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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사막

w.그라탕

 

 

06.

 

다행인지 불행인지 성규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항상 웃고, 가끔씩 농담도 하고, 작업을 할때는 열심히 하는 예전의 성규로 돌아왔다.

그의 눈은 더욱더 초롱초롱해지고 빈틈이 없어졌다. 항상 바쁘게 움직였고 잠시만이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잠시 뭘하나 싶어 돌아보면 항상 그의 실험에만 몰두해있었다.

"성규야."

"네?"

역시나 자신의 일에 몰두해있자 소장이 그를 불렀다.

그러나 성규는 여전히 실험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절대 고개는 들지 않았다. 소장은 성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좀 쉬지 그래?"

갈색의 조그마한 머리통이 보였다. 가지런히 정리된 머리카락. 주인을 닮았나. 소장은 웃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흐트렸다.

"아- 왜 그래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소장의 손을 밀어낸 성규.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어쭈, 이것봐라? 소장은 한번 더 장난을 시도했다.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흩날렸다.

"아- 왜그래요! 미쳤어요? 늙어서 그래요?"

그렇게 심심하세요? 다다다 말을 쏟아낸 성규가 소장을 쏘아봤다. 그리고 아무말없이 자신의 머리칼들을 정리했다. 몇번이나 쓸어올렸는데도 아까전의 깔끔한 상태가 되지 않자

짜증스럽게 손을 내렸다.

"저 지금 중요한 작업중이니깐 건들지 좀 마세요."

"무슨 작업인데? 새로운 소재 개발?"

"아니오"

"방어능력 향상 시스템 수정중이야?"

"아니오."

그건 옛저녁에 수정했습니다만. 성규가 짧게 대답했다. 그런 성규를 보고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왜 이렇게 새침하니? 소장이 익살스럽게 얘기하자 성규가 고개를 들었다.

"안 새침하거든요?"

새침하구만! 소장이 그를 비웃었다. 성규가 좋그맣게 씩씩거리자 소장은 그의 곁에서 물러났다.

"그래.그래. 우리 성규는 로보트만큼 씩씩하고 일도잘하고- 영리하고- 버릇도 없고-"

"아, 진짜!"

그만하라는 듯 인상을 확 찌푸리자 그제사 소장이 장난을 그만두었다. 그는 성규의 뒤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았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는 성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장은 시선을 그에게 한번, 작업중인 그의 손에 한번, 그의 뒷통수에 한번, 주기적으로 옮겼다.

째깍째깍 시곗바늘 움직이는 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성규의 작은 숨소리. 고요한 분위기에 소장의 눈이 저절로 내려갔다.

"소장님."

눈을 감은채 대답했다. 응-. 여전히 시곗바늘 소리만 들려왔다. 언제쯤 말하려나. 소장은 가만히 기다렸다.

"저 어쩌면.."

"음."

"다른 곳으로 갈수도 있어요."

"다른 곳?"

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른곳? 어디? 소장이 상체를 성규쪽으로 기울였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주먹을 말아 올린채 성규를 쳐다봤다.

"자세한 얘기 좀 해봐."

하지만 묵묵부답. 뭔가 심술이라도 났나, 성규는 계속해서 손은 쉬지 않았다.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일때마다 그의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들도 흔들렸다.

다했다. 짧게 말을 뱉은 성규가 손바닥을 쳤다. 그의 앞에 완성된 조그만 기계. 네모난 기계는 은은한 빛을 뿜으며 얌전히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그것을 몇초 동안 보던 성규는 소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소장님.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게 있어요."

"마지막? "

"..... 소장님은 기계들의 편이에요? 아니면 인간들의 편이에요?"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소장에게는 쉬웠다.

"중립."

"중립이요?"

성규의 눈이 약간 동그래졌다. 그는 제정신이냐는 듯한 얼굴로 소장에게 웃어보였다.

"그러면 왜 여기계세요? 기계들을 위해서?"

"그들이 나를 여기로 끌고왔으니깐. 하지만 난 중립이야."

그의 말을 골똘히 다시금 생각한 성규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그의 눈이 또르르 굴러갔다.

"너는?"

소장의 말에 그가 손가락을 입술에서 떼내었다.

"저요?"

