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미로
;[부사]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
'너를 향한 내 마음이, 내 가슴에 차고도 넘치도록 많아서. 나는 그만큼 너를 사랑하고 있어.'
[김태형 빙의글]안다미로 11
3년이 흘렀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 세자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3일을 울었다. 하지만 세자는 꿈 속에서도 만날 수가 없었다. 내 손목에는 그가 선물한 실팔찌만이 곱게 묶여 있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이 꿈이 아니라는 유일한 증거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3일을 우는 동안 내내 세자의 생각이 났다. 그나마 학교에 가면 눈물은 나지 않고 멍하기만 했다. 여기도, 저기도 온통 세자의 얼굴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밥은 잘 넘어갔다. 먹어야 살 수 있다는 내 몸에 구역질이 났지만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세자의 생각만 났다. 궁에서 보낸 첫 날, 같이 밥을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묻던 세자가 생각이 났고, 세자가 좋아했던 반찬들을 볼 때마다 자꾸만 세자가 생각이 났다.
내가 그렇게 미친년처럼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부모님과 친구들은 공부 때문에, 혹은 뒤늦은 사춘기가 왔나보다하며 이해해주었다. 가끔씩 세자의 생각이 나지 않을 때, 그들을 생각하면 괜히 미안했다.
그렇게 3달이 흘렀고, 그 쯤부터는 세자가 때때로 생각이 났다. 처음만큼 미친 듯이 그립지는 않아도, 그냥, 드문드문, 그렇게 세자의 생각이 나곤 했다. 한 번은 친구와 밥을 먹다가 친구의 얼굴이 세자로 보여서 놀란 적도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가 헛 것을 봤냐며 웃었지만. 왠지 나는 편하게 웃을 수가 없었다.
세자가 한국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 세계에 갔던 것처럼, 세자가 한국에 있는 것이 가능성이 없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내 바람이 무색하게도 나는 세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꿈 속에도 나타나지 않는 세자가 얄미워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세자를 아주 닮은 사람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세자가 아니어도 좋으니, 세자를 닮은 사람이라도.
그리고 수능이 끝난 겨울이 되었다. 내가 세자를 떠난지 4, 5개월 쯤 되었을 때. 그 즈음에는 내가 이제 고3이라는 압박감에 세자를 점점 잊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을 세자를 잊기 위해서 공부에 매달렸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입시 결과는 좋았다. 고2때까지는 막연하게 꿈만 꾸었던 학교에 떡하니 붙은 것이다. 담임 선생님도, 부모님도 함께 기뻐하시며 칭찬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토록 원했던 학교에 입학을 하면서도 세자를 보고싶다는 생각만 했었다.
스무살의 봄은, 생각보다 괜찮았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그렇게 활기찬 분위기에서 즐겁게 보냈던 것 같다. 다만 예전의 나라면 신나서 과팅도 나가고 썸도 타고 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고 해야겠지. 세자 생각이 났으니까. 그러고 보면 참 미련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차라리 구남친이었다면 많이 좋아했지, 아직 그 사람이 그리우니까, 하는 얄팍한 핑계라도 댈텐데 나는 세자와 생이별을, 그것도 한국에 존재하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는 꼴이라니.
남자가 없어도, 그리고 세자가 없어도, 그래도 살 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그렇게 세자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는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아주 작은 소망까지, 친구들과 함께 한 크리스마스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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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추웠던 스무살의 겨울이 지나고, 나는 스무한살이 되었다. 친구들과는 이제 우리가 헌내기라며 장난스레 얘기하곤 했다. 이제 새내기들 들어오면 큰 일 났다고, 선배들 사랑따위는 받지못한다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 가끔 친한 언니들에게 나도 새내기만큼 이뻐해달라며 칭얼거리기도 했다.
