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
"뭐라고 했어, 지금?"
"..미안."
"김지원, 장난치지마."
"..장난 아니야."
"너 네가 지금 무슨 말 하고있는 줄은 알아?"
"..."
"..."
그대로 김지원에게 등을 돌렸어. 죄라도 지은것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김지원을 보는게 힘들기도 했고 더 이상 김지원앞에 아무렇지 않게 서있을 자신이 없어서 등을 돌린 채 김지원과 멀어졌어. 말도 안 된다. 말도 안돼. 김지원이 날 좋아한다고? 무슨 소린데,이건. 태어날 때부터 볼 거, 못 볼 거 다 봐왔는데 그런 네가 날 좋아한다니? 그래, 이상하긴 했다. 말 그대로 김지원과 난 태어날때부터 친구로 태어났어. 어릴 때 목욕을 같이 했음은 물론이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내가 살아온 21년중에 김지원을 본 시간이 안 본 시간보다 훨씬 많을 정도로 김지원과 나는 오랜 시간 아주 오랜 시간 붙어먹은 사이인데. 그런 네가 요 며칠새 말수도 줄어들고 연락도 잘 안되길래 뒤늦은 사춘기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더니 은근히 나를 피하기 시작하는데 열이 받아서 너한테 따지려던 참이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네가 날 왜 피하냐고. 근데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소린데. 네가 나한테 이러는게 어디있어.
21년 소꿉친구랑 연애하는 썰 1
(부제: 사랑은 용기있는 자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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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지원을 두고 온 지 삼일 이번엔 일방적으로 내가 김지원을 피하기 시작했어. 피하려고 피한건 아니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피하고있더라. 상처받는건 아니겠지. 싫은게 아닌데.. 아니, 근데 그렇게 갑작스럽게 말하면 어떡해. 다시 떠오른 그날의 기억에 뜨거워지는 얼굴을 식히며 가방안에 든 무거운 책을 덜으려 과실로 걸어가고 있는데. 이크. 김지원이다. 자연스럽게, 마라라 자연스럽게 돌아.그렇게 김지원을 못 본척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나섰어. 아마 김지원은 나를 보지 못한 듯 싶었고. 그렇게 걷다 괜히 우울해지는 기분에 멈춰서서 한숨을 쉬었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마라라. 한숨을 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안 그래도 무거웠던 가방이 더 무거워지는 기분이라 다시 과실로 터덜터덜 걸어갔어. 책을 갖다놓지 말까 생각도 했지만 내일 더 무거워질 가방에 과실로 다시 향했어. 책을 갖다 놓고 애써 무거운 발걸음을 모른척하며 집으로 다시 걷는데
"얘기 좀 해."
"뭐야, 왜 이렇게 말랐어."
아,깜짝이야. 덥썩 잡힌 손목에 고개를 들었는데 보이는 그새 수척해진 김지원 얼굴에 놀라서 김지원 볼을 감쌌어. 왜 이렇게 마른거야. 걱정스럽게 김지원을 살피다 아 맞다, 나 얘 피하고 있었지. 아차싶어 손을 내리고 어색하게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한숨을 푹 쉰 김지원이 내 손목을 다시 잡고 걸었어.
"ㅇ,야. 어디가."
"집"
"아.."
그렇게 김지원한테 질질 끌려서 얼마를 걸었을까. 야,잠깐만, 야, 김지원! 멈춰봐,야! 분명 우리집에 다 왔는데 우리 집을 지나치고 계속 걸어가는 김지원에 놀라 소리쳤어. 야,어디가. 작게나마 반항도 해봤지만 내가 김지원을 이길 수 있을리 없어. 쟤 힘 엄청 세단말이야. 결국 얌전히 김지원 집에 들어왔는데 집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놔주는 손목에 나도 모르게 손목을 매만졌나 김지원은 또 걱정이 됐는지 손목을 휙 채가더니 살짝 붉기만 한 손목에 몇번 매만지더니 손목을 놔주더라. 한 두번 오는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김지원을 올려다보자 김지원은 내 얼굴을 감싸서 들어올렸어.
"아,뭐야. 놔."
"못생겨가지고. 속만 썩이고."
"..."
"씻고 올테니까 가기만 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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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기에 눌려 얌전히 소파에서 앉아있길 몇분 그리고 지금 김지원이랑 어색하게 앉아있길 몇 분, 아, 어색해, 어색하다고. 김지원이랑 어색할 줄이야. 아마 김한빈이 이걸 봤으면 삼일 밤낮으로 김지원과 나를 놀렸겠지. 도저히 김지원을 쳐다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손만 꼼지락 거리다 숨 막히는 침묵에 뭐라도 말할까 싶어 얼굴을 들었는데. 아. 김지원과 눈이 마주쳤어. 황급히 다시 고개를 숙이자 들려오는 김지원의 한숨소리. 나 보기 싫어? 김지원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고 고개를 젓자 근데 왜 자꾸 피해.
"..."
"너 이럴까봐 얘기 안한건데.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
"...뭐? 야, 김지원. 너 장난해?"
"마라라."
"뭐? 못 들은 걸로 해? 넌 할 수 있어? 내가 못 들은걸로 하면 너는. 너도 그냥 안 말한 셈 칠거야?"
"내 말은."
"그래, 네 장난에 설렌 내가 병'신이지. "
"..뭐?"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다시는 김지원같은거 보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면서 가방을 들고 일어섰어. 내가 아무생각없이 삼일동안 널 피한게 아닌데.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너라면 괜찮을거라고 수없이 안심시키고 또 안심시키면서 날 달랬는데. 내가 널 3년동안 좋아하면서 3년 내내 행복한 건 아니었지만 절대 불행하다고 말할 순 없었는데. 너무나도 소중한 널 잃을까 섣불리 고백도 못 하고 네 옆을 지키길 3년째, 날 좋아한다는 너의 말이 꿈인줄 알았어.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근데 혹시라도 헤어지면 널 영영 잃을까 무서워서 수백번 수천번을 생각했는데. 사귀기도 전에 헤어짐을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걸 알지만 그만큼 김지원을 잃는게 무서우니까 그렇게 삼일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고민했는데. 그래도 결국에 내 끝은 너였는데. 바보같이 차오르는 눈물에 입술을 꾹 깨물었어. 절대 김지원 앞에선 안 울거야.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쏟아지는 눈물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었어. 한참을 울었을까 손을 내렸는데
"다 울었어?"
"야,너.."
"왜 이렇게 울어, 속상하게."
내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는 김지원의 손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나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김지원이 미워 손을 내쳤어.
"하,지마. 너 내가 ,우스워?"
"내가 네가 왜 우스워."
"그게, 아니면 이게 ,뭔데..!"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김지원에 더 이상 얼굴을 보고 싶지않아 엘리베이터를 나가려 하는데 그런 날 갑자기 꽉 안는 김지원에 놀라 눈만 깜빡거렸어. 이게 지금..뭐야, 나 지금 김지원한테 안긴거야?
"좋아해, 장난 아니야."
"..."
"무서워서 그랬어, 너랑 평생 못 볼까봐. 그래서 못 들은척하라고 한거야."
"..."
"못 들은 척 하지마. 좋아해. 잘해줄게, 나랑 사귀자, 마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