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찌질이
w. 9ㅅ9
아침 자습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ㅇㅇ는 언제 엎드려 있었냐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 섰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컴퓨터 앞으로 걸어가 전원을 켰더니 어느새 일어난 정수정이 다가와 ㅇㅇ의 옆에 붙어섰다.
"어제 엠카 봄?"
"ㄴㄴ 빨리 스크린 좀 켜봐. 나 지금 손 떨려..."
수정은 혀를 끌끌 찼다. 어떻게 참았대 독한년. 저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 이었다. 360p로 보는 한이 있어도 빨리 보는 게 낫지.
ㅇㅇ는 떨리는 손으로 유튜브에 접속했다. 검색창에 익숙한 계정의 이름을 입력한 뒤, '150604'로 시작하는 영상을 클릭했다. 물론 톱니바퀴를 눌러 1080p에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ㅇㅇ는 입을 틀어 막으며 스크린 앞으로 향했다.
"세상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눈가가 젖은 것도 같았다. 왜 민석이는 반바지를 입고 있는가. 게다가 저 리본은 뭘까.
"씨발... 저거 모자 뭔데..."
대체 누가 등 뒤에 모자를 걸어준 것일까. 털썩. ㅇㅇ는 무릎을 꿇었다.
손이 두 개 밖에 없는데 무한히 입을 틀어막고 싶어졌다. 민석이의 씹덕 포인트만큼. ㅇㅇ는 팔을 뻗어 옆에 있던 수정의 어깨를 더듬었다.
야 나 죽을 것 같아... 아직 안 돼 민석이 포커스 직캠이 남았다고...!
스크린 속 민석이에 의해 순조롭게 심장이 조져지고 있던 찰나, 복도 쪽 창문으로 ㅇㅇ를 쳐다 보던 누군가가 있었다.
"김ㅇㅇ!"
익숙한 목소리에 ㅇㅇ는 스크린 위로 시선을 고정한 채로 왜, 하고 대답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영상이 끝나고, 그제서야 ㅇㅇ가 고개를 돌려 복도 쪽을 쳐다 보았다. 역시나 박찬열이었다. 어김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거린다. 어 잠깐만,
"야 너 그거 다 뭐야?"
박찬열의 양 팔 가득 무언가가 쌓여있었다. 설마, 했는데...
"ㅇㅇ야 하나 먹을래? 이거 맨날 다 사가서 없는건데,"
"너 이거 누가 시켰어?"
빵이었다. 박찬열은 까딱하면 와르르 쏟아질만큼 빵을 가득 쌓아 들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맨 꼭대기에 턱 하니 올려진 초코에몽 하나.
"또 변백현이야?"
아아니, 박찬열이 여전히 해맑은 웃음을 지은 채 눈알을 데굴거린다.
원래 매점가는 길이었는데 변백이 핫 치아바타 먹고 싶대서 가는 김에 사다주기로 한 건..
"아니 그거 말고 이거 빵 다 몇 갠데, 걔가 이거 다 먹는대?"
"아아, 오세훈이랑 다른 애들 것도 같이 샀어. 변백현이 거스름돈 남은 거 가져도 된대서 초코에몽 샀다 개이득이지 ㅎㅎ"
개이득 같은 소리 한다. 이 새끼를 어쩌면 좋지.
초코에몽 너 먹을래? 박찬열이 뿌듯하다는 듯이 빵더미 꼭대기에 놓여진 초코에몽을 턱 끝으로 가리킨다. 깊은 빡침이 솟아오르고 있었지만, 얘한테 뭐라고 하지 싶었다.
그냥 ㅇㅇ는 수정에게 급하게 소리쳤다. 야 나 잠깐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수정은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 다녀오라며 손을 휘저었다. 지겹지도 않나 저 병신들.
