에 술잔만을 내려다보는 ㅇㅇ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기가 싫은 거겠구나 싶어 화제를 돌리고자 입을 열었을 때였다.
"큰 울타리처럼 다른 사람을 끌어안아주라고.. 그래서 포근함만을 주는 큰 사람이 되라고.. 그 뜻이야. 멋지지 않냐?"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울고있었다. 모순되는 년, 나쁜년. 그렇게 이상한 표정을 짓고있으면서도 예쁘면 어쩌자는건지.
*
한때 ㅇㅇㅇ는 내게 이렇게 물어왔다.
"너는 도대체 왜 나같은 애를 좋아하냐?"
"내가 너를 좋아하는걸로 보여?"
"아니길 바라고 묻는거야."
참 한결같이 못됐다. 이런 말을 들으면 질려하며 달아나야하는게 정상이겠는데.. 나는 왜 그러지를 못하는지.
"왜 그걸 알면서도 안와? 들어오는 복 걷어차는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말해오는 내 말에 전혀 당황도 하지 않은 ㅇㅇㅇ는 중지 손가락을 올려줄 뿐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거 생각해보니까 완전 나쁜년이네.
"왜 좋아하냐고 묻잖아."
"말해주면 나한테 올거냐?"
"생각해볼게."
솔직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ㅇㅇㅇ를 좋아하는 이유라.. 그냥 어쩌다보니 심장이 뛰었고.. 어쩌다보니 예뻐보였고.. 뭐.. 그런건데.. 이걸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저래보여도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인지라 대답 한번 잘 못 했다가는 비웃음만 살게 뻔했다. 이리저리 눈깔만 굴리며 생각하다가,
"예쁘니까?"
"뭐?"
"난 예쁜 사람 좋아하니까. 그래서 너 좋아한다고."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머리 굴려봤자 나올 답은 뻔했으니까. 뭐, 게다가 내 생각을 잔뜩 담아서 들려줘도 귀담아 듣지도 않을텐데.. 생각하니까 존나게 나쁜년이네, ㅇㅇㅇ.
"그럼 나보다 더 예쁜 여자 만나면 어쩔건데."
"그때는.. 모르지?"
뭘 몰라. 그래도 너 좋아할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급하게 나를 울려대는 ㅇㅇㅇ 전용호출기(휴대폰)에 잔뜩 들뜬 채 한 카페 안으로 들어간 나는
"혹시 그 쪽이 박찬열씨..?"
"아.."
또 한번 ㅇㅇㅇ가 나쁜년이라는 걸 깨달았다.
-'야, 나 지금 카페에 있으니까 나와.'
-'몰라, 보고싶으니까 빨리 나오라고.'
보고싶다했으면서, 왜 다른 여자를 보내고 그러냐.
*
생각해보면 참 나쁜년인데. 나는 왜 몇년을 허비하면서 바라만 보고 있는걸까. ㅇㅇㅇ를 만난지도 벌써 8년이나 지났다. 모르고 저질렀던 한번의 실수가 자신의 앞길을 막았고, 자신의 곁에 있어줘야 할 유일한 사람은 그런 자신에게 질려 도망가버렸는데도 ㅇㅇㅇ는 독하게 이 악물고 버텼다. 울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런 강인한 모습을 봐왔기 때문인가, 나는 왜 쟤를 놓아주질 못하지?
"ㅇㅇㅇ."
"뭐."
"좋아한다고."
"헛소리도 작작해야 받아줄 수 있다는걸 좀 알았으면 한다."
그래, 저렇게 나쁜 말만 해대고 나한테 모질게 굴어도. 내가 좋다는데 어쩔건가.
계속 좋아해야지.
마담이야기는 내일.. 내일도 안되면 최대한 빨리 날 잡아서 올릴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모티로 들어갔을 때 인티가 안들어가지길래.. 저는 안되는 줄 알았는데..ㅠㅠㅠㅠ 컴퓨터로는 되네요...ㅠㅠㅠㅠㅠ 그래서 지금 막 써서 올리는거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반응연재에요..ㅎ.... 왜냐하면! 이 글에는 불맠을 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글 쓰는거 참 재밌네요..ㅎㅎ... 찬열이를 주제로 쓴 글이 별로 없어서 그런갛....? 뭔가 색다르고 좋네요!
반응 안좋으면.. 이 글은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묻겠습니닿....
반응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