봄이 되었다. 초봄. 갓 입학한 새내기들을 보며 나도 저랬던 때가 있었지, 하며 모든 것이 어리숙했던 내 스무살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냥 이쁘고 귀여운 후배들을 보며 선배들 눈에도 내가 저랬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매서운 꽃샘추위가 채가기도 전에 우리 과는 늘 그랬듯 개강총회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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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저 조금 늦을 것 같아요. 마침 이번에 새로 뽑힌 우리과 회장언니는 내가 새내기 때부터 날 오구오구 이뻐해주시던 언니였다. 언니는 늘 밝고, 성격도 좋았고, 일처리도 깔끔했기에 언니가 회장에 나갈 거라고 했을 때도 우리는 당연히 그 언니가 되겠거니 싶었다. 하필 오늘 개총인줄도 모르고 고등학교 때 친구와 잠시 약속을 잡았다. 다행히 친구가 나한테 빌릴 것이 있다고 해서 짧으면 금방, 길면 저녁만 간단히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언니에게 이모티콘과 함께 카톡을 보내자 언니가 알겠다며 뒷풀이 장소와 함께 참석비 가격을 보내주었다. 그런 언니가 웃겨 킥킥 거리며 금방 가겠다며 답을 했다.
이미 개총은 시작했을 것이고, 어짜피 뒷풀이에 가면 술만 마실테니 친구랑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새 애인이 생겼는지 친구의 얼굴에는 꽃이 폈다. 우동이 땡긴다는 친구의 말에 두 개 시켜놓고 마주 앉았다. 그렇게 좋냐는 내 말에 친구가 활짝 웃었다. 행복해보이는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대학가니까 멀쩡해졌네."
"내가?"
"이제 무슨 김태형인가 하는 사람도 안 찾고."
사실 나 그 때 너 진짜 큰일 있는 줄 알았잖아. 친구의 말에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의식중으로도 세자의 이름을 자주 불렀구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 내가 그랬나, 그냥 작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래서, 남친이랑은 얼만큼 됐어? 친구와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며 아쉽게 헤어졌다. 다행히 뒷풀이 장소와 가까운 곳에서 밥을 먹었기에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다. 좀 이따가 복학한 선배들 소개시켜줄게. 얼른와~ 회장 언니의 카톡에 서둘러 뒷풀이 장소로 향했다. 절대 복한한 선배에 혹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절대.
뒷풀이 장소에 들어서고, 전부 우리과 사람들이었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선배들에게 인사도 꾸벅꾸벅하고, 또 몇 주 동안 익힌 후배들에게도 인사를 받으며 친한 친구들과 선배들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아, 진짜 늦게 오니까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너스레를 떨며 친구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얼른 잔 받으라는 회장 언니에게 그럼 사랑하는만큼 달라며 애교 아닌 애교도 부렸다.
"맞다, 복한한 애들 소개시켜줄게."
으, 쓰다. 얼른 안주를 집어먹는데 언니가 갑자기 말했다. 아까 애들은 봤고, 너만 인사하면 돼. 다 내가 아끼는 애들이다. 언니가 웃으며 테이블 끝을 가리켰다. 곧 언니의 손짓에 여러명의 사람이 다가왔다. 점점 가까워지고, 한 사람을 발견한 나는 멍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인사해, 내가 아끼는 동생. 언니의 말에 남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제일 마지막에 있던 사람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 김태형이고, 이번에 복학했어. 23살이지만 너랑.. 어, 같은 학년이니까 친하게 지내자. 어색한지 급하게 말을 하곤 활짝 웃는 남자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세자다. 내가 그리워했던 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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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는 무르익고, 여기저기 섞이며 앉기 시작했다. 곧 내 앞에는 세자, 아니 태형선배가 앉게 되었다. 이름이 뭐냐는 태형선배의 말에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세자는 내 이름보다는 이삐라고 불러줬잖아요, 하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으나 가까스로 삼키곤 한 잔 하자며 소주병을 들었다.
그렇게 들이붓고, 나는 결국 취했다. 태형선배와 이것저것 얘기하다보니 술도 술술 넘어가고, 또 세자가 생각이 나서 또 술을 마시고. 술이 술술 넘어가서 술인가보다, 하는 쓸 데 없는 생각까지 했다. 취한 내가 주절거리기 시작하자 태형선배는 턱을 괴고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보기 시작한다.
