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미로
;[부사]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
'너를 향한 내 마음이, 내 가슴에 차고도 넘치도록 많아서. 나는 그만큼 너를 사랑하고 있어.'
[김태형 빙의글]안다미로 09
눈을 떴는데 어젯밤에 내가 했던 추태들이 모조리 기억난다. 내가 그런 짓을 했는데도 받아주다니 세자는 천사야, 엉엉. 이래서 사람들이 술 마시면 개 된다고 하는 거구나. 여기서 교훈을 얻었으니 한국에 돌아가서는 적당히 마셔야겠당. 한국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조차도 모르는 상황인데. 괜히 한국을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이 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세자도 있고, 나한테 잘해주는 궁궐 사람들도 있고, 또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도 있지만 한국에는, 내가 18년 동안의 추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좀 신기하기도 하고, 또 꿈이든 뭐든 금방 깨서 한국에 가게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반 년이 후딱 지나가버리니 내가 원래 살던 곳이 여기고, 한국이 저 너머의 세계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도 너무 좋지만, 한국이 너무 그립기도 하고.. 아침부터 감수성에 젖어서 한국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나저나 우리 세자는 자는 모습도 존잘이다. 맨날 세자가 먼저 일어나서 단정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모습만 봤었는데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도 있구나. 혼자 킥킥거리며 세자의 볼을 콕콕 찔렀다. 찌를 때마다 으응, 거리며 인상을 찌뿌리는데 존나 별이 저리가라 할 정도의 씹귀다. 다시 세자의 자는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다 새삼 감탄이 나왔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구나, 싶어서. 혼자 흐흥거리다 문 쪽으로 슬쩍 돌아봤다. 아직 새벽이구나. 아직은 어스름한 바깥에 다시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들어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자의 품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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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존나 잘잤다. 눈을 딱 뜨니 세자가 한 쪽 팔로 얼굴을 받치고는 내려다보고 있다. 아침부터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존나 반칙인데~ 내가 헤실거리니 세자도 씩, 웃는다. 잘 잤어? 나긋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속은 괜찮아? 내 배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얘기하는데 존나 오빠미 폭팔이다. 다행히 숙취같은 건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얼른 일어나서 챙기자, 한다. 얼떨결에 세자 손에 끌려 이불 밖으로 나왔는데, 언제 일어났는지 세자는 또 말끔한 차림이다.
세자랑 딱 붙어서 아침도 맛있게 먹고, 세자가 세수 시켜주고 싶다고 해서 내 얼굴도 기꺼이 내주고, 세자가 골라준 옷까지 입었다. 세자가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더니 으흐흫, 하고 웃더니 벌떡 일어난다. 자, 나가자.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내가 계속 그 자리에 서있자 세자가 문을 열다말고 뒤돈다. 얼른, 그제야 세자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근데 뭐하는 지는 좀 말해주구 그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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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는 담 앞에서 보자기 하나를 꺼내었다. 보자기 안에서 도포 같은 것을 훌렁훌렁 꺼내더니 자신의 옷 위에 걸쳐입었다. 오늘따라 세자가 좀 친숙해보이기도 하고 그랬는데 보통 양반집 도령들이 입는 옷차림으로 입어서 그랬나보다. 그런 변화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존나 덕후 마음의 스크래치다. 좀 더 분발해야지. 그나저나 세자가 걸친 옷도 낯익다했더니 우리가 처음 저잣거리에서 만났을 때 보았던 보랏빛 옷이다. 패완얼이라고, 내가 입으면 존나 촌스러운 색일텐데 세자가 입으니 고급져보이고 좋다. 오늘따라 더 잘생겨보이기도 하궁.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세자가 뜬금없이 담장 위로 올라가는거다. 저하, 무슨.. 당황한 내가 묻자 세자가 당당히 말한다. 월담해야지. 세자의 말에 존나 어이가 없음요. 저는요? 내 말에 그것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듯이 박터지는 소리를 낸다. 담장 위에 걸터앉아있던 세자가 다시 뛰어내렸다. 그러지말고 문으로 나가요, 내 말에 세자가 개구지게 웃는다. 안 돼. 꽤 단호한 말에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싶어 세자를 빤히 보자 다시 웃으며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다. 오늘은 공식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탈출을 하는 거야. 이를테면 사랑의 도피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세자가 그리 말해주니까 존나 설렌다. 결국 내가 헤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있으니까 걱정말고. 무서우면 내 이름 부르고."
