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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텀은 불규칙합니다... 

 

 

03.

 

 

 

여름방학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보충수업도 끝날 무렵이 되어가니 오히려 아쉬울 지경이었다. 그나마 방학엔 빨리 마치기라도 하지. 시험도 없고. 백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물함을 뒤지던 백현이 시계를 확인하고 8반으로 향했다. 늦지는 않으려나. 8반 앞문에서 기웃거리고 있으려니 먼저 백현을 발견한 남자애 하나가 찬열을 향해 외쳤다.

 

“야, 박찬! 니 친구.”


옆자리에 앉은 여자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던 찬열이 친구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휘휘 주변을 쳐다보다 친구의 손짓에 앞문에 서있던 백현을 발견하자 찬열이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 무슨 일이야?

 

“바쁜 거 아니야?”
“괜찮아. 오늘 숙제 물어봐서.”
“뭔데? 수학?”
“아니, 영어.”
“잘 해?”
“왜, 모르는 거 있어?”


찬열의 말에 힐끔 여자아이를 쳐다본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쟤 학원에서 본 거 같은데. 자기보다 높은 반이었던 기억이 나, 다시 시선을 돌려 찬열을 쳐다보았다. 얼굴 가득 물음표를 달고 쳐다보는 찬열 덕에 냉큼 백현이 덧붙였다.

 

“이따가. 아니면 주말에 시간 되냐? 바쁘면 말고.”
“아냐, 괜찮아. 너 독서실 다녀?”
“어. 근데 삼일에 한 번은 안 가.”
“왜?”
“가기 싫어서.”


풉, 찬열이 웃음을 터트리자 백현도 민망함이 섞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야, 그래도 나름 갈 때는 열심히 해, 나.

 

“근데 여긴 왜 왔어?”
“책 빌리려고. 수학 보충교재 있어?”
“응. 사물함에 넣어놨어. 꺼내줄게.”


바로 찾아오느라 체육복도 걸치지 않은 탓에 싸늘함을 느낀 백현이 에취, 기침을 쏟아냈다. 조금은 길어진 앞머리가 기침을 하는 백현의 흔들림에 따라 쏟아져 내렸다. 에췽에췽, 눈물이 고일 정도로 연거푸 기침을 하는 꼴을 소리 내어 웃으며 바라보던 찬열이 백현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기다려, 책이랑 담요도 가져다줄게.”
“체육복 있어.”
“나 담요 두 개야.”
“피죤 써서 빨았지?”
“쉐리 넣고 빨았어.”
“봐준다. 들고 와.”


백현아, 사물함을 뒤지던 찬열이 뭔가를 발견하고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어댔다. 신난 표정으로 뛰어오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찬열이 들고 온 책을 백현의 품에 떠넘겼다. 필기 쩐다. 백현이 책을 펼쳐보고 감탄하는 사이 찬열이 풉, 웃음을 삼키며 백현의 머리 위로 팔을 뻗었다.

 

“... 야, 뭐야.”
“받은 거. 이게 짱 귀여워.”
“안 해도 귀여워. 야, 거울 없어?”
“중앙 계단 쪽에 큰 거울 있잖아”


쪽팔린다고 방방 뛸 줄 알았던 백현은 의외로 담담하게 브이 포즈까지 하며 머리를 정리했다. 망토의 모자마냥 귀퉁이에 노랑 병아리 얼굴이 박힌 담요를 쓴 백현이 담요를 쓴 채로 책을 휘리릭 넘기더니 오, 감탄을 내뱉었다.

 

“오늘 문제 풀이 시켜도 걱정 없겠다. 고마워. 이따 몇 교시?”
“오늘은 없어. 내일 줘도 돼.”
“이따 점심시간에 줄게.”

 

종이 치자마자 간다, 인사를 남긴 백현이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멀어지는 백현의 등 뒤로 매달린 담요가 걸음걸이를 따라 팔랑거렸다.