당연한 걸 왜 물어요? 씨익 웃으며 대답하자 소장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장의 눈길이 성규의 손목으로 향했다. 붉은빛을 내는 글자가 손목에 박혀있었다.

이성규[72]

씁쓸하다. 소장은 주름이 깊게 패인 손을 들어 성규의 손목을 감싸쥐었다. 그런 행동을 말없이 본 성규가 입을 열었다.

"소장님."

"음?"

"저는 '컴퓨터'에 관한 조사를 많이 했어요."

"...."

"사실 저희가 여기 온 이유도 그것때문이잖아요.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그렇지."

"근데요."

성규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곧 흐린 천이 눈동자를 덮었다. 더이상 빛은 보이지 않았다.

"제가 그걸 고쳐내는 방법을 찾았어요."

소장의 눈이 흔들렸다. 그 말은 즉 '그것'을 찾으러 이 곳에서 떠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게 어디있는지는 알아?"

'컴퓨터'가 있는 곳. 정확히 '컴퓨터'가 갇혀진 곳. 그곳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기계들도 몰랐다. 그들은 갇혀진 컴퓨터를 찾기위해 몇년동안이나 전쟁을 펼친것이었다.

누군가가 '컴퓨터'를 파괴하려고 시도하다 실패하자, 그것을 가두어버렸고, 그것에 대한 기계들의 반발로 인해서 이런 거지같은 전쟁이 이어져왔었다.

그 장소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성규가 찾아갈까.

"어디있는지 알아요."

"니가 어떻게?"

"탐지기계를 만들었거든요. 그것만 있으면 돼요."

"너무 위험해."

"이미 다 말했어요. 위에 다 통보해놨어요. 그들도 저에게 허락했어요."

"하지만 바깥은 아직 전쟁중이야. 굉장히 위험해."

"괜찮아요."

"아니야, 정말 위험해! 니가 여기로 들어온 이후로 세상이 많이 변해버렸어. 짐승같은 곳이야. 지옥이야. 나가면 위험해."

"괜찮아요."


성규는 단호했다.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는 나갈거에요. 그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일어섰다. 자신이 만들어낸 기계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복도로 이어진 문으로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던 소장도 일어섰다.

"정말 가지마라. 니가 감당할수 없어."

멈칫. 벽에 매달린 페이스를 누르려던 성규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는 살짝 뒤돌았다. 머리가 반쯤 희어진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감당할수 있어요."

제 실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아요. 성규가 당당하게 말하자 소장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결과가 실패할수도 있어. 굉장히 쉽지 않아."

"저는 할수 있어요."

"그 '컴퓨터'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아나?"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성규가 당황했다. 그런것은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컴퓨터'가 만들어졌다고? 원래 존재했던게 아닌가. 성규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컴퓨터'와 인간이 손을 잡고 세상을 이끌어가다 누군가 그것을 파괴하려고 시도해서 인간과 기계문명사이의 틀이 깨져버렸다, 성규가 알고있는 바였다.

"'박사'가 그걸 만들었지."

'박사'? 성규는 그가 누구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하니 그의 뇌 저 깊숙한 곳에 있던 기억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

자신의 삼촌! 자신이 존경하던 삼촌이였다. 그 분이 만들어내셨다고? 성규는 점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걸 파괴하려고 한사람도 그야. 내가 알아. 내가 그 사람의 옆에 있었거든."

"?"

소장님이? 믿기지 않은 듯 성규가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삼촌의 옆에서 같이 일을 했다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성규는 할말을 잃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 성규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왜 아까 너의 질문에 '중립'이라고 한줄 아나?"

"...."

"이 전쟁에는 참여의 의미가 없어! 어느 편에 선다 라는 의미가 없어! 다 헛수고거든. 잘난 그 '박사'는 세상을 이끌어가기위해 '컴퓨터'를 개발했지. 생명도 불어넣었어.

 하지만 자신보다 점점 더 대단해지는 '컴퓨터'의 모습을 보고 박사는 그것을 파괴하려고 했어. 결론은? 실패지. 완전한 파괴는 되지 않았거든. 하지만 또 성공은 했어.

