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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온앤오프 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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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회상도 있고, 시점도 왔다갔다...

그렇지만 현재 찬백이는 대학생입니다. (캠퍼스물인지 학원물인지 본인도 헷갈림)

제목이 저따위인건, 쓸만한 제목이 없기 때문. (예정에 없던 픽이라서)

 

 

* 이걸 기점으로 왔다갔다 합니다. 고딩때 한번, 대학생때 한번. 번갈아가며 나와요.

 

 

 

01.

 

 

 

 

 

 

 

 

 

 

"백현아, 여기!"

 

가뜩이나 큰 키에 긴 팔까지 붕붕 흔들어대니 모른 척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달려오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쓱쓱 손가락 틈새로 다듬으며 다가갔다. 아, 피곤해 죽겠어. 어제도 과제하다가 잤어. 스냅백을 고쳐 쓰며 얼굴을 쓸어내린 찬열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경수는?"

"음대 애들이랑 미팅 잡혀서 끌려갔어. 한명이 여친한테 걸려서 펑크 냈대."

 

뭐 마셔? 뭘 시킬까 고민하느라 계산대 뒤에 붙은 메뉴판을 두리번거리던 백현이 물었다. 프라푸치노. 야, 진짜 차거. 이거 시킬 거면 얼음 많이 넣지 말라고 해. 방금까지 입에 물고 있던 프라푸치노를 탁, 백현의 앞에 놓아주며 찬열이 말했다.

 

"그럼 우리 이따가 너희 집 가기로 한 건? 경수 빠져?"

"어. 그럴걸? 아, 아까워! 나 화장실 간 사이에 갔어. 나한테 먼저 안 물어보고. 아! 미팅! 아, 아!!"

 

찬열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이유는 알 것 같지만 말해주기는 싫다. 자존심이 상하니까. 방금 전까지도 집요하게 찬열과 연결 좀 시켜달라고 졸라대던 동기를 떠올리며 백현이 흥, 코웃음을 쳤다

 

.

 

"그럼 다음에 모여?"

 

주문한 라떼를 받아온 백현이 스트로를 꽂으며 물었다. 여기저기 찬열이 장난치느라 찢어놓은 휴지를 한데 뭉쳐 놓고 야, 좀 치워라 잔소리를 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찬열의 표정이 진짜, 좀 바보 같다고 느끼며 뭐, 다소 시비조로 백현이 대꾸했다. 가뜩이나 큰 눈이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까, 흠좀무.

 

"너도 안 오게? 야... 다 무정하다. 친구는 무슨. 하..."

"뭐랬냐, 내가? 아, 경수도 안 온다며. 김종대는 시흥 다녀온다고 했잖아. 그럼 나하고 너하고 뭐하냐?"

"집들이라고 내가 얼마나..."

"뭐 사놨냐? 맛있는 거 많음?"

"치킨 사놨어."

"콜"

"안 온다며."

"안 간다고는 안 했어. 맥주는?"

"네가 사오면 돼."

"안 가."

"백현아, 내 카드는 오늘을 위한거야."

 

올 거지? 이따 저녁엔 족발도 시켜줄게. 우왕, 오빠 멋져! 눈을 반짝거리며 카드를 흔드는 찬열을 향해 냉큼 달려들며 백현이 외쳤다.

 

"근데 저녁까지 먹으면 나 집엔 언제 가? 데려다 주냐?"

"... 경수는 오늘 만난 음대여자애들 집에 데려다 주고 갈 텐데, 나는 우리 백현이 데려다 줘야하고.. 아, 아!! 미팅!!!"

"아오! 안 가, 안 간다. 너 혼자 놀아라?"

"에이~ 한탄도 못하나. 난 너밖에 없어, 백현아. 오늘 밤을 불태우자."

"근데 집엔 언제 가. 자고 가도 됨?"

"밤에 정아 온다고 했는데."

 

입매를 삐뚤게 벌린 탓인지 입술이 부루퉁하게 튀어나온 모양을 보고서 찬열이 눈을 굴리며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변백, 화났어? 찬열의 물음에 백현이 스트로를 바닥에 쿡쿡 찍으며 대꾸했다.

 

"정아보고 바로 오라고 하지 뭐 하러 그럼 굳이 나보고 오라고 하냐."

"에이, 정아랑은 다르지."

"야, 나도 바빠~."

"제발! 놀아줘, 변백!"

