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왠지 눈을 마주치기 싫은 기분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엑셀과 한없이 가까워지며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영희 씨가 내 옆구리를 연신 찌르기 시작했다.
"별빛씨, 뭐 해? 인사 안 해? 신입 왔잖아. 그렇게 좋아하더니 갑자기 왜 그래?"
아 나는 그 한마디에 내가 미리 하지 못한 행동에 후회했다. 안타깝지만 이제 당신도 김미영 씨처럼 스팸을 먹어줘야겠어. 결국 나는 이러지도 못하다가 어정쩡하게 고개를 들어 학연 선배, 아니 학연 씨와 눈을 마주치곤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김별빛 사원입니다. 사실 반갑긴 개뿔 군대로 다시 말뚝을 박아줄 뻔했다. 사실 난 그쪽이 바람과 함께 사라져줬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도 잠시 눈이 커지더니 반갑다는 듯이 날 꽉 안아버린 시커먼 존재에 의해 나는 미친 듯이 발광하는 LED가 되어볼 수 있었다. 엄마 BB크림 말고 차학연을 사주셨어야죠. 제가 보장합니다 효과 100% 하하하하.
"어? 김별빛! 너 맞지? 뭐야 너 여기서 일 해? 잘됐다. 앞으로 잘 부탁해."
잘 부탁하긴요. 오히려 제가 신세를 질 예정인걸요. 앞으로 제 전용 BB크림이십니다. 박수를 쳐줍시다. 왠지 내일은 민낯으로 출근해볼까 하는 근자감도 생겼다가 옆에 서있던 팀장님 피부가 내 온몸을 후드리찹찹 때려주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도 잠시 왠지 모르게 며칠 동안 양치를 못한듯한 찜찜한 표정의 팀장님에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또 했을까 하고 이경규도 이겨낼 듯이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차학연 씨, 김별빛씨랑 아는 사이 신가 보네요. 그렇지만 회사인 만큼 호칭은 준수해주시길 바라요. 엄연히 상사니까요. 아, 그리고 이제 그만 좀 안고 계시죠. 다들 보고 계시는데."
그제야 차학연은 나에게서 BB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뒷말에 더 날카로운 눈빛을 지었던 팀장님 같아서 살짝 의아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며 그냥 내 BB에게 어색한 인사를 다시 한 번 할 뿐이었다. 앞으로의 내 생활이 왠지 모르게 예상이 되어서 내가 웬만해서 눈물이 잘 안 나는 사람인데 눈물이 날 뻔 했다. 더군다나 재밌는 놀잇감을 찾았다는 듯이 팀장님을 한 번 나를 한 번 훑어보는 차학연의 행동에 왠지 모르게 더더욱 불안해져갔다.
"그럼 차학연 씨는 김영희 씨가 맡아주시죠."
나는 그 말에 놀라면서도 빙하기에 잠들어난 둘리가 깨어난 세월 정도로 오랜만에 팀장님이 정말 예뻐 보였다. 보통 신입이 들어오면 바로 윗사람이 맡아주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내가 절할 곳은 치느님이 아니라 여기였던 것일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엑셀과 깊은 교감을 가지려 자리에 앉으려는데 갑자기 토르가 달려나와서 내 귓방망이를 망치로 때려주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저는 김별빛 사원님이 제 사수였으면 좋겠는데 안될까요?"
입 닥쳐 말포이. 왠지 모르게 해리 포터의 명대사 중 명대사인 저 한마디가 떠올랐다. 입 닥쳐 차학연. 하지만 그 말에 왠지 모르게 정택운 팀장의 피부 빛이 잠시 차학연 같았던 건 내 착각이라 믿어야겠지? 아무래도 조만간 필시 안과 예약을 해야겠다. 거기다 거들떠서 옆자리에 앉은 영희 씨까지 통스팸이 아직 입안에 들어가지 못한 건지 입을 열었다.
"맞아요, 팀장님! 보통 바로 윗사람이 해줘야죠. 그런건! 그럼 별빛 씨가 조금만 더 수고해줘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수고하라는 영희 씨의 말에 나는 고삼에도 못 마셔본 고삼차를 한 사발 드링킹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영희 씨 내 어깨를 봐! 탈골됐잖아! 이이상 수고를 더하라니 당신에겐 통스팸으론 왠지 부족할 것만 같다.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팀장님을 쳐다보려던 순간 나온 말에 나는 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피부색은 차학연 BB크림으로도 소생이 불가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 말을 마친 팀장은 왠지 모르게 관리 안 되는 표정으로 팀장실로 시크 도도하게 걸어들어갔다. 팀장님이 팀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차학연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터지면 초코우유가 나올 듯이 볼을 빵빵하게 만들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진심으로 터트려보고 싶었다. 커피우유일까 초코우유일까. 어쩌면 원유가 터질지도 몰랐다. 나는야 별수르. 이 회사도 내가 차지하겠어. 하하하. 그런 넋 나간 생각도 잠시 나에게 말하는 BB크림에 의해 나는 정신을 차렸다.
"넌 여전히 눈치없구나?"
이런 옘병, 오랜만에 만난 인사치곤 정말 정겹구나. 갑자기 사수로서의 의지가 미친 듯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이 회사에 이런 열정이 있었다니 엄마가 알면 일시불로 차학연 BB 백 개는 긁어줄 것만 같았다. 내가 사수니까 말을 놓아도 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내 뇌는 필터링이란 걸 모른다는 듯이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차학연 씨, 여긴 대학이 아니라 직장이니까 존댓말 쓰셔야죠. 그리고 난 상사니까 반말해도 되고. 자리 저쪽이니까 앉아서 일단 정리부터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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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늦었네요. 그리고 맞습니다. 정팀장 지금 질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