씨발 변백현 어딨어. ㅇㅇ는 쿵쾅거리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뒤에서는 우리반 가는 거야? 하고 빵봉지를 끌어 안은 박찬열이 ㅇㅇ를 쫓아가고 있었다. 2학년 3반 뒷 문 앞에 다다른 ㅇㅇ가 힘차게 문을 열어젖혔다.
쾅, 하고 뒷 문이 열리자 교실 뒤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익숙한 얼굴들이 일제히 ㅇㅇ를 쳐다 보았다.
"아이고 찬열이 어머님 오셨어요~"
어김없이 변백현이 깝죽대기 시작한다. 야 변백현! ㅇㅇ는 척척 걸음을 옮겨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백현의 앞에 섰다.
"야 씨발 내가 얘한테 이런 거 시키지 말랬지. 얘가 니 꼬봉이냐?"
"ㅇㅇ야 아니야, 내가 그냥 가는 길에 사다준 건데,"
"아 좀 가만히 있어 봐 병신아, 니가 존나 병신같이 부탁 들어주니까 자꾸 시켜 먹는 거 잖아!"
"김ㅇㅇ 너무 무섭다ㅠㅠ 우린 그냥 부탁한 건데ㅠ 그치 찬열아ㅠㅜ"
"응, 얘네 진짜 그런 거 아닌.."
"지랄하네 진짜. 한 두번도 아니고 뭐 할 때 마다 박찬열 부려먹으면서 부탁은 무슨 부탁이야, 얘가 맨날 허허거리고 들어주니까 존나 호구로 보이냐?"
아오 썅 진짜 쳐답답. 찬열은 ㅇㅇ가 잔뜩 열이 받은 채 쏘아붙이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아니 ㅇㅇ야 그게 아니라,
"야 됐어. 존나 니 맘대로 해 병신아."
박찬열은 늘 그랬다. 어릴 때 부터 지금까지 쭈욱. 원래 천성이 착한건지 바보 같은건지, 남이 부탁하면 거절도 못하고 싫다고도 못하고. ㅇㅇ는 잘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 부터 찬열과 함께 였는데, 찬열의 그 성격 때문에 본의 아니게 누나이자 엄마 노릇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어릴 때는 말 그대로 어릴 때라 ㅇㅇ가 따라다니며 혼내주기라도 했지, 시간이 지나 자신보다 작던 박찬열이 어느샌가 폭풍 성장을 해 저보다 머리 하나는 거뜬히 차이나게 컸는데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솔직히 좋은 말로 해서 착한 거지, 박찬열은 그냥 찌질했다. 얼굴도 멀쩡하고 허우대도 멀쩡한데, 그냥 찌질이였다. ㅇㅇ는 그것이 답답했다. 아니 일고여덟살짜리 애새끼도 아니고 18살이나 먹은 게 말이 돼? 요새 초딩들도 차라리 센 척을 하면 했지 저렇게 찌질거리지는 않겠다.
방금 같던 상황도 딱히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도 그렇고, 고등학교 올라와서도 그랬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친구라는 새끼들이 꼬봉부리듯이 묘하게 부려먹는 것 이었다. 박찬열의 친구들이 저럴 때 마다 ㅇㅇ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오지랖인 건 맞는데 박찬열맘으로서 가마니처럼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금처럼 대놓고 지랄을 해 왔지. 씨발 무슨 빵셔틀도 아니고.
ㅇㅇ가 마찬가지로 쿵쿵거리며 찬열의 반을 나섰다. 아 존나 빡쳐!
민석이가 아름답게 조지던 심장을 변백현이 분노로 조져놨다. 개새끼. 이젠 저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될 대로 되라지. 해를 거듭해도 바뀌지 않는 찌질이 새끼는 아무래도 쭉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이것도 한 두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지만. 곧 있으면 또 찔찔거리면서 ㅇㅇ야, 화났어? 하고 제 교실로 찾아올 것 이었다.
후, 진정하자. 빨리 제 반으로 돌아가 민석이 포커스 직캠을 보며 가라앉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정말 이젠 박찬열 신경도 안 써야지. 이러다 홧병나서 뒤질 수는 없었다. 민석이 때문에 씹덕사로 죽으면 모를까.
