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지만 괜찮아
w.1억
재욱이랑 어색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도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어색해질 것 같아서 말도 안 하고 있는 나에게 평소에 말 없는 재욱이가 말을 걸어주었다.
같이 재욱이가 평소에 자곤 했던 침대에서 끌어안고 자게 되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땐.. 큰일이 난 거다.
우리 둘 다 세상 모르고 자버려서 늦을 뻔...했다...
근데 문제는.
"뭐야 이그리 왜 어제랑 복장이 똑같지?"
눈치가 빠른 언니 때문에 결국엔 다 불기도 한다.
언니랑 일들을 빠르게 처리한 뒤에 휴게실로 오니, 마침 휴게실엔 나랑 언니뿐이었다.
언니가 얼른 얘기 해보라며 흥분해서는 막 내 팔을 잡고 흔들길래 웃으며 당당히 말한다.
"전에 사귀던 분이랑은.. 이제 안 사귀고, 재욱이랑 사겨요 저."
"아, 대충 알고는 있었지."
"…아? 어떻게."
"이재욱이 갑자기 점심시간에 이그리 밥목짜! 이러는데 어떻게 몰라? 그래놓고 둘이서 막 꽁냥거리면서 회사 들어가놓고. 모르면 호구야."
"…아."
"그게 문제가 아니고. 그 다음은?"
"응?"
"너 오늘 어제 입은 옷 또 입은 이유. 평소엔 날마다 다른 옷 입었잖아?"
"…아."
"이재욱이랑..잤.."
"네!"
"호오오올리!!!!!쒜에에엣! 진짜????? 아니 어제????"
"그렇게 됐어요. 근데 제가 처음이라.."
"처음이라고!?!??!"
"…네."
"아니 뭐 요즘엔 선섹 후연애라곤 하지만.. 우리 그리가...."
"…아, 그래요? 요즘엔.. 다 그런 건가요..."
"아, 뭔가 둘이 이미지가 너무 상반돼서.. 이재욱이 쓰레기 같고 막 그러냐 왜?? 그리고 막 둘이 잘 어울려! 어울리긴 하는데.. 막 상상이 안 가. 둘이 사귄다고..막...하..."
"…ㅎㅎ."
"이재욱 잘하디?"
"…네에!?
푸헤헤헤 하고 웃는 언니에 얼굴이 붉어져서는 입술을 꽉 물고 있으면, 언니가 팔꿈치로 나를 툭- 친다.
내가 이런 얘기도 하게 되다니.. 진짜.. 요즘 너무 행복한 것 같다.
언니의 짝사랑 얘기 듣는 것도 얼마나 행복한지. 부장님이 안다면 큰일이지만 우리는 휴게실에 앉아서 10분을 넘게 떠들었다.
중간에 얼른 와서 일하라는 서주임의 연락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지만..
점심시간이 되었을까, 소희가 밖에 지나가는 신팀장을 보고 턱을 괸 채로 한숨을 쉬니, 강준이 그런 소희를 바라보며 덩달아 한숨을 쉰다.
"…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점심시간만 땡! 하면 둘이서 신나서 먼저 나가면서 오늘은 왜 이러냐? 한주임이 특히 더 저기압이네."
"그리는 기분 완전 좋아보이는데 ㅎ?"
강준이 뻘쭘한 듯 콧잔등을 긁고선 먼저 나가면, 해인이 가자- 하며 소희와 그리에게 말하고선 강준을 따라 나간다.
소희와 팔짱을 끼고 사무실에서 나온 그리는 옆을 보자마자 재욱과 눈이 마주친다.
"…안녕."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웃으며 손을 흔들자, 재욱이 갑자기 당황한 듯 멈칫해서는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
그리 웃는 게 그렇게 예뻐보였는지 그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계속 벙쪄있자.. 재욱의 옆에 서있던 도현이 재욱의 팔을 툭- 치며 '땡'한다.
"…뭐요."
"그리가 예쁘긴 하지? 근데 왜 굳어서 그러냐? 쟤 남친한테 일러?"
"뭐래."
"뭐래애!?"
"남친 저거든요."
"에!?!??!?!?!?!?!?!?!? 진짜?!?!"
"진짜."
"그럼 그때 팀장님이 봤다던 남친이..!"
"…아니 뭐, 그건 아닌데. 그렇게 됐어요."
"무슨 소리야????"
"…몰라도 돼요."
"아니 어떻게 몰라도 되는 건데! 무슨 상황인데!!"
"대충 재욱이가 능력이 좋단 얘기야. 베이비야."
