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대는 오로지 너의 것이다 : 제 0장, 나의 첫 번째
8살, 처음 학교란 곳에 입학했을 때였다. 엄마가 지켜보지 않는 낯선 곳에 처음 발을 디딜 때,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강당이라는 넓고, 천장도 높은 곳에서 교장선생님이라는 분의 긴 말씀을 들었다. 안 그래도 참을성이 없어 주위가 산만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는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는 다리를 흔들고 혼자 손장난을 치며 그 지루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랐다. 어디선가 엄마의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드디어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이라는 젊고 예쁘신 분을 따라 강당에서 교실로 이동했다. 선생님을 따라 줄 지어 가면서 '우리 담임선생님은 엄청 예쁘신 분이야!'라고 혼자 생각하며 우쭐했다. 선생님의 외모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교실 문 앞이었다.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고 아이들이 앉는 것을 지켜보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굉장히 귀엽게 생긴 남자아이와 앉게 되었다. 평소에도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라 여자아이들과는 물론이요, 남자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냈던 나인데. 그땐 뭐가 그리도 부끄러웠는지 말 한마디 못해보았다. 첫 짝꿍인데.
다음 날에는 친구들을 사귀었다. 처음으로 학교 급식도 먹어보고, 수업도 해보고, 쉬는 시간에는 여자아이들과 깔깔대거나 밖으로 나가 신나게 뛰놀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짝꿍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물론, 내가 먼저 말을 걸어서. 이름은 '전정국'이라고 했다. 첫 날에는 나도, 전정국도 긴장해서 말을 많이 나누지 못한 것이었나 보다. 조잘조잘 할 말이 얼마나 많던지, 별 것도 아닌 말도 신나게 떠들어대다 선생님께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선생님께 경고 받은 걸 그새 잊고 떠들다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정국과는 8살, 초등학교 1년동안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첫 짝꿍이어서 그런지 더 정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운동회 날에도 서로 같이 점심을 먹기도 했고, 자주 붙어 다니곤 했다. 하지만 언제나 사이좋게 지낸 건 아니었다. 꼴에 사내자식이라고 어찌나 장난을 많이 하던지,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언제는 전정국의 계속된 장난에 학교에서 눈물까지 보였었다. 그땐 전정국이 정말로 미웠다. 정말, 진짜로. 선생님께서 전정국을 혼내고 전정국이 나에게 사과를 할 때, 눈도 안 마주치면서 못 들은 척 쌩하니 지나갔다. 결국엔 선생님께 잡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고,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그래도 전정국은 내게 미안했는지 쭈뼛쭈뼛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난 입이 댓 발 나와서는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다.'를 폴폴 풍기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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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초등학교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지나고, 3학년이 지나고, 4학년이 지나, 5학년이 됐을 때, 나는 전정국과 다시 만났다. 3년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을 보니 꽤나 반가웠고 기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했고, 우리 둘은 1학년 때로 돌아간 것 마냥, 친해졌다. 함정이 하나 있다면 언제나 귀여울 것만 같았던 전정국이 조금 징그러워졌다는거? 어쨌든 나와 전정국의 5학년은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했다. 전정국은 여전히 장난이 많았고 유치했으며, 나는 여전히 그 장단에 맞춰 반응했다.
그 해 겨울방학 때였나, 전정국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온 적이 있다. 그것도, 야심한 밤에. 난 오지 않는 잠을 자려 눈을 감고 양을 세고 있었는데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에 식겁하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이유는 딱히 없댄다, 심심해서 전화해봤다고 했다. 그 전화는 다음 날에도, 다다음 날에도, 다다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매일매일 전정국과 영상통화를 했다. 부모님께 걸릴까봐 마음 졸이며 소곤대는 게 어찌나 스릴 넘치고 재밌던지, 늘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언제 한 번은 통화를 하다 자기가 부엌에 과자가 있다며 갔다 오겠다고, 모험을 떠나는 거라고 하질 않나.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서로 숨 죽여 웃어댔다.
그러다 전정국이 갑자기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 갑자기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하면 다들 알려나. '설마 진짜겠어? 거짓말이겠지. 아냐, 진짜일 수도 있잖아. 그럼 어떡해?' 벌렁이는 심장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누구냐고 추궁해대자 사진을 보여주겠다면서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베개를 보여줬다. 그러더니 자기 여자친구라고, 인사하라더라. 정말 내 옆에 있었다면 뒷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겨주는 건데. 어쨌든 베개를 가리키며 자신의 여자친구라는 헛소리를 하는 전정국에 정말 안심했다. 하락세를 타던 기분은 어디로 가고 이젠 기분이 좋아 저 하늘을 향해 날뛰어도 부족할 판이었다.
