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7 살짝 흐림
학교 끝나고 집 가는 길에 박찬열이랑 떡볶이 먹으러 갔는데 여주 니가 있어서 깜짝 놀랬어. 옆에 도경수 안보이길래 말걸고 싶었는데 그새끼는 나타나는 타이밍도 참 거지같지.. 어떻게 말 걸어보려는 순간에 딱 나타났냐... 열받았어. 박찬열이 나보고 쫄보라고 계속 놀렸어. 자기는 찐따 주제에.. 아무튼 떡볶이는 맛있게 먹었어?? 거기 살짝 매운데 나는 2단계 밖에 안되도 엄청 맵던데 넌 3단계로 먹더라.. 멋져보였어. 매운거 잘 먹을 줄은 몰랐는데. 너가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해준다면 3단계도 참고 먹어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쿨피스도 종류별로 사줄 수 있는데. 과연 너랑 떡볶이를 같이 먹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오늘은 너무 더웠다. 바깥에 잠시 나갔다 온 것 만으로도 기운이 빠지는 그런 날씨.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체육을 하고왔다. 남자애들은 열심히 손 부채질을 하다 결국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에어컨을 틀었다. 여자애들도 오늘은 덥긴 더웠는지 아무말 하지 않고 조용히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었다. 김여주는 오늘 아침 나눠주었던 유인물을 반으로 접어 부채질을 하다 곧 차가운 바람이 닿자 손에 쥐고 있던 유인물을 책상속에 집어넣었다.
도경수는 세수를 하고 왔는지 얼굴과 손에 물이 흥건한 채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슥슥 하고 김여주의 등에다 손에 있는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 자기 의자 등받이에 걸쳐져 있던 김여주의 회색깔 담요로 얼굴에 아직 남아있는 물기를 닦아내었다. 짜증이 났다. 회색 담요에 도경수 얼굴모양이 찍혀있는 느낌이었다. 김여주는 도경수의 이런 장난에 별 감흥이 없었는지 슬쩍 도경수 얼굴을 쳐다보다가 다음 수업시간 책을 가지러 사물함으로 걸어왔다. 매번 김여주가 사물함 쪽으로 걸어올 때 은근한 시선이 부딫히곤 했다. 아무렇지 않은척 했지만 내가 김여주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박찬열은 내 표정을 바라보며 쫄보라고 한마디 하곤 했다.
“변백현, 창문좀 열어줘”
김여주가 말을 걸었다. 나한테. 내 이름 까지 정확하게 말했다. 내가 혹시 변백현이 아닌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럽게 나에게 말을 건 김여주 때문에 순간 멍해졌다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에어컨 틀었는데?”
“공기가 너무 탁해. 잠깐만 열어줘”
날씨가 더워 에어컨을 끄지는 못하겠고 공기는 탁하고 해서 창문을 열고 싶었나 보다. 나는 살짝 몸을 돌려 창문을 열고 다시 김여주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한 십분 뒤에 다시 닫아줘”
김여주가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마운건지는 알 수 없지만 심장 쪽이 왠지 간질간질 했다.
나는 짧았지만 김여주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에 학교가 끝나는 시간 까지 계속 멍한느낌이었다. 박찬열이 그 순간 반에 없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신못차리는 이유를 박찬열이 알게 된다면 나를 하루종일 놀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박찬열과 나는 애석하게도 집 방향이 같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 뒷동과 앞동이다. 이것은 큰 재앙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박찬열과 함께 하교를 하려는데,
“야 똥백, 오늘 떡볶이 삘이다, 콜?”
“쿨피스 자두맛이랑 복숭아맛 둘다 사주면”
“콜!"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박찬열 말에 흔쾌히 오케이 했다. 학교 앞 떡볶이 집은 매운맛이 1단계부터 5단계 까지있다. 박찬열은 나보다 심한 매운맛 고자다. 쎈척은 오지게 하지만 걔는 솔직히 1단계도 좀 힘들어 한다. 박찬열과 함께 있으면 걔보다는 내가 매운걸 잘 먹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 남자답게 느껴졌다.
“박찬열, 오늘은 2단계다.”
“아.. 무리데스”
“오늘 먹고 뒤지는거야”
“후..그래 남자답게 2단계 조지자”
위풍당당하게 떡볶이 가게에 들어가면서 박찬열은 아줌마에게 ‘아줌마! 오늘은 2단계로 주세여!!!!!’ 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나 역시 당당한 표정으로 들어가다 이미 자리에 앉아 떡볶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김여주와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에 인사를 할까말까 백번을 고민하다, 타이밍을 놓쳤다. 김여주도 딱히 인사하려는 것 같지 않았다. 아쉽긴 했지만 내가 먼저 인사했으면 집에가서 후회할 뻔 했다.
김여주 맞은편엔 당연하게도 도경수가 앉아있었다. 곧이어 아주머니가 김여주네 테이블로 떡볶이를 가져다 주셨다. ‘3단계 맞지?’ 하면서... 순간 위풍당당하게 2단계를 외치던 박찬열이 원망스러웠다.
“똥백, 나 좀 떨려.. 내일 피똥 싸는거 아녀?”
“입닫고 쳐먹어”
“어떻게 입을 닫고 쳐먹을수 있어, 넌 가능해? 한번 보여줘”
“쉿.. 개소리 조금만 작게.."
박찬열과 대화를 하면서도 내 정신은 온통 김여주네 테이블로 가있었다. 도경수랑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듣고 싶은데 애석하게도 웅얼웅얼하는 소리만 들렸다. 김여주는 무려 3단계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별로 매워하지 않았다. 뭔가 멋있었다. 강한 여자 느낌이 풍겼다. 나중에 김여주와 떡볶이를 먹는 다면 내 멋짐을 보여주기 위해선 오늘부터 매운맛 단련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나는 2단계에도 물을 7잔 하고도 쿨피스 자두맛과 복숭아맛을 클리어 했다. 1인2쿨피스.. 박찬열과 나는 이렇게 연약한 존재였다. 스파르타 훈련을 다짐하는 밤이었다.
+변백현 매운거 못먹는 설정 .. 너무 귀여워요.. 제가 썼지만 귀여워 쥬금 ㅜㅜㅜㅜㅜ
저는 이글 쓸때마다 심장이 간질간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