 작동이 멈춰버린거야. 그대로 꺼져버린 컴퓨터를 그는 자신만이 아는 곳에 처박아버렸어. 그 후로 전쟁이 발발한거야. 기계들이 분노한거지.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의 왕을 왕좌의 자리에서

 밀쳐버린거랑 똑같아."

"..........."

"똑똑히 봐라! 이 전쟁은 그냥 아무 쓸모없는 거야. 절대로 끝나지도 않을거고 절대로 아무런 뜻도 없어. '박사'는 자신을 향한 기계들의 분노를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라는 말도 안되는

 상황으로 이끌고 나갔어. 그래서 이 곳까지 온거야. 영리한 박사는 그렇게 사람들을 속였고 멍천한 기계들은 끊임없이 달려들었지.

 그게 내가 '중립'인 이유야. 여기에 서나 저기에 서나 쓸모가 없었거든."

".................."

"기계들이 너를 포함한 많은 천재들을 데려온 이유도 바로 그것때문이야. 저항할 '머리'를 찾으려고. 똑똑한 사람을 찾으려고. 그래서 이렇게 된거야."

"그러면 소장님은 누구의 편입니까?"

흥분해 소리를 지르는 소장의 모습에 성규가 입을 열었다. 그는 빠르게 소장의 말을 머리에 집어넣었다. 소장은 얼굴이 벌건상태로 대답했다.

"'중립'이라고 내가 얘기하지 않았나?"

"중립의 뜻이 뭐죠? 소장님이 말하는 중립의 뜻이 무엇이죠? 소장님이 아까 하시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소장님은 중립이 아니던데요?"

"...뭐라고?"

"기계를 이끌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편에 서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그게 소장님이 말하시는 중립입니까?"

"......."

"참 대단하시네요. 저는 소장님을 이때까지 굉장히 좋게 봐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소장님의 말을 들으니 굉장히 기가차네요."

성규가 차갑게 내뱉었다. 그가 천천히 소장에게 다가섰다. 볼수 없었던 성규의 차가운 얼굴에 소장이 뒷걸음질쳤다.

"중립? 그것 참 멋있는 말입니다. 참 멋있는 변명이네요. 이런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소장님이 택한게 바로 중립입니까? 제가 봤을 때는 소장님은 그냥 어린아이입니다.

 허세만 가득한 사람이라구요. 이도 저도 아닌거에요. 이곳에 끼나 저곳에 끼나 어차피 피해보는데 그냥 가만히 있는게 낫겠지, 이런 생각아니세요?

 그리고 여기에 가만히 처박혀서 그 상황만 바라볼뿐이죠. 하지만 자신이 있는 곳은 수많은 기계들이 존재하는 곳이니 그들을 살짝 살짝 도와줬겠죠. 목숨이 아까워서."

".............."

"'중립'?"

"...."

"그러면 소장님은 저와 위치가 다르네요. 저는 기계들의 손을 들어줄겁니다. 망할 이 전쟁을 끝낼거에요. 소장님은 그냥 멀리서 구경만 하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중립이라고 변명만 해대세요."

"나는... 나는..!"

"틀렸습니까, 제말? 소장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셨는데 이제 보니 그냥 '방관자'네요. 몸이 그렇게 말해주네요. 기계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몸이 '중립'이라고 외치고 있으시네요."

충격. 성규의 말이 가슴을 후벼팠다. 갑자기 온 몸에 누군가 불을 지핀것처럼 뜨거워졌다.

"내 말은 그저.... 이 전쟁은 아무 쓸모도 없고... 그런 전쟁을 위해서 네가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거다."

"왜죠?"

왜 제가 전쟁에 나서면 안되는거죠? 성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 네가 다칠까봐서. 혹시나 이상이 생길까봐."

"제가요? 제가 다칠까봐 나가지 말라고 하신겁니까?"

"너는 몇년동안 외롭게 갇혀있던 나에게 온 말동무야. 친구였고, 아들이였다. 그래서 그렇게 너를 아낀거였어. 나는 네가 너무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이 전쟁은 어차피 끝나지 않을거야. 그런 불덩이 같은 상황에 네가 끼어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찾아온 침묵. 소장은 간절하게 성규를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성규의 손에 들린 그 기계를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싶었다.

