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잔 건지 창문으로 보이는 밖은 벌써 캄캄 했다.
지끈 거리는머리를 부여 잡고 몸을 일으키니 침대 옆에 위치한 작은 테이블 위로
그릇에 담긴 죽이 눈에 띄었다. 그릇 옆에 붙여진 포스트잇에 적힌 짤막한 메시지를 보고
나는 어이 없어 터져 나온 실소를 금치 못했다.
「 먹기싫어도 먹어. 부엌에 약 있으니까 챙겨 먹든가 」
- 여정 -
김여정, 정말 뻔뻔하다. 나라면 미안함에 귀신처럼 조용히 지낼텐데
얜 뭔 생각인지 면상에 철판 깔고 잘도 돌아 다닌다.
누구는 이 모양 이 꼴로 반병신 처럼 지내는데.
김여정은 정말 놀랍게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 지낸다. 기분 참 더럽다.
죽이 담긴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나는 죽을 음식물 봉투에 쏟아 부었다.
포스트잇은 이미 휴지통에 버린 지 오래였다.
김여정의 손길이 닿은 건 다 싫다. 김여정 자체가 싫고, 역겹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약 봉투는,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아픈 건 맞지만, 딱히 먹고 싶지는 않았다.
약을 먹어도 내가 내 돈 주고 사 먹지, 니 돈으론 안 받아 먹는다는 심보였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배터리를 갈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 전원을 켰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카카오톡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김민석
아프다며
여정이가 그러더라
약은
무심코 들어간 채팅방 메시지는 1 표시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김민석, 이 세글자가 정말 떨리고 설레던 때가 있었지만
반대로 지금은 정말 불편하다. 김민석이라는 존재 자체가 굉장히 거슬리고, 불편하다.
봄을 그리다, 너를 그리다
조심스레 노크 하며 내 방으로 들어 오던 여정이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 앉아
밀린 과제 준비에 정신 없는 날 바라보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 언니, 나 남자친구 생겼어. "
여정이의 첫 남자친구 소식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떠 여정이를 바라보니, 쑥스럽다는 듯 웃어 보이는 게 귀여웠다.
" 진짜? 누군데, 어떤 사람이야? "
" 그냥 회사에서 일 하는 남자, 나보다 3살 많아. "
" 너한테 잘해줘? "
" 응. 완전. 그래서 말인데, 오늘 그 사람이 같이 저녁 식사 하고 싶다는데. "
저녁 식사 하고 싶다는데, 내 눈치를 보며 말하는 여정이에게 다가가 볼을 주욱 잡아 당겼다.
유난히도 볼살이 넘쳐 나는 여정이었다. 굉장히 모찌 같아서 귀엽다.
" 알겠으니까 나가 봐, 언니 과제 밀렸어. "
" 응! "
베시시 웃어 보이며 방을 나가는 여정이를 보고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김민석이랑 좋지 않게 헤어진지 두달이 지났다.
오해를 풀 생각도 안하고 바로 이별을 고한 김민석은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처음엔 싸우고 나서 금방 풀리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게 화났다.
한번은 예진이와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멜로 영화 였는데,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사이에 갈등으로 헤어진 장면이 연출 된 부분이 있었다.
내가 영화 속 주인공으로 빙의 된 것 처럼 가슴 속에 응어리가 진 것처럼 답답한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번 떨어진 눈물은 멈출 생각이 없었고, 결국엔 예진이와 도중에 나왔다.
충혈 된 눈으로 영화관을 나오다, 마주쳤다. 김민석이랑.
나와는 달리, 2개월만에 본 김민석은 여전히 멋있었다.
같이 온 박찬열과 예진이는 나와 김민석 눈치를 보기 급급했다.
아무런 표정 없이 날 바라보는 김민석의 눈빛이 싫었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김민석에게 내가 나쁜년이 될 것 같은 생각 밖에 안들었다.
그래서 지나치려는 김민석의 옷을 붙잡았다.
" ... 나 할 말 있어, 다 설명할게. "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내 쪽으로 몸을 돌리는 김민석은 자신의 옷을 잡고 있는 내 손을 조심히 떼어냈다.
옷에서 떨어진 내 오른손은 바라 보았다. 왜 이렇게 손도 불쌍하게 보이는 건지, 서러웠다.
" 둘이 얘기 하고 와, 엘리베이터 쪽에 있을게. "
박찬열을 이끌고 자리를 피해주는 예진이 때문에 김민석과 나, 둘만 남았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 지 생각이 많았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할 말을 생각하다
갑작스레 내 손목을 잡고 어딘가로 이끄는 김민석의 행동에 졸졸 따라갔다.
" 너무 시끄럽길래, 앉아. "
작은 카페에 들어서더니 의자에 앉는 김민석을 멍하니 바라 보고 있자
앉으라며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는 김민석이었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이야기를 시작 했다.
" 나 솔직히 말하면 너한테 잘못한 거 없어. "
담담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온갖 괜찮은 척은 다 했다. 연기나 시작할까.
김민석은 계속 말 하라는 표정, 그게 다였다. 표정 변화는 역시나 전혀 없었다.
" 오세훈이랑 니가 생각 하는 사이 아니라고. "
" ... "
" 니가 헤어지자고 한 날 말하려 했는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말 못했어. "
" ... "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날 보더니 이내 자신도 일어나는 김민석이었다.
카페에서 나온 날 붙잡는 김민석이 내게 커피를 쥐어주며 아무렇지도 않게 날 다시 지나쳤다.
" 밖에 춥더라, 마시고 가. "
카페라떼만 먹는 내 취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건지 메뉴판 보다 고른 건지.
끝까지 김민석은 멋있었다. 몸에 벤 친절에 내가 반했었지,
그게 마지막으로 본 김민석이었다.
봄을 그리다, 너를 그리다
여정이의 남자친구가 예약 해 뒀다는 고급 레스토랑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귀를 간지럽혔다.
여정인 뭐가 그리 신나는지 웃음음 멈추지 않았다.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뛰어가는 여정이었다.
아, 저 사람이 남자친구 구나. 멀리서 보이는 얼굴이지만 한 인물 하는 것 같았다.
총총총 뛰어오는 여정이를 발견 한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빼주는 자상한 모습을 비추었다.
여정이의 앞머리를 정돈 해 주는 손길이 참 애정이 가득 담긴 행동이었다.
우리 여정이 사랑 받고 있구나.
걸어 오는 날 발견 한 남자는 짧게 고개 숙여 인사 했다.
" 여정이 남자친구, 김민석 입니다. "
여정이 남자친구
김여정 남자친구
김민석
김민석 이라는 이름에 설마 했지만, 고개를 든 얼굴은
확실히 내가 아는 김민석이 맞았다.
" 우리 구면이죠. "
사담 |
안녕하세요 계란치즈 입니다. 첫 작품 들고 오긴 했ㄴ는데 굉장히 어색하네요.. 오타 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더 열심히 글 쓰는 계치가 될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