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一 切 唯 心 造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쏘크라테스
10
눈이 동그란 사내가 나타났다
나를 덮치듯 올라탄 찬열의 품에서 옅은 술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이 새끼, 이거 취했구만. 나는 있는 힘껏 찬열을 밀어내버리고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찬열은 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내 팔을 억세게 잡아버리고 말았다. 역시 사내라 그런지 손아귀 힘이 강했다.
"이거 놔."
"너 정체가 뭐냐니까."
"남자야. 보시다시피 남자라고."
"내 눈에 넌 남자 아니야."
고집있게 몰아세우는 찬열은 아까 전부터 내 눈을 계속 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나를 남자라고 속일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나는 찬열의 반대쪽 손목을 잡아 내 가슴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찬열이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찬열의 손목을 움직이며 내 가슴 위를 매만지게 했고 내 행동의 찬열의 귀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너, 너 뭐하는 거야!"
"뭐 느껴지는 거 있어? 없잖아. 남자 새끼라는 게 여자처럼 가슴이라도 있음 큰일이잖아."
"너 여자 맞잖아."
"이렇게 만져 놓고도 모르겠어? 나 여자 아니야. 나 남자니까 개처럼 부려 먹어도 돼. 너 마음대로 쓰다가 버려도 나 괜찮아."
"야."
"그러니까 버릴려면 좀 빨리 버려줘."
저 정도 말해놨으면 좀 알아 듣겠지.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뒤를 돌아 문을 향해 갔다. 아, 맞다. 까먹고 있었다.
"야, 포주."
"뭐, 포주? 도련님이라고 불러! 다른 애들 그렇게 부르는 거 못 들었어?"
"나 현이라는 애랑 같이 방 못 쓰겠어. 헛간에서 자도 괜찮으니까 방 옮겨줘."
"그건 안돼."
"왜! 걔가 나 보면 진저리를 쳐. 아까도 쫒겨났단 말이야."
"알아서 친해져. 내가 그런 것 까지 봐줘야 돼?"
"아오, 도움되는 게 하나도 없어."
찬열은 피곤한지 자신이 아까 누웠던 곳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고, 나는 그런 찬열에게 욕을 해줄까 하다가 도로 방을 나와버렸다. 아까 찬열에게 잡힌 손목을 보니 금세 빨갛게 부어버리고 말았다. 아이씨, 무식하게 힘만 세가지고. 나는 방을 나와 무작정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복도는 얼마나 길고 넓은 건지 아무리 걸어도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나오지 않는다. 어딜 들어가야 출구가 나올까, 하다가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곳을 좀 더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여긴 어디야, 방 이곳저곳을 문 열어 보고 찾아보고 하니 이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 어쩌면 좋지. 되돌아갈 길을 찾지 못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나가는 기생도 보이지 않고, 머리장식도 무거워 더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결국 머리를 고정시키던 장식을 빼고, 다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나 지나가라, 하는 마음으로 이젠 사람을 찾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 사람인가."
빛에 따라 그림자가 지고 사내인지 갓을 쓴 모양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달려 그 사내의 앞에 섰다. 그 사내는 짙은 파란색과 하늘색이 조화롭게 어울러진 비단 옷을 입은 뭐랄까 눈이 큰 사내였다. 왜 여긴 잘생긴 사내들 밖에 없는 건지, 뭐든 심장에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길을 찾아야 하는 게 우선이니. 나는 그 사내의 손을 덥썩 잡고는 다짜고짜 길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사내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말을 더듬거리며 이곳저곳을 손짓하기 시작했다.
"저, 저기로 가면 곳간이 나오고 저곳으로 가면 몸을 씻을 수 있는 욕실이 나오는데."
"아 그게 이 곳을 나가는 문은 어디있습니까?"
"나가는 문... 저 혹, 찬열에게 끌려 오셨습니까?"
잠깐. 이 곳 지리를 잘 알고 잇고, 찬열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설마 찬열의 한 패인가. 나는 사내를 잡고 있던 손을 급하게 떼어놓고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이곳을 나가야 한다. 지금 기회는 찬열과 세훈이 없을 지금 뿐이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가는 문이라 하면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
"아, 아닙니다! 그냥 가보겠습니다! 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열의 주변에는 저리 친절한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다. 이 곳에 오고 줄곤 사기만 당했으니 이젠 믿을 것이라고는 나 뿐이다. 나는 급하게 사내의 곁을 지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서 이곳을 나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