 

새 집에서의 첫날인데 혼자 쓸쓸하게 보내게 할 건 아니지? 입을 쭉 내밀고 괜히 쓸쓸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찬열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수가 없다고 느끼며 백현이 잘근거리던 빨대를 내려놓았다. 야, 나 강의 들어가 봐야 돼. 먼저 간다. 가방을 챙겨드는 백현을 보고 눈을 끔뻑거리던 찬열이 다급하게 짐을 챙기며 외쳤다.

 

"백현아! 아, 잠깐만. 올 거지? 뭐 먹을래? 아니다, PC방 갈까? 노래방?"

 

 

 

*

 

 

 

박찬열은 병신이다. 생긴 건 멀쩡한데, 볼수록 바보 같은 구석이 있다. 짜증을 낼 법한 일에도 그냥 웃고 지나간다든지, 여자 친구가 없다며 외롭다고 징징거리면서도 주변 여자애들이 노리는 건 또 모른다.

 

벌써 주변에선 정아랑 썸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걸 또 장난인 줄 안다. 더 병신 같은 건 그걸 받아준다는 거다. 사귀게? 물어보면 눈만 끔뻑거린다. 소도 아니고 그게 뭐야. 워낭이라도 채워주고 싶다.

 

"백현아, 이번에 찬열이도 온대?"

 

박찬열도 여자애들이랑 꽤나 잘 어울리는 편인데, 꼭 스스럼없이 말을 붙이는 건 내 쪽이다. 그걸 받아주는 내가 제일 병신이긴 하다. 다들 나도 귀엽다고 해주는데. 왜 사귀자는 애는 없냐고.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몰라, 물어볼게, 라고 대답했더니 아직도 안 물어봤냐고 한다. 친해졌다고 이젠 내 기분은 신경도 안 써준다. 그리고 그건,

 

"백현아..."

"기분 풀어라. 너 폰 꺼져있었다며. 그러니까 애들이 연락을 못했지."

"그런 의미로 백구, 손!"

 

박찬열도 마찬가지다.

 

"아, 미안! 미안!"

"죽어, 그냥 죽어라, 박도비."

 

으악, 아파!! 비명을 지르면서도 웃어대는 게 지금 이 상황이 즐거운 모양이다. 한숨을 푹 쉬며 테이블 위로 엎드렸더니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와 눈치를 살핀다. 매번 나보고 백구니, 멍뭉이니 개새끼 취급을 해대는데 알고 보면 더 개 같은 건 박찬열이다. 음,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의미로.

 

"슬슬 일어나자."

"엉."

 

익숙하게 내 가방까지 챙겨들고 자리를 나선다. 오다리라고 종종 놀려댔는데 그래도 나보다도 큰 건 함정.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박찬열이 거리로 나서니 확 눈에 띈다. 게다가 뭐, 잘생기기도 했고.

 

지나가던 여고생 무리가 박찬열을 보고 시선을 못 뗀다.

 

"백현아, 와."

 

인파에 몰려서 휘청거리고 있으니 성큼 다가온 찬열이 손목을 잡아끌었다. 힐끔 쳐다보니 아직도 여고생 무리가 그 자리에 멈춰서 꺅꺅거리고 있었다. 부러운 자식. 저런 시선을 받고 살면 어떤 기분일까. 내심 부러워져 괜히 박찬열의 어깨에 이마를 쿵 찍어댔다. 아야야, 아파! 엄살을 부리는 박찬열을 버리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자마자 목덜미를 잡혀버렸다. 야, 놔, 놔!

 

"가는 길에 만화책 빌려갈까?"

"됐어, 나 빨리 가야 돼."

".. 우리집 안 가?"

"아, 안 가~. 너나 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을 감은 팔에 꾹 힘을 주는 박찬열 때문에 켁켁 기침을 해댔다. 분명 정아가 올 때쯤이면 너저분해진 집을 치우느라 부려먹을게 뻔한데, 내가 거길 왜 가. 눈을 부라리며 짜증을 내려는데 힘껏 머리를 끌어안으며 박찬열이 웃어댄다.

 

"아, 변백. 진짜 귀여워. 귀여워서 어쩌지? 백구야, 손 내밀어 봐. 아, 진짜 예전에 친구 집에 요만한 포메라니안 있었거든? 너, 걔랑 똑같이 생겼어."

