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진짜 태형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지?"
하도 들어서 이제 이골이 날 것 같은 질문이다.
"그렇다니까. 나 걔랑 깨벗고 목욕한 사진도 있어 보여줘?"
"..그럼 나 이 것좀 태형이 전해줘."
아주 익숙한 상황이다. 얼굴만 몇번 복도에서 마주친 여자아이가 내민 분홍색 쇼핑백을 받아들었다.
"엉 오늘 집에 갈때 줄게."
"진짜지? 꼭이다? 약속한거야!"
"걱정마 꼭 전해줄게"
-딩동댕동
마침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쳤다. 빠르게 멀어져가는 옆반 여자애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스카치테이프로 꼭 붙여놓은 쇼핑백 안을 살짝 보았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분홍색 박스가 하나 보이고 옆에 편지봉투도 보인다.
이번에는 사귀려나, 여자애 되게 이쁘던데. 하는 생각을 하며 수학책을 꺼내고 봉투는 책상 옆에 잘 놓아두었다.
내나이 열일곱, 김태형과는 태어날때부터 십칠년째 친구다. 그리고 이런 부탁도 십칠년째 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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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햇볓은 따갑게 피부로 내리 꽂혔다. 이런 젠장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 까먹을 놈. 김태형 욕을 꿍얼거리며 아메리카노를 쪽 빨았다. 하얀피부라는 유일한 장점을 지키기 위해 칼같이 부엉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노트북과 컴퓨터 유에스비까지 모두 불살라버리겠다는 김태형의 협박에 못이겨 학교까지 나왔다. 학교를 나온 것도 모자라 이 땡 볕에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있다. 그리고 매우 당연하게도 내 옆에는 태형이 이름이 박힌 카드까지 만들어서 응원을 나온 여자애들 무리가 있다. 나는 학과실에 누군가가 버려 놓고 간 썬캡을 푹 눌러쓰고 구석에 조용히 접어져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고 있었다. 시간아 빨리 가라. 제발.
"꺄아악 태형선배!!!!"
옆에 앉아있던 여자애들이 소리를 지르며 난리가 났다. 김태형이 득점이라도 했나. 반쯤 마신 아메리카노 컵을 흔들며 얼음을 녹이고 있는데, 색다른 수군거림이 귓가로 들린다. 뭐야 뭐야 저 썬캡 아줌마는 누구야? 하는 소리. 썬캡은 난데? 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우리 엄만줄 알았네. 그거 물이야?"
태형이가 있다. 땀에 잔뜩 젖어서 열으로 새빨간 얼굴을 하고서.
"아니 커피-"
말을 끝마칠 새도 없이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뺏어 빨대를 빤다. 그리고 뒤이어서 여자애들의 수군거림도 들려온다.
뭐야 쟤? 저거 같은빨대잖아? 여자친구야? 아줌마아냐? 엄마일걸? 하는 수군거림들.
"너 썬캡 왜 썼어. 얼굴을 내놔야 내가 넌 줄 알아보지."
뭘 알아봐 임마 빨리 꺼지기나 해,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일단 커피부터 빼았았다.
"빨리 꺼져 니 팬클럽 나한테 도끼눈 뜬다고 지금"
"뭐라고?"
내 말을 알아 들었으면서도 일부러 다른 사람들 보란듯이 허리를 숙여 내 얼굴 쪽으로 귀를 가져다 댄다. 옆에서 수군대는 여자애들의 목소리도 더 높아지고, 말도 더 험악해진다.
젠장 넌 사탄이야 김태형
"가서 농구나 열심히 하고 집에가서 디졌어 너."
때마침 삐익, 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김태형이 그 소리에 잠깐 고개를 돌려 뒤를 보더니 다시 나를 본다.
그리고는 얼굴을 다 가리도록 내려놓은 썬캡을 들어올린다.
"이래야 내가 널 알아보지. 이따 보자"
그리고는 뒤 돌아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스탠드에 나만 남겨두고.
아.
김태형 팬클럽으로 추측되는, 나를 잡아먹을 듯이 도끼눈을 뜨고있는 여자애들도 내 옆에 남아있구나.
젠장. 김태형은 악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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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진짜 태형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응"
"진짜? 그렇게 잘생겼는데 한 번도 안 좋아했어?"
"응"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스무살이고, 태형이 1호 팬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여자애와 대담중이다.
반말과 존대가 섞여있는 그 말투가 굉장히 마음에 안들지만, 지금 나는 7대1의 상황이므로 그정도는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기로 한다.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질문에 나는 물고있던 빨대를 놓고, 멀리서 농구코트를 누비고 있는 태형이를 바라보았다.
"뭘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일곱명쯤 되어보이는 여자애들이 저만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농구공에만 정신이 팔린 태형이를 빨대 끝으로 콕 찝었다.
"쟤를 이십년째 매일 보고 있는데. 넌 니 남동생 보면 두근거리냐?"
"돌았어? 그게 말이 돼?"
자기가 태형이 1호 팬이라고 했던 여자아이의 격한 반응에 픽 웃었다.
"내가 딱 그 마음이거든? 쟨 남자가 아니라 내 쌍둥이 남동생이야"
내가 보고있는 그 타이밍에 태형이가 득점을 올렸다.
내 쪽을 바라보더니 팔을 높이 흔든다.
"꺄아아아악 태형오빠!!!"
여자애들 비명소리가 귓가를 쟁쟁 울린다. 나는 다시 빨대를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에 꽂고 썬캡을 눌러 얼굴을 가렸다.
집에가면 디졌어 김태형. 하고 속으로 생각만 했다.
내 나이 스물하나.
내게는 이십년 친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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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시작할 땐 고백하는 부분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또 딱 끊기네요..ㅎㅎ
최대한 빠른 시일내로 올게요.
포인트 꼭 다시받아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