 

아침부터 으슬으슬하더니 결국 감기인지 살짝 열도 오르는 것 같고. 쉬는 시간 내내 엎어져 있던 백현은 결국 점심도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급식실에 나타나지 않은 백현 때문에 도로 반으로 올라온 찬열은 혼자 삐죽이 솟아있는 동그란 머리통을 보고 5반으로 들어섰다.

 

“... 변백, 자냐?”
“.......”

“밥 안 먹고 자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찬열이 교실 앞으로 걸어가 에어컨부터 껐다. 자는 와중에도 미간을 찡그린 백현을 물끄러미 쳐다본 찬열이 이마의 열을 재보고 백현을 흔들어 깨웠다. 백현아, 변백현.

 

“양호실 가자.”

 

어, 왔어. 너 책 여기. 찬열의 말에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난 백현이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됐어, 이따 내가 챙겨갈게. 약 받으러 가자. 가서 자든지.”

“... 그냥 잘래.”

“너 열나는데?”

 

백현을 얼러 양호실로 데려간 찬열이 시계를 체크하곤 백현에게 말했다. 야, 일단 자고 있어.

 

“어. 고맙다. 너 밥 못 먹은 거 아니야?”

“됐어. 오늘 급식 풀 밖에 없었어.”

“이따 내가 빵 사줄게...”


약기운이 몰려오는지 가물가물한 눈을 감으며 백현이 웅얼거렸다. 백현이 잠든 것을 확인한 찬열의 걸음이 빨라졌다. 벌써 급식을 다 먹고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올라오던 친구들이 찬열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어, 박찬열. 밥 진짜 안 먹음?

 

“어, 괜찮아. 아, 혹시 나 종 칠 때까지 안 오면 좀 둘러 대줘.”

“왜? 어디가?”
“나도 그렇고, 백현이도 아파서 밥 못 먹었어. 금방 갔다 올게.”


성큼성큼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찬열이 외쳤다.

 

“... 졸라 미안해지네.”

 

자고 일어났는데도 무겁게 늘어지는 몸에 후, 한숨을 내쉰 백현이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어차피 이번 시간은 자습이라고 했으니 그러려니 하시겠지만. 백현이 기지개를 켜며 침대커버를 정리했다. 10분만 있으면 수업이 마칠 시간이니 매점에 들러서 빵이나 사와야겠다, 생각하던 백현이 침대 끝에서 툭, 떨어진 삼각 김밥을 확인하고 번뜩 찬열을 떠올렸다. 다른 놈들은 이런 걸 해줄 만큼 착하지가 않아. 고개를 젓던 백현이 쭈그려 앉은 채로 머리를 긁적였다. 반장이라서 그런가, 진짜 친구를 잘 챙기는 편이었다. 전학생이란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유독 더 챙겨주기도 했고.

 

“얜 공부도 안하나.”


그냥 입 다물고 넘기려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보낸 카톡에 찬열이 이모티콘을 잔뜩 보냈다. 얜 꼭 지 같은 거만 쓰더라. 킥킥거린 백현이 입에 물고 있던 삼각 김밥을 주머니에 넣고 양호실을 나섰다. 초코에몽이라도 사줘야지.

 

“아, 음, 아! 아! 아!”

 

목을 풀던 백현이 마음처럼 되지가 않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기타를 안고서 백현이 목을 푸는 것을 지켜보던 찬열이 턱 끝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백현아, 저거 유자차.

 

“뜨거워?”
“많이는 안 뜨거워.”

 

감기기운 탓인지 목이 잠겼다. 큼큼, 따끔거리는 목을 부여잡고 유자차를 마시니 보다 못한 찬열이 몸을 일으켰다.

 

“왜 그래? 변백현 아파?”
“어, 점심시간에도 밥 못 먹고 잤어, 얘.”


그래서 양호 선생님이 두고 마시던 유자차까지 얻어서 타왔다는 찬열을 보고 베이스 담당인 태광이 물었다. 근데 저래서 연습해도 되겠어? 차라리 오늘 쉬지.

 

“야, 백현이 진짜 못 하겠다. 목 상해. 하지 마, 백현아.”

