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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 THE XXX CITY : 블루 이데아 | 인스티즈

THE XXX CITY
作 이플라

 

 

 

밤이 되면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어둠에 뒤덮이는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이 근방은 유독 밤만 되면 형형색색으로 빛나고는 한다. 밤을 찾는 자들의 근거지이자 오직 밤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 그러나 언제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화려한 불빛보다는 그 사이의 어둠이다. 태양을 동경했던 인간들이 어설픈 솜씨로 모방해낸 불빛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외진 곳에 건물 하나가 서있다. 음침한 중형 건물은 도시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을 주고 있다. 잔뜩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취객들은 전봇대를 붙잡고 토악질을 해대느라 건물을 신경 쓸 틈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맨 정신인 사람이 건물을 보게 된다면 먼저 범죄 현장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이 도시에 정상적인 사람이 발을 들일 리가 없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눈길을 끌만한 그 어떠한 것도 붙어있지 않은 건물은 호객 행위를 목적으로 오색 전등을 달아 놓은 주위의 다른 건물들과는 확연히 대비되었다. 아, 자세히 보면 뭐가 하나 붙어있기는 하다. 비좁은 입구 위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까 위태로운 태세의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Welcome To Hell,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의미의 섬뜩한 문장은 짙은 어둠의 색을 띄고 있다.

 

유색 도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흑백 건물 안에서는 은밀한 언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낡아빠진 형광들이 천천히 점멸하며 비추는 탁자에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야심한 밤에 남녀가 단둘이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눈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로맨틱한 장면이 그려질 듯도 하나 여기 두 남녀의 상황을 직접 보면 그런 생각은 뿌리째 없어질 터였다.

 

 

 

"성공하면 자그마치 1200억이야."
"......"
"둘이서 나눠 가져도 각각 600씩이라는 거지."

 

 

 

여자의 얼굴을 개구진 시선으로 바라보며 생글 거리던 찬열은 곧 웃음을 멈추고 사뭇 진지한 목소리를 꺼내었다. 어때, 꼴리지. 찬열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길고 얄쌍히 뻗은 손가락으로 단도를 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묵묵부답인 여자의 태도가 심히 거슬렸는지 찬열이 한쪽 눈썹을 일그려 뜨리려는 찰나, 여자는 이어온 침묵을 깨뜨렸다.

 

 

 

"말은 제대로 해. 매매상한테 넘기려면 또 수수료 붙어."
"이 씨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생각을 해봐. 수수료가 붙어봤자 얼마나 붙겠어?"
"씨이팔? 나한테 쌍욕 한 거야 지금?"

 

 

 

보석이고 뭐고 그냥 여기서 목 따이고 싶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묻는 여자에 찬열은 침을 꼴깍 삼켰다. 같이 작업하기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편할 것 같아 고심해 고른 파트너였는데, 제 앞의 여자를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얼굴이 예쁘고 못났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저를 엄호할 여자인데 되려 위협 당하는 기분이라니. 사실 여자 킬러라고 해서 만만히 봤던 것도 없지 않았는데, 역시 늙었던 젊었던 여자던 남자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킬러는 킬러였다. 등골이 절로 오싹해지는 듯한 느낌에 찬열은 어서 저들을 꺼내달라 아우성치는 욕설들을 가까스로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쟤 지금 칼 들고 있어. 존나 잘생긴 찬열아, 네가 참아. 찬열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곤 입을 열었다.

 

 

 

"미안. 내 입이 잘못했네."
"잘 아네."

 

 

 

능청스럽게 제 입을 찰싹찰싹 때리는 찬열에 여자는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얼마 뒤 시가 1200억 원을 호가하는 블루 다이아몬드 경매가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외국물을 머금은 다이아몬드는 정확히 일주일 뒤 제 몸값만 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 작은 반도에 닿을 것이다. 찬열과 여자가 손을 잡은 이유도 바로 그 다이아몬드였다. 물론, 먼저 손을 내민 쪽은 찬열이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훔쳐내지 못한 것이 없다고 해서 뒷 세계에서는 공연하게 '괴도'라는 유치한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찬열이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제 신변 보호였다.

 

1200억을 반으로 갈라가면서까지 부탁하는 게 신변 보호라니, 이 새끼 혹시 주위에 원한을 많이 지고 살았나. 찬열의 의뢰를 받자마자 여자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는 그저 찬열이 경매장 창고에 잠입해 다이아몬드를 훔쳐 나올 때까지만 그를 경호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찬열이 발각된다 치더라도 저는 대충 상황을 살펴 빠지면 되는 것이었다. 참 쉽다.