*
처음에는 ㅇㅇ를 불렀지만 들은 척도 안 하는 ㅇㅇ에 울상을 지으며 지나가던 다른 아이를 불러 교과서를 빌린다. 사실 ㅇㅇ의 반 아이들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말마따나 한 두번이어야지. 수정은 마찬가지로 혀를 끌끌 찼다. 진짜 지랄이다.
박찬열은 누가 봐도 이 쪽을 보는 걸 티내면서 안 그런 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눈을 열심히도 굴린다. ㅇㅇ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말을 더듬는다. 다, 다음 시간이 뭐더라? 손에 방금 빌린 한국 지리 교과서 들고 저러는거다. 벌써 3교시 째 쉬는 시간마다 뒷 문 앞에 망충하게 서 있는 박찬열을 보고 수정이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야 쟤 좀 어떻게 해 봐. 너 아까 화장실 갔을 때 계속 나 쳐다본단 말이야.
정말 이번엔 기분을 풀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지금도 봐라, 계속 저러고 서 있기만 하지 말도 못 걸잖아 찌질이가.
결국 4교시 종이 쳤다. 또 이따 점심 먹으러 갈 때 되면 졸졸 따라 와서 ㅇㅇ야, 화 풀면 안 돼? 이러고 말겠지. 그리고 집에 같이 가겠지.
"ㅇㅇ야, 화 풀면 안 돼?"
"아니, 그런데 진짜 걔네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야, 김ㅇㅇ."
김종인이다. 생각해보니 어제 카톡으로 점심시간에 밥 같이 먹기로 했었지. 김종인과 ㅇㅇ는 같은 동아리였다. 올해 2학년 올라오면서 종인이 부장, ㅇㅇ가 차장을 맡게 되었는데, 같은 동아리였어도 원래 별로 말도 안 섞어본 사이었지만 나란히 부장 차장이 되면서 나름 친해지게 되었다. 작년과 다르게 선배들 없이 저들끼리 준비해야 하는거라 종인과 ㅇㅇ는 얼마 전 부터 카톡으로 간간히 축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이번 주 동아리 활동 전에 축제 때 어떤 컨셉으로 할지 미리 오늘 상의 좀 해보자며 약속을 했던 것 이었다.
"나 저 쪽에 앉아 있는다."
"어 밥 받아서 그 쪽으로 갈게."
"나 쟤랑 얘기해야 되니까 너는 너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어 ㅎㅎ"
마침 이 쪽을 보고 변백현 무리가 손짓하고 있었다. 지들끼리 오오, 어쩌구 한다. 나 간다.
ㅇㅇ는 그대로 뒤돌아서 배식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팔이 확 붙잡혔다.
"쟤랑 뭔 얘기 하는데."
깜짝아. 그냥 잡힌 팔을 털어 버리려고 했더니 뭘 먹은 건지 박찬열 손아귀 힘이 꽤 세다.
"뭐냐니까."
갑자기 눈빛이 진지하다. 뭐야 얘 갑자기 왜 이래.
끝까지 대답은 안하고 다시 손목을 떨어내는데 커다란 손이 풀어진 생각을 않는다. 야 좀 놔.
"하하 찬열아 밥 같이 먹자니까 왜 여기있어 ~"
어느새 변백현이 식판을 들고 박찬열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어 오세훈까지 합세해 박찬열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 백현이 얍, 하고 ㅇㅇ의 손목을 잡은 찬열의 손을 끊어냈다. ㅇㅇ가 둘을 향해 대놓고 인상을 쓰고는 다시 뒤를 돌아 종인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쟤네 너 친구들 아니야?"
테이블에 식판을 놓고 앉았더니 김종인이 바로 앞, 그러니까 마주보고 있는 ㅇㅇ의 등 뒤를 보며 묻는다. ㅇㅇ는 고개를 돌려 흘끗 뒷 쪽을 보았다.