"에!?!?"
"ㅋㅋㅋㅋ."
회사가 끝나고 그리가 사무실에서 나오자 마침 끝나서 기다리고 있던 재욱이 그리를 보고 작게 웃었고.
그리도 웃으며 재욱에게 다가간다.
어색하게 서있는 둘은 어제와 많이 달랐다. 뭐 다음 날에 보는 게 더 어색하냐..
"…일단 오늘 저녁에 약속 없지?"
"…어...한 9시쯤엔 약속이 있어..!"
"응? 무슨 약속?"
"오늘 소희 언니랑.. 서주임님이랑 정대리님이랑 술 마시기로 했어."
"술?"
"응!"
"그래, 그럼."
"응!...근데 어디 가?"
"가보면 알아."
"힌트!.."
"없어."
"시시해.."
"ㅋㅋㅋ."
재욱이 그리를 보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마침 사무실에서 나온 사람들이 헐 뭐야;; 하며 장난으로 극혐해 하는 표정을 짓는다.
"쟤 아픈가봐. 이재욱 왜 저래..?"
"정말 좆같다."
그러다.. 소희와 신팀장이 마주친다. 그럼 신팀장이 먼저 소희에게 말을 건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한주임."
"…어, 네. 신팀장님도요."
둘이 뭔가 모르게 어색한 것 같자, 강준이 그런 둘을 번갈아보다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한숨을 쉰다.
어딜 가나 했더니..
"뭐야..."
우리가 다녔던 학교였다. 5년이 지난 학교는 여전했다. 우리만 변하고 있었다..
"…어떻게 학교에 올 생각을 다 했어?"
"그냥.. 서로 짝사랑만 했을 땐 학교에서 제대로 대화 나눠보지도 못 했잖아."
"……."
"난 처음에 네가 너무 싫었다?"
"…왜!!"
"왜 소릴 질러?"
"싫다고 하니까."
"그냥. 하얘서 꼴보기 싫었어. 무슨 애가 저렇게 하얘~ 하면서."
"ㅋ 참나."
"ㅋㅋㅋ비웃었냐 지금?"
"별 게 다 싫다그러네."
"하얀 네가 싫었는데. 담임이 나를 불렀고.. 네가 아프다면서 잘 챙겨주라고 하는데. 그때부터 너무 신경이 쓰였어. 아프다고 하니까 괜히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
"그때 너한테 했던 못된 말들은 진심이 아니였어."
"…알아."
"알아?"
"응. 알아. 그러니까 그만 미안해 해."
"쓸데없이 착하기도 하고."
"너는 쓸데없이 싸가지 없지."
"못된 말도 할 줄 알아? 이그리?"
그리가 고갤 끄덕이며 웃었고, 재욱이 그리와 잡고 있는 손을 흔들자 그리가 소리내어 웃는다.
벌써 어두워지고 있고, 둘이서만 학교를 삥삥 돌고 있다.
'어 여기다..'하고 멈추는 재욱에 그리가 응? 하고 재욱을 보았고.. 재욱이 말한다.
"네가 단풍잎 준 곳."
"…그걸 기억해? 진짜.."
재욱이 어깨를 으쓱- 하면, 그리가 갑자기 발꿈치를 들고 재욱의 목을 감싸 안고선 입을 맞춘다.
"……."
"……."
진짜 얘는..
알다가도 모르겠네. 이그리.
우리끼리 술을 마셔봤자 얼마나 마시나 했는데. 난 까먹고 있었다.
언니가 술고래라는 것을.. 벌써 언니만 2병을 마셨고.. 다들 조금 취한 것 같아서.. 나도 한잔 마시고 얼굴이 붉어저셔 술기운(?)을 빌려 입을 연다.
"사실은 제가 할 말이 있는데요.."
"……."
"…무슨 중대발표길래 그래? 아까부터 할 말이 있는데요...만 몇 번째야?"
"이번엔 진짜요..진짜!"
"그래 말해봐."
다들 취했다.. 취했지만 그래도 말은 하고 싶었다.
"사실은요... 소희언니도 알고있긴 한데요..!"
"……."
"제가 좀 아파서.. 심장이 안 좋아서! 하루에 몇 번씩 약을 먹구요.. 뛰는 것도 잘 못 하구요.."
더 말을 이어가고 싶었는데. 눈치 보느라 그러지도 못 했다. 다 말했다는 듯 가만히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
"근데?"
"그래? 하나도 몰랐네? 아픈 티를 안 내서? 진즉에 말해줬어도 됐는데 왜."