 

사실 저번 의뢰를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터라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야 되나 싶었는데, 이렇게 좋은 건이 들어오다니. 여자는 샐샐 웃으며 생각했다. 이 정도 돈이라면 불쌍한 중생들 몇십 명 정도는 거뜬히 빼올 수 있을 터였다. 한참 생글거리던 여자는 곧 언제 웃었냐는 듯이 표정을 싹 굳히며 말했다.

 

 

 

"박찬열아."
"어?"
"혹시 갖고 튈 생각이라거나,"
"...야! 내가 미쳤냐?"
"그래. 나도 내 동업자가 그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길 바래."
"누가 갖고 튈 생각을 해? 600이면 나도 존나게 감사하다 이거야. 이번 일 끝나고 손 닦을 생각인데 섭섭하게 무슨 의심이야. 그것도 우리 사이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따박따박 뱉어대는 찬열에 여자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찬열의 말을 끊어냈다. 지나친 변명은 괜한 의심을 불러오는 법이다.

 

 

 

"우리 사이가 뭔 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말해두는 건데,"
"......"
"갖고 튀는 날에는 너 정말 내 손에 죽는 거야."

 

 

 

어디 죽고 싶으면 배신 때려 봐. 손안에서 굴리던 단도를 나무 탁자 정중앙에 팍 내리꽂으며 웃어 보이는 여자에 찬열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낡은 나무 의자가 찬열의 심경을 대변하듯 삐걱이며 울어댔다. 찬열은 메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에이, 걱정 말라니까. 내 목표가 불로장생이야."

 

 

 

그래. 이 정도 됐으면 그들을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 사이라고, 그들 간에 오가는 대화를 달콤한 사랑의 언약이라고 칭하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침 건물에 누가 도착했는지 벨소리가 울렸고, 찬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일에 바꿔치기할 모조 다이아몬드가 도착한 모양이다.

 

 

 

[EXO] THE XXX CITY : 블루 이데아 | 인스티즈

 

* * *

 

 

 

"김 비서. 그건 언제 들어온다고?"
"다음 주에 들어온답니다."
"존나 떨려."

 

 

 

충직한 비서의 대답에 종인은 다리를 달달 떨며 웃었다. 준면은 웅얼 거리는 제 주군의 뒤통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푸석한 흑발의 머리칼이 잘게 흔들렸다. 종인에게는 매니아적인 취향이 있었다. 그러니까,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에 꽂히면 죽어도 제 손에 넣어야만 했다. 제가 가지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가질 수 없었다. 한동안 시계에 푹 빠져 청담동의 내로라하는 사모님들을 제치고 한국에 하나 들어온 시계를, 그것도 여성용 시계를 기어코 얻어 내더니만 이번에는 다이아몬드였다. 시계에 박혀 있던 다이아몬드가 종인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었다. 그날 종인은 제가 차고 있던 가죽 시계를 준면에게 던져 주었다. 이거 가지던가, 하는 한 마디에 준면은 말없이 시계를 정장 재킷 안쪽에 쑤셔 넣었다. 아마 독일 명품 브랜드 한정판이었다고 했었나, 중고로 되팔면 가격이 꽤 나올 것이 분명했다. 시계뿐만이 아니었다. 프라모델부터 피아노까지 그 종류와 크기도 가지각색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하나 둘 모아진 것들은 모두 준면의 노후 대비책이 될 예정이었다.

 

 

 

"얼마를 들여야 그걸 가져올 수 있을까."
"뉴스에서는 시가 1200억이라고 떠들던데요."
"아, 1200?"

 

 

 

준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철없는 도련님은 어째 날이 갈수록 벌리는 판이 커져가는 것 같다. 종인이 일을 벌일 때마다 돌아가신 회장님의 얼굴이 아른거려 준면은 눈을 질끈 감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인을 떠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직업의 자유를 명시해 보장하고 있건만 준면만은 예외였다. 종인의 집안을 보필하는 것은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대물림 되어온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제 아버지의 유언도 종인을 잘 보필하라는 것이었으니 말 다했다.