"지금 누굴 개로 보고,"

"완전 닮았어. 쪼꼬맣고. 키도 작고 눈도 작고, 어휴."

"나정도면 딱 평균이거든? 지가 큰 건 생각도 안하고."

 

괜히 박찬열의 가슴팍을 퍽 밀치고 화가 난 것처럼 성큼성큼 걸어 나가자 뒤에서 박찬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백현아, 천천히 가!

 

"사거리에 있는 치킨 집에 주문해놨어! 가져가서 치맥 먹자!"

 

이렇게 또 한수 물러서게 되는걸 보면 박찬열이 날 조련하나 보다.

 

 

 

*

 

 

 

백현이 부천에서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아직 다들 서먹서먹한 구석이 남아있을 무렵, 스며든 전학생 백현은 그 분위기에 잘 녹아들어갔다. 아직 물에 부유하는 기름마냥 서로 무리지어 놀던 친구들 가운데서 단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백현이었고 그 관심이 원래 제 것인 것 마냥 익숙하게 받아들인 것은 천성이 활발한 탓이었다. 제법 웃기고 귀엽고. 신고식처럼 하게 된 노래도 아이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낸 이후로 백현은 꽤 유명한 전학생이 되었다.

 

"너 변백현 맞지?"

 

여름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막 체육복을 갈아입고 교실로 돌아가던 백현을 향해 성큼 다가온 찬열이 그렇게 물었다. 땀에 젖은 얼굴을 씻고 나온 탓에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백현을 보고 부산스레 굴던 찬열이 마침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음료수를 꺼내 백현에게 건넸다.

 

"이거 마셔."

"... 어, 고마워."

 

의심쩍은 표정으로 자신을 경계하는 백현에게 시원스레 웃은 찬열이 자신을 소개했다.

 

"나 8반에 박찬열. 나 몰라?"

 

뚱한 표정의 백현을 보고 민망한 표정으로 귓불만 만지작거리던 찬열이 잠깐의 정적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너 봤는데. 너는 바빠서 못 봤나보다.

 

"축제때, 너 노래 불렀지? 나 밴드부라서, 어.. 기타 쳤었는데."

 

손짓까지 해가며 설명을 해대던 찬열이 마침 울리는 종소리에 대뜸 핸드폰을 내밀었다. 할 말이, 그러니까 친해지고 싶어서. 너희 반에 종수 알지? 걔한테 전해달라고 했는데 까먹었나보다. 핸드폰에 번호를 입력한 백현이 제 폰으로 전화를 걸고 나서야 찬열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잘 가. 이따 카톡 할게."

 

은연중에 들어본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분명 꽤 유명한 것 같은데. 백현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찬열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수업을 듣는 와중에 도착한 카톡을 조심스레 확인해보니 답할 겨를도 없이 휙휙 연이어 새로운 카톡이 화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평소에 시끄럽단 얘기를 자주 듣고는 했는데 찬열도 못지않게 시끄러워 보였다.

 

"박찬열? 오늘 아침에 물어봐놓고 왜 닦달이야, 그 자식은."

 

쉬는 시간 내내 핸드폰만 붙들고 있는 백현에게 다가온 종수가 백현의 질문에 툴툴거리며 답했다. 으적으적 사탕을 깨물며 몰라, 친해지고 싶다고 소개 좀 시켜달라던데? 계집애처럼 갑자기 왜 그런대.

 

"난 또 여소 시켜달라고 하는 줄. 하긴 걔가 뭔 여소가 필요해. 걔가 나한테 해줘도 모자랄 판에."

 

한숨을 푹 내쉰 종수가 백현을 흔들며 징징거렸다. 야, 너 아는 여자애 없냐고!

 

"저번에 소개시켜줬더니 까여놓고. 나 진짜 많이 혼났어, 지영이한테."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찬열이 환하게 웃으며 빵을 건넸다. 먹어.

 

"박찬, 나는?"

"니가 사먹어."

"치사하게 하나만 사오냐?"

"이 빵 안 먹어? 싫어해?"

 

딴 거 사올걸 그랬나. 빵을 들고서 눈치를 보는 백현을 향해 몸을 숙인 찬열이 중얼거렸다. 아니, 잘 먹을게. 백현이 급하게 껍질을 뜯어 베어 물었다. 앞으로 밥 같이 먹자. 찬열의 느닷없는 얘기에 결국 빵이 목에 걸려 켁켁 기침을 토해내야 했지만.

