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자카파 - 또 다른 너
사랑과 우정사이의 경계선 02
W. 너와의 경계선
도경수가 내 방을 나간 뒤 하루 종일 생각에 지쳐 피곤했던 탓 인지 금방 잠에 빠진 것 같다.
한창 잘 자다가 뭔가 축축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근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염병! 왜 안보여? 자다가 눈이 머는 경우도 있는 건가?
혼자 “어... 어...” 거리며 팔을 공중에 휘젓는데 갑자기 시야가 확보 되었다.
방금 깬 탓에 눈이 잘 안 떠져 한껏 비비고 눈을 제대로 뜨니 물수건을 들고 있는 도경수가 보였다.
아 뭐야, 얜 왜 여깄어! 방금 내가 한 짓 다 봤을거 아니야! 아우 쪽팔려! 내 표정을 보던 녀석은 내가 창피해 하는 것을 아는지 한번 피식 하고는 웃는다.
그리고는 말 없이 물수건을 바닥에 있던 물이 담긴 대야에 담궈 여러번 짜더니 내 이마에 올려두었다.
“야... 뭐해...”
“너 열나.”
“...어? 나 안 아픈데?”
“끙끙 대서 열 재보니까 37도 넘어.”
“...”
지나치게 신경 쓴 탓인지 진짜 몸살에 걸렸나보다.
원래 그렇다 그렇다 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진짜 인가 보다...
몸살 걸렸다고 뻥치고 바로 몸살에 걸리다니...
앞으로는 주문을 외우듯 매일 밤마다 ‘나는 도경수를 안좋아한다...’ 하고 씨부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슨 생각해.”
“응?! 나?”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멍청아.”
도경수의 눈이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이 변한 것만 같다.
하... 이래서 어느 세월에 도경수 앞에서 포커페이스가 되지? 먼 산이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니 또 왜 한숨이냐는 도경수의 물음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는데 순간 녀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바로 받지 않고 핸드폰 액정을 쳐다 보길래 슬쩍 봤더니 ‘손나은’ 이라고 떠있었다.
손나은이면 도경수 여자친구 구나... 근데 왜 안 받지? 그저 핸드폰 액정에 뜬 이름만 바라보고 있는 녀석이 이상해져 왜 안 받냐고 물으려다 아차 싶었다.
아 지금 나 때문에 불편해서 전화 안 받는 건가?
“어디가”
“너 전화 해. 거실에 있을게.”
“됐어, 그냥 있어.”
“어차피 나 목도 말라서 그래.”
“너 때문에 안 받는 거 아니야. 그냥 있어.”
“그럼 왜 안 받는데.”
“... 싸웠어.”
도경수의 싸웠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전화가 딱 끊겼다.
전화가 끊기자 도경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그대로 방을 나갔다.
아... 역시 나 있으니까 불편해서 안 받았나보네... 하긴 쟤나 나나 서로 애인 있던 적이 없었으니까 앞에서 전화하긴 어색하지...
아 근데 좀 씁쓸해 지려하네... 손나은이면 울 학년에서 젤 이쁜앤데, 저 새끼 안 사귀는 게 아니라 눈이 열라 높았구만?
키도 작은 게... 이 씨! 짜증나! 괜히 몰려오는 짜증감에 도경수를 속으로 씹고 있었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하겠다. 혹시라도 들으면 어떻게... 아 나 진짜 못났다...
스스로 자책하며 머리를 콩콩 쥐어박는데 도경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벌써 전화 다했나? 하는 생각으로 쳐다보니 도경수 손에는 물이 들려 있었다. 아... 내 물 뜨러 간 거였어?
“마셔”
“아, 땡큐”
녀석이 건네 준 물을 마시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나를 멀뚱히 보다가 갑자기 이마를 짚어오는 도경수 행동에 너무 놀라서 소리 지를 뻔했다...
