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거남들
독일 유학 2년, 일본 유학 1년, 그 시간동안 나는 도무지 적응이란 것을 전혀 하지 못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 3년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지난 3년 보다 최근 미국에서의 유학 3년 이라는 시간이 더 먼저 떠올라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다 가려주었다.
나는 그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어색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온거야. 걱정 했잖아.'
'...'
'괜찮아?'
'그럼요, 멀쩡해요'
'몸 말고'
'...'
'네 마음도, 네 속도, 다 괜찮냐고.'
'일찍 들어와.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오므라이스니깐.'
맏이로써 항상 세심하게 하나하나 잘 챙겨줬던 석진 오빠.
'질질 짜긴, 기집애 티 내냐.'
'넌 안 속상해?'
'울 만큼은 아니야 임마. 나까지 울면 달래는 건 누가 하냐.'
'야 저거 봐.'
'뭐? 하늘?'
'말고, 별. 하나 뿐이잖아. 하늘에.'
'그게 왜. 나 추워. 들어가자 얼른.'
'나한텐 저게 너야.'
'... 뭐래. 야, 장난 치지마. 하나도 재미없어. 오글거리거든.'
'...'
'들어가자, 춥다.'
'장난, 아니야.'
무덤덤하고 무감정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날 당황스럽게 만들 줄도 알았던 유일한 동갑내기 윤기.
'누나, 나 포기하려고요.'
'누구? 그 여자 애?'
'네.'
'야, 사내 자식이 고백 한 번 안 해보고 포기하냐. 어이구, 우리 찌질이.'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럼, 차였어?'
'...'
'그 여자 되게 보는 눈 없다. 너 같은 남잘 놓치냐. 야, 나 오늘 맥주 겁나 땡기는데, 한 잔 할래?'
'누나.'
'왜.'
'고마워요. 항상.'
'아, 누나 없으면 나 이제 고민 상담 누구한테 하지.'
'고민을 안 하면 돼. 몇 번을 말하냐?'
'치,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카톡해, 카톡. 약해 빠진 놈아.'
홀로 서기를 힘들어해 내게 의지를 많이 했던 지민이.
'야, 넌 뭐 여자 애가 겁도 없이...!'
'...'
'그래서 지금 어딘데.'
'몰라, 내가 길을 알아 뭘 알아.'
'그러니까 길도 모르는 게 왜 혼자 싸돌아 다니냐고 이 밤에.'
'아 화 좀 내지마. 나도 무서워 죽겠는데. 그냥 좀 데리러 와주면 안돼?'
'... 진짜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어. 너 움직이지 말고 딱 기다려라.'
'야, 그런 말 아냐. 끊임없이 불행한 건 곧 행복이 찾아올거라던데.'
'응.'
'난 대체 얼마나 행복해지려고 이러는 걸까.'
'...태형아.'
'은아 보고싶다, 많이.'
'아침 못 먹고 갈 것 같아서, 공항에서 먹으라고.'
'그래, 고마워.'
'누나.'
'뭐야 네가 누나란 소리도 다 하고. 간다니까 잘해주네.'
'행복해요, 누나는 꼭.'
'뭐래.'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우리랑 다시 만나는 거야. 알겠어요?'
'...'
'야, 잘가라!'
잘 알지도 못하는 은아라는 여자를 미워하게 한 끝까지 내 마음 몰라주던 꼭 행복했으면 좋겠는 김태형.
'만지지 마요.'
'뭐?'
'함부로 건들지 마요. 내 물건이잖아요.'
'야, 난 그냥 청소...'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내 방은.'
'좋아요?'
'어?'
'바다, 보고 싶어 했잖아요.'
'아, 응. 좋아.'
'그래요? 난, 바다가 제일 싫은데.'
'내가 누나 이렇게 대하는거 화나죠?'
'...'
'이유도 모르겠고 나는 누나한테 싫은 티만 내고 그러는 거 짜증 안 나요?'
'...아니, 별로.'
'...'
'처음엔 쟤가 왜 저러나 싶었는데. 사연이 있겠지. 누구나 그렇듯이 쟤도 다 이유가 있을거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괜찮아지더라고.'
'...'
'사연 없는 사람은 없으니깐.'
나와 따뜻한 정 한 번 나눠본 적 없지만 언젠가부터 내게 마음을 열던 정국이.
그랬던 그들을 떠난지도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그들을 잊지 못했다. 마치 지난 날 태형이 그녀를 잊지 못했던 것 처럼. 이제야 태형을 이해한다. 잊지 못하는 것은 더러운 미련이 아니다. 그만큼 좋은 추억을 나눴다는, 증거일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렸고, 상대를 대하는 법에 서툴었고, 이기적이었다. 그런 시절을 함께였어서 일까. 만약 훗날 한국에서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분명 누구 하나 빠짐없이 웃으며 부퉁겨 안을 것이었다.
+ 프롤로그에요! 독방에서 본 탄도 있을건데 이건 단지 말 그대로 맛보기고 본격적인 얘기는 1화부터~
+ 등장인물 너무 많아서 구사즈 뺐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