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꽃이 피는 가학심
"백현씨- 어디 있어요?"
2년 정도 마주한 김준면 의사선생님이었다.
의사선생님인 걸 알자마자 생각이 복잡했다.
어떻게 찬열이네 집에 왔지? 대체 둘이 무슨 사이인거야?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고? 아니, 그보다 찬열이를 대체 어떻게 알아?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자연스레 손이 입가로 간다.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다시 똑똑 씹고 있었다.
가까워지는 발소리.
"어- 백현씨 왜 여기에 있어요? 소파에라도 앉아있지. 몸은 좀 괜찮아요?"
"아...그게.."
"응? 목소리는 또 왜 그래요? 어디 많이 아파요?"
계속해서 쇳소리가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결국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물어볼게 너무나도 많았다.
너무 많은데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읏차- 몸도 안 좋은데 바닥 말고 소파에 앉아있어요."
주저앉아있는 나를 부축해 소파에 앉혀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놀랐다.
그보다 자신을 이렇게 쉽게 들 줄 몰랐다.
진료를 받을 때도 저 셔츠 안에 나름 다부진 몸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새삼 놀라웠다.
"우리 백현씨는 그냥 앉아서 쉬고 있어요~ 제가 다 할 테니까 걱정 말고."
네? 뭘 해요? 아니, 그보다 찬열이는 어디 갔어요? 왜 의사선생님이 여기 계세요? 입 밖으로 나가지 않는 질문을 끊임없이 쌓여갔다.
쌓이다 쌓이다 결국 높은 탑이 되어 쓰러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부엌 찬장을 여기저기 열어보더니 그릇과 냄비를 잔뜩 꺼내고 있었다.
장을 보고 온 건지 큰 봉투 안에 음식이 가득 담겨있었다.
움직임이 조금 부산스럽더니 어느새 콧가를 감도는 맛있는 냄새가 흘렀다.
저도 모르게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고 말았다.
요리를 하다가 갑자기 손뼉을 짝! 치더니 '흰 셔츠인데 큰일 날 뻔 했네' 라면서 아까까지 내가 누워있던 방으로 쏙 들어간다.
제 집인 것 마냥 여기저기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렇다고 내 집도 아니었지만 이 집엔 찬열이랑 나. 이렇게 있는게 당연하다고, 그리고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옷이 좀 크네' 라면서 부엌으로 나왔다.
안방에 자연스레 들어간 것도 속이 상하는데 어느새 옷장도 열었는지 찬열이가 자주 입는 박스티를 입고 있었다.
심지어 티셔츠가 꽤나 길어서인지 무릎 위로 입고 있던 바지가 아슬아슬하게 가려져 꼭 티셔츠만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은 뒤 더욱 분주하게 칼질을 하며 요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열아. 빨리 와줘. 왜 의사선생님이 여기에 있는 건지 나 혼란스러워.
그저 소파에 앉혀준 그대로 앉아 김준면 의사선생님이 움직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삐삐삐삐삑-
다시 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어? 찬열아 이제 왔어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오랫동안 알던 사이인 것 마냥 친근하게 말을 거는게 보였다.
원래 웃음이 많은 의사선생님인 걸 알지만 그래도 저렇게 눈을 접으며 방긋방긋 웃으며 찬열이를 마중하는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찬열이한테 마중 가고 싶은데.
어디 갔다 왔냐고. 나 두고 어디 갔었냐고.
묻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할 말이 쏙 들어갔다.
"집에 데리고 왔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새 집에 없길래 잠깐 찾으러 갔다 왔어요."
"그래요? 그래서 찾았어요?"
뭐가 좋은지 미소를 지은 채 둘이서 얘기를 나눴다.
"찾긴 찾았는데...앞으로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더라고요. 데려온 날 집이 엉망이었는데 어떻게 또 치우고 갔더라고요."
"친한 친구?"
"글쎄, 근데 뭐 만들고 있었어요? 맛있는 냄새난다."
집안 가득 풍기는 고소한 냄새를 느꼈는지 소파에 앉아있는 나는 보이지도 않는지 부엌으로 걸어가 요리한 음식을 살펴본다.
"맛있겠지? 내가 또 요리는 그냥 맛깔나게 해요. 먹어보면 놀랄걸요?"
능청스럽게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의사선생님도.
그 말을 웃으며 받아쳐주는 찬열이도.
그냥 그렇게 둘이 서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서로 당당한 듯한 말투에 왠지 내가 아닌 둘이 연인인 것 같았다.
나랑 찬열이도 연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서로 주고받는 말이 일상 속 대화였지만 신경이 쓰였다.
정말 흔하디 흔한 대화였는데 듣고 있는 난 체하는 것 같았다.
먹은 것도 없는데 체한 것 마냥 꽉 막혔다.
찬열이는 나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믿으면서도 이렇게나 불안한 마음은 왜일까.
겨우 말랐던 눈물이 다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또 울면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먹을 쥐고 입술을 깨물며 악착같이 버텼다.
울지마. 백현아 이제 그만 울어. 찬열이가 미워하면 어떡해.
귀찮아하면 어떡해.
열아...나 좀 봐줘. 나 여기 있는데 나 좀 봐주면 안 돼?
부르고 싶어 입을 벌렸지만 나오는 건 쇳소리뿐이었다.
그마저도 허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아~ 해봐요. 간 잘 맞나 한번 먹어봐요."
"음-..맛있어요. 요리 잘하시네요."
"그럼요~ 누가 만들었는데 당연히 맛있죠."
국을 떠주는 그 모습이.
받아먹는 그 모습이 꼭 부부 같았다.
남자 둘을 보고 부부라고 하긴 뭐 했지만 제 눈엔 다정한 부부 같았다.
그에 비해 난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아! 입고 온 옷이 흰색이라 잠깐 옷 좀 빌려 입었어요. 근데 이거 좀 기분 나쁠라하네? 뭔 티셔츠가 이렇게 길어요?혹시 원피스?"
"아..아뇨. 티셔츠인데. 근데..바지.."
"바지? 아~ 입었어요! 티셔츠에 가려져서 안 보여서 그렇지 반바지 입었어요.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와요."
"아- 네. 근데 백현이 못 봤어요?"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제 이름이 들림과 동시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소파에 앉아있어요. 아픈 것 같던데..."
의사선생님 목소리에 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 바라본다.
갑자기 마주친 눈에 놀라서 울다가 끅-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내뱉었다.
울고 있는 저를 봐서일까.. 찡그려진 표정.
방금 의사선생님이랑은 미소 짓고 있었는데 나를 보는 순간 눈썹이 올라간다.
이것 봐. 또 찬열이가 화내잖아.
울면 안 되는데 또 울어서 그런 거잖아.
써둔 글이 날라간 후로 열심히 쓰고있어요.
쓴 내용 대충 스토리만 생각나고 대사같은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ㅅ;
저 댓글 하나하나 다 보고있어요 :) 독자님들 고마워요!
근데 분량 이대로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