사실이였다. 소장은 이 전쟁에 시선을 둔게 아니었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성규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상처를 받아 어딘가 항상 슬펐던 눈. 그것을 위로해주고 싶었고

자신도 위로받고 싶었다. 기계문명에 목매어 자신의 몸을 이렇게 바꿨던 자신. 그리고 기계들 사이로 뛰어들어와 그들을 도와주다 나중에서야 깨닫고서는 그는 후회했다.

인간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그리고선 끊임없이 물어봤다. 나는 누구지.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전쟁에 손을 떼었고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었다.

그저 목숨은 부지해야 했기에 기계들을 도와주었고, 또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괴로워했다. 자신의 모습이 실패자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인간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자신의 모습에 그 누구의 편에도 들지 못했으나, 목숨이 아까워 기계를 도와주는 자신의 모습에 한번 실망.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에 '과학자'라는 칭호를 달고도 전쟁에 방관하는 자신의 모습에 두번 실망.

그는 그렇게 썩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성규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희망으로 여기게 되었다. 일부러 자신에 대한 고뇌를 잊기 위해 성규에게로 신경을 바꿨다.

그런 상황에서 성규가 기계의 편을 들어 전쟁에 뛰어들려는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혹시나 자신의 모습처럼 될까봐, 상처를 입을까봐 겁이났다.

그래서 그를 말린것이였다.


가만히 있던 성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채 소장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여전히 웃은채로.

"확실하네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

"소장님과 저의 차이를요."

"차이?"

"소장님도 어쩔수없는 '인간'이셨네요. 전에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더럽고 유치한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고."

뚝. 성규가 웃음을 멈췄다. 일직선을 그은 그의 입술과 눈이 차가웠다.

"저를 아들로 여기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만..." 성규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저는 한번도 소장님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의 '관계'라고 생각했을 뿐이죠. 저에게는 가족따위도 없고, 그런건 앞으로도 없습니다."

성규가 자신의 기계를 내려보았다. 여전히 은빛을 미세하게 내미는 기계를 한번 바라보고 소장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주 작고 늙은 인간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사람.

"항상 제가 웃고 있어서 착각하셨나본데요, 저는 단한번도 '웃은'적 없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여기를 떠나서 기계들을 도와줄겁니다.

 지금 소장님의 모습이 죽을때까지도 머리에 남을것같네요. 아무것도 아닌 모습."

그럼 안녕히계세요. 마지막으로 성규가 잔인하게 웃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아- 소장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자신이 생각했던것보다 성규는 강했다. 또 그는 잔인했다. 철저했고, 완벽했다.

'성열'때문에 무너져내린 것을 다시 쓸어모은 성규는 그것을 자신의 몸 위에 덮었고, 완벽한 가면으로 바꾸어버렸다.

그 완벽한 가면을 얻은 성규는 완전히 돌아섰다. 기계에게로. 그렇게 그는 가버렸다.

 

 

*

몇년 후, 성규의 실험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컴퓨터'는 부활했고, 정확히 8일 후에 전쟁이 끝났다. 기계들이 승리를 한것이다.

하지만 인간과의 화해 라는 부질없는 희망은 없어졌다. 그렇게 기계들은 세계를 정복해버렸다.

전쟁이 끝나고 자신들의 세력을 완전하게 넓힌 기계들은 곧 '인간소탕작전'을 펼쳤고 그 작전은 이 실험실로까지 전달되었다.

불필요한 '천재'들을 몰살시켜라. 그것이 그들이 명령이었다. 그 잔인한 작전은 아무런 예고없이 실행되었고, 천재들은 몰살당했다.

기계들을 위해 교육받았던 사람들은 기계들에게 다시 죽임을 당했고, 그들은 한순간에 짓밟히고 말았다. 그들이 수업을 들었던 실험소는 단시간에 폐허가 되버렸고

남은 잔여물들과 건물의 뼈들만이 황량한 곳에 남겨졌다.


그리고 소장도 죽었다. 어차피 기계들에겐 그도 하나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처참하게 죽어버린 소장의 시체는 그의 작업실에서 굴러다녔다. 곧 그곳도 폐허가 되었다.

 


남은 단 하나의 천재, 성규는 살아남았다.