 

그래서 에어컨부터 껐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혜인이 백현의 어깰 두드리며 만류했다. 우리끼리 합주 맞추면 되지. 혜인의 말에 생각에 잠겨 가만히 있던 찬열이 소파에 놓인 짐을 챙겨들며 말했다.

 

“그냥 오늘은 개인연습 해. 합주 오늘 하루정도는 안 해도 되잖아. 다음 연습 때도 백현이 안 나으면 그 때 보컬 빼고 합주 가고.”

“어, 난 좋음. 나 내 솔로파트 버벅거려.”

“박찬, 넌 어디 가?”

“백현이 데려다 주고 올 게. 연습하고 있어.”

 

그렇게까지 병자는 아닌데. 백현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찬열이 걸음을 옮겼다.

 

“약 먹고, 그냥 자.”

“또 자라고? 세 시간을 누워있어도 잠 안 올걸. 그냥 합주하는 거나 볼 걸.”

“그럼 카톡해, 놀아줄게.”

“합주하면서도 카톡 가능하냐?”
“합주가지말까? 가지마까? 가지말라캐라.”

 

언제적 서인국이야. 피식 기운 없이 웃는데 찬열이 징징거렸다. 아, 진짜 합주가기 싫다.

 

“너도 땡땡이 치고 싶을 때가 있냐?”
“어. 당연하지.”

“그럼 우리집에서 놀다 갈래?”
“됐어. 갑자기 방문하는 친구 반기시는 부모님 안 계셔.”

“그게 우리집일 듯.”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과자라도 먹여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백현이 찬열을 잡아끌었다. 괜찮아, 진짜. 엄마 또 옆집에 놀러갔을 가능성도 높고. 말하면서도 문득, 부모님이 찬열을 본다면 밥이고 뭐고 다 퍼주려고 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굉장한 외모지상주의에, 또 뭐, 공부 잘하는 친구 싫어하시는 부모님은 세상에 없으시니까.

 

“라면이라도 먹을래?”

 

아무도 없는데 남의 집이라고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찬열을 향해 물었더니 그제야 곁으로 다가와서 말한다. 아냐, 아픈 애를 어떻게 부려먹어.

 

“전단지 같은 거 있어? 사먹자, 그냥. 내가 쏠게.”

“뭘 또 네가 사. 보면 너 맨날 애들한테 사주더라. 부자냐?”

“김태광 들으면 진짜 거품 물겠다. 저번에 내가 걔 빵 반은 훔쳐 먹었는데.”

 

사물함에 매일 간식을 채워 넣는 태광을 아는 찬열이 심심하면 그걸 꺼내먹는다는 것을 아는 백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화가 나서 찬열의 등짝을 후려치는 태광이 떠오른 탓이었다.

 

“오늘은 내가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그래.”

“그럼 내가 사줄게. 안 그래도 엄마 이럴 때 비상금 챙겨주고 나가. 거기 찬장 찾아보면 있을걸.”

“내가 주문해 놓을게. 말 그만 해. 목 더 부을 거 같은데.”

 

찬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백현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소파에 널브러졌다. 아, 편하다.

 

“부모님 언제쯤 돌아오셔?”

“몰라. 엄마는 이 시간까지 안 오시면 이모댁 가신 건데. 아빠는 야근 자주 하셔서 오늘도 못 들어오고 그냥 회사 근처 찜질방이나 모텔 들렀다가 출근 하실 수도 있어.”

“그래? 근데 너 죽 안 먹어도 되나?”

“그 정도로 아픈 건 아니라고~.”

“그럼 진짜 짜장면 시킨다.”

“엉, 하는 김에 탕수육도 먹자. 세트 시켜, 그냥.”

 

냉장고에 붙은 전단지를 턱 끝으로 가리키자 찬열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주문을 하는 찬열의 저음이 막 잠이 들려고 하는 백현의 귓가에 흐릿하게 머물렀다. 아, 잠 안 온다고 해놓고 눕자마자 잠들면 쪽팔리는데. 잠에 빠져들면서도 그 생각에 꿈지럭거리던 백현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백현아, 자?”