"생각보다 안 높네요..?"
이 정도면 내가 어릴 때 넘고다녔던 담장만하겠다. 어릴 때부터 왈가닥처럼 놀아서 담장 좀 넘어봤다 이거다. 하지만 세자는 내가 걱정이 되는지 밑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내가 읏챠, 하며 담 위에서 균형을 잡자 손이 먼저 올라온다. 균형을 잡고는 세자에게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어주자 세자가 걱정 좀 시키지말라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담장 넘자고 한 게 누군데, 내가 세자에게 툴툴거리자 자신이 잘못했다며 웃는다. 그럼, 내가 그 상태로 폴짝 뛰어내렸다. 세자는 받아주려고 했나본데, 진짜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다. 내가 손까지 탁탁 털며 세자를 향해 몸을 돌리자 진짜 못 말리겠다, 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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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손 잡고 저잣거리까지 걸어갔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걸 보니 또 장날인가보다. 내가 장날이죠, 하며 세자에게 묻자 세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맞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이끈다. 세자랑 같이 걷는데 존나 홍대거리 안 부럽다. 세자랑 맨날 궁에서만 놀아서 그런가, 제대로 된 데이트는 처음 하는 기분이고. 억, 데이트래. 혼자 생각하다가 데이트라는 말에 기분이 붕붕 들떴다. 데이트래, 데이트. 세자랑, 나랑.
둘이서 손 꼭 잡고 돌아다니면서 상인들 구경도 하고, 세자가 자기 멋있는 모습 보여주겠다면서 노름판에 참여해서 돈도 따오고. 또 둘이서 동물구경도 하고 배고프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국수 같은 거 먹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가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고, 내가 아쉬운 마음에 동동거리자 옆에서 아쉽냐며 다정하게 또 물어온다.
마지막으로 저거 먹어요, 내가 세자의 손을 이끌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별이랑 사먹었던 엿 같은 걸 파는 곳이었다. 세자는 내 걸 골라주고, 나는 세자 것을 골라주고. 또 둘이 마주보며 헤헤 웃었다. 캬, 언제 먹어도 존맛. 혼자 감탄하면서 엿을 쪽쪽 빨아 먹었다. 아무래도 나는 입맛이 좀 싼가보다. 궁궐에도 맛있는 건 존나 많은데 이런 저잣거리에 파는 것이랑은 또 비교가 안된다. 한 손에는 세자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엿 꼬챙이를 들고 가다가 한 상인이 눈에 띄었다.
"그 때 그 아가씨랑 도령이구마잉."
"네에, 안녕하셨어요?"
그 때 나랑 세자가 처음 만났던 곳. 그 곳에서 여전히 자리를 깔고 팔찌를 팔고 있던 아주머니가 보였다. 아주머니도 우리를 알아봤는지 아는 척을 해오셨다. 가기도 뻘쭘하고 있기도 뻘쭘한 그런 상태로 서 있는데 곧 우리가 마주잡은 손을 발견한 아주머니께서 끌끌거리며 웃으셨다. 역시 부부였구먼. 아주머니의 말에 내가 순간 당황해 어버버거리는데 세자가 먼저 치고 나간다. 네에, 그러고는 또 나를 보며 활짝 웃어준다. 얼떨결에 나도 세자를 마주보며 웃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아주머니가 보기 좋다며 웃으셨다.
"오래 오래 가고잉. 둘이 보니까 내가 다 흐뭇하네."
"네.. 아, 팔찌 너무 이뻐요!"