내 이마를 한참을 만져보더니 ‘열 내렸네.’ 하고는 뿌듯한지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더 자.”
“잠 안 올 거 같은데... 지금 몇 시야?”
“11시 넘었어.”
“아 망했다... 애매하게 깻어...”
“못 잘거 같아?”
“응... 방금 깻잖아, 근데 너는 왜 안ㅈ...”
왜 안자냐는 나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내 옆에 누워버리는 도경수 였다.
"왜 여기 누워!" 하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지만 누운 체로 팔로 내 어깨를 잡아 내리는 도경수에 의해 다시 눕혀져 버렸다.
“왜 여기 누워! 오빠 방 가서 자!”
“형 방 에어컨 망가졌어.”
“아 씨, 그럼 엄빠 방 가서 자!”
“그건 실례지.”
“... 그럼 거실에서 자.”
“나하나 시원하자고 거실 그 큰 에어컨을 돌려? 너희 집 전기세 너가 내냐.”
“아! 그럼 바닥에서 자!”
“잠 안 온다며, 토닥토닥 해줄게. 조용하고 그냥 자.”
어릴 때부터 난 잠투정이 좀 심했다. 그래서 잠투정이 심한 날이면 엄마는 내 옆에 누워 항상 배를 토닥토닥 거렸다.
잘 때 누가 옆에서 토닥여 주는 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가만히 토닥거림 받으며 누워 있다 보면 나른해져서 금세 잠이 들곤 했다.
그게 아직까지 습관이 되어 잠이 안 오는 날이면 엄마, 아빠, 오빠한테 까지 가서 토닥여 달라고 칭얼대곤 한다.
당연히 같이 자라온 도경수는 그걸 알고 있었고, 해주기도 많이 해줬다.
잠이야 어릴 때는 서로 집에서 노는 날이면 같은 이불에서 자는게 당연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커서도 늦게까지 게임하다가 숙제하다가 함께 잠드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 흔하고 익숙했던 일 들이 내 마음이 좀 바뀌었다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심장이 막 뛰고 마음이... 막... 막 울렁거렸다.
원래 같았으면 지금 쯤 나른해져야 정상인데 도경수의 손길에 오히려 정신이 점점 깨고 있었다.
아 그냥 무슨 말이라도 먼저 걸어볼까? 근데... 여자친구랑은 왜 싸운 거지?
사실은 아까부터 제일 신경 쓰이고 궁금했던 건 이거다. 왜 싸웠을까?
도경수랑은 서로 이성 얘기를 해본 적이 없기에 물어본다고 쉽게 대답해줄지도 의문이었다.
물어볼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다 그래 물어보자! 하고 결심을 하고 도경수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러자 녀석은 “왜” 하고 감아있던 눈을 떠 내 두 눈과 마주했다.
“... 있잖아.”
“...”
“왜... 싸웠어?”
“...”
나의 물음에 도경수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큰 눈을 요리 조리 굴려가며 생각을 하던 녀석의 얼굴을 보니 더욱 궁금해 졌다. 그 탓에 한 번 더 녀석을 재촉하는데 아까 울렸던 녀석의 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
“왜 또 안받아. 받아 얼른.”
이번에도 발신자는 손나은 이었다. 도경수는 잠시 고민 듯 했지만 이내 전화를 받았다.
녀석의 낮게 깔린 “여보세요” 하는 소리에 괜시리 혼자 숨을 죽였다.
“...”
-왜 아까 전화 안 받았어? 카톡도 씹고
“너가 화내니까.”
-아직도 걔네 집이야?
“응. 여기서 잔다고 했잖아.”
-너 진짜...
“...”
-내가 너 여자친구는 맞아?
“응.”
-...
“...”
-하... 끊자.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도경수와 가까이 있는 탓에 다 들어 버렸다.
음... 그러니까 싸운 이유가 나... 때문이네?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싸워서 미안하기도 한데, 도경수 우리집에서 자는 거 하루 이틀 아닌데! 지가 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 다 나 때문 같잖아, 짜증나... 슬쩍 도경수의 눈치를 보는데 정작 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와 같았다.
