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꽃이 피는 가학심
붉게 노을 진 하늘, 솔솔 불어오는 여름 바람, 어두운 방안.
왜 그런 말이 있잖아.
여자는 분위기에 취한다고.
그 말 좀 틀린 것 같아.
남자도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것 같은데.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백현이의 약간 벌어진 입술이 꼭 키스해달라는 것처럼 보이니까.
"아가"
"....응"
"키스하고 싶어?"
내 말에 눈이 크게 떠지고는 아랫입술을 깨문다.
백현이가 곤란할 때나 참을 때 하는 습관.
그럼 그렇지.
백현이가 먼저 하고 싶을 리가 없는데 이 나른한 분위기가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다.
나는 너랑 키스하고 싶은데 지금.
역시나 오늘도 내가 억지로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백현이의 목을 한 손으로 끌어당겨 키스하려고 했는데 내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백현이가 그 예쁜 손으로 내 옷깃을 살짝 잡아당겨 두 눈은 꼭 감은 채 서툴게 내게 입술을 맞춘다.
그렇게 살짝 맞췄다가 떨어진 아찔하고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할 것 같은 키스.. 아니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그저 입술에 잠깐 닿았을 뿐인데 이렇게나 떨리고 설레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지나간 건지도 모른 채 백현이를 쳐다보니 귀 끝까지 새빨개져 꼭 토마토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알았다.
진짜 백현이가 내게 입을 맞췄구나.
내가 백현이한테 가 아니라 백현이가 내게 해줬구나.
백현아. 어떡하지?
그 어떤 것보다 제일 두근거렸어.
순간 행복하다는 말이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만큼 설렜어.
"백현아, 또"
이 기분이 사라지지 않게.
행복하다는 감정을 알 수 있게 계속해줘.
계속 내게 입 맞춰줘.
내 말에 약간 망설이는 게 눈에 보여 약간 재촉하듯 손목을 살짝 잡아 내 쪽으로 이끄니 내 가벼운 힘에 스륵하고 끌려와 소파에 앉아있는 내 무릎 위에 옆으로 앉아 내 목에 팔을 두른다.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워왔대.
혹시 오늘 내 심장 터지게 해서 죽일 생각?
부끄러움 많고 겁 많던 백현이는 어디가고 색기가 잔뜩 흐르는 여우 같은 백현이가 온 걸까.
아닌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토마토가 되어서까지 이런 내 말을 들어주는 걸 보니 우리 아가가 맞네.
잠깐 잠깐 맞춰오는 입맞춤을 받아주며 미소 짓다가 머리칼이 내려앉아있는 채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떠서 나를 바라보는데 그 야해보이는 모습에 그 작고 붉은 입술을 가르고 들어가 백현이의 입속을 괴롭혔다.
갑자기 들어온 내 혀에 잠깐 놀라 내 어깨를 밀어내다가 멈추고 어깨를 살짝 잡은 채 내가 움직이는 대로 혀가 따라온다.
언제나 제가 몰아붙이는 대로 끌려다니던 백현이었는데 이렇게나 부끄러워하면서 내 혀를 따라오려고 애쓰는 게 더 예뻤다.
그렇게 입 주위가 타액으로 넘쳤을 때까지 쉬지 않고 키스했다.
중간에 몇 번 내 어깨를 밀어내며 숨을 쉬고 싶다는 표현을 했지만 어째서인지 탐하면 탐할수록 달았다.
그래서 숨도 못 쉬고 버티는 백현이에게 더 집요하고 깊게 키스했다.
백현이는 키스할 때 숨을 뱉는 법을 몰랐다.
숨을 쉴 타이밍을 못 찾는다고 해야 할까.
언제나 힘겹게 내 키스를 받아내곤 했다.
지금도 결국 백현이가 울고 나서야 거칠게 키스하던 걸 멈췄다.
붙어있던 입을 떼니 그제야 숨을 쉬는 듯 가쁜 호흡을 내쉬었다.
어느새 머리칼이 땀으로 젖어 이마에 달라붙었고 그런 백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뒤로 넘겨줬다.
"우리 아가. 오늘따라 나를 왜 이렇게 놀래키지?"
내 질문을 들었음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매일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매일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매일?"
"응. 매일. 앞으로도 쭉"
"...그럼..매일..이렇게 해주면..나 안 버릴 거야...?"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분이 어느새 미안함과 안쓰러움으로 자리 잡았다.
너는 이 순간까지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내가 널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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