두 개 떨어진 테이블에 박찬열이 앉아 있었다.
"..."
이젠 눈치 보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거지. 박찬열의 양 옆과 앞에 앉은 변백현과 오세훈 또한 이 쪽을 보더니 저 들끼리 뭐라고 쑥덕대는 거다. ㅇㅇ는 그냥 무시하고 다시 종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ㄴㄴ 그냥 신경 안 써도 돼.
여튼 내가 축제 컨셉 생각을 해둔 게 있는데.."
김종인이 입을 우물거리며 계속 말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길래 ㅇㅇ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 앨리스 어때? 막 부실에 나무 같은 거 만들어 붙이고 숲 같이 만들면 이쁠 것 같은데..."
"앨리스? 그거 책 아니야?"
"ㅇㅇ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 막 토끼랑 모자장수랑 카드병정이랑, 쌍둥이도 있고... 애들이 하나씩 맡아서 하면 괜찮지 않아?"
ㅇㅇ의 머릿속으로 아까 자신을 조져놨던 모자 장수 민석이가 스쳐갔다.
김종인이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말한다.
글쎄, 나 그 책 잘 몰라서. 그냥 이름만 들어본 것 같은데,
ㅇㅇ는 종인의 말은 귓 등으로도 안 쳐듣고는 나름 최선을 다해 일코를 한다고 생각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잘 하면 특이하고 좋을 것 같아. 막 귀신의 집 이런 건 딴 동아리 애들많이 하잖아."
"그래? 집에 가서 찾아 볼게. 어차피 다른 애들한테도 의견 물어 봐야 될 것 같은데."
ㅎㅎ...민서가 조금만 기다려..!
용건도 끝났겠다, ㅇㅇ는 종인과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를 주고 받으며 남은 급식을 해치웠다. 오늘은 반찬이 별로라 ㅇㅇ는 대충 고기 조각만 줏어먹은 뒤 종인이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렸다.
다 먹었어? 김종인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ㅇㅇ가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득 뒤를 보았다가, 찬열과 눈이 마주쳤다.
"..."
'뭘 봐.'
ㅇㅇ가 입을 크게 벙긋거렸다. 이 쯤 되면 헤헤 거릴 법도 한데 아직도 표정이 뾰루퉁하다. 내가 너무 심했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박찬열맘이라 그런지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는 ㅇㅇ였다. 이따 오면 그냥 못 이기는 척 받아줘야지.
근데 박찬열이 안 오는 거다. 그래서 집에도 혼자 갔다. 쭈뼛거리면서 박찬열네 반으로 갔더니만, 박찬열이 안 보였다. 뒷문에 몸을 반만 내밀고 기웃거리던 ㅇㅇ의 어깨를 누군가 톡톡 건드렸다.
"찬열이 찾아?"
오세훈이 추파춥스를 쪽쪽 거리고 있었다. ㅇㅇ는 가볍게 무시했다.
"헐, 무시하냐. 세니 상처 받음ㅠ"
대충 보니까 가방도 없다. 뭐야 진짜 갔어. ㅇㅇ는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내일 오면 얘기 하지 뭐. 최근엔 이런 적이 없었던 것 같긴 한데, 생각해보니 딱히 심각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 반 애 교과서 돌려주러 올 텐데.
**
정말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8시 20분, 종이 땡 치자 마자 박찬열이 누구 것인지 모를 노트를 달랑거리며 ㅇㅇ의 반으로 찾아 왔기 때문이었다. 평소와 같이 말이다. ㅇㅇ는 찬열을 향해 눈을 한 번 흘겼다. 급식실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동공에 지진이 났다 아주.
"나 아침 안 먹음. 그 핫치아바탄지 뭔지 맛있냐?"
찌질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눈도 크게 뜨고선. ㅇㅇ는 찬열의 교복자락을 붙잡아 끌었다. 너 진짜 애들이 시킨다고 그런 거 하지마.
