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一 切 唯 心 造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쏘크라테스
7
여인이 탄생되는 날이구나
민석은 안간힘을 다해 뛰어 마을에 도착했다. 뒤에서 뒤따라오던 종인도 민석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민석은 벅찬 숨을 밀어내고 애타게 이름을 불렀다.
"아이야."
"자, 잠시 헛간에 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산이나."
"종인아, 산을 뒤져봐. 나는 여길 찾아볼게."
"대장."
"어서!"
민석의 윽박에 종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산을 향해 다시 뛰어야 했다. 민석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집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방부터 시작해 부엌, 헛간, 창고까지 전부 뒤져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민석은 바싹 말라버린 입술을 매만지다가 마을 곳곳을 뛰었지만 어느 사람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산을 찾아보던 종인도 헛탕이었는지 다시 민석에게로 돌아와 고개를 내저었다.
"없습니다. 잠시 시장에 간 것일지도."
"왠만하면 집에 있는 아이야. 나돌아다닐 애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민석은 아까 전 여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린내, 조선에서 가장 큰 기방이라 했다. 여자 남자 가리지않고 잡아들이는 포악한 포주. 민석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평소에는 입지 않는 비단옷을 꺼내어 입었다.
"대장, 지금 뭐하는,"
"잠시 중심부로 가야할 일이 생겼어. 너는 아이가 돌아올지 모르니까 집에 남아있어라."
"대장."
"금방 돌아올거야."
종인은 비단옷을 다 챙겨입은 민석의 뒷모습을 보았다. 종인의 눈에 흰나비가 팔락거렸다.
/
문이 덜컥 열리자 붉은색 천을 두른 한 사람이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얄상하고 곱상한 얼굴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그 사람은 내 앞에 성큼 앉아 다짜고짜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두 손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니가 어떻게 찬열이를 구워 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니야!!! 난 너같이 날 짐승 같은 새끼랑 한방 못 써!!!"
"아, 아니."
"옷 입은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너도 나랑 같은 처지인 것 같은데, 천만에. 난 너랑 질부터가 다른 몸이라고. 그런 내가 너랑 한방을 쓰겠어?"
"내가 지금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러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영락없는 남자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꾸 풀썩풀썩 누워버리던 남자는 앉아있는 내 팔을 잡더니 나를 문 밖으로 내보내려 했고, 나는 안간힘을 다해 버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긴 것은 남자, 남자는 바싹 약이 올라 붉어진 얼굴로 다신 내 눈앞에 보이지 말라는 말과 함께 문을 닫아 잠궈버리고 말았다.
아니,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저럴 줄 알았다. 나는."
그때였다. 소리가 난 쪽을 보니 아까 내게 이름을 지어준 세훈이란 자가 서있었고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뭐, 뭐."
"여자들 보다는 남자들한테 더 촉을 세우지. 우리 현이."
"혀, 현이."
아까 기생들한테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저 사람 이름이 현인가.
"본명은 백현, 딱 봐도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 기생이다."
"나, 남자 기생."
"너도 똑같잖아. 아, 아니지. 남자 기생인 척 하는 애랑은 다르겠지."
"이, 이봐요. 난,"
"이제 어떻게 할거야. 너 여기서 일하려면 둘 중에 하나 골라야 해."
"뭐, 뭐를."
"여자, 남자."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하다. 남자, 여자.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니. 나는 입술을 꼭 깨물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기생이란 걸 하기가 싫다.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내가 말이 없자 세훈은 벽에 기댄 채로 고민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반대편 복도를 향해 쭉 걸어갔다.
"어, 어디가는 겁니까!"
"내가 고르게 해줄게."
"예?"
"지금은 남자인 모습이니까, 여자인 모습도 봐야 하잖아."
세훈은 계속 쭉 걸어가더니 어느 큰 방 앞에 멈춰섰다. 그리곤 문을 활짝 열어재꼈다. 문이 열리자 보이는 것은 수십명의 여자 기생들. 기생들은 전부 자신의 몸을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어보였다. 여자 기생들은 세훈의 등장에 하나같이 들고 있던 분이나 빗들을 내려놓고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머! 세화가 봤다고 그러던데, 정말이네요!"
"소녀, 요즘 도련님이 안 계셔서 너무 심심했사옵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못했는데, 오늘 낮부터라도 즐기시렵니까?"
기생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절로 얼굴이 붉혀졌다. 악착같이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세훈은 기생들의 말에 그저 웃음으로 넘기며 나를 그 기생들 사이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나를 받아든 기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훈을 바라보았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희처럼 만들어 놔. 누구든 홀딱 반할 모습으로. 씻는건 얘 혼자하라고 하고, 준비 다 시켰으면 형네 방으로 들여보내."
"아, 아니 잠깐! 이보시오!"
"그럼 잘 해봐. 비야."
세훈은 야실스럽게 미소를 짓고는 문을 다시 닫아버리고 말았다. 나는 절망스러운 눈으로 세훈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나를 어쩔 셈이냐.
그 중 한 기생이 내게 얼굴을 가까이 하고는 활짝 미소를 지었고, 다른 기생들도 모두 소녀들 처럼 좋아하 하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어머, 나 이런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
"얘 남자 맞지? 그럼 여장을 시키란 말인가?"
"비라고 했나? 우리가 예쁘게, 정말 예쁘게 만들어 줄게!"
그렇게 기생들의 놀이가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