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앞둔 5월
연습실에 성종 홀로 남겨놓고 숙소에 온 5명의 남아들이 말린 오징어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아, 성규는 씻으러 갔으니 4명이. 컴백이 두 달 뒤로 잡혔다. 한 달 조금 더있던 저번 연습기간에 비하면 여유 있는 시간이다. 녹음은 선 공개 발라드 곡을 이미 녹음해 둔 상태이다. 이번엔 군무를 줄이고 좀 더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주자! 라는 주장으로 더 까다롭고 어려워진 안무연습에 그들은 금방 녹초가 되어버렸다. 성열이 씻고 잘까 그냥 잘까 고민하는데 배에 올려둔 핸드폰이 울려댔다. 무시하려 했는데 연이어 2번 더 울리는 핸드폰에 짜증을 내며 팔을 움직여 집어 들었다. 흐느적거리며 확인을 하니 성종이다.
-형
-형형
-성열이형
-왜
-형 나 지금
-똥 싸는데
-연습실에
-휴지가 없어
-그래서
-휴지 하나만
-집어와주라
-사랑해
-♥
사랑해 는 개뿔. 성열이 투덜거리며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휴지 하나를 챙겨 모자를 쓰고 슬리퍼를 대충 신는 성열을 본 우현이 말을 건다.
"어디가."
"연습실."
"핸드폰 안들고가?"
"요 앞인데 뭐."
"아이스크림 사와."
"꺼져."
성열이 발을 직직 끌며 숙소를 나왔다. 멍하니 걸어 연습실의 화장실에 도착해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이성종, 휴지."
"오! 땡큐."
문이 살짝 열리고 손이 하나 나와 휴지를 집어갔다. 곧 변기 물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손을 씻는지 물소리가 들렸다. 연습실 한 면을 채운 거울들에 눈이 갔다. 성열이 모자를 벗고 거울 가까이 가 섰다. 피부가 많이 상했다. 군데군데 난 트러블과 눈 밑에 늘어진 다크서클. 이래도 내가 나름 비주얼인데. 빠져버려 쏙 들어간, 원래 볼살이 있었던 자리를 속상하게 만지작거리던 성열이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응? 손?"
거울의 옆쪽에 손같은게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거울에 붙어있는데 마치 진짜 손처럼 자연스러운 색이었다. 성열이 신기하다는 듯 거울에 달린 손을 조물조물 만져봤다. 진짜 사람의 손인것 처럼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감촉이었다.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본 실리콘인형이 떠올랐다.
"신기하다. 그건가 실리콘?"
아, 죽을 뻔했네.
변기 물을 내린 성종이 손을 씻으며 중얼거렸다. 찬 물에 손을 씻다보니 더워서 세수가 하고 싶고, 세수를 하다 보니 머리가 조금씩 젖는 게 아예 머리도 감고 싶고. 결국 세면대에 머리를 담그고 가만 서서 시원함을 만끽하는데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앍!"
날카로운 소리에 놀란 성종이 고개를 드는데 수도꼭지를 잠시 잊어 머리를 부딪혔다. 그와 동시에 수도꼭지에서 나오던 물이 성종의 머리에 의해 사방으로 폭발하듯 튀었다. 당황한 성종이 버둥거리다 온몸이 젖고 코로 물을 잔뜩 마신 후에야 겨우 물을 잠글 수 있었다. 물로 무거워진 몸을 이끌어 박력 있게 문을 여는데 아까 물을 잔뜩 뿌려 촉촉해진 바닥에 미끄러져 엉덩이를 바닥에 쿵 찍은 성종이 짧게 악! 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앞을 보니 성열의 한쪽 팔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성열은 얼굴이 허옇게 질려 소리를 질러댔다.
"이성조오오오오오오오옹!"
"성열이형!"
성종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아픈 엉덩이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지만 발이 꼬여 한 번 더 넘어졌다. 성종이 계속 쿠당탕거리는 동안 성열의 상반신은 이미 거울 속에 들어가 버려 성열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네 발로 기어가다시피 뛰어간 성종이 급하게 성열의 발이라도 잡았지만 결국 성열은 거울 속으로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성종의 두 손엔 성열의 왼쪽 신발 한 짝만이 남았다. 신발을 던져버린 성종이 성열의 이름을 부르며 거울을 두드려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성종이 구석의 의자를 발견하고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금이 갔다. 옆에 있는 다른 의자를 또 던졌다. 곧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거울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거울이 깨졌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거울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성종이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수많은 거울 파편들이 형광등 빛을 반사해 눈부시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