 

전화를 마친 찬열이 막 잠에 든 백현을 확인하고선 바닥에 앉았다. 약기운이 아직 안 떨어졌나. 혹시 몰라 점심시간, 편의점에서 김밥과 함께 사온 감기약은 안 먹이길 잘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멋대로 들어가도 되려나, 싶었지만 어둑어둑 해진 바깥에서 불어온 바람에 찬열이 베란다 문부터 닫았다. 오지랖 같지만 문이 반쯤 열린 백현의 방에서 이불도 꺼내 덮어준 찬열이 지루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백현의 머리맡에 앉아 거실을 둘러보았다. 찬열은 잠이 든 백현의 코 훌쩍거리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던 그 30여분도, 지루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

 

 

 

대체 뭘 했다고, 뭘 배웠다고 벌써 중간고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 끝에 백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뒤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도서관도 만석이었다. 덕분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둔 찬열까지 백현과 함께 나란히 까페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냥 우리 집 가자니까.”

“가면 분명 놀걸. 나 첫 시험이라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뭘 걱정해. 1학년 전부다 대학 와서 첫 시험인건 똑같은데.”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고. 원망스런 눈길을 찬열에게 돌린 백현이 입을 꾹 다물었다. 뭐, 이미 학교를 다니다 반수를 해서 들어온 사람들은 제외하더라도, 조교가 찬열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는 얘기는 이미 과에도 파다했다. 분명 이것저것 못 챙겨줘서 안달이었겠지.

 

“야, 너는 진짜 그러면 안 된다.”

“뭘?”
“막 견제한다고 정보 공유 안하고, 일부러 헛소문이나 알려주고, 막 그런 거.”

 

머릿속으로 온통 암울한 미래만 그려대던 백현이 넋두리처럼 쏟아냈다. 줄줄 새어나온 말들은 하나같이 기운 없는 백현의 발걸음을 따라 맥없이 흩어졌다. 그걸 흘려들을 법도 하건만 어째 하나같이 그걸 다 주워들은 찬열은 아무런 답도 없었다. 어느새 혼자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백현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을 땐 우뚝 멈춰선 찬열이 얼굴 가득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넌 날 그럴 놈으로 봤냐.”

“그냥 하는 소리지.”

“야, 나 상처받았어. 대학교엔 진정한 친구가 없고 고딩 친구가 평생 간다던데.”
“안 지겹냐, 나 평생 보려고?”

“그럼 넌 내가 지겨워? 와, 변백 이거 알고 봤더니 얄팍한 인간관계의 소유자였네.”

 

아, 이 자리에 경수가 있었어야 했는데. 과장된 표정으로 상처받은 연기를 해대는 찬열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댄 백현이 탁탁 손을 털고서 먼저 걸음을 옮겼다. 어우, 저걸 진짜.

 

“입 다물어줄 테니까 음료 니가 사.”
“밥은 니가 사라.”
“아, 안타깝다. 오늘 엄마가 집에 빨리 오라고 하셨는데.”

“놀고 있네, 자취하면서 부모님 핑계는.”

 

말장난이나 주고받으며 걷다보니 그나마 있던 위기감도 사라져버린다. 꼭, 그냥 찬열과 함께 공강때 밥이나 먹으러 나온 기분이 들어 백현이 또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야, 근데 진짜 벚꽃 다 지겠다.

 

“언제부터 꽃놀이 다녔다고.”
“갈 수 있을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공부 때문에 못 간다고 생각하니까 엄청 가고 싶다.”

“갈래?”
“우리 둘이?”

“딴 애들은 로망이 없어.”
“너도 그 중생들 중 하나인 듯. 야, 캠퍼스 라이프에 여자도 없이 우리끼리 가서 뭐하냐.”

“그 놈의 여자, 여자. 아주 한이 맺혔네. 시험 코앞에 두고.”

 

백현의 대꾸에 찬열이 백현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이게, 누굴 여자밖에 모르는 놈팽이로 아나. 그렇게 굶주리진 않았어, 나도. 욱하는 마음에 찬열을 매섭게 째려보던 백현이 제법 비장한 어투로 말했다.

