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 남자친구랑 크게 다퉈서 기분이 우울하다며, 자기 좀 위로해 달라고.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준비를 하고 나갔지. 그런데 약속 장소에 도착을 하고 10분을 넘게 기다려도 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감감 무소식 이었어. 그날 딱히 약속도 없던 나는 폰으로 인터넷 서핑이나 하면서 시간을 때우면서 친구를 기다렸지.
때마침 친구한테 전화가 오더라고. 하는 말이, 남자친구랑 곧바로 화해를 했다며 위로는 필요 없어졌다고 그러더라?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결론은 약속장소에 못 나오겠다는 거야.
남자친구랑 같이 화해기념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나, 뭐라나. 뭐 이런 기집애가 다 있나, 실컷 욕을 퍼부어 주고 전화를 끊었어. 솔로가 죄인이지, 뭐.
실컷 꾸미고 오랜만에 가로수길까지 나왔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너무 아쉽더라고. 하필이면 오늘따라 유난히 날씨까지 좋은거야.
안그래도 서러운 솔로 더 서럽게.
나는 근처를 두리번거리다가 처음보는 작은 카페가 있길래 그곳으로 걸어갔어.
버블티를 파는 가게더라고. 나는 버블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날따라 희한하게 자꾸 끌리는거야.
괜히 새로운 거에 도전했다가 후회 할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리려다가 에이, 그래 기분이다! 하고 가게로 들어갔어.
가게 안에 사람은 주문을 하고 있는 남자 한명과 종업원 뿐이었어.
나는 카운터로 걸어갔어. 내 앞에는 키가 엄청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왠 청년 하나가 주문을 하고 있었고.
나는 심드렁하게 그 남자의 뒤에서 메뉴판을 보고 무슨 맛을 먹어볼까, 고민하고 있었어.
주문을 끝낸 그 남자가 자리를 비키더라고. 종업원은 나에게 뭘 주문하겠냐며 물었어. 나는 초코맛 버블티라고 대답했지.
바람맞아서 그런지 유독 단게 땡기더라고.
그런데 주문하는 동안 옆에 있던 남자가 자꾸 나를 힐끗거렸어. 나도 덩달아 그 남자를 곁눈질로 쳐다봤지.
그 남자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덕분에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
나는 계산을 먼저 마치고 한쪽 자리로 걸어가 앉아서 기다렸어. 그런데 자꾸 그 남자가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것 같은거야.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휴대폰을 키고 얼굴을 확인했는데, 별 문제는 없더라고.
그러다가 내가 주문한 버블티가 나왔고 나는 카운터로 가 음료수를 받아들었지.
그렇게 가게에서 나오려는데,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거야.
“ 저기여! ”
나는 고개를 돌렸어. 그랬더니 아까 내 앞에 있던 남자가 나를 부르고 있는거야.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 그랬더니 그 남자가 멎쩍게 웃으면서 나에게 돈을 좀 빌릴 수 있겠냐고 묻더라.
“ 네? ”
“ 깜빡하고 지갑을 두고왔는데, 이미 음료를 시켜서여. 죄송한데 오천원 좀 빌릴 수 있을까여?”
“ 아….”
속으로는 뭐 이런 잘생긴 생긴 거지가 다 있나, 하고 욕을 하면서도 거절같은 걸 잘 못하는 나는 백에서 지갑을 꺼내서 오천원을 내밀었어.
그 남자가 고맙다면서 내 돈을 종업원에게 내밀더라고. 그러면서 돈을 갚고싶다는 거야. 연락처를 물어오길래 그냥 됐다고 거절했어.
나는 뭐 이런 거지같은 하루가 다 있는지, 오천원 짜리 버블티를 만원주고 사먹게 생겼네, 라면서
괜히 집에 일찍 돌아가지 않았던 걸 후회하며 버블티를 크게 들이켰어.
그런데 뒤에서 그 남자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더라. 그러면서 나한테 작은 종이 하나를 내미는거야.
“ 저 이거라도….”
