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나
'탄아,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글 전체 맥락으로 봐도 그렇고,
네가 정말 글을 잘 쓰기는 하는데.
감정이 없다고 해야하나, 너무 매말랐다고 해야하나.
며칠 째 연필만 죽어라 잡고 있던 손이
그제서야 시려오는 듯 했다.
'장래희망이 작가라고 했었지?'
정말 열심히 적었던 글이었다.
밤낮 쉬지 않고 열심히 머리 굴려가면서
미친듯이 쓴 글.
구겨지지 않게 품에 안고 왔던 그 자랑스러운 글이,
한순간에 쓰레기로 전략 해 버렸다.
'선생님도 정말 도와주고 싶은데,
이건 선생님이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문제 같다'
하나하나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다시 곱씹어 보니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볼품없었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꽉 쥔 두 손으로 짜증스레 교복 치마를 매만지다 말고
발로 바닥을 동동 찼다.
짜증나 진짜.
'네가 잘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진로를 다시 생각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탄아.
글 쓰는 방식은 배우면 되지만 감정은 익힌다고 익혀지는 게 아니거든'
또다, 또 저런 거지같은 말로 내 정성을 무너뜨려 버렸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책도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고,
중요하다 하는 건 뭐든지 줄 긋고 달달 외우고.
나만큼 노력 한 사람이 어디있다고 진짜...,
"아 짜증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세게 고함 치다가 사례가 걸려
결국 켁켁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 진짜 짜증나,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어.
쓰라린 목을 가다듬으며 붉어진 눈으로 앞을 바라보자
동그란 머리통 하나가 시야를 막고 있다.
"학생"
다갈색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하얀 피부의 남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올려다본다.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소리 지르면 안 되는데"
다정한 듯 깊은 눈동자에 담긴 내 모습을 보니 기분이 뭔가 이상해졌다.
길게 늘어뜨린 말꼬리가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듯 했다.
이상하다.
내 잘못을 말하며 장난스레 웃는 그에 얼굴이 창피함으로 붉게 달아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갈색 눈동자에서 눈을 땔 수가 없다.
정말 이상하다.
"어른 말 씹는거 아니다, 학생?"
맑게 울리는 목소리에 가슴이 간질간질 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허리를 콩콩 치더니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대답 안 해?"
꿀꺽-
애꿎은 침만 삼키는 나를 보며 그가 인상을 찡그리다
재미없네.
하며 뒤돌아섰다.
"..아저씨!"
벌떡 일어나 다급히 부른 내 목소리에
기다린 듯 돌아선 그가 나와 마주보고 섰다.
이번엔 진짠 것 같았다.
이번에 진짜 김탄 인생에
"저랑 라면 먹으러 갈래요?"
사랑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