 

“두고 봐라. 네가 안 도와줘도 만날 수 있거든?”
“그거 동아리에서 잡아준 거 말하는 거 아니야? 이대 무용과랑 잡힌 거. 그거 깨졌음.”
“어?!? 웃기지마. 네가 우리 동아리 얘길 어떻게 알아.”
“지혜가 벌써 소문 다 냄. 너희 여자애들 두고 비교질 해댔다고 이갈던데.”

“.... 난 아니야.”

“윤지혜가 너 잡히면 죽인댔어. 어쩌냐, CC의 로망도 날아 가버려서.”

 

찬열이 푸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백현을 놀려댔다. 씩씩 거친 숨을 뿜어내던 백현이 결국 길 한복판에서 대뜸 소리를 내질렀다. 아, 나도 싫어!

 

“야, 솔직히 윤지혜는 나도 싫어. 어딜 엮어, 감히.”

“그러게 알지도 못하는 무용과 애들이랑은 왜 엮어서 놀렸냐.”
“... 이대 무용과잖아. 말 다 했잖아. 어딜,”

 

근데 듣다보니 좀 기분 나쁘네. 백현이 걸음을 멈추고 찬열을 쳐다봤다. 먼저 까페 문을 연 찬열이 백현을 향해 물었다. 왜 그러고 서있어, 안 들어와?

 

“야, 다행이다. 자리 별로 없어. 여기까지 걸어온 보람이 있네.”

“박찬,”

 

휙휙, 문을 잡고 있는 찬열을 지나친 백현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며 말했다. 응, 나 뭐 마시지. 아, 백현아! 나 뭐 마실까? 야, 우리 허니 브레드도 시킬까? 설레는 표정으로 메뉴판을 바라보며 말하는 박찬열을 향해 백현이 대꾸했다.

 

“난 딸기 생과일. 야, 이것도 네가 사라.”
“왜? 나 너 때문에 자리도 포기하고 도서관 나왔잖아.”

“윤지혜 편들어서 빈정 상했다. 평생 친구를 버리고 여자를 택하다니. 존나 카사 박찬열.”

 

도비, 얼른 주문하러 갔다 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박찬열을 향해 테이블을 탕탕, 치며 백현이 재촉을 해댔다. 못 이기겠다는 표정을 한 찬열이 일찌감치 언쟁을 포기하고 걸음을 옮겼다. 주문 내용을 상기하고 있는 찬열의 뒷통수를 빤히 바라보던 백현이 냉큼 덧붙였다.

 

“얼음은 조금만 넣고 갈아달라고 해! 전에 보니까 얼음만 넣은 줄.”

 

 

 

*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렇게 바리바리 먹을 걸 싸주시나 싶어 물었더니, 결국 또 찬열 때문이었다. 찬열이랑 나눠먹어. 요즘 급식 맛없다며. 반찬통을 품에 안겨주며 덧붙인 어머니의 말에 백현이 툴툴거렸다. 아, 요즘 누가 반찬 싸들고 다녀. 매점에서 때우게 용돈이나 좀, 아 알았어, 들고 갈게.

 

“이거 다 너희 어머니가 싸주신 거야?”

 

우와, 우와. 감탄만 연발하던 찬열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생일상에서도 못 만나본 반찬이 왜 여기 있는지는 백현도 모를 일이었다. 누가 보면 박찬열이 아들인줄 알겠네.

 

“네, 잘 먹겠습니다. 백현이도 요즘 공부 잘해요. 원래 머리는 좋잖아요.”

 

뭘 하나 봤더니 어느새 감사인사를 직접하고 계신다. 찬열의 친화력에는 백현도 못 따라갈 정도였다. 아, 적당히 하고 끊어. 엄마! 우리 밥 좀 먹자! 백현의 신경질에도 끄떡없이 전화를 마친 찬열이 그제야 수저를 들었다. 이미 반찬은 다른 친구들에게 반 이상이 털려있었다.