 

"백현아! 마쳤지? 주번이야?"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온 찬열이 머리를 정리하며 교실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학생들이 반 정도 빠져나간 교실은 비교적 한산했다. 같이 가자, 너랑 같은 방향이래. 종수가. 야자를 마치고 나서는 길이라 어두워진 길을 나란히 걸으며 백현은 급격히 몰아치는 어색함에 딱 죽을 것만 같았다. 친화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부딪히게 된 경우는 없었다.

 

"중학교 어디였어?"

"... 나 전학 왔는데. 부천에서."

"아, 그래서 몰랐구나."

 

그러고 또 대화는 단절. 빨리 집에나 도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때쯤, 빠앙! 크게 울려 퍼진 클락션 소리에 백현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으어억! 기괴한 비명소리와 함께 발을 헛디딘 백현을 받아준 찬열이 푸하하 시원스레 웃음을 터트리고선 말했다. 야, 변백.

 

"너 넘어질 뻔했어."

 

우스꽝스런 몰골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백현이 주르륵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어, 백현아! 괜찮아?

 

"아, 나... 잠시만. 나 다리 풀렸어."

 

 

 

*

 

 

 

"또 뭐 먹고 있냐? 그 새를 못 참고, 어휴."

 

테이블 아래로 나뒹구는 초콜렛 껍질을 보고 찬열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물우물 열심히도 움직이는 볼때기를 보니 뭐라고 할 마음도 사라졌다. 테이블 위로 치킨을 내려놓기 무섭게 백현이 포장을 벗겨내며 물었다.

 

"야, 근데 우리 쿠폰 10장 다 안 모았냐?"

"아니, 아직 9장."

"그래? 그럼 다음에 나랑 있을 때 시켜. 다른 애들이랑 먹기만 해봐."

"근데 여기 중에 세 개는 정,"

 

입가에 양념을 묻혀가며 열심히 먹어대던 치킨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잔소리에 시동을 거는 백현을 발견하고서야 찬열은 입을 닫았다. 먹어, 먹어. 콜라도 따라줄까?

 

"지만 여자 친구 만나고."

"말은 똑바로 하자. 여사친이지, 무슨 여자 친구야."

"야, 현식이, 정태, 준혁이 다 잡고 물어봐! 너 걔랑 사귀는 줄 알아. 과, 아니지, 우리 학교에 소문 다 났어."

"그래서 여자 친구가 안 생기나 보다, 어휴. 난 또 너 때문인 줄."

"뭘 또 나 때문이야."

 

또 변삐짐 발동하네. 찬열이 혼자서 웃어대다 백현의 뺨을 손가락으로 북북 문질러댔다.

 

"좀 깔끔하게 먹어."

"맥주는? 냉동실에 넣어놨지?"

"어. 꺼내올게, 기다려."

"이응이응.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음. 빨리 움직인다, 집요정!"

 

치킨 다리 하나를 공중에 붕붕 흔들며 백현이 외쳤다. 네, 주인님! 도비는 부지런한 집요정이에요! 쿵쿵쿵, 안 그래도 긴 다리의 박찬열이 주방을 향해 가로질러 가며 외쳤다.

 

"뭐 재밌는 거 해?"

 

바닥에 앉아 쇼파에 등을 기댄 백현의 옆자리로 휙 파고든 찬열이 물었다. TV로 시선을 고정한 채 백현이 콜라를 건네자 찬열은 익숙한 듯 뚜껑을 따 컵에 따라주었다.

 

"무도 저 편만 세 번째 봤어, 나."

"그럼 네 번째 봐."

"아, 변백현! 아, 딴 거."

"딴 거도 별 거 없어. 또 젠가나 하게?"

"... 브루마블?"

"... 아, 경수 집에나 갈까.."

 

백현이 물티슈에 손을 닦는 시늉을 했다.

 

"도갱은 미팅 가서 한창 여자애들이랑,"

"아, 진짜! 야, 나도 미팅 가고 싶거든?"

 

억울한 표정으로 백현이 외쳤다. 오구오구, 우리 백구 눈 쳐진 거 봐. 찬열이 배를 잡고 웃으며 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여자가 만나고 싶었어?

 

"... 야, 너 핸드폰 내놔 봐."

"왜?"

 

찬열의 옷을 뒤져 무작정 핸드폰을 꺼내는 동안 찬열은 간지럽다며 버둥거렸다. 으학학! 고함인지 웃음인지 분간키 어려운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사이 핸드폰을 입수한 백현이 사진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야, 얘랑, 얘.

