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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연애
02
평범한 하루
"밥은 먹었고?"
"응응."
"거짓말. 어차피 오빠 늦게까지 깨있을 것 같으니까 간단하게라도 뭐 해먹어."
"배 안고파서 괜찮아."
"아니 배가 왜 안고파! 밥을 먹어야 힘도 나고 일도 더 잘 되지."
"알았어, 알았어."
나는 아침, 점심, 저녁 끼니를 꼭 챙겨먹자는 주의고 민윤기는 귀찮게 그걸 뭣하러 다 챙겨먹냐는 주의였다. 그래서 우리 전화의 시작은 늘 민윤기의 끼니 걱정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고. 최근에 하고 있는 작업 때문에 또 부실하게 챙겨 먹고 있을게 분명했다. 안그래도 요즘 한가한데 도시락이라도 해다가 작업실을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연애 초기 때는 그 짓도 자주했는데 오랜만에 하려니 두근대기도 했다.
날씨 덥다고 에어컨 하루 종일 틀어놓고 있지 말고, 환기도 자주하고. 반면에 사소한 것과 '내 건강'에만 예민한 민윤기는 전화를 끝내기 전에 환기부터 시작해서 청소, 몸 상태를 체크한다. 누가 들으면 아주 의사인줄 알겠다. 전화를 끊으면 귀찮아서 안할걸 아는 민윤기기에 전화와 동시에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여니 그제서야 만족한 목소리로 '사랑해'라는 민윤기다. '나도'. 남들이 들으면 6년이나 사귀고 아직까지 낯간지럽게? 하지만 세번이나 헤어졌다 다시 사귀고 한번 싸울 때 마다 미친 듯이 서로 할퀴어대는 우리를 잘 알기에 어느샌가부터 평소에 잘하자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짓이었다.
아침부터 천둥이 무섭게 고막을 때려대고 번개가 번쩍번쩍하며 내 잠을 방해했다. 커튼을 옆으로 밀어내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듯 비가 매섭게 내리고 있었다. 후.. 오랜만에 이쁜 짓 좀 하려니까 날씨가 말썽이다. 내일 갈까 싶다가 밥도 안 챙겨먹고 인상이나 팍 쓰고 작업하고 있을 민윤기를 생각하니 그래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충 집 앞 슈퍼를 들를 채비를 했다.
고새 멈춘 비에 기분 좋게 우산을 뒷자리에 던져놓고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에 있는 도시락에 기분이 다 좋아져서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대며 작업실로 향했다. 내 생일과 민윤기 생일을 차례대로 누르니 열리는 문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여니 조그맣게 쿵쿵 대던 비트가 심장에 확 와닿는다. 가이드 녹음 중인지 정국이가 녹음실 안에 들어가있었다.
"벌써 곡 나왔어?"
"타이틀은. 보내달라고 가수가 보채고 있다길래 먼저 보내주려고."
"성격도 급하네, 오랜만에 남자 가수랑 작업하나보네~ 정국이 얼굴 잊어버릴뻔 했다."
부스 안에서 저에게 반갑다고 손 흔들며 인사하는 정국이에게 손을 살짝 흔들여보였다. 뒤에 놓인 낮은 테이블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민윤기 옆자리에 자리했다. 정국이는 민윤기의 학교 후배로 민윤기의 졸업 작품 때 같이 한 번 작업한 뒤로 계속해서 만나는 사이가 됐다. 민윤기는 복학한 뒤 졸업 작품을 앞둔 3학년 때, 정국이는 1학년 때 서로 만났고 민윤기와 나 또한 그 다음해에 만나 셋은 서로 아는 사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사근사근한 성격의 정국이와 친화력이 좋은 내 덕에 셋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가이드 곡은 자기가 하겠다며 나서는 정국이 덕분에 민윤기는 편하게 일할 수 있다며 정국이를 잘 챙겼었는데 최근들어 여가수들의 작업이 많이 들어와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플레이 되는 음원을 멈춘 민윤기가 의자를 뒤로 빙 돌려 내 도시락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고개를 까딱인다. 민망함에 민윤기를 쳐다보던 시선을 거둬들고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정국이에게 말을 건넸다.
"정국아 누나가 도시락 싸왔다, 빨리 나와~"
"오 진짜요?"
밝은 표정의 정국이가 부스 안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옆에서 미소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민윤기가 보지 않아도 그려졌다. 4단이나 쌓아온 도시락을 척척 내려놓을 때 마다 정국이의 감탄이 효과음처럼 딸려나왔다. 정국이 같은 남동생 하나 있으면 진짜 잘 챙겨줄 수 있을텐데, 아주 귀여워 죽겠다. 정국이가 옆에 있는 젓가락을 냉큼 집어들어 베이컨말이 주먹밥을 입에 넣으려는데 민윤기가 쪼개지도 않은 자기 젓가락으로 급하게 정국이의 젓가락을 톡 치며 쓰읍 한다. 그러더니 젓가락을 쪼갠 민윤기가 정국이 젓가락 사이에 걸려있던 주먹밥을 자기 입에 넣더니 내 머리를 쓰담쓰담한다.
