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왜?"
"손."
"...."
또다. 나와 택운이형은 분명히 연인 사이다.
막 사귄 푸릇푸릇한 커플도 아닌, 꽤 오래 사귄.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확실히는 찾아봐야 알겠고 대략 여섯 달은 넘은 것 같다.
분명히 6달이나 된 연인 사이인데 스킨십이란 걸 상상할 수가 없다. 택운이형이 스킨십을 싫어해서이다.
손도 사귄지 세 달이 넘어서야 겨우 잡은 걸로 기억한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손 처음 잡은 날이라고 달력에 표시까지 할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어렵게 잡은 손, 세 달 동안 못 잡은 손 다 잡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처음 잡은 그 날 이후 2주가 지나서야 두 번째로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스킨십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연연하지는 않는 나, 김원식이 손 한 번 잡아 보려고 매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걸 보면 택운이형도 참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아까도 말했듯이,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처럼 내가 찾아가서 만나고, 밥 먹고, 카페에서 커피 사 먹이고, 지금은 집에 데려다 주러 같이 걸어가고 있는 중인 데도 여태껏 생일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아니, 말 자체를 안 했구나.
그래서 택운이형에게 슬쩍 손을 달라고 왼손을 내밀었으나, 손을 한 번 슥 쳐다보고는 제 갈 길을 간다.
생일인데, 생일인데. 사귄 뒤에 처음 맞는 생일인데. 서운하다.
"형."
"왜 자꾸 불러."
"오늘 무슨 날이에요?"
"2월 15일."
"그러니까, 무슨 날이냐구요."
"너 만난 날."
아는 데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 헷갈린다. 괜히 힘이 빠져서 걸음을 멈추고 허, 하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옆에서 들리던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혼자 걸어가다가 멈춰선 뒤를 돌아보는 택운이형이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치고, 약간 화가 나려고 하는 나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택운이형도 눈을 피하지 않은 채로 잠깐 동안 정적이 흘렀다.
"...알아."
"네?"
"안다고. 그러니까 얼른 와."
아, 아는구나. 다행이다.
"택운이형 무슨 날인지 알면서 손 안 잡아주는 거에요 지금?"
"...손에 땀 차, 더워."
"지금 밤이라서 서늘한데, 손 잡아요."
"열대야야."
추워서 걷었던 셔츠 소매까지 내려 입고는 열대야라고.. 바보 택운이형.
"형."
"손 얘기 할거면 부르지마."
"손 얘기 아닌데요?"
"뭔데."
"뽀뽀해줘요."
옆으로 살짝 찢어진 눈이 크게 뜨여 날 쳐다본다. 귀엽다. 피식 하고 웃었더니 도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가서는 나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역시, 무리겠지.
더 매달려 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의 다 와가는 형의 집으로 묵묵히 걸어갔다.
내가 말이 없었으니 택운이형 역시 말이 없었고, 그렇게 우리는 왠지 모를 정적 속에서 택운이형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가요. 오늘 만나서 피곤할 텐데, 잘 자고요. 저 갈게요."
오래 있어 봤자 서운함만 늘어갈 것 같아서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작별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숙인 채 뒤를 돌았다.
그런데 앞으로 나가야 할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오른쪽 손에 느껴지는 따뜻한 느낌에 손을 내려다 봤더니 하얀 손이 내 팔목을 잡고 있다.
"쪽-"
잡힌 팔목을 보고, 다시 뒤를 돌아 택운이형의 얼굴을 마주했는데, 무언가가 휙 하고 내 코 앞으로 다가오더니, 입술에 말캉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눈 앞에 보이는 눈을 살짝 감은 택운이형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바로 앞에서 보는 택운이형의 눈은, 참 예뻤다.
입술은 곧 떨어졌다.
"자, 잘가. 나 갈게."
택운이형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부끄러웠는지 귀까지 빨개진 채로 급히 집으로 들어간다.
오늘 잠은 다 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