“나 때문에 싸웠어?”
“... 응.”
“...”
“신경쓰지마.”
“... 어떻게 신경을 안 써.”
“...”
“나랑 있는 거 싫대?”
“응.”
“...나랑 놀지 말래?”
“응.”
뭘 그렇게 솔직하게 응. 응. 거리냐... 신경 쓰지 말라면서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어떡하라고...
도경수는 이럴 때 보면 쓸데없이 솔직한 면이 있다. 녀석의 말에 내가 해줄 만한 말은 없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녀석의 일에 내가 제 3자가 되는 기분은 생각보다 더 별로였다.
잠시 우리 사이엔 침묵이 맴돌았다. 그냥 이대로 잠들면 되겠지 싶었다.
아까는 도경수랑 같이 자려니까 마음이 막 두근거려 못 잘거 같았는데 지금은 놈의 여자친구가 머리에 꽉 차버려 잠이 안올거 같았다.
이래나 저래나 잠 못 자는 건 마찬가지네.
녀석에게 등을 져 돌아누웠다. 한참동안 녀석과 나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자는 건가...? 자나 싶어서 슬쩍 돌아보는데 말똥말똥 떠있는 두 눈에 놀라 자빠질 뻔했다.
“으어!”
“... 뭐야.”
“... 안잤어?”
“응.”
“아... 조용해서 자는 줄 알았네...”
다시 침묵이 맴돌았고 녀석과 나의 두 눈은 여전히 마주하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묘해지는 느낌에 다시 등을 지고 누우려는데 들려오는 도경수의 말에 멈칫했다
“나 뭐 잘못 했어?”
“... 뭔 소리야, 갑자기?”
“... 나 왜 피했어.”
“...어?”
“첫 날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 둘째 날부터는 뭔가 이상하지 싶었고. 별 생각을 다했어. 어디 몸이 아픈 건가, 아님 무슨 일이 있나.”
“...”
“근데 연락도 안 되지. 걱정 되서 준면이형한테 연락하니까 아무 일 없고 너 아프지도 않다 하지.”
“...”
“처음엔 너 그 날인가 싶었어. 근데 그건 또 아니더라고, 저번 달이랑 계산해보니까.”
“ㅇ...야! 너가 내 주기를 어떻게 알어!”
“그때마다 아파서 골골 댈 때, 너 약을 누가 다 챙겨줬는데. 모르는 게 바보지.”
순간, 도경수를 이상하게 몰던 내가 민망해 졌다.
그와 동시에 남자인 녀석이 내 주기까지 알만큼 우리 사이는 편한 사이구나 라고 느껴졌다.
스스로 선을 하나 그은 기분이다... 그냥 조용히 있을 걸... 괜히 혼자 민망해서 소리쳤네... 작게 “아...” 하고 탄식하니 녀석은 말을 이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가 날 피하는 게 답이 안 나왔는데.”
“...”
“방금 손나은이랑 전화하는데 딱 생각났어.”
“...”
“너 그 날, 우리 집 반찬 갖다 줬을 때.”
“...”
순탄히 말을 이어가던 전 과는 달리 놈은 잠시 동안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할지 알기에, 난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척할까 싶어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했다.
“봤어? 키스...”
생각보다 더 돌직구인 녀석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르는 척, 무슨 소리야? 하며 뻔뻔하게 나갈 생각이었는데, 다 망했다...
이미 표정에서 다 들어 났을 것이다. 마음이 일렁이며 코끝이 찡 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내 표정을 바로 앞에서 마주한 녀석의 표정은 묘하게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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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이 나은이인 이유는 쇼케 사진을 봤는데 너무 헉소리나게 예뻐서...ㅠㅠ
나은님 미안해요 제 똥글에 이렇게 출현시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