보고싶다, 에휴, 보고싶다. 술에 떡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보고싶다, 였다. 태형선배는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누가 보고 싶어? 하며 퍽 다정스레 물어온다. 있어요, 나쁜 놈. 아니다, 착한 사람. 내가 헤헤거리며 말하자 태형선배가 좋아했던 사람? 하며 다시 물어온다.
네.. 많이 좋아했어요. 근데 이제 못 봐요. 보고싶은데, 못 봐요.. 내가 고개를 숙이고는 중얼거리자 말없이 앉아있던 태형선배가 날 일으킨다. 바람 쐬러가자. 태형 선배의 말에 흐느적거리며 또 일어났다. 느에, 태형 선배가 애들 챙기느라고 정신없는 회장언니에게 바람 쐬고 올게요, 누나, 하고는 날 데려나간다. 손에는 내 가방을 쥐고는.
집이 어디야? 태형 선배의 말에 음, 거리며 생각했다. 우리집 어디더라. 내가 저기로! 하자 태형선배가 내 팔을 잡고는 이끈다. 또 저기로! 내가 말하는 대로 선배는 묵묵히 나를 데리고 간다. 여기다, 곧 우리집 앞에 도착한 내가 휘청거리며 멈춰섰다. 감사합니다아, 내가 고개를 픽 숙이자 선배가 내 얼굴을 조심히 들어준다. 여기서 살았구나, 선배가 우리집을 한 번 보고는 또 다정히 웃는다. 그 모습이 세자와 겹쳐보여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개강하고 너 좀 자주 봤는데, 누나가 맨날 멀리서 너라고 얘기해줬거든."
"네에..."
"뭐.. 되면 밥이나 같이 먹고 하자. 이제 같이 듣는 수업도 많을 거고."
참, 번호 좀. 내 휴대폰을 자연스럽게 가져간 선배가 번호를 친다. 그 조금 걸어왔다고 술이 다 깨서 멀뚱히 선배를 쳐다보자 혼자서 번호교환을 마친 선배가 내일 일어나면 카톡하라며 내 손에 쥐어준다. 얼른 들어가고, 선배가 내 등을 살짝 민다. 아, 오늘 감사했습니다. 내 말에 선배가 눈을 곱게 접으며 또 웃는다. 내가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괜찮아. 진짜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집에 들어와서 씻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도 멍했다. 3년 동안 삽질했던 게 끝나는 건가. 내가 너무 불쌍해서 신이 세자를 닮은 사람을 보내준 것일까. 아니면 내가 미쳐서 헛 것을 본 것일지도 몰라, 그것도 아니면 얼굴을 착각했거나. 새로 뜬 친구목록에서 선배의 프사를 눌렀다. 셀카네. 세자가 사진을 찍었으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선배의 프로필 사진은 세자와 똑같았다. 뭐라고 보내볼까, 한참 고민하다가 겨우 한마디를 보냈다. 선배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내일 몇시에 점심먹어? 되물어 오는 선배의 말에 핸드폰을 노려보며 고민하는 사이 1이 없어진 대화를 본 것인지 다시 선배가 카톡을 보냈다. 내일 밥먹자.
***
깔깔...(대구리를 박는다)
현대에서는 진도가 좀 빠를 예정입니다ㅎㅎㅎㅎ 얼른 끝내자구여!
낄낄낄 며칠 못 봤다구 보고 싶어써여ㅠㅠㅠㅠㅠㅠㅠㅠ 아씨ㅠㅠㅠㅠ
독방에 보고 울었다는 독자 누구에여ㅠㅠㅠ 내가 눈물 닦아주께ㅠㅠㅠㅠ 엉엉
여튼 시시하게 다시 만나게 되었져. 과면 태형 선배는 세자 일까여~~~~
독자님들 최소 내 머릿속에 사는줄! 그래서 사랑한다구요
음.. 그리고 우리 또 토요일이나 일요일까지 못봐여ㅠㅠㅠ 내가 이번주가 진짜 바빠서ㅠㅠㅠㅠㅠ잉
미안해여ㅠㅠㅠ 보고 싶어서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암호닉
메리/라현/카누/또치/밀랑/브이태/비비빅/찹쌀떡/여기봐전정꾸/랩지니어스/침침맘
또 늘었다 암호닉. 사랑스럽다 암호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