응응 안 그럴게, 진짜야.
매점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애들이 어제처럼 부탁을 했을 때 어떻게 단호하게 거절할 것인지 자동 브리핑을 하는 박찬열의 말을 대충 듣고 있는데, ㅇㅇ의 시야로 익숙한 뒷모습이 잡혔다.
"김종인!"
동시에 옆에서 ㅇㅇ의 보폭에 맞추어 천천히 걷고 있던 찬열이 돌처럼 멈춰섰다. ㅇㅇ는 고개를 들어 찬열을 올려다 보았다. 야 뭐해 안 가고.
또 어제 그 표정이다. 얘가 진짜 왜 이런대. ㅇㅇ는 한번 더 찬열의 교복 자락을 잡아당겼다. 어느새 다가 온 김종인이 ㅇㅇ의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어제 말한 거 찾아 봤어?"
종인이 어, 하고 대답하고서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입을 벌렸다가, #ㅇㅇ과 찬열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 어디가는 거 아니야? 종인이 찬열의 옆으로 살짝 비켜섰다.
근데 얘도 표정이 묘하다. 뭔가 웃는 건 아닌데, 터질랑 말랑 하는 그런 표정이라 해야 하나. 여하튼 꾹 찌르면 웃겨 죽을 것 법한 얼굴이길래, ㅇㅇ는 어리둥절 했다.
그럼 이따가 점심 시간에 얘기해. 김종인이 오늘은 제 친구들이랑 먹는다길래 ㅇㅇ는 누가 같이 먹어준대? 하며 장난스럽게 응수했다.
김종인이 지나가고 나서 다시 걸으려니까 박찬열이 아직도 망부석이다. 툭툭 치며 안 가냐 물었더니 그제서야 어어, 하며 발을 옮긴다.
그리고 핫치아바타는 맛있었다. 점심시간인데 밥 말고 하나 더 먹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냥 매점갈까. 아니야 돈 냈으니까 먹어야지.
오늘 스파게틴지 뭔지 종이 치자마자 소떼처럼 뛰어가는 애들에 치여 죽을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10분 쯤 뻗대고 있다가, 자고 있던 정수정을 흔들어 깨웠다. 야 빨리 먹고 와서 뮤뱅 다시 보자. 교복 존나 씨발쩐다고ㅠ
"야.... 나 어제 밤에 유툽 들어갔다가 4시에 잤ㅇㅓ.... 오다 빵이나 사다 줘..."
졸음에 잔뜩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수정에게 알았다고 대답한 뒤, ㅇㅇ는 복도로 나갔다. 밤에 미쳤다고 유툽을 왜 들어가 미친년... 잠 다 조질려고..ㅎ
박찬열은 이미 먹었으려나. 생각해보니까 밥 먹자고 올 법도 한데 없네. 조금 한산해진 복도를 따라 쭉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
또 김종인이었다. 너 밥 벌써 먹었어? 김종인은 ㅇㅇ를 발견하자마자 갑자기 아까같은 얼굴을 하고 걸어왔다. ㅇㅇ가 집에 가서 검색은 해봤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ㅇㅇ야." ㅇㅇ의 등 뒤로 커다란 것이 느껴졌다. 길쭉한 팔이 오른쪽 앞으로 뻗어나와 ㅇㅇ의 어깨를 자신의 앞으로 꽉 끌어당겼다. 이내 다른 쪽 팔도 ㅇㅇ의 목 앞으로 둘러졌다. 보나마나 박찬열일게 뻔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헤드락도 아니고 이건 무슨, ㅇㅇ를 뒤에서 보란듯이 끌어안은 찬열이 고개를 살짝 내려 ㅇㅇ의 정수리에 턱을 올려놓았다. 딱이네. "미친, 뭐하냐?" ㅇㅇ가 팔을 휘저으며 찬열을 떼어 내려고 했지만, 어깨 위에 걸쳐져 있던 팔이 내려와 ㅇㅇ를 차렷 자세로 감싸 안은 채 힘을 주었다. 정수리에 콕 눌러놓았던 턱 끝도 이마 바로 위까지 움직여 ㅇㅇ의 머리를 제 쪽으로 꾹 눌렀다. 미친놈아 약 먹었어? 놓으라고! 물론 ㅇㅇ의 버둥거림은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멀대같은 새끼야! 딱 찬열이 머리를 올려놓기 좋은 키인 ㅇㅇ가 힘으로 이겨내기는 불가능했다.