"우웩."
"맛있네."
"그치그치?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했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우리 정꾸기~"
"네 누나~"
잘 먹고 있는 두 남자를 보고 있자니 남편과 아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흐뭇했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녹음을 재개한 둘을 뒤로 하고 나는 옆 방으로 가 빵빵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비싼 스피커 사이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음반들을 꺼내들어 하나씩 재생시켰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늘어뜨리고 노래를 듣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져 잠이 솔솔 왔다.
눈을 뜨니 배에 귤 색의 포근한 담요가 덮여져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을 잔건지 녹음이 끝나 정국이는 먼저 집에 갔다고 한다. 내가 데려다주게 깨우지 하니 민윤기가 말 없이 커피 테이블에 머그잔을 내려놓고 내 옆에 앉는다.
"도시락 잘 먹었어."
"밥 좀 잘 챙겨먹어, 나 귀찮게 하지말고."
"한동안 일이 없다?"
"이제 나도 거를 정도는 되지 않았나~"
"저번에 대판 싸운게 열 받긴 했나보네."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
내 대답에 머쓱하게 웃는 민윤기의 명치를 장난스럽게 팔꿈치로 콕 찍었다. 민윤기는 내가 봐도 꿀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내 머리를 자신의 품 안으로 당겼다. 숨막히다며 발버둥치는 내 얼굴을 붙잡고 코를 부비부비 한다. 작년에 작품을 하나 했었는데 마침 민윤기 곡의 뮤직비디오의 연출이 나였었다. 어린 여자 가수였고 촬영 과정에서 작은 마찰이 있었는데 여튼 그 아이 때문에 대판 싸우고 헤어질 뻔 한 것 까지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기운이 빠진다.
"그래도 끝은 좋았는데."
"변태, 변태, 변태."
"좋아했으면서."
"아아아아아아아, 에베베베베베"
화해의 뜻으로 몸의 대화를 좀 나눴다고 놀리는 민윤기의 말이 낯뜨거워 귀를 막았다 열었다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니 내 앞머리부터 턱까지를 손으로 쓱 훑는 장난을 친다.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노래를 듣다가 집에 가자는 민윤기의 손을 잡고 작업실을 나섰다. 차에 다다랐을때 내가 깜빡하고 놓고 온 빈 도시락을 가지러 올라가려니 나를 조수석에 앉힌 민윤기가 다시 건물로 올라갔다. 가볍게 뛰는 민윤기의 뒷모습을 보다가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노래를 틀어놨다. 빠르게 내려온 민윤기는 운전석에 앉아 내 좌석의 벨트를 먼저 매주고 차를 몰았다. 노래를 흥얼흥얼 거리다보니 그새 민윤기네 집에 도착했다.
익숙한 듯이 짐을 내려놓고 먼저 씻으러 들어갔다. 민윤기 옷장 한켠에는 내 옷가지들이 모여있다. 민윤기 향이 잔뜩 배인 옷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키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오늘은 그 잦은 다툼도 없었고, 오랜만에 정국이도 보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민윤기가 욕실로 들어섰고 나는 먼저 머리를 말리며 침실에서 민윤기를 기다렸다. 편한 옷을 입고 머리를 탈탈 털며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귀여워서 비실비실 웃으니 내 옆에 엉덩이를 꼭 붙이고 앉는 민윤기다.
"기분 좋아."
"나도."
"빨리 말리고 자자."
"이리 와봐."
덜 말라 촉촉한 머리칼을 뒤로 넘겨주며 민윤기가 침대 위에 자리 잡고 내 손을 이끌었다. 자기 위에 나를 앉힌 민윤기가 마주 앉아 얼굴에 마구잡이로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무기력 하다가도 그 피곤함을 씻어내고 침대에만 올라서면 기운이 나는 듯 해 보이는 민윤기가 몸을 확 뒤집어 나를 아래로 눕혔다. 머리 덜 말랐다고 찡찡대는 내 입술 위에 자기 입술을 포갰다.
주절주절 |
평범한 이들의 얘기를 적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앞으로 둘이 싸울 일도 많고 새로운 일들이 많이 벌어질 거기 때문에 흐흐 그래서 짧기도 짧고 지루하지만 이 이야기를 먼저 앞에서 다뤘습니다!
부족한 글에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게 뭐라고 암호닉까지 ..ㅠㅠ 암호닉 물론 받습니다 제가 뭐라고 안받겠어요!
아, 참 그리고 제 글은 위에 있는 브금을 웬만하면 틀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일 뿐더러 브금 선정에 나름 신중하거든요 헤헤
♥ 암호닉 ♥
뀨뀨님 나니꺼님 눈부신님 마끼님 윤기모찌님 하늘하늘해님 콜라님 라 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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