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년이여
: 꺾여진 꽃 (1)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진료가 빨리 끝나 여유롭게 퇴근 준비를 한창 하고있었다.
그러다 우연히도 창 너머로 내리는 보슬비를 보게되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하루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아마 내일부터 비가 올거라 했으면서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내리는 비에 헛웃음이 나왔다.
"우산 없는데."
로비로 나오니 그냥 보슬비가 아니란것을 느꼈다.
후두둑 내리는 비에 급히 우산의 부재를 알아챘지만 이미 없는 우산, 만들어낼수도 없어 그냥 맞으면서 주차장까지 걸어갈 심상이었다.
"김선생!"
"어? 김준면선생님."
"밖에 비오는데 우산도 없이 갈려고?"
"바로 앞에 주차장 있는데요 뭘. 오랜만에 비도 맞고."
"이거 가져가."
병원 문을 열고 나갈려는 나를 갑자기 나타난 김준면 선생님이 잡았다. 아직까지 의사가운을 입고있는 모습에 의아했지만 이내 내게 물어오는 질문에 그 의아함은 묻혀버렸다.
비를 그냥 맞고 가겠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내 모습이 어지간히도 어이가없었나본지 잠시 미간이 구겨진 김준면 선생님은 내게 무얼 넘겼다.
자세히 보니 검정색의 장우산이었다.
"뭐에요?"
"뭐긴 우산이지. 비 맞고 가면 감기걸린다."
"저 주면 선생님은요?"
"나 오늘 밀린거 많아서 아마 여기서 자고 가야될것같아. 그동안 피곤하다고 냅둬둔게 확 밀려왔어."
그 말이 진실인마냥 아직까지도 의사가운의 모습에 쾡해진 눈이 말해주었다.
거절해도 계속 건네줄 선생님의 모습을 알기에 감사하다고 꼭 돌려드릴게요 라는 형식적인 말을 드리고 선생님의 우산을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내가 여기에 주차를 안했었나?"
주차장으로 오니 내가 해둔 곳과는 달랐나본지 내 차가 없었다. 가뜩이나 기억력도 나빠서 가끔가다 이러는데 또 주차를 해둔곳을 까먹은 모양이다. 비까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진 탓에 얇은 옷을 입었더니 몸이 으슬으슬해지기 시작했다.
급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차를 찾는데도 아마 이 곳에 주차를 안해논 모양이다.
"병원 앞에다 해놓은건가."
문득 떠오른 아침의 기억으로 병원 앞에 해둔 내 모습이 언뜻 떠올랐다. 발걸음 돌려 병원 앞으로 향했다.
내가 일하는 병원이 워낙 큰 병원이어서 건물도 크고 사이의 거리도 생각보다 길었다. 빨리 집에가서 쉬고싶은데 꽤 상당한 거리에 더 몸이 지치는 느낌이었다.
졸려오는 눈을 부릅뜨고 병원 앞에 도달하였을 때였다.
"예쁜 누나, 우산 좀 같이 써요."
소년 한 명이 내 앞에 등장한것이.
나의 소년이여
"누나 키 되게 작다. 내가 우산 대신 들어도되죠?"
갑자기 나타난 소년은 내가 들고있는 우산 안에 들어왔다. 언뜻봐도 키가 커보였던 소년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있다 힘들었나본지 내 손에서 우산을 가져갔다. 김준면 선생님 우산인데...
아무 말 않고 저를 쳐다보는 내가 신경쓰이지도 않은지 비에 젖은 손을 바지에 몇번 닦고는 내 어깨를 감싸 걷는 소년이었다.
.
"누나 어느 방향으로 가요?"
"... ..."
"내가 그렇게 잘생겼어요?"
"지나쳤어요."
"네?"
"제 차 저기 있어요."
그렇게 잘생겼냐는 질문에 웃음이 나왔다. 어두워서 잘보이진 않지만 학생인것같은 분위기가 언뜻 보였다.
소년한테 정신이팔려 보니 어느새 나는 병원을 나와 시내의 인도를 걷고있었다. 차, 저기 있는데.
소년은 나의 말에 당황했는지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헐, 어떡해요? 다시 가야되는거 아니예요?"
"학생 데려다 주고 가도 안늦어요."
나의 말에 소년은 활짝 웃으며 그러면 저기 버스정류장까지만 같이 가요. 라는 말을 내게 건네고 자신 쥔 우산을 내쪽으로 더욱 기울여주었다. 그러면 우산을 빌려준 의미가 없는것같은데.
아직까지도 내 어깨를 놓지않는 그 손이며 내가 다 썼다해도 될 지경의 우산의 위치를 봐도 소년은 꽤나 여자한테 인기많을 그런 매너가 몸에 베인이 사람같았다.
"오늘 비 진짜 많이 오네요."
"그러게요."
"근데 의사예요?"
"뭐,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니깐 의사겠죠."
어디선가 비린내가 났다.
비 비린내 같기도하고.
"그러면 사람들 많이 살려겠다."
"아마 학생이 생각하는 거랑 내가 생각하는거랑 다를걸요."
피 비린내 같기도하고.
"왜요? 의사잖아요."
"저는 주로 정신쪽으로 하거든..."
"왜 그래요?"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의 모습이 지나가는 차의 경광등을 통해 보았는데 단지 교복을 입은 모습 뿐만이 아니었다.
와이셔츠와 교복 니트에 선명하게 묻어있는 혈흔이 보였다.
"아,"
"... ..."
"이거 내 피 아니에요."
보통은 피가 묻게된 이유를 말해주거나 그냥 넘어가지않나?
당당히도 자신의 피가 아니라고 말하는 소년의 모습이 어이가없었다.
무던히도 소년의 교복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피 잘 안빠질텐데."
"...네?"
"하루동안 차가운 물에 담가둬요. 그러면 어느정도는 빠질테니깐."
소년은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었나본지 당황한 티를 냈다.
하기야 어느 누가 자신의 피도 아닌 남의 피를 묻히고 있는데 이딴 반응을 보이겠는가.
내가 지금 이 소년을 두고 도망치면 김준면 선생님의 우산은 저 소년에게 남겨질테고 신고를 하자니 난 그렇게 깡이 있는 사람도,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다. 이런 자질구레한 이유 말고 또 있긴하다.
단지 소년이 너무 외로워보였을뿐이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쓸데없는 직업병이 도진 모양이다.
"그러고가도 괜찮겠어요?"
"나 걱정해주는거예요?"
"학생이 그러고가면 나도 의심받을것같아서."
"아,"
"... ..."
"걱정하지마요. 나 잡혀가도,"
"... ..."
"예쁜 누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해줄게요."
그렇게 소년은 내게 우산을 다시 쥐어주고 버스장류장으로 갔다.
잠시나마였지만 왠지모를 연민을 느꼈다. 소년을 보고있자니 북받쳐오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고 난 다시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곤해지는 느낌이 날 더 힘들게 만들었다.
"누나,"
"... ..."
"괜찮아요."
소년은 지금 웃고있을까.
울고있을까.
***
지르고 본다...!
다시 포인트받아가세요...하찮은 글에 포인트 쓰면 아깝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