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필수★ Emotional Oranges, Personal )
소이가 돌아왔다. 딱 1년 만이었다. 학교가 온종일 떠들썩했다. 소이의 컴백은 곧,
"Let's go to Soyee's party tonight!"
("오늘 소이네 파티에 가자!")
나의 파멸을 예고했다.
친구의 남자친구와 잤다
미국으로 이민 온 첫날, 그러니까 하이스쿨에 갓 입학했을 때 다짐했다. 학교에서 무조건 나에게 유리한 것들만 하자고. 모두가 큰 카페테리아, 멋들어진 정원, 새로 사귄 친구들에 열광하고 있을 때 나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만 생각했다. 학교에서 무조건 나에게 유리한 것들만 하자, 정확히는 대학가기 유리한 것들로만.
하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사회적 약자 전형으로 입학한 나에게 사립고등학교는 따라가기도 벅찼다. 학우들이 입은 옷은 부모님의 세 달 치 월급 값이었고, 직접 주식 투자를 가르치는 경제학 선생도 있었으며, 그 선생의 말에 따라 주식에 투자했다 내 일 년 치 월세를 말아먹은 학우들도 있었다. 그래놓고도 그들은 전혀 타격입지 않은 듯했다. 그들과 나 사이의 갭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나는 그들을 따라가기는커녕 그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외려 그 편이 좋았다. 그렇게 몇 개의 계절을 보내고 나니 편했다. 어차피 그들과 나 사이의 선이 있을 거라면, 내가 그들을 따돌리는 편이 나았다. 나의 비상한 머리 때문에 내 스스로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합리화는 몇 학기 동안 공고히 나만의 벽을 이뤘다.
"너도 올래?"
그 벽을 깬 것이 소이였다. 정계 진출을 앞두고 있다는 군수회사의 외동딸. 돈도 많은 게 예쁘고 착하기까지 하다며, 제 친구들이 대신 뒤통수를 걱정해준다는 그 한소이.
"나 오늘 약혼 파티하거든. 네가 와주면 좋을 것 같아서."
악의 없는 웃음에 나는 경계를 풀고 소이가 건네는 초대장을 받아 들었다. 소이의 눈엔 아무런 꿍꿍이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바로 그 제안을 거절했겠지만, 하필 전날 새로 부임했다는 교장이 나를 불렀던 게 마음에 걸렸다. 성적에만 신경 쓰지 말고 꼭 소셜 활동에 참여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권유라고는 하나, 명령에 가까웠다. "전통과 보수의 뉴욕 시티스쿨에서 사회적 지원을 받아 하버드에 합격한 인재" 따위의 뉴스 타이틀을 만들기 위한 명령이었다. 나의 선택권 혹은 거절 가능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데다가 그 명령을 이행할 의무가 있었다. 아무리 학교에서 내 GPA*가 가장 높다고 해도, 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는지의 여부는 장학금을 승인하는 교장의 도장에 달려 있었으니까.
(*GPA: 미국 고등학교 학점 제도-우리나라 고등학교의 내신성적과 비슷한 개념-)
"한국인들끼리 친하면 좋잖아. 우리 엄마, 아빠도 내가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걸 좋아하셔서."
아무 말 없이 초대장을 바라보고만 있자, 소이는 민망한 듯 덧붙였다. 초대장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한소이라면, 나를 소셜 활동으로 이어줄 다리가 될 수도 있겠네.
생각해볼게, 무던한 목소리로 답했다. 머릿속 계산을 감춘 덤덤함이 무안하게도 소이의 얼굴엔 꽃이 핀 듯 환해졌다.
"그럼 오는 거다?! 꼭 와줘! 드레스코드는 레드야!"
소이는 위로 팔을 크게 흔들며 나에게 인사했다. 소이의 인사에 카페테리아 안 모두가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부끄럽지만,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
그 생각은 파티에 오자마자 관뒀다. 나쁜 시작이다. 모두가 기사가 이끌어주는 리무진을 타고 파티에 참여했다. 나는 그에 어울리지 않게 걸어왔다. 물론 레드라는 포인트에 맞춘 클러치 백과 하이힐은 골랐지만, 그 누구도 나처럼 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고 있진 않았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레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딜 가도 어울리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구나, 한숨이 나왔다.
이런 파티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다시 돌아가려는 찰나, 손목이 잡혔다.