“ 네?”
“ 여기 쿠폰인데. 제가 오늘꺼까지 열번 다 찍었거든여.”
그 남자 손에 들린 종이를 보니 그 남자 말대로 이 가게 쿠폰이더라고. 나는 괜찮은데…. 라면서 멍청하게 웃어보였어.
그런데 그 남자가 자꾸 쿠폰을 나한테 내미는거야. 그거라도 내가 받아야 자기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면서.
그래서 나는 쿠폰을 받았어.
“ 다음에 그거 가지고 오면 음료수 하나 공짜에여.”
“ 고마워요.”
나는 바보같이 고맙다며 대답했어. 대답해놓고도 대체 내가 뭐가 고맙지? 라며 뱉은 말을 후회했어.
그 남자가 자기 갈길은 가지 않고 계속 내 앞에 서 있는거야. 그래서 내가 고개를 들어 그 남자 얼굴을 슬쩍 봤어. 희한하게 낯이 익더라?
그걸 남자도 느꼈나봐.
“ 그런데, 나 몰라여?”
“ …?”
그 남자가 나한테 자기를 아냐며 물어왔어. 나도 알듯 말듯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마땅히 기억이 안나서 고개를 저었지.
그랬더니 그 남자가 한숨을 쉬는거야. 분발해야겠다며.
그러고는 마저 자기가 누군지 대답은 해주지도 않고 그저 버블티 사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가게를 나가버렸어.
나도 그만 가게에서 나가려는데, 그 남자가 다시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나한테 당부를 하더라고.
“ 그거 쿠폰 버리지 말고 꼭 사용해야돼여! 그리고 그 앞에…, 아니에여, 그거 꼭 사용하시라고여!”
그 남자의 말에 나는 얼떨결에 알겠다고 대답했어. 그리고 그 쿠폰을 가방에 넣었지.
나는 버블티를 손에 들고 가로수길에서 혼자 아이쇼핑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있잖아. 내가 나갔다 들어오면 가방을 다 쏟아내서 정리하는 습관갖은 게 있어서, 오늘도 여지없이 내용물을 와르르 쏟아내는데,
마지막으로 가방 한쪽에 끼어있던, 오늘 낮에 낯이 익은 남자가 건넨 쿠폰이 툭 하고 떨어져 나오는거야.
지금 생각해보니 낮에 있던 일이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쿠폰을 집어들고 확인했어.
그 남자 말대로, 정말 열개 동그라미에 스탬프가 전부 찍혀있었어.
난 아무 생각 없이 쿠폰을 돌려 앞면을 살폈는데.
오세훈 010.xxxx.xxxx
그 남자 얼굴처럼 낯익은 이름과 연락처가 쓰여있는거야.
물론 쿠폰에 이름과 연락처 란이 있긴 했는데, 요즘 누가 거기에 이름하고 연락처를 적어놓냐고.
나는 풉, 웃음을 터뜨렸어.
책상 한쪽에 쿠폰을 올려놓고 가방에서 쏟아낸 내용물 정리까지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왔어.
그런데 샤워하는 내내 오세훈이라는 이름이 계속 머릿속에 떠다녔거든.
오세훈? 오세훈? 오세훈….
누구더라…….
그 순간 갑자기 머릿 속을 스치듯 요즘 데뷔한 아이돌 그룹이 생각났어.
나는 얼른 휴대폰을 들어 초록색 창에 오세훈이라고 이름을 적어넣었지.
검색버튼을 딱 누르는데, 오늘 봤던 그 남자 얼굴이 창에 뜨면서 그 옆에 ‘세훈’ 이라는 이름이 같이 뜨는거야.
내가 낮에 가게에서 버블티를 사주고 쿠폰을 받은, 그 남자는, 그러니까 EXO의 세훈이었던 거야.
오 마이 갓.
지져스!
나 어떡하지? 이 쿠폰을?
그 남자가 자기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줄 모르고 나한테 준건가?
나 어떡해…. 이걸 그냥 찢어버려?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