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이성종 01.
w.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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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려면 지금 뿐이야. 결심을 굳히고 5년만의 첫 외출에 설렌 나는 서둘러 꽃단장을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레스를 입고, 큰 리본이 달린 구두를 신고, 머리도 예쁘게 장식했다. 그리고 성을 벗어나 드디어 바깥으로 발을 내딛자 성안의 갑갑한 공기와 달리 맑고 상쾌한 공기가 나를 맞아주었다. 기분좋게 불어오는 바람은 여태껏 힘들었던 일은 다 잊어버리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이제 돌아가자. " 백설공주님? " 성 문을 열려는 찰나, 누군가 나를 불렀다. 그대로 모른척하고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니면 사람을 잘못본 것 같다고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처음만난 성 밖의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임에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고 말았다. 18살쯤 되어보이는 잘생긴 외모의 남자. 옷차림을 보아하니 귀족이 분명했다. " 누구세요? " 내가 대답을 하자 의외라는 듯한 눈빛으로 눈을 꿈뻑거리며 나를 쳐다보고만 있다. " 저기... 누구세요? " 한 번 더 얘기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듯 보였다. " 아 죄송합니다. 저는 이웃마을 왕자인 김명수라고 합니다. " 왕자. 그럼 이 사람도 나에게 청혼을 하러 오는 사람들 중 한 명인걸까? 그런데.. " 어째서 여기에? " "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쭉 만나뵙고 싶었는데 매일 찾아와도 좀처럼 들여보내주질 않아서 무례하지만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 말을 흐리면서 결국 제 생각이 맞았네요 라는 듯한 쑥스러운 웃음을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픽 하고 웃고 말았다. " 보기와 다르게 귀여운 면이 있으시네요. " " 그 말은 제가 마음에 든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 얼굴을 붉히며 물어오는 그를 이어 덩달아 내 얼굴까지 붉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새 해도 지기시작하며 온 마을을 노을로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내가 한참동안 대답이 없자 쑥스러웠는지 그가 말을 덧붙였다. " 시간이 늦었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다음에, 내일 또 만날 수 있겠지요? " 대답할 수가 없었다. 또 만날 수 있을까? 아마 못 만날 것이다. 나는 대답대신 미소를 지어보이고 성으로 들어왔다. 미친듯이 뛰는심장. 벌써부터의 그리움. 아마 간만의 외출에 낯선이와의 만남은 처음이어서 그럴 것이다. *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높고 높은 허름한 탑.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이미지가 아닌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마녀는 오늘도 마법의 거울에 질문을 던진다. "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니? " 미모를 체크하며 매일 하는 이 질문은 아무도 찾지 않는 성에 혼자 사는 외로운 마녀의 낙이기도 했다. " 울림왕국의 백설공주님이시죠. " 대답과 동시에 마법의 거울 속에 비춰지는 환하게 웃고있는 백설공주의 얼굴. " 뭐? 다시 말해봐! 널 만든건 나라고! 백설인지 흑설인지가 아니라 나란말야! " " 저는 사실을 말한 것 뿐입니다. " 화가났다. 거울이 사실만을 말한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이 거울을 만든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여태껏 그 누구도 내 미모를 따라오지 못했고 미모는 내 자존심이었다. 근데 나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있다고? " 너어...! 명수한테 다 말할거야. " " 마침 오고계신듯하네요. " " 뭐? " [ 똑 똑 똑 ] " 명수야? " " 응, 나야. " 오랜만에 듣는 명수의 목소리에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름답지만 뭔가 음침하단 이유로 늘 친구가 없었던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유일한 친구이자 날 찾아주는 유일한 손님. " 오랜만이네. 한동안 뜸하더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거야? " " 성열아. " 반가워하고있는 나와는 달리 진지한 명수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보였다.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건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 거짓말. 내가 아는 김명수는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어. " 무슨소리야? " " 말 그대로야. 날 좀 도와줘. " 도와달라니? 내손으로 너의 사랑을? 난 절대 못 해.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데? " 생각과는 정 반대의 말이 튀어나왔다. 조금이라도 너와 더 얘기하고 싶어서. " 사랑의 묘약같은게 있으면 좋을텐데..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드는 약 같은거 말야. " 그러게. 그런게 있었다면 진작에 만들어서 너에게 먹였을텐데. 그럼 이런 괴로운 소리 안 들어도 됐을텐데. " 그런 약은 없어. 사람 마음은 약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냐. " 정말 사람 마음을 약으로 바꿀 수 있다면 참 좋았을텐데말야. " 그렇지? 무리한 부탁해서 미안. " 애써 웃는 명수를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 " 사실 나 내일 청혼하려고 했어. " 청혼이라니? 거짓말이지? 이런건 너무 불공평 하잖아.. " 첫눈에 반해버렸거든. 근데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 ........ " 자신이 없다니. 천하의 김명수가 그런 소릴 다하네. 어떤 여잔데? " 얼마나 아름다운 여잔데 김명수가 첫눈에 반했다는거냐고. " 백설공주. " 그렇구나. 역시 그 여자구나. " 명수야. 늦었는데 그만 가 봐. " 오랜만에 봐서 너무 좋은데 더 이상은 못 듣겠어. 명수가 응. 또보자. 하고 돌아서는데 금방 또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만 더 네 얼굴.. 보고싶은데. 조금 더 얘기하고 싶은데.. 또 언제 찾아 와줄지 모르는데.. 나 너무 외로운데. 명수야! 하고 다시 불러세우자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본다. 아름다운 내사랑.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좋을텐데. 지금처럼 네가 나만 바라봐주면 좋을텐데. " 사랑의 묘약! 그거! 연구해볼게. 다시.. 와 줄거지? " 이렇게 말해야 널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까. " 당연하지. " 명수가 나가자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명수야 넌 웃는게 너무 멋져.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웃었으면 좋겠어. 근데 만약 청혼에 실패하게되면 넌 웃을 수 없겠지? 사랑에 실패한 기분은 내가 잘 아니까 분명 그럴거야. 그러니까 성공하길 빌어줄게. 평생 고백같은거 안할게. 니가 없었다면 난 쭉 혼자였을거야. 나에게 함께라는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줘서 고마웠어. 이제 난 이 추억만으로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미안해. 니가 사랑하는 백설이란 여자는 평생 용서 못 할 것 같아. 돈도 명예도 다 가진주제에 나에게서 미모와 하나뿐인 친구, 그리고 하나뿐인 사랑을 뺏아갔으니까. 나의 모든 걸 뺏아갔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