"와줬구나!"
소이는 또 밝은 표정으로 나를 붙잡았다. 나는 거절할 새도 없이 소이에게 붙잡혀 클럽을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이쪽은 농구부 주장, 이쪽은 풋볼 주장, 여기는 다른 학교 치어리딩 팀 친구들이야! 정신없이 소이의 사람들과 인사했다.
“여기선 술 마셔도 돼! 아빠 친구가 운영하시는 클럽이거든!”
술을 한 번도 안 마신 마냥 신난 소이가 내 손에도 샴페인을 쥐여 줬다. 이렇게 정신없는 친구는 처음이었다. 사실 친구가 처음이었다는 게 맞는 말이었겠지만.
“소이야.”
내가 부른 목소리에 감격한 듯 소이는 샴페인을 쥔 내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잡았다. 따뜻하고 적당히 부드러운 기분 좋은 손이었다.
“나 잠깐 좀 어지러워서 바람 좀 쐬고 올게.”
“응! 그래! 알겠어! 그 대신 일찍 와야 해!”
소이의 두 손을 피해 샴페인을 들고 비상계단으로 올라왔다. 옥상으로 올라서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봄과 바람, 밤의 산뜻한 하모니가 섞인 향, 그 향 사이로 역한 냄새가 났다. 뭔가 타는 냄새 같은데…….
“어, 들켰네.”
쟈니였다. 오늘 파티의 주인공, 소이의 남자친구이자 약혼자가 될 그.
옥상 구석진 곳, 쟈니의 손에 든 건 대마였다.
친구의 남자친구와 잤다.
쟈니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있었다.
나는 그의 손에 들린 걸 알아챘다. 그 또한 내가 알아챘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그럼에도 태연하게 하던 일을 마저 했다. 마치 나를 보이지 않는 것 마냥 대했다. 별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차디찬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다시 그를 향해 걸어가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 이제야 그는 내가 다시 보인다는 듯 쳐다봤다. 그리고 나에게 대마를 쥔 손을 내밀었다.
“너도 피울래?”
“아니.”
나는 냄새만 맡을래, 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시원한 밤공기와 함께 역한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벙찐 그의 표정이 돌연 환해졌다. 고개를 숙이고 끅끅대며 웃는 그에게 마땅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개를 들고 숨을 돌린 그의 얼굴엔 아직도 웃음꽃이 만연했다.
“너 되게 재밌다.”
“지금 네가 약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라곤 생각 안 해?”
아닌데, 진짜 웃긴데. 그는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로 나를 쳐다봤다. 그는 내 손에 쥔 샴페인을 가져가 한 모금 마셨다. 거기다 내가 약이라도 탔으면 어쩌려고 그냥 마셔, 그를 타박하듯 말하자 그는 여전히 미소를 보이며 내 눈을 마주쳤다.
그럼 좋지, 일순간 그의 표정에서 씁쓸함이 보인 듯했으나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냥 바람이 내 눈을 스쳐서 그렇게 보였던 거라고, 더 신경 쓰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런 애들 신경 쓸 바에야 내 앞길이나 생각하자고 했던 새내기 시절 나의 다짐을 이행했다.
“옥상은 어쩌다 올라왔어?”
“샴페인이 맛이 없어서.”
술은 데낄라지. 내가 뱉은 말은 밤바람에 흩날렸다.
“너는 놀라지 않네.”
“브루클린에서 종종 맡는 냄새니까.”
그의 물음은 그의 손에 쥔 것으로부터 나왔다. 뉴욕 사립학교 애들이 마약과 담배, 술을 끼고 살 것이라는 건 '가십걸'이 다 망쳐버린 이미지에 불과했다. 놀 때는 놀겠지만, 그렇다고 선을 넘지 않았다. 학교의 규율은 종종 그들의 가문에 월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의 흡연에 놀라지 않았던 건 정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요란한 약혼파티가 이뤄지는 이곳에서 당장 몇 블록 떨어진 브루클린엔 종종 있는 일이었다. 브루클린에 처음 왔을 때, 전깃줄에 걸린 무지개 깃발이 보였다. 그 아래로 담배를 피우는 무리도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건 담배가 아니라 대마였고, 무지개 깃발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로맨틱한 표식이 아니라 딜러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아, 너구나. 재수 없는 브루클린 범생이.”