"…뭔가 제가 아프다고 하면 불편해 할까봐."
"왜 불편하지?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필이면 못된 사람을 만나서 다른 사람들 까지 오해를 하고, 의식을 해야만 했었다.
이제서야 알아버린 내가 너무 바보같았다.
내 주변엔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있는데. 나는 왜 여태 바보처럼 경계만 했을까.
"…어서오세.."
카페 문이 열리고, 효섭이 놀란 눈으로 소희를 보고 있다. 소희가 제대로 다 들어오지도 않고 효섭을 바라보면 효섭이 멍하니 소희를 본다.
"그리 때문에 카페 옮기는 거예요?"
"…네?"
"그냥 궁금해서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요."
"아님 말구요."
"……."
"아, 참. 그리가 그쪽 갖고 놀려고 사귄 건 아니에요. 알죠, 그쪽도?"
"……."
"그리가 그쪽 자랑을 얼마나 했었는데요. 그냥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이라고 생각해, 난."
소희가 쿨하게 그 말을 하고 나가면, 효섭이 여전히 벙찐 표정으로 저 멀리 가버리는 소희를 본다.
"변호사야, 뭐야."
소희가 카페에서 나와 차에 시동을 걸면 곧 누군가에게서 카톡이 온다.
소희가 귀찮은 듯 핸드폰을 보면..
[저녁 먹을래요? ^^]
신팀장에게서 온 카톡에 소희가 허겁지겁 답장을 보낸다.
[네.]
너무 빨리 보냈나? 걱정스러운지 입을 틀어막고 있다가도 소희가 진정하려는 듯 심호흡을 한다.
"……."
워크샵 때 말고 너와 단둘이 바다에 놀러온 건 너무 좋았다.
"……."
그냥 친구도 아니고 남자친구랑 놀러간다는 내 말에 엄마는 나보다 더 신나셨고, 난 너의 손을 잡고 한 번도 놓지 않았다.
"우리가 그때 아무런 일도 없이 졸업까지 했었다면, 우리가 사귀었을까?"
"그러지 않았을까."
"그때는 너 좋아하는 여자애들 많아서 나 욕 많이 먹었었는데. 기억 나?"
"그런 거 아니야. 오글거리니까 그만 말해."
"왜.. 너 인기 짱 많았잖아. 일단 키가 커서 ㅎㅎㅎ 그리고 잘생겨서?"
"…어우."
"근데 가을에 정말 가?"
"사업?"
"응."
"조금 고민 되네.
그래도 난 만족한다.
친구는 없지만, 남자친구는 있는 것에 대해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와 과거를 회상하고, 고민거리를 풀지만.. 나는 남자친구와 풀 수가 있다.
"왜 고민 돼?"
"너랑 어색했을 땐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까. 가기 싫어."
"안 가면 되잖아."
"그럴까."
"응."
"그래. 스물셋에 무슨 사업이야?"
"ㅎㅎ근데 멋지긴하겠다."
"그럼 가?"
"아니."
"어쩌라고 그럼."
"…와."
"ㅋㅋㅋ."
"진짜 싸가지 없어 애가 말하는 게."
"그러게 나 진짜 싸가지 없는데."
"…알아서 다행이네 ㅎㅎ."
"고마워. 친구도 해주고, 여자친구도 해줘서."
"넌 친구 많잖아."
"너밖에 없는데."
"막 고등학교 때 애들이랑 친했잖아."
"인사한다고 다 친구냐."
"…아..ㅎㅎ."
"ㅋㅋㅋ암튼!"
"암튼!"
"내년에나 갈게."
"진짜?"
"응."
"…진짜?"
"이번 가을에 가기엔, 너랑 5년 동안 못해온 게 너무 많아서 억울해서 못 가겠다.
이렇게 잠깐 보는데도 보고싶은데. 어떻게 계속 떨어져있어. 몸이 힘들어도 회사 출근하면서 너 보고 힐링할래."
지금에서야 느껴졌는데.
"너 원래 말 엄청 없었는데 ㅎㅎ."
너는 나의 눈을 똑바로 보고서 나보다 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 말에 '싫어..?'하고 진심으로 묻는 너에게 나는 바로 고갤 저었다. 아니,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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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작인 만큼 !! 마지막화도 간단!하게 끝내써요..
여태!!!! 싸가지 없지만 괜찮아! 읽어주셔서 감사해쑵니다!!!!!!!!!
뭔가 고민없이 술술 써서 냈던 글인 것 같아여..핳핳..그럼 우리 다음 글에서 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