내가 소매를 살짝 걷어 손에 묶여있는 팔찌를 보여주자 가만히 내 손목을 바라보시던 아주머니가 제 짝을 만났다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다음에 또 되면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내가 고개를 꾸벅이자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세자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머니가 또 흐뭇하게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고 우리는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으으, 피고내. 방에 들어오자 바로 이불 속으로 다이빙 했다.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누워있는 게 좀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다시 일어나기엔 너무 몸이 피곤했다. 내가 누워있는 것을 본 세자가 그럼 나도, 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나를 끌어안는다. 오늘은 이러고 잘까, 세자의 말에 흐흐거리며 웃었다. 빨리 저하는 저하의 침소로 가세요. 내가 꽤 매정하게 말하니 세자가 치, 하며 나를 더 꽉 껴안아 온다. 아, 완벽하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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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달이 더 지났다. 그 동안 세자랑 존나 콩 볶으면서 살았다. 알콩달콩~ 이라고 몇 주 전까지는 말했겠지만 요즘따라 세자가 이상했다. 너무 피곤해보이기도 하고, 늘 지쳐있는 표정이었다. 세자는 웃는 모습이 이쁜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웃음도 잃어간다. 나를 만나러 와도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힘없이 웃기만 했다. 자신은 아무 일 없다고 했지만. 그리고 최근에는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다. 바쁘겠지, 했는데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근데, 정말 이상한 건, 세자는 늦은 밤 내가 자는 것을 보기만 하다가 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진짜 바쁘겠지, 싶었는데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의심이 싹 트면서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최상궁님, 뭐 아시는 거 없으세요?"
"없습니다. 그보다 마마님은 들어가셔서.."
"에이, 내가 찾아갈까?"
"마마님."
"역시 안되겠죠? 으으, 심심하다."
최상궁이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진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그냥 모르는 척을 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세자에게 권태기라는 게 온걸까. 그래도 아직 우리 신혼인데! 혼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다 일어났다. 산책 나온 척, 우연히 인 척 세자 만나러 가야지! 패기넘치게 밖으로 나왔다. 어디가세요? 하며 물어오는 최상궁에게 으응, 그냥 방에만 있으니 답답해서, 바람 쐬고 올게요, 하자 못미더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얼른 돌아오라고 한다.
그러니까 요즘 강대감님이 오시는 이유가. 으응, 자기 딸 세자빈 안 되었다고. 들어보니까 ...를 꾸미고 있다고 몰아낼 것 같다던데. 으응, 강대감님이 힘 한 번 쓰면 전하도 못 감당하실테고. 이미 확실해진 것 같던데. 세자저하랑 전하만 고생하시도. 그래도 제일 불쌍하신 건 세자빈마마지. 무슨 죄야.
궁녀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들으면 안 되는 걸 훔쳐들은 기분이었다.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는 알 것 같았다. 내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 때문에 나, 그리고 우리 가족, 더 나아가 세자까지 위험해졌다는 것을.
그 후로는 얌전히 방 안에만 갇혀살았다. 모든 일이 끝나겠지, 하며. 내가 세자랑 만나지 않고 가만히 쥐 죽은 듯이 살고 있으면 모든 일이 지나가있겠지 하며 그렇게 죄인처럼 방 안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그 일이 절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늦은 밤, 무어라 말하는 최상궁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세자가 온 것일까. 그런 것 치고는 격앙되어 있는 최상궁의 목소리에 조심스레 방 문을 열었다. 엄청난 수의 횃불이 보이고, 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죄인 김효정의 여식, 폐세자빈은 나오라!
***
휴.. 오랜만이네여 여러분..ㅎ
허접한 전개가 보여서 너무 슬프다.... 헤헤.. 이제 시련이 시작되어여... 시련이..헤ㅔ...
존나 이게 막장이긴 한데... 그냥 그러려니 합시당. 허허..
지금 할 일 얼른 끝내고 또 되면 올게여
보고 싶었어여 여러분
암호닉
메리/라현/카누/또치/밀랑/브이태/비비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