 

"지혜랑 세빈이?"

"겁나 친한가보다?"

"아, 초등학교 동창이야."

"이열, 싸이로 우정을 지속시키셨나?"

 

또 뭐가 맘에 안 들어서 그러나, 싶어 찬열은 백현의 갈색 정수리를 빤히 내려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그러다 대뜸 백현이 뱉어낸 말에 찬열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야, 나 얘 소개 좀."

"뭐?"

"아, 왜."

"치킨이나 마저 먹어, 식었잖아."

"딴 애들 다 시켜주고 나는 왜 안 시켜주냐?"

"나 이제 주선자 안 해."

"왜?"

"피곤해서. 양쪽에서 욕먹어. 안 해, 안 해."

"웃기고 있네. 너 지난주에도 현식이 소개팅 시켜준 거 알고 있거든?"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안 하기로 했어."

 

몸을 일으키며 백현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간 찬열이 쇼파 위로 몸을 옮겼다. 편하게 드러누워 밀렸던 카톡을 확인하기 시작한 찬열을 향해 놀고 있네, 중얼거리며 치킨을 뒤적거리던 백현이 고개를 젖혀 찬열을 불렀다. 야, 박찬.

 

"정아랑 진짜 안 사귀냐?"

"보면 모르냐. 너까지 그런 말을 하냐..."

 

한숨처럼 중얼거리던 찬열의 말을 끝으로 또 한참이나 정적이 흘렀다. 진부한 광고나 흐르던 TV는 이미 음소거를 시켜버린 지 오래였다. 식어버린 치킨엔 흥미가 없다. 입맛을 다시던 백현이 꿀꺽꿀꺽 김빠진 맥주를 마시고 찬열을 향해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럼 왜 안 사귀는데?"

 

답을 던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카톡에 지겨워진 찬열이 핸드폰 액정을 꺼버렸다. 답을 기다리던 백현이 조용한 찬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반듯이 누워 눈을 감은 찬열을 확인한 백현이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

"자는 줄. 놀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뭐하려고 불렀냐. 나 민석이 형이랑 공 차러 감."

"이 밤에?"

"한강 가면 돼."

"유괴 당하는 거 아니야, 너?"

 

또 장난을 걸어오는 찬열의 몸 위로 백현이 있는 힘껏 제 몸을 던졌다. 으억, 찬열의 짓눌린 비명이 쏟아졌다.

 

"야, 소개팅도 안 시켜줄 거면서 내 앞에서 카톡은 하고, 어? 물어봐도 대답은 안 하고. 씹냐? 어?"

"아, 아파. 아파!"

 

덥썩, 백현을 껴안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찬열 덕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박찬열 겁나 무거워. 끙끙거리며 엎치락뒤치락 하려고 해봤자 덩치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 항복! 좀, 비키라고! 악! 기진맥진한 백현이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백현아, 너 손에서 치킨 냄새 나."

"치킨 먹었으니까 치킨 냄새가 나지. 어찌하여 치킨 냄새가 나냐고 물으시오면,"

".. 아, 침 냄새도 나는 거 같은데."

"침이 묻었으니까 침 냄새가 나는 것이 온데, 어찌하여 침 냄새가 나냐고 물으시오면,"

"그런 의미에서 변장금아, 나 라면 좀 끓여줘."

 

치킨은 한 조각도 안 먹고 라면을 끓여달라는 건 나를 부려먹기 위함이렷다. 백현이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볼 봐. 볼. 너가 다 먹어서 그렇잖아."

"... 남았잖아."

"그럼 더 안 먹어?"

"어."

"그럼 버린다?"

"갈 때 싸줘."

 

초콜렛도 싸줄게. 찬열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동기 여자애들이 우정 초콜렛이라고 과 전체에 돌렸으면서 박찬열 것만 내용물은 다르다. 양도 달라. 짜증나게. 또다시 떠오른 기억에 백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왜 또 인상은 써. 또 여자애 하나가 선물을 담아줬을 게 분명한 분홍 쇼핑백에 이것저것 챙겨 담아 백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딴 색은 없냐? 쪽팔리게 이걸 어떻게 들고 가. 궁시렁거리는 백현의 귀에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찬열이 슬그머니 속삭였다.

 

"백현아, 라면 먹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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