"ㅇㅇ야 너, 혹시 데이터 남아?" "아 왜 시발아, 지금 얘랑 얘기하잖아!" "나 좀 빌려주면 안 돼?" 일단 좀 놔 보라고! ㅇㅇ가 다시 한 번 버둥거렸지만 찬열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얘가 진짜 미쳤나 봐. 찬열의 얼굴을 보려고 해도 머리를 올려놓는 통에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하는 꼴을 보고 있던 김종인이 이제는 웃기 시작한다. 아 쪽팔려, 이게 뭐냐고. 찌질이새끼가 데이터 못 써서 죽는 병에 걸렸나. 그리고 아직 한 주 밖에 안 지났는데 데이터가 왜 필요한걸까. "뭔 데이터야, 존나 지금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다 썼냐?" "아니... 세훈이가 자기 십며칠날 들어온다고 핫스팟 좀 켜달래서," "뭐?" 그래서 핫스팟 켜주느라 다 썼다고?! 으응. 박찬열이 머리 위에서 끄덕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씨발, 오세훈 어딨어. ㅇㅇ는 어쩐지 조금 느슨해진 찬열의 팔을 급히 풀어냈다. 이 병신이! 또 망충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 좀 봐. ㅇㅇ는 여전히 왜 인지 모르겠으나 미친듯이 웃고 있는 종인에게 나중에 얘기하자고 대충 말을 건넨 뒤, 찬열의 반으로 쿵쾅거리며 발을 옮겼다. 말로만 듣던 핫스팟셔틀을, 씨발. *** "와 박찬열 미친 새끼." 세훈은 방금 ㅇㅇ에게 맞아 얼얼한 팔뚝 즈음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진짜 미친새끼. 야 그래 존나 아무리 질투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이건 심했어. 옆에서 백현이 거들었다. 그리고 진짜 핫스팟 갖다썼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씨발... 세훈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존나 빵셔틀도 모자라서 데이터 무제한 쓰는 새끼가 핫스팟 셔틀 행세까지 한대요, 시발. 김ㅇㅇ한테 꼰지를거야. 세니 존나 억울해!
"좀 닥쳐 병신들아." 근데 이 새끼 진짜 변태 아니야? 나 좀 무서움. 찬열은 지랄, 하고 대충 대꾸해 준 뒤, 이미 복도 끄트머리까지 뛰어가버려 조그맣게 보이는 ㅇㅇ를 보며 입꼬리를 당겼다.
아 존나 귀여워서 어떡하지. ------------------------- 제가 저번주에 사실 괴롭혀줘하편를 장장 3시간에 걸쳐서 새벽에 열심히 써놓고 통째로 날렸읍니다 ㅎㅎ 죄송해요.... 기억더듬어서 겨우 쓰고 있긴한데......ㅎㅎ 여툰 사죄의 의미로 썼읍니다... 아마 곧 다쓸거에여... ㅎㅎ...예전부터 쓰고싶었던ㄴ글인데 여주캐릭터 쓸때 민간인사찰좀했어여 ㅋㄷㅋㄷ 사실 찬열이는 찌질이가 아니라 여주한테만 찌질이...! 공지빙자한 주저리에 질문 딱하나달린게 최애질문이길래ㅋㅋㅋㅋ밍쏙..! 암호닉 다음글에 올리게여ㅠㅠ죄송ㅇ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