전정국은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으로 해프닝은 대충 마무리하고 통화를 끝내고서는 잠에 들려했다. 분명 잠에 들려했는데, 나는 어느새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왜 기분이 안 좋았던 걸까. 전정국이 여자친구가 있든, 없든 나랑은 상관이 없는 일인데. 또 왜, 전정국의 장난이었다는 걸 알고 안심한 거지? 잠을 설쳐가면서까지 고민하고 낸 결론은 '내가 전정국을 좋아한다.'였다. 전정국의 유치한 장난을 받아쳐준 이유도 전정국을 좋아해서였고, 매일 밤 휴대폰에 전정국이 뜨길 기다렸던 이유도 전정국을 좋아해서였고, 오늘 전정국의 여자친구 해프닝에 마음 졸였던 이유도 전정국을 좋아해서였다.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어색한 감정이었다.
‘내가 전정국을 좋아한다.’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전정국과 나의 관계에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조금 달라진 것은 귀찮기만 했던 그 장난들이 내게는 기분 좋은 장난이 됐다는거, 그 뿐이었다. 전정국과 나는 여전히 친구였으며 나는 전정국에게 고백 따위를 할 만한 배짱이 없었다. 개학을 하고서는 처음 가지게 된 감정에 전정국이라는 존재가 어색해졌다. 그래서 전정국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고 잠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어찌나 설레던지, 전정국이 내 뒷자리라 얼굴을 볼 일이 드물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정국과 눈만 마주치면 ‘휙’하니 피해버렸는데 자기 딴에는 그게 짜증이 났는지 뒤에서 의자를 엄청나게 쳐댔다. 내 맘도 모르고 의자나 쳐대는 전정국이 얼마나 짜증났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뒤를 돌아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정말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전정국의 짜증나는 장난마저 기분이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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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이 되고, 나와 전정국은 반이 갈렸다. 반 배정을 받고서는 절망스러움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전정국과 같은 반이 아니라니. 연락을 자주 못하게 되면 어쩌지, 전정국이랑 사이가 멀어지면 어쩌지. 나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4월까지는 꾸준히 지속되던 연락이 점점 줄더니, 결국엔 문자조차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연락도 못하니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싶어, 일부러 전정국네 반 쪽으로 지나다닌 나의 노력을 모르는지, 전정국의 얼굴을 본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의 6학년은 허망하게 지나가버렸다.
중학교는 제발 전정국과 같은 학교로 배정 받게 해주세요. 다시 생각해보면 굉장히 순수한 소원이었다. 하지만 신은 나의 편이 아니었는지 전정국은 남녀공학에, 나는 옆에 있는 여자중학교에 배정 받았다. 그 날, 집에 가서 펑펑 울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울면서 신을 욕했다.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면서, 개뿔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존재하면 나쁜 놈이라면서. 마지막으로 전정국을 보는 건지도 모를 졸업식 날, 나는 식이 끝나자마자 가족에게 달려갔다. 그 누구와도 사진을 찍지 않고, 그저 선생님께 인사만 드리고서는, 학교를 뛰쳐나왔다.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 많이 후회된다. 전정국과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놓을걸.
중학교에 가서도 전정국을 잊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뭔가 씁쓸했다. 연애를 한 번도 안해봤냐는 친구의 물음에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구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냐는 질문에도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의 꺅꺅거리는 소리는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내 머리 속에서는 그저 흐릿하게 남아있는 전정국의 얼굴만이 둥둥 떠다닐 뿐이었으니까.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정국에게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이라 그런 거야. 애써 나의 마음을 두드리며 담담하게 만들었다.
'나는 전정국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제 전정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정국이 생각날 때마다 주문을 외우듯이 읆조린 말이었다. 저 말들을 계속 읆조리고, 읆조리자, 효과를 보는 듯 했다. 내 기억 속, 전정국의 얼굴이 점점 더 흐려져갔으니까. 하지만 저 마법같은 말의 효력을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폭풍이 몰려왔다. 혹시나 하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창문에 신문지를 붙일 시간도 없이 몰려온 폭풍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에 맞서 싸울 수도 없었고, 피할 수도 없었기에, 온 몸으로 폭풍을 맞았다. 그 폭풍은 내 몸에 멍이 들게 하고, 피가 나게 했다.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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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안녕하세요, 글잡에 처음 글을 남겨보네요. 다들 재미있게 읽으셨는지요? 이번 장은 그저 여는 글에 불과합니다! 다음 장에서는 여러분들이 예상하시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요ㅋㅋ
Q. 다음 장에서 여주에게 일어날 일을 서술해보시오.
어휴, 처음으로 글을 써보는 거라 많이 떨리고 조금 겁이 나긴 하는데요, 여러분들이 읽고서 '괜찮은 글이네.'라고 생각만 해주셔도 정말 기쁠 것 같아요T^T 아, 그리구 방학이다 보니 연재 텀이 빠를 것 같아요. 못 올려도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은 꼭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