그의 똑똑함이 그를 살렸다. 기계들은 그의 존재를 인정했고 그를 동료로 받아들였다. 그리고선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자신들을 위해 존재해달라 라는 기계들의 말을 그는 기쁘게 받아들였고, 우연찮게 '박사'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그는 자유로워진 몸으로 '박사'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는 그때는 몰랐다.

그 남은 '흔적' 때문에 세상이 바뀌게 되는것을.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괴로워하게 되는것을.

그는 몰랐다.

 

 

 

 


*


밤이다. 쓸쓸한 사막위에 밤이 내렸다. 하지만 저 붉은 사막은 밤에게 잡아먹히지는 않았다. 여전히 사방에 피빛을 뿜으면서 사막은 존재했다.

차가워진 창틀에 손을 얹었다. 자신의 손에까지 붉은 빛이 비추어졌다. 그것을 멍하게 보던 찰나,


"뭐하냐?"


그다. 성열은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창밖의 붉은 기운이 누군가의 얼굴을 덮치고 있었다. 그의 몸도 덮치고 있었다. 천을 걸치지 않은 그의 상체가 붉은 빛을 받았다.

여기저기 난 상처가 잔인하게 패여있었다.


"엘."


성열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엘은 그냥 그를 지나쳤다.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허리에 스쳐오는 따끔한 통증에 엘이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선 자신의 침대로 돌아갔다.

검은색의 넝마같은 천들이 여기저기 걸린 지저분한 검은 침대. 그는 그 침대를 꽤나 좋아했다.

"엘."

"왜-"

저 맥아리 없는 목소리를 엘은 굉장히 싫어했다. 그는 싫고 좋고가 분명했다. 근육이 울퉁불퉁하게 난 자신의 배를 매만지던 엘은 옆에 있던 낡은 주전자를 들어올렸다.

주둥이에 입을 갖다댄 엘은 급하게 물을 삼켰다. 제대로 삼키지 못한 물이 그의 목을 타고 그의 가슴, 그의 배까지 흘러내렸다. 물에선 피비린내가 났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엘은 그 맛을 좋아했다.


"내일 밤이야, 엘."

성열이 다가오는 것을 무시한 채 그는 침대에 누웠다. 어느새 자신의 옆에까지 다가온 성열. 엘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뭐?"

"내일 밤이야, 엘.  약속은 지켜."

"무슨 약속."

"내가 군대를 끌고 나가는거."

아- 엘이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처가 듬성듬성 나있는 그의 배를 쓸어올렸다. 성열은 엘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눈길이 갔다. 그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짐승같은 엘의 몸에 시선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너 같은 약골이 싸움을 하겠다고?"

"어쩔수없잖아."

"하! 머리만 굴린 네가 뭘 하겠니."

"하지만.... 난 꼭 그사람을 구해야 돼."

아, 너의 사랑? 엘이 비웃었다. 그는 어느새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는 성열의 손을 잡았다.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엘의 손에 성열은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 의도를 알아챘다.

엘은 누군가를 올려다보는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는 성열의 손을 거칠게 끌어내렸다. 성열은 엄청난 힘에 휘청거리다 무릎을 꿇었고, 엘은 그 모습에 만족했다.

"몇년이 지났지?"

"...?"

"제발 한번만에 대답해라. 머리도 똑똑한 새끼가 이해를 못해? 니 사랑을 두고 온지 몇년이냐고."

성열은 그의 말에 당황했다. 내 사랑...이 아냐. 내.. 가족이야. 하나밖에 없는 형이라고. 성열이 조그맣게 대답하자 엘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리고 소리쳤다.

"몇 년!!!"

움찔. 강압적인 그의 모습에 성열이 고개를 숙였다.

"....7년."

"7년? 7년이나 버린주제에 뭘 다시 가? 데리고 오려고? 이미 뒈졌을걸."

"아니야... 아니야. 버린게 아냐...."

성열이 고개를 흔들었다. 난 버린게 아냐.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조금더 강하게 키운 후 데리고 나올려 했었다. 물론 7년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버린게 아니라고? 근데 그 새끼는 그렇게 느낄걸? 7년이라니. 버렸네. 확실히 버렸어."

"김명수, 난 버린게 아니야!"