 

왕년에 준면의 목표가 도련님 사람 만들기였다면 요즘 그의 목표는 도련님 신붓감 찾기였다. 결혼을 하면 이 취미도 좋은 방향으로 꺾이지 않을까 하는 게 그 바램의 이유였다. 준면은 눈을 깜빡이며 다시 종인을 바라보았다. 종인은 제 노트북의 배경 화면으로 설정되어 있는 블루 다이아몬드를 빤히 노려 보았다. 네 몸값이 1200이라 이거지. 그럼 나는,

 

 

 

"경매 당일까지 1500 빼 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이아몬드는 제가 취하겠노라 생글거리며 말하는 종인에 준면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이아몬드의 다음은 무엇일지, 이제는 조금 두려울 지경이었다. 아, 물론 저는 결혼 생각이 없다. 자식은 죽어도 낳지 않을 것이다. 이 개 같은 집안 보필은 저로도 충분했다. 더 이상 대물림되지 않아야 한다.

 

 

 

[EXO] THE XXX CITY : 블루 이데아 | 인스티즈

 

 [EXO] THE XXX CITY : 블루 이데아 | 인스티즈
 * * *

 

 

 

세훈은 클래식 선율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렸다. 조직 보스의 취미치고는 고상한 편에 속했다. 흘러나오고 있는 피아노 곡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었다. 베토벤은 귀를 다치고 운명 교향곡을 작곡했고, 저는 어깨에 칼빵을 맞고 운명을 찾고... 딱 제 상황과 부합하는 곡이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얼굴은 하나뿐이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세훈은 생각에 잠겼다. 오죽하면 꿈에도 나왔을까. 제 무의식중에서도 끈질기게 맴도는 얼굴이 질릴 만도 했으나, 봐도 봐도 새롭기만 하다. 왜? 진짜 예뻤거든.

 

 

 

"대체 누구지."

 

 

 

제 어깨에 칼을 박아 넣었다. 여자라고 얕봤는데 칼이 생각보다 깊게 들어갔는지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을 침대에 꼬박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화가 나지를 않지. 오히려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창백한 피부에 질끈 묶은 긴 머리, 화장기 없는 맨얼굴.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뽑으라면 세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도를 제 어깨에 박아 넣을 때의 담담한 표정을 꼽을 것이다. 눈을 감고 선율에 맞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며칠 전을 회상하던 세훈은 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고 덤덤히 말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까만 양복을 차려입은 덩치 큰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세훈의 앞에 섰다. 어깨를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세훈의 입가에는 알게 모르게 웃음이 걸쳐졌다. 얼마나 기다렸다고 내가.

 

 

 

"보고해."
"황 사장 직속을 족쳤는데..."
"그런데?"
"직속도 잘 모른답니다. 황 사장이 직접 의뢰한 일이라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고..."
"끝?"
"......"
"내가 7일을 줬는데 알아온 게 그게 다냐고."
"......"
"...끝이라 이거지."

 

 

 

이를 까드득 갈며 묻는 세훈에 남자는 울상을 지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평소 워낙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해서 혹시 취향이 다른 쪽인가 싶었는데, 그런 세훈이 여자를 찾는다니. 잘만 하면 이번 기회에 세훈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일주일 동안 죽기 살기로 여자를 찾았건만 아무리 수소문해도 나오는 게 없었다. 탈탈 털어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 말은 누가 했던가? 남자는 괜히 옛사람들이 미워졌다. 우물쭈물하는 남자를 향해 세훈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나가봐."

 

 

 

고개를 까딱이는 세훈에 남자는 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세훈은 다시 눈을 감았다. 하긴, 애초에 제 아랫것들이 똑바로 할 줄 아는 게 얼마나 있었던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야 속이 시원할 터였다. 그러나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여자가 아닌 자금이었다. 세훈은 눈을 느리게 떴다. 이번에 황 사장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탓에 조직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생 조직들은 입지를 다지며 제 위치를 위협하고 있다.

 

세훈은 책상에 놓여있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푸른빛을 띄고 있는 다이아몬드, 이것만 있으면 된다. 다른 것들은 자금을 마련한 다음에 생각하자... 세훈은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놓인 개조형 리볼버를 만지작거렸다. 어깨의 상처는 거의 아물었다. 총기를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EXO] THE XXX CITY : 블루 이데아 | 인스티즈

* * *

 

 

 

 

 

 

[EXO] THE XXX CITY : 블루 이데아 | 인스티즈

 

다른 시각,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모두 같았다. 욕망의 결정체, 푸른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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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 헐ㅠㅠㅠ엄청 심오해요ㅠㅠㅠㅠㅠㅠ다이아몬드 훔치기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영화 도둑들이 생각나네요ㅠㅠㅠㅠㅠ신알신하구가요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9년 전
비회원54.191
와..초기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명작될거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비회원172.142
헐ㅜㅜㅜㅜ 완전 좋아요 이런글ㅜㅜㅜㅜㅜㅜㅜ 다음편 기다릴게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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