 

“매번 얻어먹어서 어떡하지. 어머니 뭐 좋아하셔? 다음에 놀러갈 때 챙겨갈게.”

“너. 너요, 너.”

“그래도 뭐라도 들고 가야지. 선물로 좋은 거 뭐, 음료수라도,”

“니가 주는 모든 거요. 박찬열이 준 꽃, 박찬열이 들고 온 음료수, 됐냐?”

 

에이,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은 듯 입이 귀에 걸린 박찬열을 보고 백현이 덧붙였다. 야, 진짜 그냥 와. 부담스러워. 그냥 너만 와도 충분할 걸.

 

“너도 그래?”

 

맛이라곤 느껴지지도 않는 콩나물국을 떠먹으며 백현이 영 시원찮은 표정을 짓고 있던 백현이 그대로 되물었다. 뭐라고?

 

“표정 봐라. 그런 표정 좀 짓지 마.”

“내가 뭘.”

“완전 히스테릭한 표정이었어.”

 

꼭 가끔 찬열은 이렇게 반장티를 냈다. 사실 하는 거나 생긴 거 보면 진짜 놀게 생겼는데. 백현의 속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가끔 백현이 욕을 내뱉을 때면 대놓고 빤히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특히 요즘 여름이랍시고 가끔 이마를 깔 때가 있는데 백현은 그런 찬열이 쏟아내는 잔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그대로 돌려주고 싶기도 했다.

 

“첫인상은 완전 백구 같았는데.”

“또 백구라고 하면 너 때릴 수도 있을 거 같다.”

“봐, 또.”

“니가 멋대로 생각해놓고선. 아, 그리고 자꾸 요즘 니가 헛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찬열이 쳐다보자 백현이 입을 우물거리다 대답했다. 오그라들잖아. 뭘 너도 그래야, 90년대 CF 대사인 줄.

 

“풉,”

“아, 드러. 야, 밥풀 튀어!”

“아무것도 안 들고 가도 너 실망 안 하냐고. 그래도 내가 먹을 거 갖다 주면 다 챙겨 먹으면서.”
“......”

“알고 보니까 변레발이네, 이거. 설레발은 네가 다 쳐놓고.”

 

식판을 향해 얼굴을 푹 숙인 채로 묵묵히 밥을 쑤셔 넣은 백현의 부풀어 오른 뺨을 보며 찬열이 쉬지도 않고 놀려댔다. 귀에서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물든 백현을 보고서야 찬열은 입을 다물었다. 쳐진 눈꼬리가 한없이 순해보이다가도 그 속에 독기를 품는 건 한순간임을 그간 지내면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백현아,

 

“초코에몽 사줄게.”

“......”

“... 2개?”

“오늘은 바나나우유,”

“알았어.”
“-도 사주고, 초코에몽도 사줘. 야자 때까지 아껴 마셔야지.”

 

식판을 들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백현을 따라 찬열도 급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야, 백현아! 찬열의 부름에 걸음을 멈춘 백현이 찬열을 지긋이 쳐다보다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 앞머리 좀 내려.”

“이상해?”

“날티 남. 그것도 조온나.”

 

휙휙, 급식실 벽에 붙은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던 찬열이 미간을 찡그렸다. 진짜 그런가. 꾹, 한손으로 앞머리를 내리고선 벌써 급식실 밖으로 빠져나간 백현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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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96.13
전글 비회원이에요ㅠㅠ 작가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글 기다렸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정말 찬백이들 카와이이ㅜㅜㅜㅜㅜㅜㅜㅜㅜ 이 깜찍이들ㅠㅠㅠㅠㅠ 괜히.내가 더 간질거리네 ㅜㅜㅜㅜ 오구오구
8년 전
gonna
이번에도 댓글을!! ㅠㅠㅠ 감사합니다ㅠㅠ 원래 목적도 결말도 없이 쓴 글이라 지지부진하고 일상 얘기 밖에 없는데 괜찮으려나 싶었어요 ㅠㅠ 근데 재밌게 봐주시니까 저야말로 감사하네요 ㅠㅠㅠ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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