흥분한 성열이 냅다 소리쳤다. 소리 친 후, 성열은 바로 후회했다. 아! 이 주둥이가 문제야. 성열은 급하게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고서 조심스럽게 엘을 쳐다봤다.

짐승같이 어두운 눈이 그의 눈을 뚫고 들어왔다.

"죽고싶어?"

절레절레. 성열이 고개를 흔들었다.

"뒈지고 싶나봐?"

엘이 성열의 목을 움켜잡았다. 얇은 목이 한손에 잡혀왔다. 엘이 성열의 목을 움켜잡은 채 일어났다. 성열은 자신의 다리를 버둥거리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금이 간 벽에 성열을 그대로 박아버렸다. 여전히 목을 잡은채.

"한번만 더 김명수라고 부르면 정말 죽여버릴거야."

끄윽, 끅. 성열이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이 벌개졌다. 엘의 말은 진심이었다. 엘의 손이 그의 목을 더 깊게 조여왔다.

"내가 너를 살려두고 있는건 그냥 단하나야. 네가 '천재'라서. 네가 저 지하실에 있는 새끼들보다 싸움을 잘해? 누구를 잘 죽여?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냥 똑똑해서 살려두고있는거니깐

 알았으면 자꾸 멍청한 짓 하지 말고 닥치고 있어. 이 새끼야."

엘이 성열의 귓가에서 낮게 으르릉거렸다. 그가 이빨을 세우고 성열을 노려봤다. 그리고 말야. 그가 이어말했다.

"그 역겨운 눈 파버리기전에 어떻게 좀 해보지 그래?"

그가 다른 손을 들어올렸다. 뾰족한 손톱이 세워진 손을 성열은 공포에 질린채 쳐다봤다. 엘은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찢어 죽이는것을 좋아했다. 그 광경을 몇번이나 봐온 성열은

그가 손을 들어올릴때면 굉장히 두려워했다.

"그 눈빛말야,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 짝사랑하는 기집년의 눈빛으로 볼때마다,"

너를 찢어 죽이고 싶어. 엘이 다시 강하게 밀어붙였다. 윽. 성열의 입에서 조그만 비명이 흘러나왔다.

"난 남자새끼한텐 취미없어. 니 그 엉덩이 잡고 흔들어 댈 생각없다고."

수치스러운 말에 가슴이 한차례 찢겨나갔다. 성열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본 엘이 또다시 비웃었다.

"그런 약한 모습으로 그 사람을 구한다고? 미안하지만, 넌 절대 못해."

"...."

"그리고 만약 내 부하가 2명 이상 죽는다면."

"...."

"그땐 니가 죽어."

엘이 손을 풀었다. 풀썩. 성열은 떨어지는 낙엽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엘은 그런 그를 흥미없다는 듯 지나쳤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성열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참아내려고 했다. 엘의 말대로 이런 약한 모습으론 절대로 형을 구할수 없었다.

"성규형...."


제발. 제발.


그 자리에 있어줘.


나를 미워해도 되니깐...

 

 

거기에 있어줘.

 

 

 

 

 

 

 

 

-----------------------------------------------------------------------------------

안뇽하세요!

드디어 엘의 등장입니다 야호

제 글을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글을 매일은 못올리게 되었습니다. ㅜ

잉 그래도 분량은 좀 많이 뽑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안뇽

여러분의 댓글이 저한테는 힘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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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그라탕
느엥! 항상감서해염
11년 전
독자2
그대 엿이에요! 명수디게 차갑네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엉어엉ㅇ 서로 오해를 한 성규랑 성열이도 걱정되요ㅠㅠ 아 다음편기대중이에요♥
11년 전
그라탕
ㅋㅋ 기대해주세요!!
11년 전
독자3
밤야입니다ㅎㅎ
규찡ㅠㅠㅠㅠㅠ어여나무만나서 가면을벗으실게요ㅠㅠㅠㅠ 엘명수ㄷㄷ 열이찡한테그르지마!!!!!열아ㅠㅠㅠ왜7년이나ㅠㅠ 같이도망오지ㅠㅠㅠ 규는많이다쳐버렷는데ㅜㅜ 그대 스릉해요ㅎㅎㅎㅎㅎㅎ

11년 전
그라탕
저도ㅠㅠㅠ스릉합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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