“너넨 나를 그렇게 말해?”
“너네?”
“재수 없는 금수저들.”
또다시 그가 크게 웃었다.
“모두가 그러진 않지. 널 신경 쓰는 누군가가 있어서.”
“누가?”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그가 일어났다.
“나는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 돼서 먼저 일어날게.”
처음과 달리 그는 나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다만 행동은 여전히 나를 무시하는 모양이다. 그는 피우던 것을 내 샴페인 잔에 넣어 끄고는, 그 잔을 내 손에 다시 쥐여 줬다.
“나중에라도 함께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안주머니에서 작은 공병 하나를 꺼냈다. 느릿하게 목에 두 번, 옷에 한 번 뿌려 제 향을 지웠다. 내게 웃음을 보이고 나간 그는 계단 아래로 내려간 듯했다. 그의 발소리가 없어질 즈음, 내 작은 클러치 백에서 담배를 한 대 꺼냈다. 왠지 오늘은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입이 씁쓸했다. 나는 그에 어떤 탓이 필요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가만히 바람을 느끼며 앉아 있었다. 아래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웃음소리, 간간이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 그리고 옅게 느껴지는 그의 향수 냄새.
향수도 딱 지 같은 거 쓰네. 깊으면서도 알 수 없는, 그런 냄새. 텁텁한 입을 다시며 샴페인 잔 속 그의 대마 옆에 내 담배를 꽂아 넣었다.
***
"어디 갔었어?"
옥상에서 내려와 바에 걸터앉자마자 소이가 물었다. 그냥, 바람 좀, 나는 말끝을 흐렸다. 차마 너의 약혼자가 대마를 피우는 옥상에서 혼자 남아 담배를 피우다 왔다고 하기 어려웠다. 빛나는 소이의 눈에 먹구름을 끼게 하긴 싫었다.
"소이야, 곧 열두 시야."
입을 꾹 다물게 한 그가 어디선가 나타나 소이의 어깨를 손에 쥐었다. 당연한 듯 소이는 그의 손 위에 제 손을 덮었다.
"인사해! 여긴 곧 내 약혼자가 되는 쟈니! 이쪽은 친구가 된 그린이!"
"안녕, 그린아."
안녕, 텁텁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로 그와 인사했다. 내 표정을 보고 소이는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데낄라 한 잔이요, 바텐더에게 데낄라를 주문한 그는 그 잔을 내게 건넸다. 바에 있던 소금통도 내 앞으로 밀어줬다. 술은 데낄라지, 바람에 흩날린 줄 알았던 내 말을 그가 반복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잔을 받아 들고, 손등에 소금을 쳤다. 순간적으로 소이는 미간이 찌푸려졌다가 재차 내게 향했던 그 밝은 눈을 하고 나에게 물었다.
"혹시 둘이, 아는......."
12시를 알리는 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소이의 의심은 지워지지 않은 듯했으나, 소이의 물음은 소리에 묻혔다. 모두가 소이와 쟈니를 봤다.
"Happy engagement!"
("약혼 축하해!")
소이의 앞에서 쟈니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제 안주머니에서 케이스 하나를 꺼내 소이에게 건넸다. 감동한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던 소이의 앞에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반지가 빛을 밝혔다. 쟈니는 일어나 소이의 손에 반지를 끼웠다.
염병하네. 입속에서 뱉지 못한 욕이 득실거렸다. 그 둘은 9월이나 되어야 시니어가 된다. 아직 대학 입시도 치르지 않은 고등학생들이 누군가에게 영원을 약속하며 함께하길 바라는 것은 서로에게 아주 몹쓸 짓이 될 게 뻔했다. 어른들 거래에 놀아나는 꼴이 우스웠다. 새어 나오는 비소를 참지 못할 것 같아 손등에 친 소금 냄새를 맡으며 고개를 숙였다.
쟈니의 어깨 위로 제 팔을 두른 소이는 그에게 키스했다. 그렇게 둘은 모두의 앞에서 입 맞추며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약혼을 축하받았다.
다만 쟈니는 혀를 내어 손등을 핥는 나에게 눈을 맞춘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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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막장 뭐시깽이 그런 글,,, 현실고증 1도 없는 할미의 뇌내망상 그런 글,,, 중편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언제 삭제할 지 모르는 그런 글,,,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